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단의 리더 또는 그를 둘러싼 지도부가 좋은 사고를 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건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자주 ‘전략적 멍청함(strategic imbecility)’에 빠져들곤 한다. 전술적 그럴듯함에 취해서 전략적 올바름을 외면하거나, 단기 이익에 눈이 팔려서 장기적 방향성을 놓치는 것이다. 지도자가 전략적 멍청함에 사로잡히면, 조직 전체를 몰락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파멸적 결과를 낳는다. 갈수록 현실에서 멀어져서 나중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하는 까닭이다.
<전쟁의 문화>(21세기북스)에서 미국 역사학자 존 다우어 MIT대 명예교수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침공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국가 지도부의 ‘전략적 멍청함’을 드러난 역사적 사례로 꼽는다. 두 경우 모두, 초기엔 눈부신 성과를 가져왔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약화하고, 동남아시아로 진격해 유럽 식민지를 해방(?)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워서 이라크 정규군을 빠르게 괴멸했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척살했다. 이어서 이라크 군대와 정당, 공무원 조직을 해체하고,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를 강제로 도입했다.
그러나 두 나라 지도부는 자신들 결정이 전략적 실수였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은 진주만 공습과 함께 미국인들 사기가 떨어져 미국이 아시아 쪽에 신경 쓰지 못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침공은 그 반대 반응을 가져왔다. 분노가 분출하면서 미국에서 애국 열풍이 불었다. 축적된 생산력을 동원해서 미국은 이전의 몇 배에 달하는 군사력을 확충했다. 미군 반격을 받은 일본군은 태평양 전선 곳곳에서 패퇴했고, 결국 전쟁은 원자폭탄 투하라는 인류사적 비극으로 귀결됐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충격과 공포’라는 이름이 붙은 군사적 승리에 매혹됐다. 이들은 점령 이후 이라크 국가 재건 과정에서 벌어질 사태를 상상하지 못했다. ‘작은 발자취만 남기고, 신속히 철수하겠다’란 헛소리만 반복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에 세뇌되어 이들은 무책임하게도 시장이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다. 군경 해체 후 이라크에서 벌어질 족벌과 파벌 사이의 분쟁과 내전, 저항과 테러 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일제가 식민지에서 해방을 가져다준 자신들에게 아시아인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리라 믿었듯, 미국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가져다준 자신들을 이라크인들이 환영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망상이었다. 결국 미국은 막대한 인명 손실, 엄청난 재정 비용, 중동 지역의 신뢰 상실 등 상처만 남긴 채, 굴욕적으로 이라크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최고위층의 오판과 달리, 미국의 정보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부, 군대, 민간 싱크탱크 등에 속한 전략가, 정책 전문가, 정보 담당자 등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단기적 치고 빠지기’ ‘시장이 저절로 문제 해결’ 같은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숱한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지도부가 ‘전략적 멍청함’에 빠져들었을 때, 이런 실무진 의견은 아무 쓸모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능력 있는 조직의 최상층 리더들이 전략적 멍청함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 다우어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제왕적 리더십과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의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태평양 전쟁 때, 천황을 둘러싼 호전적 소수가 일본의 정책을 결정했다. 이들은 천황을 떠받들고 민주주의를 멸시했으며, 충과 애국을 절대 가치로 찬미하고 반대 의견을 반역으로 몰아갔다. 또한 이들은 의회를 통제하고 언론을 검열하는 데 열중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미국의 실제 역량을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객관성이 편견을 기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국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미국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은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을 버리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매료됐다. 이들은 헌법을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제도적 카리스마를 부풀렸고, 심지어 기존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집행 권한을 뻔뻔하게 확대하고 행사하는 데 열중했다. 한마디로, 이들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했다.
그 탓에 이들은 희망 사고에 빠졌다. 희망 사고란 별다른 근거 없이 세상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믿는 심리편향을 말한다. 부시 대통령을 둘러싼 이른바 ‘집무실 파벌’은 ‘세속의 사제’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수시로 신의 뜻을 내세우고,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했다. 다우어는 이를 ‘믿음 기반의 사고’라고 비판한다. 이런 사고는 면밀한 검토에서 나 말고 온 세상을 배제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그들의 말을 얕잡아보고 무시한다. 자기 믿음대로만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자기를 객관적·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희망 사고는 무리 행위와 집단사고를 빚는다. 무리 행위란 개인이 객관적 증거나 사실 또는 신념을 따르기보다 주변 사람 말이나 행동을 줏대 없이 추종하는 것이고, 집단사고란 일체감 높은 집단에서 사람들이 작은 이견 제기도 꺼리면서 만장일치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것이다. 이들이 제왕적 리더십과 결합하면, 지도자의 뜻에 반하는 자유로운 의결 표출이 불가능하고, 부화뇌동하는 몇몇 아첨꾼들이 의사 결정 과정을 독점한다.
토론이나 이견이 금지되는 조직에선 체리 피킹, 즉 듣고 싶은 말에만 귀 기울이고, 선별적 정보에만 주목하는 자기기만과 확증 편향이 만연하게 마련이다. ‘집무실 파벌’은 비밀주의에 빠져서 관련 정보를 언론이나 시민과 공유하며 검증하지 않았고, 꿈나라에 빠져 상식을 무시한 채 비합리적 선택을 최선이라고 착각했다.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이라크에 들어간 미국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이들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찾아내리라 믿었으나, 밝혀진 건 그런 게 애초에 없었다는 것뿐이다. 또한 이들은 이라크에 민주화와 시장 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중동 전역에 파급 효과를 일으키리라 믿었으나, 실현된 건 혼란의 지옥이었다. 중동 전역에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지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퍼져가고, 테러 행위가 증가했다. 최악은 이라크와 시리아를 내전에 빠뜨리고, 수십만 명을 학살한 이슬람 국가(ISIS)의 창궐이었다. 지도부의 전략적 멍청함 탓에 미국은 헛고생만 잔뜩 하고 속수무책으로 이라크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다우어에 따르면, 의사 결정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출과 민주적 토론 과정을 무시하는 조직은 언제든 전략적 멍청함에 빠져들 수 있다. 희망 사고가 현실이 되고, 무리 행위와 집단사고가 일상이 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작동해서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쟁투하고 대화와 타협이 일상화한 곳에서는 나타날 수 없다. 버락 오바마는 말했다. “백악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험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에 모두가 동의하고 토론과 이견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유튜브 같은 질 낮은 미디어가 확증 편향을 재생산하는 시대에 리더가 가장 명심할 말인 듯싶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