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지리산은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요사채 한 칸도 차지하지 못한 채 넓디넓은 보제루를 통째로 베고 누워 듣는 이들의 화음은 새벽예불 목탁소리가 울릴 때까지 그칠 줄 모릅니다. ‘지심귀명례~.’ 촛불을 밝힌 법당에서 예불문이 울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어둠과 함께 풀벌레 울음소리도 서서히 잦아듭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새벽 기도는 어느 종교,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일주일여 짧은 출가의 새벽을 화폭에 담으면 매일 한결 같은 풍경입니다. 그러나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은 또 다릅니다. 종교적 의미의 수행이 있는가 하면 건강, 재충전, 도피 등 여러 얼굴들이 하나의 화폭 속에 있습니다.
무엇이든 문제될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 하는 몸짓 하나하나만으로 도반이기 때문입니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참 나’를 찾는 간절함을 나눌 뿐입니다.
템플스테이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 초부터 방학을 이용해 여름과 겨울이면 일주일 남짓 산사를 찾았습니다. 고시준비생을 제외하면 도회지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온전치 않았던 당시 산사에서의 생활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여름철 모기 밥이 되어 온몸에 붉은 꽃을 피워 돌아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다시는 가지 말라고 경을 칩니다. 그래도 1년 뒤 또 산속으로 꾸역꾸역 찾아 들어갑니다.
지난 7월초 명품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J사장을 만났습니다. 며칠 뒤 일본 도쿄로 휴가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 도쿄냐고 물었습니다. 방사능 오염 공포가 여전한 곳으로 가족들과 휴가를 간다는 J사장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남들 모두 안 가니까 가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호기입니까. 이어지는 말이 걸작입니다.
“관광객이 뚝 끊어지다보니 평소에는 꿈도 못 꾸었던 도쿄 최고급 호텔 가격이 예전의 절반입니다. 이럴 때 최고급으로 호사를 누려봐야지요.”
그러고 보니 J사장의 주식투자법도 이번 휴가지 선택법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제신문 1면에 주가가 상승했다는 기사가 뜨면 J사장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내다 팔고, 반대의 경우엔 사들였습니다. 일명 ‘청개구리 투자법’이라고 합니다. 리스크는 크지만 적중했을 경우 그만큼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 하는 대로 똑같이 하고, 남들 가는 대로 똑같은 길을 간다면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습니까. 때론 손해를 보기도 하겠지만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고 반드시 진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