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새 제품을 발표하는 자리에 서류봉투를 들고 등장했다. 서류봉투에서 꺼내든 것은 애플의 새 노트북인 초경량 맥북에어. 과거 선보였던 맥북에어보다 휠씬 가볍고 얇아진 신제품은 11인치와 13인치 두 가지로 나뉘며 두 제품의 두께는 같다. 가장 얇은 부분이 약 0.3cm, 두꺼운 부분이 약 1.7cm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는 새 맥북에어를 들고 “노트북의 미래”라고 소개하며 “노트북과 태블릿PC의 장점을 모두 살린 제품”이라고 자부했다.
이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공개된 삼성전자의 새 노트북 역시 주목을 끌었다. 13인치임에도 1.31㎏의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는 노트북인 삼성 노트PC 9시리즈와 삼성 슬라이딩PC 7시리즈가 그 주인공. 이 두 제품은 애플의 맥북에어의 강력한 대항마로 눈길을 끌었지만 태블릿PC 출시 이후 바뀐 노트북의 트렌드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폰과 갤럭시,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에 이어 삼성과 애플이 다시 노트북에서 팽팽하게 맞붙는 모습이다. 삼성과 애플뿐 아니라 LG전자, MSI, 레노버, 소니 등도 신기종 노트북 라인업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아이패드의 성공 이후 태블릿PC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업체들이 신기종 노트북에 계속해서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쪽짜리 컴퓨터’ 태블릿PC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노트북 맥북에어 발표장에서 맥북에어를 서류봉투에서 꺼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태블릿PC의 대표 격인 아이패드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넷북이라고 불리는 미니노트북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태블릿PC가 넷북시장을 완전히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가벼운 미니노트북이라고 해도 1㎏ 이하로 무게를 줄이기는 어려웠고, 짧은 배터리 수명 때문에 오랜 시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댑터를 휴대해야 했다. 반면 아이패드는 9.7인치에 무게는 730g으로 휴대성이 미니노트북보다 뛰어나다. 1번 충전만으로 최대 10시간 동안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은 7인치 디스플레이에 아이패드의 1/2만한 크기, 370g으로 휴대성을 더욱 높였다.
미니노트북이 부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태블릿PC는 따로 부팅시간이 필요 없고 스마트폰처럼 잠금만 해제하면 바로 작업이 가능하다. 대부분 와이파이(WiFi)뿐 아니라 3G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처럼 이동 중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인터넷 접속을 할 수 있다. 가격은 70만~90만원대로 50만원대의 저렴한 미니노트북보다 비싸지만 휴대폰처럼 통신사 약정요금제를 이용하면 보조금을 받고 데이터요금과 함께 매달 기기 비용을 낼 수 있어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적다.
태블릿PC는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트렌드 모니터가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태블릿PC, 넷북, 전자책단말기 중 가장 선호하는 기기는 태블릿PC(56%)로 나타났고, 향후 1년 내 구매 의향이 있는 기기 1위 역시 태블릿PC(42.1%)였다. 구매를 유발하는 이유로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87.4%(중복응답)로 가장 높았다. 특히 국내외 미디어들도 태블릿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고 전자책 콘텐츠도 느는 추세다.
이런 내용만 보면 더는 미니노트북을 살 이유가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직접 사용해보면 태블릿PC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대학생 A씨는 학교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넷북을 이용해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태블릿PC 출시 소식을 들은 A씨는 이동 중에도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해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구매하려고 보니 대부분 인터넷 동영상 강의는 액티브X를 설치한 PC에서만 볼 수 있어 이동 중에는 물론 평소에도 강의를 볼 수 없다고 해 구매를 미루고 있다.
이런 불편함은 태블릿PC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국내 인터넷 환경 탓이 크다. 대부분 국내 웹사이트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와 익스플로러 환경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 스마트폰 이용자들이라면 한번쯤 PC에서는 볼 수 있는 웹 화면을 스마트폰으로 접속했을 때 볼 수 없었던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아이패드 역시 애플의 아이폰 운영체제를 쓰고, 갤럭시탭과 엔스퍼트의 아이덴티티탭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기 때문에 같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또 한 가지 태블릿PC의 단점은 ‘입력’ 부분이다.
홍보계통에 종사하는 B씨는 외근이 많고, 자료를 만들어 메일로 보내야 할 일이 많아 노트북 대용으로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처음에는 휴대가 간편해서 좋았지만 화면에 직접 입력하는 터치 방식 때문에 작업 중 오타가 많이 나 불편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나마 아이패드보다 화면이 작은 갤럭시탭은 양손 타이핑조차도 어렵다. 별도로 아이패드용 키보드를 구매했지만 아이패드와 키보드 무게를 합쳐보니 노트북 무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 아이패드에서 워드 작업을 할 때 ‘page’라는 애플의 워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야 한다. 공유할 수 있는 자료로 사용하려면 작성한 문서를 MS워드 파일로 변환해 저장해야 한다. 한글로 작성된 문서의 경우 읽을 수만 있고 편집은 할 수 없어 B씨는 얼마 전부터 다시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고 있다.
이 같은 태블릿PC의 한계 때문에 넷북 수요의 일부가 태블릿PC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즉 태블릿PC는 노트북과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문에 여전히 신기종의 노트북에 투자하는 것이고, 당분간 제조업체들도 태블릿PC와 노트북이 겨냥하는 시장을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들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포레스트리서치는 태블릿PC 수요의 증가에도 전 세계 노트북 컴퓨터의 수요는 2010년 2640만 대에서 2015년 3890만 대로 늘어나고, 넷북 역시 1030만 대에서 1420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IDC 역시 태블릿PC의 등장으로 미니노트북의 성장세가 둔화되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밥 오도넬 IDC Client and Display 연구부문 총괄사장은 “교육시장, 특히 경기 침체 이후 대규모 정부정책이 열기를 되찾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는 태블릿 PC의 도입에도 미니노트북의 수요 감소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태블릿 PC뿐 아니라 다양한 IT 기기의 출현으로 노트북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될 수 있지만 여전히 출하대수와 수요는 늘어난다는 것. IDC는 향후 4년간 전 세계 미니노트북 시장은 연평균 4.3%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태블릿PC의 출현은 아직 태블릿PC를 내놓지 못한 노트북 제조업체에 긴장감을 줬다. 또 최근 모습을 드러내는 신기종 노트북 역시 태블릿 PC를 의식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초경량·고사양으로 진화하는 노트북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1에서 선보인 LG전자 엑스노트 P420 시리즈.
태블릿 PC에 자극받은 노트북들은 본격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애플의 맥북에어만 해도 11인치 제품은 1.06㎏, 13인치 제품이 1.32㎏이다. 지난 맥북에어 모델의 무게가 2.13㎏였던 것과 비교하면 군살빼기에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메모리를 추가한다거나 SSD 용량에 따라 무게가 늘어날 수 있지만 100g 내외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11~13인치의 일반 노트북의 경우 2㎏ 이하면 가벼운 제품에 속했지만 새 맥북에어를 시작으로 10인치 이상 노트북의 ‘가볍다’는 기준이 바뀌었다.
신형 노트북들은 무게는 줄였지만 성능은 태블릿 PC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삼성 노트PC 9시리즈’ 역시 1.31㎏에 가장 두꺼운 부분이 1.63㎝밖에 되지 않는다. 초경량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두랄루민’을 사용했다. 두랄루민은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은 2배가 넘어 첨단 항공기 소재로 쓰인다. ‘슈퍼브라이트 플러스’를 탑재해 기존 제품보다 60배 향상된 1600만 컬러로 화면의 색감은 풍성해졌다. 삼성의 fast start 기술을 통해 10초대 부팅이 가능하다. 또 2011년 인텔 CPU플랫폼을 탑재하고, 파워플러스라는 배터리 기술을 적용해 3배 이상 배터리 수명이 늘어났다.
태블릿 PC의 장점 결합 VS 노트북 장점 강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1에서 선보
인 LG노트PC 9 시리즈.
본격적으로 태블릿 PC의 사용 경험을 노트북의 성능과 결합시킨 제품도 등장했다. 삼성전자의 10.1인치짜리 ‘슬라이딩 PC7시리즈’가 대표적. 이 제품은 기존의 터치 기반의 태블릿 PC와 같은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모니터를 살짝 들어 올리면 슬라이딩 휴대전화처럼 숨어있는 쿼티 키보드가 모습을 드러낸다. 터치스크린과 쿼티키보드 기능을 동시에 쓸 수 있다는 점은 입력이 불편한 태블릿 PC의 한계를 보안한다. 커서를 움직일 때는 화면에 직접 손가락을 움직이면 되고, 문서작업을 할 때는 넉넉한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다.
CES에서 공개된 이 제품의 운영체제는 MS의 윈도7을 사용했다. 응용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 무게는 1㎏이 채 안 된다. 이 제품 역시 맥북에어처럼 저장장치로 SSD를 사용한다. SSD는 플래시 메모리로 만든 저장장치로, 기존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PC에 쓰이는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보다 훨씬 작고 가벼우면서도 처리 속도는 더 빠르다.
태블릿 PC의 화면 크기는 보통 7~10인치. 넷북 역시 대부분 10인치다. 반면 노트북시장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모델은 14인치 모델이다. 상대적으로 태블릿 PC와 시장이 거의 겹치지 않는 화면이 큰 이런 노트북들은 선명한 화면과 심지어 3D 기술까지 접목해 성능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첫 태블릿 PC 출시를 앞둔 LG전자는 지난 12월 말 1.3㎏의 12.5인치 LED노트북인 ‘엑스노트 P210’에 이어 CES에서는 큰 화면과 휴대성을 겸비한 ‘엑스노트 P420시리즈’, 3D 노트북 ‘A520’ 등을 공개하고, 1분기 중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의 ‘엑스노트 P420시리즈’는 두께 3.15㎜, 무게 1.98㎏ 으로, 기존 14인치 모델 대비 크기, 무게 등을 20~30%가량 개선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13.3인치 노트북 크기에 14인치 HD LED LCD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세계 최고 수준의 내로우 베젤 기술을 적용한 혁신적인 노트북으로 평가받았다. 인텔의 ‘2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것은 기본이고 고해상도 동영상, 3D, 게임, 멀티태스킹 등의 성능을 대폭 개선했다.
한편 ‘A520’은 지난 10월 출시했던 세계 최초 풀HD급 3D 노트북 ‘A510’의 후속모델이다. A510 모델부터는 기존 3D모니터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필름 패턴 편광안경 방식(FPR,Film-type Patterned Retarder)를 적용해, 3D 콘텐츠를 화면 깜빡거림과 화면 겹침 현상이 없이 더욱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