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년 일본 이시카와(石川) 현 코마츠(小松) 시에 한 료칸(旅館; 일본식 여관)이 들어섰다. 당시 들어선 료칸은 1292년이 지난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현재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호텔로 기록돼 있는 ‘호시료칸(法師旅館)’이다. 호시료칸은 ‘가장 오래된 호텔’이라 하지만 호텔이라기보다 여관이라고 하는 게 적합할 듯하다. 호텔이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서양식 이미지는 거의없다. 비록 겉모습은 718년 당시 그대로는 아니지만 호시료칸에는 일본의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또 일본의 전통 료칸에서 즐길 수 있는 세 가지 요소, 즉 온천, 가이세키 요리, 유카타를 모두갖추고 있다.
호시료칸의 탄생 이야기는 마치 설화나 전설 같다. 호시료칸이 들어서기 한 해 전인 717년, 일본 승려 타이초오 대사는 도를 닦기위해 한 나무꾼의 안내를 받아 당시 도읍인 나라 인근에 있는 하쿠 산(白山)에 올랐다. 타이초오 대사는 하쿠 산에서 1년 동안 열심히 도를 닦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꿈속에 하쿠 산의 산신이 나타났다. 산신이 이르기를, 가까운 마을 아와즈에 병을 치유해주는 영험한 온천이 있으니 그 온천을 뚫으면 영원히 마르지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온천을 뚫어 중생을 구제하고 불교를 전파하라고 했다.타이초오 대사는 계시 받은 대로 아와즈라는 마을에 있는 온천을찾아 몸을 씻었다. 그러자 몸에 있던 온갖 병이 깨끗이 나았고 몸이 가뿐해졌다.
타이초오 대사는 1년 전 자신을 하쿠 산으로 안내해준 나무꾼의 아들 가료오에게 그 온천을 토대로 료칸을 지을 것을명했다. 이것이 ‘산신이 점지해준 터’에 지은 호시료칸의 시작이다.
신통한 온천 효과… 불교와 더불어 번창
호시료칸 온천의 영험함과 신통함은 아와즈 마을을 넘어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물론 온천의 신통력을 체험하고픈 사람들이 료칸으로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불교도 널리 전파되었다. 호시료칸은 불교와 함께 날로 번창했다.일본의 3대 영산인 하쿠 산을 끼고 있는 호시료칸은 일본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아 나갔다.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은 물론 연예인, 문학인, 순례자 등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현재 객실80여 개를 갖추고 있으며 수용인원은 450여 명에 달한다. 연간 투숙객도 4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여전히 성업 중이다. 지금도 언제든 홈페이지(www.ho-shi.co.jp)를 통해 접할 수 있을 만큼 우리 곁에 있다.
호시료칸의 매력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만 꼽자면수려한 자연경관과 전통이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 우수한 서비스 정신을 들 수 있다. 아늑하고 한적한 자연과 어우러진 호시료칸의 아름다움은 오래 전부터 일본의 여러 예술가들에게 극찬을 받아왔다. 몇 차례 자연재해와 화재로 1292년 전 설립 당시 그대로 모습은 아니지만 전통미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호시료칸의정면 건물은 일본의 전통적인 목조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실된 료칸을 재건축한 도쿠가와 막부 시대 건축 양식도 부분적으로남아 있다.특히 료칸 건물을 빙 두르고 있는 정원은 호시료칸의 큰 자랑거리중 하나다. 400년 된 적송과 바위가 건재하고 료칸 건물과 수목이절묘하게 어울린 호시료칸의 정원은 17세기 초 도쿠가와 막부 시대 르네상스인으로 불린 건축가 코보리 엔슈우가 설계한 것이다.
존경받는 귀족이자 건축가였던 코보리 엔슈우가 하루는 호시료칸을 방문했다. 시와 다도 등 일본의 전통예술에 심취해 있던 엔슈우는 아와즈 온천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그 속에 자리 잡고있던 호시료칸의 고요함에 흠뻑 취했다. 그는 호시료칸에 머무는동안 아와즈 지역의 자연경관과 호시료칸의 고요함이 한껏 어울릴 수 있도록 정원을 설계해주었다. 17세기 초 엔슈우의 설계에 따라 만든 정원이 지금까지 호시료칸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최근까지도 호시료칸에는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 등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데릴사위로 전문경영인 영입
호시료칸에도 고비는 많았다. 1292년을 이어오는 동안 항상 순탄한 길만 걸어왔던 것은 아니다. 그 중 자연재해가 가장 컸다. 온천이있는 화산 지역이기에 호시료칸은 늘 자연재해에 노출돼 있었다.호시료칸을 덮친 자연재해와 화재는 호시료칸에 큰 손실을 안겨줬다. 영업 적자라는 타격은 둘째 치고 전통적인 건물이 소실된것은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때마다 보수하거나 재건축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더 긴 역사를 간직한 건물보다는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다.자연재해를 겪으면서 호시료칸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었다. ‘불을주의하라. 물에서 교훈을 얻어라. 자연과 친화하라’가 그것이다.호시료칸은 이를 기업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호시료칸의 CEO는 전통적으로 젠고로오라 칭한다. 타이초오 대사를 안내한 나무꾼 사사키리 겐고로오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타이초오 대사의 지시를 받은 사사키리 겐고로오의 아들 가료오가 1대젠고로오다. 현재는 46대 젠고로오가 료칸을 운영하고 있다.
1292년 동안 한 번도 맥이 끊어지지 않고 46대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힘은 기본적으로 장자 세습을 원칙으로 한 가족경영에 있다. 이 같은 가족경영은 일본의 전통적인 경영방식이기도 하다. 비록 무너지긴 했지만 천년 기업 ‘금강조’가 1428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가족경영이었다. 물론 모든 가족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과 가문에 대한 자부심으로 무장돼 있고 근면한 근로윤리를 갖추고 있는 자손이 이어가야만 탄탄하고 전통 있는 가족기업을 이룩할 수 있다.
때때로 지역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의 ‘호시료칸 보호정책’의 혜택을 받은 것도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브라이언트 대학 가족기업연구소 윌리엄 오하라 소장은 <세계 장수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이라는 책에서 “호시료칸의 성공과 장수는 분명히 호시가(家)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인한다”면서 호시료칸의 성공 경영 비결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전문경영인을 영입한다. 문자로 쓰인 사명선언문을 활용한다. 외부에 조언과 지원을 구한다. 명확한 후계 또는 상속 구도를 만든다. 외부 경험이나 교육을 중시한다’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전문경영인 영입이 눈에 띈다. 분명 장자 세습을 원칙으로 하는 가족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곳에서 ‘전문경영인 영입’이 성공 비결 중 하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족기업의 전통은 지키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전문 경영인을 영입해 경영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기업에서 파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점, 즉 독단적인 결정의 폐해를 전문경영인이 보완해주는 것이다.
호시료칸도 독단적인 결정의 폐해를 여러 번 경험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1980년대 말에 있었다. 당시 호시료칸의 젠고로오는 료칸 본관 맞은편, 그러니까 정원 맞은편에 현대식 호텔 객실을 여러 층 지었다. 당시 젠고로오를 제외하고 호시가 사람들은 물론 종업원들, 외부 전문가들이 대부분 현대식 호텔 객실 착공을 반대하고 비판했다. 물론 젠고로오도 나름의 생각과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현대식 객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였다. 호시료칸의 가장 큰 매력과 경쟁력은 주변 경관과 어울린 전통적인 객실, 고요함과 아늑함이었다. 당시 젠고로오가 고집한 현대식 호텔 객실은 오히려 호시료칸의 매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젠고로오의 결정은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당시 젠고로오가 외부 전문가의 충고를 귀담아들었다면, 곁에 전문경영인을 두었다면 그런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장자 세습 원칙이지만 아들이 없을 경우 사위가 대신한다. 일본 가족기업에서 볼 수 있는 데릴사위제도는 일반인이 보통 알고 있는 그것과 차이가 있다. 일본 가족기업의 데릴사위제도는 단순히 사위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姓)과 호적까지 완전히 바꾸어 처가 쪽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위라고 해서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사명감과 윤리의식 등 후계자로서의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데릴사위제도가 전문경영인 영입의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오하라 소장은 또 “능력 없는 사람을 후계자로 세우거나 사업의 영속성이 깨지는 것을 감수하는 대신 바깥에서 경영자를 영입하는 데릴사위제도는 기업가문을 존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일본의 오랜 전통이 되었다”고 말했다.
일기일회 서비스 정신 계속 되기를
호시료칸의 서비스 정신은 수많은 업체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이름 나 있다. 호시료칸의 서비스 모토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로 압축된다. 일기일회란 평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 혹은 어떤 하나의 일이 평생에 단 한 번뿐임을 일컫는 말로서 사람과의 만남과 그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을 뜻한다. 일기일회라는 서비스 모토에 따라 호시료칸의 젠고로오와 종업원은 고객에게 어떤 불편함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시료칸을 언급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 그곳의 서비스에 매료됐다는 점을 빼놓지 않을 정도다.
현재 호시료칸의 경영과 재정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수록 현대화를 요구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일본에 서양식 호텔이 늘어나고 있고, 장기 불황에 따른 온천지역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는 것이 호시 사람들과 젠고로오를 힘들게 하고 있다. 또 호시료칸이 보유하고 있는 건물과 토지 등 부동산에 대해 재산세와 상속세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오하라 소장이 옮긴 바에 따르면 현 46대 젠고로오는 “호시의 자부심은 호시를 그렇게 오래 지탱해온 신념에 바탕을 둔 것 입니다. 좋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조화롭고 무구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자신하고 있다. 호시료칸은 이미 130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지금까지 그 역사만으로도 ‘위대하다’는 칭송을 받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호시료칸의 위대함이 계속되기를 바랄 것이다.
호시료칸의 서비스 모토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로 압축된다. 일기일회란 평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 혹은 어떤 하나의 일이 평생에 단 한 번뿐임을 일컫는 말로서 사람과의 만남과 그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