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970년대생들이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정치권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란 정치 신인이 등장하면서부터인데, 전정권 때부터 앙숙이 돼버린 민주당의 586 운동권세대와 대립각을 확실하게 세우며 보수 진영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행보 때마다 발생하는 작은 이슈마저 기사화가 될 정도로 사회적 관심도 크다.
한동훈 위원장의 가장 큰 무기는 강력한 집권 여당의 팬덤이다.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이라는 이점을 빼고서라도, 그가 법무부 장관 시절 보여준 반대 진영 인사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화끈하게 논리적으로 맞붙는 모습은 기존 보수 진영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일로 우파 지지자들은 이에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공개적으로 해주고 있다’며 감정이입을 하는 우파 지지자들이 상당하다.
한 위원장의 이런 스타일을 두고 전문가들은 그가 70년대생인 것에 주목한다. X세대로 불리는 70년대생들은 대한민국 세대 발전에서 ‘자유롭다’는 평을 들은 첫 세대로 분류된다. 지금은 ‘꼰대’ 반열에 올랐지만, ‘할 말은 해야 하는’ 거침없는 세대이면서 동시에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로 태어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능력’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한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문화·경제적 풍요를 제대로 느낀 X세대 중에서도 엘리트로 자라왔다. 이런 것들이 복합해 그의 정치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한 위원장의 정식 정치 입문 행보 이후에도 이 같은 맥락이 엿보인다. “정치권에 아무런 인연이 없어 공천 관련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그의 우스갯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도 총선을 앞둔 공천 작업에서 국민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이 최우선 기준이 될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73년생 한동훈>의 저자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는 그의 책에서 “한 위원장이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지점은 정치적 순혈주의를 ‘능력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 자체로 정치 문법의 새로운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썼다. 심 교수는 이어 “많은 화이트칼라 지식인층이 한 위원장을 우파 진영의 일원이라기보다는 586세대 정치인들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당 지도부 격인 비대위를 꾸리면서 젊은 색채도 과감히 불어넣었는데, 586세대 정치인들과의 차별화를 노린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586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789(70·80·90년대생)를 내세워 비대위원들을 채웠다. 이에 발맞춘 듯 대통령실도 2기 내각을 출범시키며 신임 정책실장에 70년대생인 성태윤 연세대 교수를 발탁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비대위원장의 비서실장에도 70년대생인 김형동 의원을 임명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광풍급 인기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등장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을 향한 민심에 변화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한 위원장이 등장한 것은 올해 총선 승리를 이끌기 위함인데,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여론의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한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1일 당을 공식적으로 이끌기 시작한 이후 당의 지지도는 크게 변화가 없다. 한국갤럽의 1월 셋째 주 조사(1월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대상,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나타난 당 지지도는 36%로, 그의 비대위원장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 둘째 주 결과와 똑같았다. 다만 국민의힘의 약세 지역인 서울서는 일부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기는 한다. 지난해 11월 30% 초반대까지 하락했던 당 지지율이 이번 조사에서 40%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당을 맡기 전에도 40%대에 도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서울 민심 변화 추이는 여전히 유동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서울의 무당층 비율은 23% 정도다. 수도권 총선 승패를 좌우할 경기·인천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당이 총선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신선함이 경쟁 상대들에 비해 뒤처지는 등 한동훈 개인의 인기와 당의 행보가 따로 노는 느낌은 여전하다.
한 위원장은 현재 대권 주자 반열에 서 있다. 한국갤럽 1월 둘째 주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1월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대상,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한 위원장은 22%를 기록하며 23%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근소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 위원장에 대한 선호도는 갤럽의 직전 조사(지난해 12월 첫째 주)와 비교할 때 6%포인트나 상승했다.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가 실시한 조사(1월 6∼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95% 신뢰수준 오차범위 ±3%포인트)에서는 한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의 양자 맞대결 시 후보 적합도가 36%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70년대 대권 주자의 탄생과는 별개로 한 위원장의 행보는 그동안 ‘낀세대’로 분류된 70년대생의 사회적 존재감과 관련해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만일 한 위원장이 성과 없이 물러난다면, 정치권의 70년대생으로의 세대교체론은 기대와 달리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고 대한민국 전체의 세대 존재감에서도 ‘반짝’하고 그 힘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 위원장 등장 이전에도 여당인 국민의힘에는 70년대생 젊은 의원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이 초선으로 이들에게 정치 입문이 허락된 것은 기존과는 다른 ‘혁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여당 내 70년대생 정치인들의 존재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힘인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란 신인 정치인들은 정계 입문 후 당내 쓴소리 세력으로 자리잡으며 당내 활력을 불어넣었고 스스로 체급을 키우며 대안 정치인으로 성장했지만, 여당 내 21대 정치 신인들 가운데서는 그런 모습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70년대생인 한 위원장의 등장이 반갑긴 하지만, 이처럼 당내 같은 세대 그룹조차 수동적 모습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단순히 그가 진영 내 지지자들의 팬덤에 의존해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금처럼 정치가 양 진영으로 극단적으로 갈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운동권 청산을 내세운 한 위원장을 놓고 직접적 타깃이 된 586 세대의 반격은 이미 시작됐다.
586 운동권 세대의 대표주자 격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대학 전공을 이야기하며 “군부 쿠데타 세력이 일상을 무너뜨리며 쳐들어왔고, 무섭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버티고 싸웠다”면서 “한 위원장이 92학번인 것 같은데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 바로 고시 공부를 한 것 아닌가. 동시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선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사 정권 시절에 양심을 못 가졌거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자기 일신에만 매달렸거나 하는 것이 무슨 콤플렉스가 있는 게 아니라면 다시는 그런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대학 전공은 무기재료공학으로 정치와 무관했지만, 그가 운동권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생긴 일종의 소명의식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이다. 이에 대해 역시 운동권 출신이자 같은 연배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임 전 실장을 향해 “아직도 운동권의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하 의원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92학번은 민주화된 YS 시절에 대학을 다녔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이 누군가에게 미안해야 할 일은 아니다”라면서 “(이는) 80년대는 물론이고 민주화된 시기 이후에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 의원은 “정작 임종석 실장이 말하고 싶은 건 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고 92학번인 너는 데모한 적 없으니 나한테 미안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되받았다.
90년대 초반 학번의 한 인사는 “대학 입학을 하자마자 시위에 나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임 전 실장의 말대로 군부 쿠데타에 항거에 대학생들이 일어났다면 92년 민주화가 됐는데 왜 운동권은 그때도 그렇게 학생들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갔는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임 전 실장의 ‘70년대생 한 위원장’의 비판에 정작 국민의힘 내 동년배 의원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국민의힘 내 70년대생으로는 현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유의동 의원을 포함해 김성원·강민국·김병욱·김웅·김형동·배준영·전봉민·정희용·조수진·권은희·이용·이종성 의원 등이 있다. 이 중 유의동 의원이 3선, 김성원 의원이 재선이다. 조수진·권은희·이용·이종성 의원은 비례대표다. 이들 페이스북을 보면 한 위원장의 인기를 활용한 총선 홍보물만 가득할 뿐, 586 운동권과 한 위원장이 벌이는 ‘세대’ 논쟁에는 전혀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아니다.
70년대생 국민의힘 한 보좌관은 “X세대의 특징 중 번번이 거론되는 것이 자유분방하게 자라 ‘결속력’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솔직히 당내 70년대 현역 의원들을 보면 민주화란 단일 목적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586 세대에 비해 그런 점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70년대생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역이 되려는 이 순간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우리는 이대로 낀세대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보좌관은 “취임 한달 만에 한 위원장을 흔드는 당정갈등에 대해서도 숨만 죽이고 있는 것이 이들인데…”라며 씁쓸해했다.
사실 정치권서 70년대생들이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재명 현 대표가 선출된 2022년 민주당 대표 선거 당시 당내에서 70년대 기수론이 나온 바 있다. 직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당내 위기감이 고조된 것과 맞물린 움직임이었다.
당시 당내 70년대생인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의원 등은 ‘세대 교체론’을 내세우며 당 대표 경선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당내 변화를 원하는 이광재 전 의원 등 당내 중진급 인사들의 측면 지원도 있었다. 하지만 당내 주류세력인 586 운동권세대의 아성을 뚫어내지 못했다. 이후 민주당 내 세대교체론 이야기는 쏙 들어가버렸고, 주지하다시피 당내 계파싸움이 극에 달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결국 당은 쪼개지고 말았다. 2022년 민주당 당 대표선거에서 70년대생의 세대교체 반란이 힘없이 끝난 이유 중 하나로 종종 70년대생 후보들끼리 힘을 결집시키지 못한 것이 거론되는데, 역시 문제는 ‘결속력’이었던 셈이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