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산업의 무게추가 기술을 앞세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가격 인하 경쟁으로 대표됐던 중국 전기차 시장은 이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을 주도하는 기술 패권 전쟁의 장이 됐다.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 역시 현재 급변하는 완성차 시장을 눈여겨보며 시장 변화에 기민한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경쟁은 가격 인하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BYD, 샤오펑, 리오토, 화웨이 협력 브랜드 등 주요 업체들이 앞다퉈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중저가 모델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은 이제 “얼마나 싸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스스로 달리느냐”로 정의된다.
글로벌 자율주행 차량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863억 달러로 평가됐다. 추후 2033년 3784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20.2% 수준이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기반으로 스마트 주행 기술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 업체들의 전략이 단순한 기술 개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능을 프리미엄 옵션이 아닌 기본 사양처럼 대중화하는 ‘AI 평준화’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카메라·AI 기능이 보급형 모델까지 내려온 흐름과 판박이다.
국내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BYD는 ‘갓스아이(God’s Eye)’라는 이름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전 차종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저가 모델까지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고급 전기차에만 적용되던 라이다 센서와 도심 내비게이션 기반 자율주행(NOA) 기능을 엔트리급 차량에도 넣겠다는 구상이다. BYD 측은 “자율주행은 일부 부유층만의 기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자율주행 경쟁의 또 다른 축은 샤오펑이다. 한때 ‘중국의 테슬라’로 불렸던 샤오펑은 자율주행을 회사의 정체성 그 자체로 밀고 있다. 샤오펑의 강점은 도심 자율주행이다. 최근 비전·언어·행동(VLA) 기반 AI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전국 단위 도심 자율주행 확장을 추진 중이다. AI 칩 ‘튜링’ 기반의 VLA 2.0 시스템은 카메라만으로 주변 환경을 정확히 인식하고 맥락까지 추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술력은 독일 폭스바겐의 마음을 움직였다. 폭스바겐은 샤오펑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자사 차량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전통 완성차 강국 독일이 중국 스타트업의 소프트웨어를 채택했다는 사실은 자동차산업 권력 구도가 이미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샤오펑의 목표도 거침없다. 허샤오펑 CEO는 실리콘밸리를 직접 방문해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한 뒤 샤오펑의 기술을 테슬라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2026년 60만 대 판매 목표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샤오펑은 완성차 업체라기 보다 자율주행 기술 기업에 가깝다는 평가까지 나온다”며 “단순 운전자 보조 기능을 넘어 로보택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방향성은 명확하다”고 밝혔다.
중국 내수시장에선 화웨이가 사실상 주도권을 쥐고 있다. 화웨이는 자동차를 직접 대량 생산하지 않는 대신 사실상 중국 자율주행 생태계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운영체제(OS), 센서, 전장 소프트웨어, 반도체, 인포테인먼트, AI 플랫폼까지 통째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자동차판 안드로이드 전략’이라고 부른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 안드로이드가 수많은 제조사를 하나의 생태계 안으로 묶었던 것처럼, 화웨이가 자동차산업에서 유사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내 다수 브랜드가 화웨이의 시스템에 기반해 차량을 내놓고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독자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도 첨단 자율주행 기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화웨이는 현재 선전에서 레벨3 단계 자율주행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핵심은 화웨이 생태계가 확대될 수록 완성차 업체들의 하드웨어 차별화 여지는 좁아진다는 것이다. 플랫폼 공급자가 산업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구조다. 이미 이런 구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인된 바 있다. 중국 자율주행 경쟁은 완성차 업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바이두의 아폴로 고는 이미 로보택시 서비스로 1100만 건 이상의 주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두는 우버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 및 중동 시장까지 로보택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하고 있는 리오토 역시 이 흐름에 가세했다. 리오토는 베이징에서 L3 자율주행 테스트를 시작했고, 대형 SUV 중심의 인포테인먼트·주행보조 통합 전략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 중이다. 체리차 역시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 자체 개발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력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체리자동차는 1회 충전으로 최대 1500km 주행이 가능한 시험 차량을 2026년부터 운행하고, 2027년 대량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든든한 뒷배다. 레벨3 자율주행차의 도심 주행을 허용하는 규제 완화를 단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6년부터는 순수 전기차 에너지 소비량 기준을 11% 강화하는 등 기술 혁신을 제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결국 테슬라를 겨냥하고 있다. 테슬라의 핵심 자율주행 기술 ‘FSD’는 여전히 업계 기준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경쟁력과 더불어 기술력까지 끌어올리며 FSD와 정면 승부에 나선 것이다. 테슬라가 규제 이슈로 중국 내 FSD 확대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현지 업체들은 빠르게 기능을 보급하며 시장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의 특성에 맞는 양측의 접근 방법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미국식 자율주행이 ‘완벽한 기술’을 추구하는 반면, 중국은 ‘일단 시장에 풀고 개선한다’는 방식에 가깝다. 스마트폰 OTA(무선 업데이트)처럼 차량 소프트웨어를 지속 개선하는 모델이다. 중국 소비자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 중국 완성차 관계자는 “예전엔 디자인과 주행거리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AI 업데이트 속도가 판매량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 전기차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OTA로 자율주행이 얼마나 좋아졌나”가 차량 구매 포인트가 되고 있다. 중국의 자율주행 굴기에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율주행 기술력으로 가장 앞선 기업은 구글의 웨이모로 평가된다. 웨이모는 2025년 오스틴과 애틀랜타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했고, 2026년에는 마이애미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웨이모는 순수 전기 차량만으로 플릿을 구성하며, 현대차 아이오닉5 SUV까지 차량 라인업에 추가할 예정이다. 다만 웨이모는 안전을 우선하는 접근법 때문에 중국 업체들보다 확장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주목된다. 2024년 8월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레벨4 자율주행 기술 테스트를 시작했다. 영국도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자율주행 차량의 상업적 사용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 중이며, 2026년 봄에는 다양한 자율주행 차량 서비스를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일본 역시 국제기준을 적용한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서방 진영의 속도가 여전히 느리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미국처럼 규제가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실도로 데이터를 엄청난 속도로 축적할 수 있다”며 “AI는 결국 데이터 싸움인데 중국 업체들이 학습 속도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자율주행 공세는 한국 완성차 업계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테슬라가 한국 시장에 비감독형 FSD를 출시하면서 현대차·기아가 선도해온 국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경고등이 켜졌다. 현대차가 2027년을 목표로 준비해온 레벨2+ 주행보조 기술이 현재 글로벌 기술 경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현대차그룹 내에서 자율주행·SDV 전략 전환을 총괄하던 송창현전 첨단차플랫폼(AVP)본부장 사장이 기술 로드맵 재편 시점에 사의를 밝히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바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반격 의지는 투자 규모에서 확인된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직전 5년 투자액 89조1000억원 대비 4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소프트웨어 경쟁력 향상을 위해 2030년까지 현대차와 기아를 합쳐 총 18조원을 투입하고,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으로 데이터 연합을 구축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기아는 2026년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구체적인 SDV 로드맵을 제시했다. 2027년 말까지 고속도로 레벨2+ 기술을 탑재한 첫 SDV 모델을 개발 완료하고, 2029년 초에는 도심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레벨2++ 기술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SDV 핵심 운영체계 ‘플레오스’와 차량용 에이전틱 AI ‘글레오 AI’ 등도 연이어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의 전체 SDV 로드맵은 2026년 SDV 플래그십 공개, 2027년 레벨2+ 양산, 2028년 풀스택 SDV 아이오닉5 출시, 2030년 완전 자율주행차 양산으로 이어진다. 다만 규제 환경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국토부는 레벨3 자율주행의 국내 기준 도입 방향성을 2026년 중 검토하고, 개정안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중국발 L3 인증 차량이 수입되더라도 법규에 맞춰 레벨2 수준으로 기능이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국·미국·유럽에서는 레벨3 기능이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속도의 차이가 곧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BYD는 한국 진출 첫해인 2025년 6107대를 판매해 수입차 판매 10위에 오른 데 이어 최근 11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만 대를 기록했다. 이는 수입차 기준 역대 최단기간 기록이다. 이런 가운데 지커, 샤오펑 등 중국의 주요 전기차 브랜드들이 올해 중 진출을 가시화하며 한국의 안방시장이 위협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 공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만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속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거에는 엔진 성능과 생산 품질, 규모의 경제가 완성차 기업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 축적 능력과 AI 알고리즘, 반도체, 차량 운영체제(OS) 경쟁력이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