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는 재화나 용역이 생산·제공되거나 유통되는 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에 과세하는 세금이다. 사업자가 납부해야 할 부가세액은 사업자가 공급한 재화나 용역에 대한 세액(매출세액)에서 그 사업자가 공급받은 재화나 용역에 대한 세액(매입세액)을 공제하는 방법으로 산출된다.
주식회사 A가 주식회사 B에게 종이를 110만 원(부가세 10만원 포함)에 팔았고, 주식회사 B가 그 종이를 이용하여 노트를 만들어 주식회사 C에게 330만 원(부가세 30만 원 포함)에 팔았다고 가정해보자. B의 매입세액은 A로부터 종이를 사면서 지급한 10만 원이고, B의 매출세액은 C에게 노트를 팔면서 받은 30만 원이다. B가 납부해야 할 부가세액은 매출세액 30만 원에서 매입세액 10만 원을 뺀 20만 원이다.
각 거래단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부가가치’에 대해 과세를 한다는 부가세의 구조를 생각하면 매입세액은 언제나 공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부가세법은, 공급자는 공급받는 자에게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여야 한다는 세금계산서 발급의무를 덧붙이면서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못한 공급받는 자는 그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A, B가 부가세를 포함하여 거래를 하였음에도 모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B, C는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 두 거래의 중간에 끼여 있는 B의 납부세액은 얼마일까? B가 C에게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았어도 매출세액 30만 원은 B의 납부세액에 포함된다. 반면 A가 B에게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B는 10만 원의 매입세액을 공제받을 수 없다. 결국 B는 30만 원(= 매출세액 30만 원 – 매입세액 공제 0원)을 부가세로 납부해야 한다.
B가 매입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A가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였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B가 A의 세금계산서 발급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당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부가세법은 매입자발행세금계산서 제도를 두고 있다. 매입자발행세금계산서 제도는 공급자가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재화의 공급시기가 속한 과세기간의 종료일로부터 1년 이내에 매입자가 세무서에 그 거래사실을 확인받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그 세금계산서로 매입세액 공제를 받는 제도이다. B는 A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으면 과세관청에 거래사실을 확인받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여 매입세액 10만 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B는 매입자발행세금계산서 발행 신청을 하지 않은 때에도 A를 상대로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못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공급자(A)가 공급받는 자(B)로부터 부가세액을 지급받았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아 공급받는 자가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못하였다면, 공급자는 원칙적으로 공급받는 자에 대하여 공급받지 못한 매입세액 상당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공급자의 손해배상책임은 공급받는 자가 매입자발행세금계산서 발행 절차를 통하여 매입세액을 공제받지 않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7. 12. 28. 선고 2017다265266 판결). 즉 B는 매입자발생세금계산서 제도를 이용하지 않았어도 A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처음 사례를 보자. 중소건설은 소형엔터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소형엔터는 매입세액 2억 원을 공제받지 못했다. 따라서 중소건설의 권리․의무를 포괄승계한 대형건설은 소형엔터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대형건설은 소형엔터가 매입자발생세금계산서 제도를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다만 현재 실무는 공급받는 자가 매입자발생세금계산서 제도를 이용하여 매입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 제도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를 손해배상책임의 감경사유로 보고 있다. 즉 특별한 이유 없이 매입자발생세금계산서 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소형엔터는 2억 원 전액이 아닌 일부 금액에 대해서 손해배상 받을 가능성이 크다.
※ 본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부장판사)에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