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사람의 이동뿐만 아니라 항공과 해운에 이어 육상 물류마저 멈췄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올해 1분기에 내수시장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2분기부터는 글로벌 수요절벽 등 코로나19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세계사적인 사건이자 21세기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오는 전환점이다.
올해 ‘수출 플러스 전환’을 목표로 내걸고 신년 사업전략을 조기수립했던 KOTRA는 디지털 무역 지원방식으로 발 빠르게 전환했다. 지난 2월부터 수출기업들의 화상상담을 총력지원해서 ‘비대면 수출’ 판로 개척에 집중하고 있다. 또 온라인 전시회 공간을 만들어 한국 제품을 홍보하고 온라인 취업상담회를 열어 화상면접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돕는다. 아울러 전 세계 129곳에 위치한 KOTRA 무역관들이 수출기업의 해외지사처럼 활동하면서 해외 바이어를 대신 만나고 거래선을 관리해준다.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이 합심해서 코로나19 위기극복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이라면 어디든 KOTRA를 통해 수출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한국-파키스탄 경제외교 후속사절단 화상상담회
권평오 KOTRA 사장은 지난 4월 취임 2주년을 묵묵히 보내면서 화상상담시설 확충과 온라인 마케팅 확대 방안을 다각도로 살폈다. 또 불철주야 활동하고 있는 국내외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어 홈코노미(Home+Economy), 헬스케어,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및 리쇼어링(제조업체 국내 유턴)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 중장기적인 트렌드 변화를 분석하고 대응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KOTRA 서울 염곡동 본사 1층에 마련된 화상상담장을 찾아갔다. 기존의 아트컬래버 전시관을 개조해서 별도의 화상상담시설 10곳을 새롭게 확충한 곳이다. 발열체크에 이어 문진표를 작성해야 입장할 수 있다. 매일 오전 7시부터 문을 열지만 긴급 수요 발생에 대비해 24시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내 기업들은 해외 바이어와 화상상담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대형 컴퓨터 화면을 통해 한국 기업, 통역사, 해외 바이어, KOTRA 현지무역관 등 4자 화상상담이 이뤄진다.
국내 기업이 한국어로 제품설명을 하면, 통역사가 영어로 전달하고, 이를 이해한 KOTRA 무역관 직원이 현지 언어로 바꿔서 해외 바이어에게 전달하는 구조이다. KOTRA는 화상상담에서 중견·중소기업을 위한 통역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전문 통역업체와 계약해서 영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스페인어·러시아어 등 6개 언어를 기본적으로 지원하고 필요에 따라 아랍어와 몽골어 등 특수언어 전문가도 섭외해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대면 만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KOTRA가 수출기업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해외 바이어를 연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 세계 바이어와의 시차를 감안한 화상상담 예약과 일정 조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KOTRA 부서별로 집중상담이 몰리면 하루 동안 본사에서만 70~80건을 한꺼번에 처리할 때도 있다. KOTRA는 화상상담장을 ‘코로나19 종료 시’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화상상담이 새로운 수출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면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
KOTRA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이던 올해 2월 13일부터 본사, 지방지원단, 해외 무역관을 활용해 화상상담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두 달여간 3200여 건의 화상상담을 성사시켰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화상상담(960건)보다도 3배 이상 많은 규모다. 주로 집이나 사무실에서 개별 화상상담이 어려운 중견·중소기업들이 KOTRA 화상상담장을 많이 방문했다.
또한 KOTRA 화상상담장을 찾았다가 통역도움을 얻고 KOTRA 직원에게 추가 조언을 받기도 한다. 중소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공공기관인 KOTRA와의 협업이 대외적으로 제품과 브랜드 신뢰도를 높여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화상상담 초반부터 KOTRA와의 공동 마케팅을 선호하는 기업이 많다.
KOTRA 부산 온라인 상담회. 2020년 3월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0 붐업 부산 화상상담회’에서 우리 기업이 해외바이어와 온라인 상담을 하고 있다.
▶온라인 취업상담회도 열어 일자리 창출
화상상담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KOTRA 화상상담 지원서비스를 통해 기존에 진행하던 거래를 마무리하거나 신규 수요를 발굴하는 형태로 이뤄졌는데, 올해 2~4월 두 달 동안 실제 계약했거나 약정한 금액은 4000만달러에 이른다. 예를 들어 국내 A사는 러시아에 30만달러 규모 마이크로 전기차를 공급하기로 했고, 포항웰빙푸드는 최근 간편식 수요 증가와 맞물려 간편 쌀국수를 중국 상해 식품회사에 수출했고, 의료기기회사인 C사는 불가리아에 긴급 의료수요와 관련한 무선 엑스레이 영상장비를 판매하기로 했다.
김상묵 KOTRA 혁신성장본부장(상임이사)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수출기업들의 대면 마케팅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KOTRA가 화상상담으로 긴급한 미팅 수요를 채워주고자 한다”며 “해외 전시회 무산에 따라 온라인 특별전과 연계해 소비재, 산업용 소재부품, 의료진단기기 등에 대한 집중 마케팅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라인 전시관을 통해서도 마케팅을 진행하고 온라인상에서 기업들끼리 교신도 해서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되려면 서로 만나야 할 경우에 KOTRA 화상상담으로 흡수해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KOTRA는 현재 본사, 지방지원단, 해외 무역관을 포함 79곳인 화상상담장을 연내 148곳까지 두 배가량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화상상담으로 국내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기로 했다. 실제로 KOTRA 화상상담장 부스에서는 전략 인프라 분야 외국계 투자기업인 ABB파워그리드코리아가 온라인으로 채용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화상상담 프로그램에 접속한 한국 청년 40여 명을 대상으로 회사 채용일정과 인재상을 설명하면서 수요를 파악하는 자리였다. 조만간 화상면접도 진행된다고 한다.
KOTRA는 매년 5월 해외 채용담당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진행하던 ‘해외취업 박람회’를 올해는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했다.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함께 5월 14~22일 ‘2020 해외취업 화상면접 주간(Online Job Fair Week 2020)’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7개 국가에서 61개 기업이 사전 서류심사를 통과한 구직자를 대상으로 1대1 화상면접을 통해 총 242명의 채용절차를 진행했다. 부대행사로는 1대1 모의 화상면접과 피드백을 주는 해외취업 코칭, 해외취업 선배가 전하는 멘토링, 해외취업 전략설명회를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화상상담으로 국내 소재부품분야 중소·중견기업들의 글로벌 밸류체인 진입기회도 마련했다. KOTRA는 서남아지역 현지무역관을 통해 글로벌 기업 협력수요를 적극 발굴해 한국 기업과 매칭해주는 ‘글로벌파트너링(GP) 서남아 화상상담 주간’을 열었고 인도 자동차 구매정책 화상설명회도 준비했다. 또한 에듀테크 기업들을 모아서 해외 바이어와 연결하는 별도의 화상상담회를 전개하기도 했다.
권평오 KOTRA 사장
KOTRA가 중국 현지에 온라인 마케팅 전용공간인 K스튜디오(K-Studio)를 개설한 점도 관심을 모은다. K스튜디오는 중국 베이징과 쓰촨성 청두에 설치됐고 6월까지 광저우, 상하이, 선양, 타이베이 등 6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서는 화상상담을 비롯해 왕홍방송 등 인플루언서 마케팅, 온라인 전시, 기업·상품의 쇼트클립 제작 등이 이뤄진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 플랫폼 틱톡(TIKTOK)과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실제 제품판매가 진행되고 있다. K스튜디오는 중국에서 한국 중견·중소기업의 온라인 비즈니스 무대라고 할 수 있다. KOTRA는 중국을 포함해 지역별 온라인 한국우수상품전도 수시로 열고 있다.
외국에서도 KOTRA 비대면 수출지원 서비스를 주목하고 있다. KOTRA 본사 화상상담장에서 만난 에릭 가르시아 페루 수출관광진흥청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려고 찾아왔는데, 방역기준을 준수하면서 비대면 마케팅 지원 사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KOTRA는 해외 무역관을 활용해 ‘긴급 지사화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해외 출장이 힘들어진 국가·지역에 소재한 KOTRA 해외 무역관이 직접 나서 한국 기업의 현지 지사처럼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로 인해 KOTRA 129개 해외 무역관 직원들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발이 묶인 기업들을 대신해서 산업 현장을 누비고 있다. 수출현장 최일선에서 전천후 ‘종합상사맨’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KOTRA 무역관 직원들은 해외 바이어를 대신 만나서 거래선을 관리해주고 국내 기업과의 화상상담을 주선하면서 온라인 마케팅을 준비한다.
해외 공장 셧다운에 따라 원자재와 부품 공급망 확보에도 앞장선다. 경제사회 변화에 따라 신규 프로젝트 발굴도 그들의 몫이다. 공항과 공장을 수시로 오가면서 물류 문제까지 챙기고 있다. 교민 피해를 파악해달라는 대사관·영사관의 업무요청에도 적극 대응한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 건의 요청을 처리하느라 대외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KOTRA 해외 무역관 업무는 사실상 24시간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일과시간에는 화상상담에 집중하고, 나머지 업무를 일과시간 이후에 처리하는 형태다.
한국·파키스탄 경제외교 후속사절단 화상상담회
▶KOTRA 해외 무역관이 수출기업
바이어 대신 만나 거래선 관리
코로나19 노출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방역에도 상당히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는 직접 운전을 한다. 가족과의 접촉도 조심스러울 정도다. 해외 현지학교 교육이 마비되고 의료시스템마저 위태롭게 되자, 일부 KOTRA 직원 가운데 가족들을 모두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혼자 근무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갑작스러운 친인척 부음소식이 들려오더라도 한국으로 복귀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김상묵 KOTRA 혁신성장본부장은 “해외 무역관은 온라인 마케팅 내용을 현장에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홍보해서 온라인 사업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며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홈코노미 산업이 주목받더라도 누군가는 해외 현지에서 제품이나 서비스공급을 해야하는데 그게 KOTRA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KOTRA는 한국 기업들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해외 현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장 트렌드를 조망하고 있다. 경제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KOTRA 해외 무역관들이 코로나19 확산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한 시사점을 보고서로 내놓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 무역관은 “전체적으로 소비가 위축됐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는 달리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원격 경제 활동이 급증했는데, 온라인 쇼핑, 식사배달, 원격 진료, 화상회의 수요가 늘어났다”고 설명했고, 프랑스 파리 무역관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국가 간 공조보다는 탈세계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캐나다 토론토 무역관은 “코로나19 사태로 캐나다 기업들이 중국에서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는 등 글로벌 전략을 수정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은 “사회적 거리 두기 및 격리조치가 실행됨에 따라 집안에서 즐기는 책과 컴퓨터 게임 등 소비가 늘어나고 식품과 보건위생 등 ‘생존’ 소비도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KOTRA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중국의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 키워드를 ‘H.O.M.E’이라고 정의하고 관련된 제품개발과 서비스 진출을 제안했다. 이 키워드는 ▲건강과 방역을 중시하는 헬스케어(Healthcare)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기술을 토대로 디지털 경제 핵심인 온라인(Online) ▲방역 과정에서 안전성과 효율성을 검증한 무인화(Manless)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형성된 홈코노미(Economy at Home) 등을 뜻한다.
최근 중국 빅데이터 기반 시장조사기관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소비지출 의향품목을 조사한 결과 위생방역이 37.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의료보험(31.4%), 가정청결용품(29.6%), 의약품(24.3%), 재테크상품(20.5%), 건강식품(18.2%), 가정용 운동기구(16.3%) 등의 답변이 많았다. 이에 따라 KOTRA는 중국에서 스마트 회의기기, 물류 로봇, 자율주행 배송차, 가정용 미용기기 등의 상품이 코로나19 이후에도 각광받을 것으로 진단했다. 화상회의,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 원격진료, 게임·애니메이션 등 서비스 시장도 유망하다고 내다봤다.
권평오 KOTRA 사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세계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맞이할 것”이라며 “우리가 코로나19 이후를 한발 앞서 준비한다면 급변하는 환경도 기회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