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소개된 지 107년이 됐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자동차는 조선 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고종이 타려 했던 어차다.
1902년 12월 조선의 대신들은 고종에게 신식문물의 상징인 자동차를 타고 칭경예식(稱慶禮式;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참여해줄 것을 간청했다. 고종은 가뜩이나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고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반대했다가 강권에 밀려 마지못해 승낙했다고 한다.
고종 어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병원인 제중원을 설립했고 고종의 주치의로도 활동한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을 통해 들여왔다. 그러나 1902년 12월 개최할 예정이었던 칭경예식은 그해 겨울이 너무 춥고 나라 사정도 여의치 않아 그 다음해인 1903년에 열렸다.
1903년 수입한 고종황제 어차 러·일전쟁 때 사라져
그런데 고종은 자동차를 타지 못했다. 알렌이 섭외한 자동차가 수송수단이 번거로워 칭경예식이 열리고 나서도 4개월 후에 우리나라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1903년 들어온 고종 어차를 두고 포드 리무진이니 GM 캐딜락이니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포드 리무진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소장은 <고종 캐딜락을 타다>라는 책에서 “두 회사 모두 칭경예식이 열렸던 1903년 설립되었기 때문에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기존 주장을 반박했다.
전 소장은 비록 알렌을 통해 들여왔지만 당시 포드나 GM 같은 미국 회사들은 4인승을 만들지 못했던 반면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4인승 리무진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 착안, 유럽에서 들여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포드와 GM은 1903년 말에 가서야 4인승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03년 들어온 고종황제 어차는 1904년 2월 러·일전쟁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나라 백성들이 처음 본 자동차는 정황상 1911년. 역시 고종황제 어차용으로 황실에서 수입한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4기통)이다. 2년 후인 1913년에는 순종황태자용 어차가 들어왔는데, 캐딜락(8기통)이었다. 수입한 연도, 제작연도 등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없고 제각각이어서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종 어차용으로 수입한 다임러 리무진은 나중에 순종황제가 탔으며 순종황제가 타던 캐딜락은 순정효황후가 탔다. 이들 어차는 각각 등록문화재 318, 319호로 등록돼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고종 어차용으로 수입한 다임러 리무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95년 문화재관리국은 80여 년간 방치돼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던 어차를 꺼내 ‘복원’하려 했다. 당시 영국 재규어 다임러에서 고종 어차를 복원하기 위해 전문가가 파견됐다. 고종 어차를 본 전문가는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일부 녹만 슬었을 뿐 차의 상태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기 때문이다. 부품 손상도 없었다. 당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전영선 소장은 “복원이라고 하기보다 보수라는 개념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재규어 다임러에서 파견된 전문가는 “같은 종류의 차가 영국의 한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면서 “전 세계에 딱 한 대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 또 있다니 놀랐다”며 값은 얼마든지 줄 테니 본인들이 보수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에서 보수해 창덕궁을 거쳐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영국 다임러 리무진 고궁박물관 보관
그렇다면 1911년에 들여온 고종 어차인 영국 다임러 리무진은 현재 시세로 가격이 얼마나 될까. 국립고궁박물관 측은 “문화재에 가격을 책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값을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우리 문화재”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제작된 자동차는 일반적으로 500만~600만 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물론 상태에 따라, 실제로 누가 탔느냐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처음엔 고종황제가 탔으며 이후 순종황제까지 탄 어차에 가격을 매길 경우 금액은 천문학적일 것으로 추측만 가능하다.
전 소장은 “황제께서 타신 차에 어떻게 값을 매기겠느냐”며 “앞으로도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