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 오토쇼가 지난 4월 미국 뉴욕 제이컵 K 재비츠 컨벤션센터에서 3년 만에 열렸다. 뉴욕 오토쇼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열리는 가장 큰 모터쇼다. 북미 시장을 공략하려는 완성차 업체들의 다양한 전략을 매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코로나19로 지난 2020년과 2021년 연달아 취소됐다가 올해 3년 만에 열렸다. 이번 오토쇼에는 우리나라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기아는 물론 미국의 GM과 포드, 일본 도요타 등 33개 자동차 브랜드가 신차와 콘셉트카 50여 개를 선보였다.
2022 뉴욕 국제 오토쇼 <사진 연합뉴스>
▶화두는 ‘전동화’… 전기 픽업트럭도 전시
올해 뉴욕 오토쇼의 화두는 단연 ‘전동화’였다. 최근 전 세계 완성차 기업들은 전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GM은 2025년까지 30종 이상 전기차를 출시하고, 2035년까지 모든 생산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요타도 2025년까지 전기차 모델을 15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장에서 여러 기업들이 내놓은 전기차를 직접 볼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전동화가 눈에 띄었다. SUV는 북미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이다. 현재 미국 자동차 시장은 픽업트럭을 포함한 SUV 점유율이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53%에 달한다. 시장조사 업체 LMC오토모티브는 올해 SUV와 픽업트럭의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73%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뉴욕 오토쇼에서 만난 주요 콘셉트카와 신차 50여 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9종이 SUV였다. 29종 SUV 중 10종이 전동화 모델이다. 지프 등이 선보인 콘셉트카는 8종인데, 이 중 5종이 전기 SUV였다. 크라이슬러 ‘에어플로’, 쉐보레의 ‘에퀴녹스’, 지프 EV 콘셉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 업체들은 전기 픽업트럭을 야심차게 내놨다. 쉐보레는 전기 픽업트럭 ‘실버라도 EV’를 전시했다. 내년 출시 예정인 실버라도 EV는 예약 주문만 10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쉐보레는 픽업트럭 고유의 강인한 디자인과 주행성능 등을 전동화 모델로 새롭게 구현했다. 객실과 화물공간을 연결하면 최대 3300㎜를 적재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 포드가 내놓을 ‘포드 F150 라이트닝’과 전기 픽업트럭 시장에서 맞붙게 된다.
도요타도 전기차 신차를 선보였다. 도요타는 지난해 GM을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전기차를 앞세워 북미 시장을 공략한다. 도요타가 내놓은 전기차는 SUV인 ‘bZ4X’다. 준중형 SUV인 bZ4X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로 꼽히는 RAV4와 디자인이 비슷하다.
미국 시장 가격은 4만2000달러(약 5347만원)로 시작한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으로 XLE 전륜구동 모델이 252마일(약 403.2㎞), 사륜구동이 228마일(약 367㎞)이다.
닛산은 준중형 전기 SUV ‘아리야’를 내놨다. 아리야는 준중형급 쿠페형 EV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실용성을 겸비한 외관을 갖췄다. 적재공간은 466ℓ에 달한다. 아리야는 사양에 따라 65킬로와트시(㎾h) 또는 90㎾h 배터리를 장착한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최소 265마일(약 426.5㎞)에서 최대 300마일(약 482.8㎞)이다.
기아 ‘더 뉴 텔루라이드’
▶기아차, 신형 텔루라이드 선보여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미국 시장은 중요한 시장 중 하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연간 기준 처음으로 혼다를 제치고 판매량 5위에 올랐다. 올 1분기에도 5위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이 그만큼 중요한 곳이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올해 뉴욕 오토쇼를 직접 찾았다. 그는 1시간가량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의 전시 공간을 샅샅이 살펴봤다.
정 회장은 특히 GM 브랜드 쉐보레가 내놓은 전기 픽업트럭 실버라도 EV를 유심히 살펴봤다. ‘가장 인상 깊은 차를 꼽아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 회장은 “GM의 실버라도 EV를 관심 있게 봤다”고 답했다. 정 회장도 별도로 전시된 bZ4X의 배터리와 모터 등 전기차 구동 시스템을 관심 있게 살펴봤다. 정 회장은 “도요타의 신형 툰드라가 잘 나왔고, bZ4X는 아직 타보지 못해서 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차·기아도 뉴욕 오토쇼에서 새로운 SUV 모델을 공개했다. 현대차는 ‘더 뉴 팰리세이드’를, 기아는 ‘더 뉴 텔루라이드’를 최초로 선보였다. 더 뉴 팰리세이드는 2018년 11월 출시된 현대차 플래그십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의 첫 부분변경 모델이다. 앞부분 그릴이 더욱 넓어져 주간주행등까지 하나로 연결됐고, 뒷부분은 넓어진 스키드 플레이트와 트레일러 히치 덮개로 마무리됐다. 전장은 이전 모델보다 15㎜ 길어졌다.
실내에는 고화질 12.3인치 디스플레이와 함께 터치식 공조 기능 조작계가 적용됐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 기능과 고속도로·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편리한 주행을 돕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 등 첨단 안전 사항도 대폭 강화됐다. 또 카메라와 룸미러를 통합한 ‘디지털 센터 미러(DCM)’가 적용돼 운전자가 레버를 조작하면 룸미러를 디지털카메라 화면으로 전환해 후방 시야를 편리하게 확보할 수 있다.
기아의 더 뉴 텔루라이드도 첫 부분변경 모델이다. 외장 디자인은 모던하면서도 강인한 스타일을 이어가면서 불륨감을 강조했다. 앞부분은 검은색 테크니컬 패턴을 적용한 타이거 노즈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함께 세로 방향의 헤드램프에 수직으로 배치한 프로젝션 LED 램프와 주간주행등이 탑재됐다. 전장 5000㎜, 전폭 1990㎜, 전고 1750㎜, 축간거리 2900㎜의 커다란 차체를 바탕으로 운전석에서 3열까지 넓은 실내 공간이 있다. 또 야외활동을 즐기는 고객층을 위해 라디에이터 그릴 등에 다크메탈 색상을 적용한 ‘X-라인’과 오프로드 특성을 강화한 ‘X-프로’ 등 두 가지 신규 트림(등급)도 선보였다.
기아는 신형 니로를 미국 시장에 처음 선보이기도 했다. 신형 니로는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3가지 모델이 올 하반기부터 미국 시장에서 판매된다.
디오스 ‘디오스 바이얀’, 빈패스트 ‘VF7’.
현대차그룹은 이번 뉴욕 오토쇼에서 열린 ‘2022 월드 카 어워즈(WCA)’에서 각종 상을 휩쓰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는 ‘2022 세계 올해의 자동차’ ‘2022 세계 올해의 전기차’ ‘2022 세계 올해의 자동차 디자인’ 등에 선정되며 6개 부문 중 3개를 차지했다. WCA는 ‘북미 올해의 차’ ‘유럽 올해의 차’와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상으로 꼽힌다. 심사위원단은 “복고풍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과 유연한 실내 공간의 적절한 조화를 앞세워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며 현대차의 완벽한 주력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아이오닉5를 평가했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목표는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 판매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뉴욕 현지에서 만난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은 미국 시장 전략에 대해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계속 숙성시키고 전기차도 고성능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현대차가 수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욕심 내보면 고성능·고급차 모델”이라며 “이번에 저희 전략이 더욱 명확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제네시스 GV70는 ‘세계 고급차’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메르세데스 벤츠 EQS에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2016년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제네시스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2020년 12월 이후 16개월 연속으로 미국서 판매량이 늘었다. 올해 1분기에만 1만1700대가 팔리며 역대 1분기 기준으로 최다 판매량을 경신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지난해 11월 맨해튼 한복판에 복합 문화공간인 ‘제네시스 하우스’를 열었다. 제네시스의 다양한 모델을 전시하고, 도서관과 레스토랑 등을 결합했다. 장 사장은 제네시스 하우스에 대해 “기존의 ‘차’ 이외에 문화를 어떻게 섞느냐가 중요하다”며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오는 12월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GV70 전기차도 생산한다. 제네시스 브랜드 중 첫 미국 현지 생산이다. 이를 위해 3억달러(약 3700억원)를 투자해 앨라배마 공장에 전기차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현대차그룹은 또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도 짓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바이든 정부 출범에 발맞춰 미국 현지에 2025년까지 74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30년까지 북미 시장에서 현대차는 53만 대, 기아는 30만 대 판매가 목표다.
장 사장은 미국에서 현대차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으로 ‘전동화 기술’을 꼽았다. 장 사장은 “이번 뉴욕 오토쇼 수상 차들이 대부분 전기차인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대세는 전기차”라며 “전기차 기술에서 누가 가장 앞서 있느냐, 그리고 차량의 퍼포먼스와 신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이어 “전기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전동화 플랫폼’인데 현대차는 이 플랫폼을 보유한 완성차 업체 중 하나”라며 “플랫폼의 성능과 종류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플랫폼이란 전기차에 필요한 배터리나 모터 등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을 의미한다. 장 사장은 지난달 열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2025년 승용 전기차 플랫폼 ‘eM’과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기차 전용 플랫폼 ‘eS’ 등 신규 전용 전기차 플랫폼 2종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기차 스타트업 INDI EV의 차량 내부, 도요타 ‘bz4x’.
▶제2의 테슬라 꿈꾸는 신생 업체들
전 세계 전기차 신생 업체들도 올해 뉴욕 오토쇼에 대거 참가했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부품 수만 개를 생산·조립해야 하기 때문에 신생 업체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제2의 테슬라’를 꿈꾸며 세계 곳곳에서 신생 업체들이 생기고 있다.
빈패스트는 여느 완성차 업체처럼 큰 부스를 차렸다. 빈패스트는 전기차 ‘VF7’ ‘VF8’ ‘VF9’ 등을 전시했다. 빈패스트는 2017년 설립된 베트남 대기업 빈그룹 산하의 자동차 회사다. 최근 빈패스트는 미국에 40억달러(약 4조9188억원)를 투입해 전기차 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베트남 기업으로는 처음 미국 뉴욕 증시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인디(INDI)EV’도 올해 뉴욕 오토쇼에 참여했다. 인디EV는 첫 전기차 ‘인디 원’을 전시했다. 자동차 대시보드에는 태블릿PC 크기만 한 디스플레이 2개가 붙어 있다. 인디EV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부터 내외부 카메라를 이용한 라이브 스트리밍, 편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전기차 스타트업 디오스(DEUS) 전시장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기차 하이퍼카’를 목표로 하는 디오스는 ‘디오스 바이얀’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디오스에 따르면 이 차의 예상 출력은 2200마력, 최대토크는 203.9㎏·m로, 2025년 첫 양산 하이퍼카를 내놓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