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PC의 시대는 끝났다.”
지난 6월6일 수척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가 강조한 2011년 스마트 세상의 화두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애플 세계개발자대회(WWDC 2011) 현장에서 신개념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를 선보이며 PC시대의 엔딩을 선언했다. 애플은 이날 아이클라우드에 이어 구글과 아마존 등 클라우드 시장의 경쟁자를 정조준한 무료 전략도 공개했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앱스토어에 이어 제2의 신화창조에 나섰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애플이 내세운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태블릿PC의 득세
애플의 자신감은 아이폰·맥북·아이패드 등 삼각편대의 활약에 기인한다. 아이클라우드는 이러한 애플의 기기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허브일 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출 타깃에서도 타사와 비교된다. 이미 클라우드 시장을 선점한 구글이 클라우드 활성화로 모바일 광고를 노린다면 애플은 고가의 기기판매가 목표다. IT전문가들은 “애플 삼각편대의 중심은 아이패드가 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그만큼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태블릿PC의 파급력이 대단하다.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PC시장을 넘어 게임, 출판,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IT산업 내에서의 영향력은 이미 증명된 사실. 일례로 넷북 열풍을 주도하며 델을 제치고 세계 2위 PC메이커로 급부상한 에이서는 태블릿PC가 등장한 이후 지난해 4분기 매출이 급감했다. 그 결과 지오프랑코 란치 최고경영자의 퇴임을 불렀다. 태블릿PC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사정이 이렇듯 급박하게 돌아가자 전 세계 경쟁기업들의 화두 또한 태블릿PC로 돌아섰다. 이미 삼성전자가 갤럭시탭으로 대항마를 삼았고 델, 모토로라, HP, 림(RIM), LG 등 굵직한 대기업들이 앞 다퉈 제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사실 태블릿PC(아이패드)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변화는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사용자의 니즈가 달라 넷북이나 노트북 등 이른바 랩톱(Laptop) 시장과는 차별화될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넷북은 겨우 명맥을 잇고 있고 노트북은 살기 위한 변화와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의 반응은 어떨까. 김장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2010년 2분기에 아이패드 판매가 시작되면서 전통PC시장 성장률 둔화에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며 “지난해 PC성장률이 19%였는데, 향후 1~2년간 일반 PC의 교체주기가 도래하기 전 태블릿PC를 포함한 전체 PC성장률은 과거평균 성장률인 14%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태블릿PC를 제외한 데스크톱과 랩톱 등 전통 PC의 성장률이 한자리 수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미국 내에서의 반응은 좀 더 구체적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 리서치는 “미국에서 태블릿PC는 2012년에 랩톱 판매량을 추월해 2013년에 398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2013년 랩톱 판매량은 3350만대, 데스크톱 컴퓨터는 1890만대로 각각 추산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전 세계적으로 지난해 1900만대가 팔렸던 태블릿PC가 올해는 5000만대, 2012년에는 1억대가 각각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태블릿PC의 호황에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기관 JP모건체이스가 최근 발표한 투자보고서는 올 2분기 이후 전 세계 태블릿PC 생산이 줄어들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애플 아이패드의 독주 때문에 초도물량을 소진한 경쟁사들이 이후 좀 더 신중하게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에는 “삼성전자, RIM, 모토로라, 아수스 등 애플의 경쟁사들이 3월에 계획했던 생산물량에서 약 10%를 줄일 것”이라 예상하고 “아이패드가 시장을 독보적으로 장악하면서 여타 태블릿PC가 기대했던 것만큼 판매되지 못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일단 전 세계 판매량만 놓고 보면 이러한 분석이 영 틀린 것만은 아니다. 2010년 4월에 출시된 아이패드의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은 1948만대(3월까지 집계). 2010년 10월 출시 이후 가장 강력한 경쟁제품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갤럭시탭의 전 세계 판매량이 250만대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전 세계 PC제조업체들의 태블릿PC 개발 및 출시는 연이어 이어질 예정이다. 우선 대만 PC업체들의 약진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최대 규모 컴퓨터 전시회 ‘컴퓨텍스 2011’의 콘셉트는 태블릿PC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이서, 아수스, MSI, 뷰소닉, 기가바이트 등 현지 업체들이 공개한 4~10인치 태블릿PC 신제품들이 대부분 올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갤럭시 10.1’
아이패드의 대항마로 꼽히는 삼성전자 갤러시탭의 진화도 관심의 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북미 최대 이동통신전시회 ‘CTIA 2011’에서 갤럭시탭 10.1인치와 8.9인치를 공개했다. 기존 제품에 비해 두께와 무게는 줄이고 화면을 키운 두 제품 중 글로벌 판매는 ‛갤럭시탭 10.1(와이파이)’이 선봉에 섰다. 일단 초기 반응은 만족스러운 분위기. 삼성전자 측은 “지난 6월8일 뉴욕 베스트바이 매장에 200여 명이 줄을 섰다”며 “대형거래선들의 반응이 좋아 더 큰 인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태블릿PC의 파급효과
지난 6월 8일 미국에서 출시된 ‛갤럭시10.1’을 구입하려는 고객들. 미국 뉴욕 베스트바이 매장.
IT전문가들은 태블릿PC의 선전을 일단 ‘혁명’이라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이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소비하는 디바이스라면 태블릿PC는 일부 생산성까지 겸비해 차별화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능을 살펴보면(비록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야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지만) 문서 작성과 프린트가 가능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필요한 파일을 보관, 전송할 수 있다. 간단한 게임을 온라인으로 실행할 수 있고 동영상 감상과 편집은 기본이다. 단행본, 정기간행물 등을 구독하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휴대하기 간편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실제로 대학 강의실과 비즈니스 회의석상에는 태블릿PC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급호텔의 메뉴 서비스도 점차 태블릿PC로 교체되고 있다. 다양한 시기마다 바뀌는 메뉴를 교체하기 간편하고 무엇보다 감각적인 아이템이 돋보인다는 반응이다.
진화가 독보적인 분야는 역시 게임이다. 지난해 아이패드 어플리케이션을 살펴보면 게임의 비중이 21.3%나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이 가능한 태블릿PC는 스마트폰보다 화면이 넓어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다. 아이패드용 게임 ‘앵그리버즈’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듯 누구든 게임을 개발해 앱스토어를 통해 판매할 수 있다. 이른바 모바일 게임 분야를 놓고 국내 온라인 게임 회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NHN과 CJ E&M이 수백 명의 인력을 충원했고 애플 앱스토어와 페이스북 공략에 나선 컴투스는 지난해 88억원이던 해외 매출을 올해 215억원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다.
온라인 출판시장에도 태블릿PC의 등장은 호재다. e북에선 구동하기 어려웠던 컬러판형이 가능해지며 미디어 콘텐츠의 디지털화와 유료화가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교육시장도 디지털 교과서 보급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 정책이 갈팡질팡하고는 있지만 2012년까지 교과서 개발과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2013년 이후에는 e교과서와 연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랩톱 시장의 변화
IT시장분석 및 컨설팅 기관 IDC는 올 1분기 전 세계 윈도우 기반 PC 판매가 지난해 동기간보다 1.2% 감소했다고 밝혔다. PC시장의 판매량이 줄자 OS를 공급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도 타격을 입었다. 올 1분기 MS의 실적은 4.4% 가량 줄어든 44억5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과연 태블릿PC의 등장으로 넷북과 노트북 등 랩톱 시장은 사그라질까. 스티브 잡스의 일성처럼 PC시장은 끝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은 성급한 결론이다. 김장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이패드 등장 이후 랩톱 시장의 성장률은 둔화됐지만 노트북의 종말을 운운하는 건 과장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태블릿PC의 급성장이 기존 PC시장을 잠식하는 건 당연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존 랩톱이 고성능 제품으로 탈바꿈하면서 태블릿PC와 공존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에이서가 구글OS 크롬을 장착하고 출시한 크롬노트북이 대표적인 랩톱의 진화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이 지난 6월15일 아마존닷컴과 베스트바이닷컴을 통해 발매한 세계 최초의 크롬노트북 ‘시리즈5’는 크롬 인터넷 웹브라우저인 크롬을 운영체제로 사용한다. 덕분에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필요 없이 웹 기반의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를 공급하는 하드디스크(HDD)를 없앤 클라우드 방식이다 보니 태블릿PC에 비해 느렸던 일반 랩톱의 속도 문제를 해결했다. 삼성전자는 와이파이와 3G가 적용되는 모델은 499.99달러, 와이파이만 되는 모델은 429.99달러로 각각 가격을 책정했다. 태블릿PC의 장점은 취하고 기존 노트북보다 가격을 낮춘 영민한 선택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인텔의 션 말로니(Sean Maloney) 수석 부사장은 ‘컴퓨텍스 2011’ 현장에서 “2012년 말이면 소비자 노트북 시장의 40%를 울트라북(Ultrabook)™이라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컴퓨터가 점유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또한 노트북의 성능과 태블릿 등 모바일 디바이스의 기능이 결합됐다. 2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두께 20mm 미만의 얇고 가벼운 디자인이 가능하다. 이 칩이 중심이 된 시스템은 올 겨울부터 아수스를 통해 실현될 계획이다.
국내 시장은 어떨까. 한국IDC의 최근 시장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분기 국내 전체 PC 출하량은 166만대로 전년 동기 157만대보다 6% 증가했다. 넷북의 비중 축소에도 신제품 출시와 다양한 마케팅 프로모션이 전체 시장의 성장을 가져왔다. 데스크톱과 노트북의 출하량은 각각 73만대, 93만대. 노트북의 비중이 역대 최고인 56%를 기록했다. 권상준 한국IDC 책임연구원은 “전년 동기 대비 기업시장의 성장이 전체 PC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멀티디바이스 시대와 기업 시장의 활성화에 기인해 2011년 국내 PC 수요를 전년 대비 7% 성장한 558만대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일반 소비자들이 PC 구입이나 업그레이드를 망설이고 있는 사이 기업들이 경기회복 국면에 대량으로 PC를 구입한 것이다. 이는 생산성을 요구하는 기업의 목적과도 직결된다. 데스크톱과 랩톱에 비해 아직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태블릿PC의 한계도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랩톱 시장의 건재 또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PC(랩톱)와 태블릿은 서로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콘텐츠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멀티디바이스가 요구되는 일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반합이다. 태블릿PC의 등장 이후 소멸과 진화의 길을 걷는 각종 디바이스가 눈에 띈다. 하지만 적어도 PC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태블릿PC, 멤버십 혜택 제로?!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태블릿PC를 놓고 고민하는 부분은 ‘혜택’이다. 이동통신사들이 태블릿PC와 결합한 데이터요금제를 마련하고 있지만 태블릿PC 전용요금제에 대해서는 멤버십카드와 보험 혜택을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3사는 3G 데이터 네트워크만을 이용하는 태블릿PC를 판매하기 위해 데이터 요금제를 마련해두고 있다. 월 2GB, 4GB 사용량을 기준으로 SK텔레콤은 태블릿29, 49, KT는 데이터평생2G, 4G, LG유플러스는 패드2G, 4G라는 이름으로 2년 약정에 제품 출고가에 따라 10만∼20만원대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전화기능이 있는 7인치 갤럭시탭의 경우 스마트폰 요금제로 가입하면 멤버십카드와 보험가입이 가능하지만 3G 데이터 전용 요금제에 가입할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요금은 매달 휴대폰보다 많지만 혜택은 제로에 가까운 실정이다. IT전문가들은 “10~20대 소비자에게 익숙한 멤버십 혜택이 태블릿PC에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대중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