‘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 미국과 중국의 충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혼란스러운 철군,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속에서 러시아와 담판,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
2021년 1월 20일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해를 마감하면서 남긴 숙제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년간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는 대선 패배에 불복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불법점거로 인한 혼란 속에서 백악관에 입성해 ‘하나 된 미국’을 외쳤지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 변이 확산도 바이든 행정부 발목을 잡았다. 밖으로는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등과의 전통적인 동맹을 복원하고 미국·영국·호주 간의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신설했지만 21세기 새로운 도전국가인 중국·러시아·북한·이란 등과 마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40년 만에 최대 폭인 7%(2021년 12월 기준)까지 치솟은 미국 소비자물가가 민심을 뒤흔들고 있다. 일선 주유소에서 기름값이 1갤런(3.8ℓ)에 평균 3달러를 넘어섰고, 육류와 식료품값이 일제히 상승했으며, 공급 부족 사태·물류대란과 맞물려 공산품 가격마저 급등하면서 미국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문제는 심각하다.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국정운영 동력마저 잃을 수도 있다. 이는 2024년 차기 대선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이든 지지율 30% 초반으로… 대선 불복 여론도 여전
바이든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취임 초기 60%대에서 출발했지만 2022년 들어 40%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미국인 10명 중 4명꼴로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사도 나왔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와 시장 조사업체 모멘티브가 1월 초 미국인 2649명을 조사한 결과, ‘조 바이든을 2020년 대선의 정당한 승자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만 “그렇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26%)과 “모르겠다”는 답변(16%)을 포함하면 전체의 42%가 대선 결과에 불복한다는 의미다. 이는 1년 전인 2021년 1월 조사 결과에서의 대선 불복 의견(38%)과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응답자의 57%는 앞으로 수년 내 의회 폭동과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것 같다고 답할 정도로 미국 내부적인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미디어와도 소통이 적었다. AP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를 22회 진행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도널드 트럼프(92회)와 버락 오바마(156회) 전 대통령보다 크게 적다.
▶민주당 11월 중간선거 참패 가능성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연방대법원, 의회, 민주당 중도파에 가로막혀 국정운영에 번번이 차질을 빚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100인 이상 민간 사업장 종사자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지만 “과도한 권한 행사”라는 연방대법원 판단에 따라 최근 효력을 상실했다.
국정 업무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일손도 부족하다. CNN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첫해에 지명한 대사, 연방판사, 연방검사 등 고위직 인사 중에서 올해 1월 초 기준 상원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비율은 41%에 불과하다. 공화당 반대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자리들이 공석이다보니 업무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취임 첫해 상원 인준 비율의 경우 오바마 전 대통령 69%, 트럼프 전 대통령은 57%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2조달러 사회복지 인프라법의 경우 민주당 중도파의 반발로 인해 공회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투표권 보호를 위한 입법도 민주당 내부적으로 제동이 걸렸다.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석을 차지하면 바이든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상원 3분의 1인 34석, 하원 전원인 435석을 각각 새로 뽑는다. 현재 미국 상원은 민주당(민주당 성향 무소속 2석 포함)과 공화당이 50 대 50으로 양분하고 있고, 하원의 경우 민주당이 221석으로 공화당(212석)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중간선거가 현직 대통령 국정 중간평가로 여겨지는 데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 등을 감안하면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우세한 상황이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친이민정책과 허술한 국경관리 문제를 거론하면서 “탄핵을 검토할 여러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비리 조사를 촉구하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압력을 행사한 의혹과 2021년 의사당 폭동사건 선동 혐의로 모두 두 차례 탄핵심판대에 오른 것처럼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탄핵 주홍글씨를 남기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다른 일에 신경 쓰라”며 일축했지만 극단적으로 갈라진 정치지형에서 트럼프 시절과 탄핵 시도 상황이 유사하게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돌아왔다”며 동맹국을 재규합하고 글로벌 리더십 복원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의 충돌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주도권 다툼, 우크라이나 군사적 긴장을 둘러싼 러시아와의 담판, 탄도미사일 도발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북한과의 협상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해 11월 화상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의도치 않은 충돌을 막기 위한 소통채널을 열어 놓기로 했다. 미국은 중국과 군사, 안보, 경제, 기술 분야에서 경쟁하면서도 기후위기 대응에서 협력도 모색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신장에서의 인권탄압을 이유로 2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정부 사절단을 배제하고 선수단만 파견하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체결했던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가 작년 말 종료된 상황에서 25% 관세율 조정 등 추가 협상도 풀어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안보 리더십을 확인하는 시험대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병력 10만 명을 배치하고 침공 명분과 시기를 조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유럽 및 나토와 합심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은 1월 들어 연이어 동해상으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하면서 도발하고 미국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외교적인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독자제재를 병행하면서 강경 대응모드로 전환한 상태이다.
▶“기름값 잡겠다” 물가 안정으로 반전 도모
바이든 대통령은 3월 1일 의회에서 첫 국정연설을 실시할 예정이다. 미국 내외부적으로 국정 과제에 대한 비전과 전반적인 추진전략을 공개한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민감한 물가 안정이라고 할 수 있다. 40년 만에 최고치로 오른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중간선거에서 대패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새해 첫 정책 행보도 육류 가격 인하를 내세웠다. 대형 육류가공업체의 독과점을 막고 소규모 농장·목장을 지원해서 육류 가격 하락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에서 육류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16%가 올랐다. 소고기 가격은 같은 기간 20.9%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 최대 육류가공업체 타이슨푸드 등 업계는 바이든 정부가 물가 인상 책임을 기업에 전가한다고 반발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유소 기름값 안정을 위해서 전략비축유도 풀고 있으며, 석유 유통구조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물가는 여러 경제현상과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물가 안정을 위해 올해 기준금리를 최소 3차례 이상 인상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이러한 통화긴축정책이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은 또 다른 변수일 수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물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금리를 예상보다 더 인상하겠다는 통화긴축정책 의지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