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이 최근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모피아 출신인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행장직에서 물러났고 최흥식 사장이 담당했던 지주회사 사장 자리도 전격 폐지됐다. 8명의 사외이사 중 절반인 4명이 교체됐다. 이번 인사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다. 이번 인사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홀로서기’가 진행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승유 전 회장 시절 임명된 사외이사를 대폭 교체하고 지주 내 사장 자리를 폐지한 것만 봐도 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동안 하나금융은 김승유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김정태 회장은 이와 같은 그늘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색깔을 좀 더 낼 수 있는 진용을 갖추게 됐다. 김승유 전 회장 또한 최근 하나금융 고문직에서 물러났고 중국 민생은행에 고문직으로 초빙돼 그룹과는 점차 멀어지는 분위기다.
이제 취임 2년째가 되는 김정태 회장은 1년 후에는 연임에 도전해야 하는 입장이다. ‘김정태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이번 인사의 성공 여부가 그의 연임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김한조 신임 외환은행장
14년 만에 첫 내부 출신
하나금융 인사 중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바로 외환은행장의 교체다.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2년 임기를 채우고 1년 연임의 기로에 섰었다. 김종준 행장은 연임에 성공했고 윤용로 행장은 연임에 실패했다. 사실 인사가 발표나기 전 두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김정태 회장은 지난 1월 공식 석상에서 “김 행장과 윤 행장이 연임하는 게 (조직 운영을 위해서는 오히려) 편하다”고 밝혀 연임을 예상하는 기류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분위기가 바뀌면서 윤 행장의 전격 퇴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외환은행장 교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은 실적이다. 김정태 회장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된 경영발전보상위원회 위원들은 외환은행의 실적에 대해서 큰 문제를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윤 행장 취임이후 외환은행의 실적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1년 1조6221억원에 달했던 외환은행의 당기 순이익은 2012년에는 6258억원으로 떨어졌다. 실적 부진은 계속 이어져 지난해에는 3657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불과했다.
론스타 시절 영업구조가 망가졌기 때문에 실적 부진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고 외환은행 측에서는 변명할 수 있다. 그래도 은행장으로서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다른 은행들은 비용 절감 등을 통해서 위기 극복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왔지만 외환은행이 이 부분에서 다소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외환카드와 하나SK카드의 통합작업 지체에 대한 책임론도 윤 행장의 연임에 발목을 잡았다. 지난 2011년 외환은행이 하나금융그룹으로 인수될 때 두 은행의 독립 경영을 5년간 보장하는 방안이 합의됐었다. 다만 카드와 IT부문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협의가 가능하다는 내용도 합의가 이뤄졌다. 하나금융 측에서는 이와 같은 합의 내용을 근거로 볼 때 외환과 하나SK카드 통합 추진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외환은행 노조 측에서는 ‘카드 통합’은 은행 통합의 수순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룹 내 일각에서는 윤 행장이 노조에 다소 휘둘리면서 그룹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카드 통합에 소극적으로 나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외환카드에 대한 분사가 이뤄지면서 카드사 간 합병은 그룹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지난해 윤 행장이 노조의 반대 등을 이유로 합병 추진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합병을 지체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통합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룹에 비협조적이었던 윤 행장이 미운털 박힌 게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하나금융의 사외이사들이 윤 행장의 연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김정태 회장은 연초 공식 석상에서 밝힌 대로 두 행장을 모두 연임시키려 했지만 사외이사들이 ‘실적 및 카드 통합 작업’에서의 윤 행장의 책임론을 강력하게 제기했다는 얘기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김 회장은 윤 행장의 연임을 위해서 사외이사를 계속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윤 행장 후임으로는 김한조 전 외환캐피탈 사장이 임명됐다. 지난해 2월 외환은행 기업사업그룹 부행장에서 외환캐피탈로 옮겼던 김 행장은 1년 만에 행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됐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경희고와 연세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강남기업영업본부장, PB영업본부장 등을 맡으면서 특유의 추진력을 보였고 직원들의 신뢰도 두텁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지난 2000년 퇴임한 이갑현 외환은행장 이후 14년 만에 내부 출신 행장이 탄생했다는 점에서도 향후 두 은행 통합과정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32년간 외환은행에서 근무한 ‘맏형’으로서 외환은행 노조와의 대화를 잘 이끌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기업경영분야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쌓아놓은 인맥도 강점이다.
김한조 행장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들어가면 (과거 대주주였던) 론스타 잔재를 청산하겠다”면서 외환은행 역량 회복을 강조했다.
사외이사도 대폭 물갈이 … 지주 사장 자리 폐지
이번 인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 사외이사의 교체다. 하나금융지주는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정창영 전 코레일 사장, 김인배 이화여대 교수, 윤종남 법률사무소 청평 대표변호사, 송기진 전 광주은행장을 추천했다. 전체 8명의 사외이사 중 절반인 4명을 교체하기로 한 것이다. 5년 임기를 마친 허노중 이사회 의장을 포함. 박봉수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부회장, 황덕남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 조정위원, 이상빈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이번에 물러나게 됐다. 이들 사외이사들은 김승유 전 회장 시절 임명된 인물들이다. 사외 이사 교체가 김승유 전 회장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사내이사로 등재됐던 지주 사장, 하나은행장, 외환은행장이 모두 이사회에서 빠졌다. 하나금융 이사회는 김정태 회장과 8명의 사외이사로만 구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직 개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하나금융 측에서는 지주회사 사장 자리 폐지는 조직 슬림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그룹 실적이 좋지 않은 시기에 은행장이 지주사 사내이사에서 빠지는 경우가 과거에도 있었다”며 “이번 인사도 비용 절감과 조직 슬림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하나금융은 이번 인사에서 조직 슬림화에 방점을 두기도 했다. 자산관리(AM)부문과 투자은행(IB)부문으로 나눠있었던 하나대투증권 대표를 하나로 합친 것도 대표적인 예다. 하나금융그룹 기업금융부문 부회장을 역임했던 임창섭 AM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물러나고 현대증권 본부장과 부산은행 부행장을 거쳐 IB부문 사장으로 왔던 장승철 사장이 하나대투증권 통합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됐다.
하지만 이제 1년 뒤에 연임을 노리고 있는 김정태 회장이 조직 내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분명한 건 김 회장의 그룹 내 책임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올해는 김 회장의 리더십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1월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출발2014’ 행사에서 비전 선포식 후 농악대와 함께 무대에 등장해 꽹과리를 치고 있다
2025년까지 글로벌 수익 40% 내기 가능할까
하나금융그룹은 올해 ‘신뢰받고 앞서가는 글로벌 금융그룹’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무엇보다 글로벌 수익 비중을 전체 그룹 수익의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 눈에 띈다. 국내 시장에서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면서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인 것이다. 하나금융은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글로벌화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2년 기준 해외 수익 비중은 그룹에서 15.7%에 달한다. 다른 금융 그룹의 그룹 수익 중 글로벌 비중이 10% 이하인 반면 하나금융은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탄탄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지역에서 하나캐피탈 등 비은행 계열사가 적극 진출하고 북미에서 지린, 민생은행 등 중국계 은행과 공동 진출을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은행 분야는 국내 1위로 도약하고 비은행 계열사의 이익은 전체 그룹 이익의 30%가 될 수 있도록 성장시킬 계획이다.
이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김 회장은 올 한 해 글로벌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 금융기관 중 최대인 전 세계 24개국 127네트워크를 가진 장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도 향후 3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하나캐피탈의 진출을 적극 추진한다. 마이크로 파이낸스(소액대출) 분야를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북미지역에서는 단순히 교포 대상 영업을 뛰어넘어 중국 교포 등 아시아계를 고객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처럼 하나금융은 글로벌 사업 확대를 최우선 목표를 세우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사업의 성공 여부가 김 회장의 연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글로벌에서 40%까지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룹의 방향이 앞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맞춰져 나가는 것은 분명하다”며 “김 회장도 최근 다른 사업보다도 해외 사업 확대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