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난으로 신차 출고가 보통 1년 정도 걸리면서 중고차 인기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중고차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차 매매 플랫폼들도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오프라인부터 온라인 플랫폼까지 각 플랫폼의 특징을 알아두면 편리하다. 어떤 차를 사면 되팔 때 잔존가치가 높은지도 알아두면 차를 구매할 때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다. 중고차 시장이 여전히 ‘레몬마켓(소비자들이 판매자보다 정보가 적어 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인 만큼 중고차 구매 팁도 알아두면 좋다.
▶어디서 중고차 구매할까
중고차 시장은 크게 중고차 매매단지와 온라인 플랫폼으로 나뉜다. 매매단지는 전통적인 중고차 매매 형태로, 소비자들이 중고차가 전시돼있는 매매단지로 가서 중고차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수도권에는 장안평 중고차 시장과 수원 도이치오토월드, 수원 SK V1, 인천 엠파크 조합, 용인 오토허브 등이 있다. 직접 상품을 보고 딜러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비슷한 모델의 가격을 비교하기 어렵고, 현장에서 화려한 마케팅에 혹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각 매매단지별로 전체 모델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어서 현장 방문 전에 확인하면 좋다.
최근에는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도 등장했다. 중고차는 수천만원을 넘는 고가인 만큼 온라인 판매가 자리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도 코로나19를 겪으며 비대면 흐름이 자리 잡았다.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 업체로는 엔카닷컴과 케이카, KB차차차, 코리아카마켓, 보배드림 등이 있다.
KB캐피탈이 운영하는 KB차차차는 대표적인 중고차 플랫폼이다. 딜러가 중고차 매물을 등록할 때 수수료를 받지 않는 전략으로 많은 물량을 확보했다. 고객이 나이와 원하는 차종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인공지능(AI) 고객이 원할 만한 차를 추천해준다. KB국민은행과 국민카드, KB캐피탈 등 KB금융그룹의 할부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KB차차차에 등록된 중고차만 약 16만 대에 달한다.
엔카닷컴은 국내 최대 자동차 거래 플랫폼으로 꼽힌다. 딜러들이 엔카닷컴에 매물을 올리는데, 연간 매물 등록 대수는 120만 대에 달한다. 특히 엔카닷컴은 국내 최초로 중고차 차량 진단 서비스를 실시했다. 차량진단평가사가 차량의 사고 유무와 챠량 등급, 옵션 등을 진단해 평가한 결과를 소비자들이 구매 시 참고할 수 있다. ‘엔카 홈서비스’를 이용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일주일 동안 차를 충분히 타본 뒤 구매를 결정하는 ‘책임환불제’도 있다.
케이카와 오토플러스 등은 직영 중고차 업체다. 직접 차량을 매입해 상품화한 뒤 유통한다. 직영 시스템으로 허위 매물을 없애고, 가격 정찰제도 운영한다. 업계 최초로 구매 뒤 3일간 차를 타보고 최종 결정하는 ‘책임환불제’도 도입됐다. ‘리본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오토플러스 역시 꼼꼼하게 차량을 검사해 판매하고 있다. 오토플러스는 까다롭게 선별한 차량에 대해 260가지 정밀검사를 실시한다. 침수검사는 기본으로 차량 내외관, 냄새, 엔진룸 등을 살펴 품질을 개선한다. 이렇게 검사를 마친 리본카 인증차는 ‘8일 안심환불 서비스’, ‘안심출고 서비스’ 등이 기본으로 적용된다.
차를 판매할 땐 헤이딜러도 이용할 만하다. 헤이딜러에 차 번호만 올리면 쉽게 중고차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 중고차 경매를 시작하면 전국 매입딜러 90%가 경매에 참여한다. 소비자는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딜러에게 차량을 판매하면 된다. 헤이딜러가 11만 대 차량 경매 결과를 분석한 결과 1인당 평균 97만원 비싸게 차량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헤이딜러는 최근 ‘헤이딜러 제로’도 새로 선보였다. 전문평가사가 직접 방문해 차량을 진단한 뒤 경매에 올리는 방식이다. 고객은 현장 감가 없이 차량을 판매하고, 딜러는 고객을 따로 방문하지 않고도 차를 구매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중고차 시장은 최근 대기업의 진출 길이 열리면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기아 등 현대차그룹은 내년 5월께 중고차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구입 후 5년·주행거리 10만㎞ 이내 자사 차량을 정밀 검사해 인증 중고차를 팔 계획이다. 롯데렌탈은 오는 10월을 목표로 중고차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렌터카 사업을 하는 롯데렌탈의 경우 중고차 사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 반납되는 장기렌터카를 개인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중고차 살 땐 ‘성능기록부’ 꼼꼼히 확인
중고차를 살 때 명심해야 할 것은 ‘겉모습에 속아선 안 된다’는 점이다. 외관은 그럴 듯해도 사고차량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이 시세보다 저렴한 차는 우선 의심부터 해야 한다. 일부 중고차 매매 업체들이 전손 처리된 차를 폐차시키지 않고 사들여 수리한 뒤 시장에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손이란 수리비가 자동차 가격보다 비쌀 때 보험사가 폐차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우선 사고자 하는 자동차의 평균 시세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원하는 차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중고차를 볼 땐 실제 매물이 존재하는지, 급매·압류 등 단어를 내세워 소비자를 유혹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민원 대국민 포털에서 ‘자동차등록원부’를 조회하면 차량 출고 시점부터 소유자 변경 이력, 정기검사 이력, 구조 변경(연료·계기판 등)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등록번호를 보면 영업용인지 자가용인지 파악할 수 있다. 사고 이력을 알고 싶으면 보험개발원이 운영하는 카 히스토리를 이용하면 된다. 침수 전손 사고 등 각종 정보를 볼 수 있다. 해당 차량의 저당 내용과 가압류 여부 등도 꼼꼼히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직접 차량 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좋다. 보닛과 문, 트렁크 등 차량을 연결하는 나사를 돌렸던 자국이 있는지, 차체에 용접 흔적이 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다. 직접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차량 평가사를 대동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전문 교육을 받은 차량평가사들은 차를 보고 사고 유무 등을 점검한다. 김승현 AJ셀카 차량평가사는 “겉모습에 속지 말고 성능기록부를 확인하고 직접 시동을 걸어보는 게 중요하다”며 “차량평가사와 함께 중고차를 보러 가는 것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중고 전기차를 구매할 때는 배터리 용량과 타이어 등을 살펴봐야 한다. 배터리 가격이 전기차 원가 중 약 40%를 차지하는 만큼,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근에는 배터리 업체들이 중고차 업체들과 손잡고 전기차 배터리 수명과 잔존가치를 평가해주는 기준도 만들고 있다. 그동안 배터리의 남은 수명을 정확히 측정할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중고차 가격 산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배터리가 있는 차량 하부 외관을 꼼꼼히 봐야 한다. 타이어 확인도 중요하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무거워 내구성이 좋은 타이어를 사용해야 한다.
▶세단보다 SUV가 인기 높아
그렇다면 어떤 차를 사야 비싸게 되팔 수 있을까. 차를 새로 살 땐 이 차를 되팔 때 가치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엔카닷컴을 통해 지난 4월 기준 12개 완성차 브랜드 인기 차종 22개(2019년식·무사고·주행거리 6만㎞)의 중고차 잔존가치율을 분석해봤다. 잔존가치율이란 3년 뒤 중고차로 되팔 때 신차 가격의 어느 정도를 받을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지표다.
우선 국산차 가운데 잔존가치율이 높은 차는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 니로였다. 2019년형 현대차 싼타페 TM(가솔린 모델)의 중고차 평균 잔존가치는 신차의 9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519만원에 신차를 샀다면, 3년 가까이 타고 팔더라도 3167만원을 받는 셈이다. 기아 더 뉴 니로(하이브리드 모델)의 잔존가치율도 91.6%에 달했다.
기본적으로 모델을 찾는 사람이 많으면 중고차 잔존가치율도 높다. 특히 최근 신차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3년 정도 탄 차의 경우 잔존가치율이 높은 편이다. 7월 기준 싼타페 가솔린 모델 신차를 받으려면 적어도 8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하이브리드 모델의 경우 출고까지 1년 6개월 걸린다. 신형 니로 하이브리드 역시 출고까지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최근 세단보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인기가 높은 만큼 가격 방어력도 SUV가 더 좋다. 실제 세단의 경우 SUV보다 잔존가치율이 낮았다. 현대차 그랜저IG(가솔린 모델)의 잔존가치율은 75%, 쏘나타 뉴 라이즈(가솔린 모델)는 69%였다. 기아 ‘더 뉴 K5 2세대(가솔린 모델)’는 72.4%, ‘올 뉴 K7(가솔린 모델)’은 71.5%로 조사됐다. 제네시스 G80(가솔린 모델)의 잔존가치율은 66.1%에 불과했다. 박홍규 엔카닷컴 사업총괄본부장은 “국산차는 세단보다 SUV를 되팔 때 가격 하락 폭이 적다”고 말했다.
그 밖에 현대차 올 뉴 투싼(디젤 모델)의 잔존가치율은 74.18%, 기아 스포티지 더 볼드(디젤 모델)는 81.57%였다.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모델에 비해서 디젤 모델의 잔존가치율이 낮은 편이다. 분석한 수입차 가운데 잔존가치율 1위를 기록한 모델은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80%)였다. 중형 세단이지만 웬만한 국산 SUV만큼 중고차 가격을 유지한 셈이다.
테슬라의 경우 최근 신차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중고차 가격을 방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6369만원이었던 모델3(롱레인지)는 수차례 가격이 올라 현재 8469만원에 판매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테슬라는 빨리 살수록 이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잔존가치가 높으면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신차 가격을 보다 자유롭게 인상할 수 있어 유리하다. 임은영 삼성증권 모빌리티 팀장은 “소비자가 높은 신차 가격을 지불하려면 중고차 가격 안정이 필수”라며 “테슬라가 신차 가격을 인상하는 것도 높은 중고차 가격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볼보 브랜드의 잔존가치율도 높은 편이다. 볼보의 XC60 2세대(디젤 모델)와 XC90 2세대(디젤 모델)의 잔존가치율은 각각 78%, 77%다.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 W213(가솔린 모델)의 되팔 때 가격은 신차의 77.3% 정도다. 나머지 수입차들은 국산차에 비해선 잔존가치율이 낮았다. BMW·아우디·폭스바겐·도요타·랜드로버 모델의 중고차 잔존가치율은 50~60%대에 머물렀다. 박 본부장은 “아무래도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수리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수입차의 잔존가치가 국산차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