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군으로 떠오른 K팝. 글로벌 음악 시장을 주도하며 급성장한 K팝 덕에 하이브, JYP엔터, 와이지엔터, 에스엠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성장세는 한동안 이어졌다.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블랙핑크, 뉴진스, 트와이스 등 이들이 키워낸 K팝 스타들은 이미 국내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K팝 주변에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슈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주력 아티스트의 거취에 변화가 생기는가 하면, K팝 성장세가 정점을 찍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그 예다.
실제 이 두 이슈는 엔터산업에 있어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엔터산업의 특성상 인적 자산들이 계속 확보되지 않으면 회사의 성장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또 K팝의 정점론은 국내 음악이 더 이상 글로벌 시장을 뚫기에 여력이 부친다는 뜻도 된다.
실제 한화투자증권은 “K팝의 글로벌 침투율은 4% 남짓”이라면서 “4%에 갇힐 것인가, 남은 96%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라고 진단했다.
다행스럽게도 위기감을 느낀 K팝 대표선수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들여다봤다.
하이브는 오늘의 회사를 있게 한 주역 BTS가 전원 군입대를 하며 최악(?)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BTS가 활동을 중단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활동 중단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회사 실적 기여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멤버 중 한 명인 RM이 공식 유튜브채널을 통해 재충전을 이유로 활동 잠정 중단을 밝히자 다음 날 주가가 급락한 데서 BTS의 하이브 내 입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기우로 보는 시각이 역력하다. BTS 전원의 ‘활동 중단’이란 악재가 오히려 회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순간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완전체에 대한 기대감이다. 군 복무 기간이 예전에 비해 짧아져 1년 반이란 시간이면 BTS의 완전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막강한 팬덤인 아미를 기반으로 다시 글로벌 BTS 인기를 재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티스트가 인기를 끌면 항상 불거지는 재계약에 대한 문제도 회사와 BTS는 매끄럽게 풀어낸 상태다. 멤버 전원이 재계약을 이뤄냈다.
또한 BTS가 자신들을 둘러싼 병력 논란을 정직하게 군에 입대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BTS의 부재 기간 동안 이들이 기여했던 회사 실적이 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 유안타증권은 “2024년 예상 연간 매출액(9723억원)이 2023년 대비 0.4% 하락할 수 있다”고 밝힌 뒤, 그 이유로 “BTS의 부재”를 들었다. 2023년 솔로를 포함한 BTS의 앨범 판매량은 890만 장 수준으로 전체 앨범 판매량의 22%나 됐다. 하이브가 실적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2024년 어떻게 메우는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아티스트가 콘서트 등에서 내는 매출도 상당하다.
하이브는 이를 자사 레이블 소속인 뉴진스의 심상치 않은 인기를 활용한 전략과 2024년 3개 이상의 신인 그룹 데뷔 등을 통해 풀어간다는 구상이다. 이들이 BTS의 공백을 메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리막이던 주가는 반등에 성공한 상태다.
동시에 회사는 더욱 글로벌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K팝 위기론에 대해 “K팝에서 K를 떼어야 산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정국, 뉴진스, 르세라핌 등 하이브 레이블 소속 가수들의 최근 발매곡들은 한국어보다는 영어 비중이 높고, 기존 K팝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칼군무 같은 안무도 많이 약해졌다.
JYP엔터는 회사의 최대주주이자 COO(창의성총괄책임자)인 가수 박진영이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여윳돈만 있었으면 무조건 (자사) 주식을 산다”고 한 발언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에서 회사 상황과 내부 문화, K팝의 방향성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것도 공감을 자아냈다. 회사 설립자이기도 한 박 씨가 특히 JYP란 기업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3년, 5년 뒤를 믿는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만들어온 회사의 시스템과 직원들을 믿는다”며 회사의 성장세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시장은 관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회사 설립자이자 셀럽이기도 한 박 씨가 회사의 미래 성장을 자신했지만, 그의 유튜브 출연 후 반짝했던 주가는 크게 변동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바닥론으로 보는 긍정적 해석도 가능하지만, 현 주가 수준이 추가 상승을 위한 조정 국면에 있는지 아니면 하향 추세에 들어섰을 때 종종 나타나는 잠시 멈춤 현상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 JYP 주가는 텐베거를 달성하는 등 이미 너무 치솟았다. 즉 주가가 저가 대비 10배 이상 오른 상태인데, JYP가 이를 뛰어넘기 위해선 지금까지 이룬 성과보다 더 뛰어난 실적을 내보여야 한다. 회사가 성장세를 지속하지 못하면 높이 오른 만큼 그 추락 폭도 클 수가 있다. 현재 박 씨의 ‘자사 주식 매입’ 발언은 해당 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슈카월드측에 이메일을 보내 관련 경위를 문의했지만 답변이 없었고, JYP 측은 “해당 사실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다만 JYP의 경우 엔터산업의 잠재 리스크 중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속 구성원과 관련된 돌발 위험도가 약하다는 점은 시장이 후하게 쳐주는 부분이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아티스트가 발언 실수나 예기치 않은 행동으로 한순간에 몰락하는 경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 씨가 유투브에 나와 자사 실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걸그룹 트와이스 이야기를 꺼내며 “정말 착하다. 인성이 덜된 이와 성공을 한다면 재미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한 건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다른 엔터테인먼트 회사와의 차이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JYP가 실적 성장세를 자신하는 것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진출해 이제 그 꽃을 피우려 한다는 점이다. 미국, 중국, 일본에서 현지화한 JYP 스타일의 아티스트들이 2024년 데뷔를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JYP가 라이브네이션 본사와 ‘북미 지역’ 공연에 대한 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한 효과도 긍정적으로 보는 대목이다. 공연장 확보로 원하는 때에 음악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자사 소속 가수들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엔터기업 중 가장 큰 변곡점을 맞이할 뻔했던 곳이 와이지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빅뱅 등 기존 주요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전무한 상태에서 블랙핑크란 글로벌 대세 걸그룹에 대한 단일 의존도가 상당히 컸는데, 계약 만료 기간 도래로 이들과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회사가 급속히 흔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블랙핑크의 뒤를 이어 야심차게 준비 중이었던 신인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출격까지 예정보다 계속 미뤄지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보이그룹 트레저가 있지만 블랙핑크에 비해 실적 기여도는 아직 크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와이지는 막바지에 완전체로 블랙핑크와 계약을 이뤄냈고, 시장은 크게 반색했다. 계약 기간이 다소 짧은 2년이었지만 시장은 계약 자체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블랙핑크 IP 가치를 훼손 없이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블랙핑크의 글로벌 팬덤은 계속 성장 중이고, 이로 인해 스트리밍 음원·콘서트 등의 매출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2022년 블랙핑크의 콘서트 관객 수는 37만 명이었지만 2023년에는 150만 명까지 치솟았다. 블랙핑크는 3분기 공연 매출로만 334억원을 올렸다. 2분기에도 12회 콘서트를 통해 312억원을 벌어들였다.
후발 주자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우여곡절 끝에 11월 말에 정식 데뷔를 한 베이비몬스터는 계속 화제를 뿌리고 있다. 데뷔곡의 뮤직비디오가 공개 18일 만에 1억 뷰를 달성했는데, K팝 데뷔곡 뮤직비디오 중 최단 기간 달성이다.
카카오에 인수된 에스엠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카카오가 에스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된 시세 조종 의혹은 여전히 검찰 수사중이다. 김범수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까지 이 문제로 검찰에 불려갔다.
하지만 저력 있는 엔터회사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못하는 모양새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에스엠의 3분기 실적이 그 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8% 오른 2663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69.8%나 오른 505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에스엠이 실적에만 안주한다면 오히려 향후 리스크가 될 소지가 있어 보이는 것은 걱정거리다. 에스엠의 시장 주도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고, 매출의 상당 부분을 고정 팬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는 실적 안정성은 담보되지만 확장성에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쟁사에 비해 추가 성장 동력에 대한 고민이 다소 늦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세계 최대 음악시장인 북미 시장 진출도 2024년에서야 이뤄진다.
이런 가운데 회사의 주력 아이돌인 에스파가 지난 11월에 내놓은 미니앨범 4집의 첫날 판매량이 전작인 3집에 비해 40%나 줄어들면서 충격을 던졌다. 중국 공동구매가 줄었기 때문인데, 일단은 일회성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에스파의 글로벌 팬덤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아직은 기우라는 평가를 내리지만, 경쟁이 치열한 업계 상황을 감안하면 마냥 일회성 이벤트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에스엠은 인적 자원 확보 차원에서 2024년 대규모 글로벌 오디션을 계획하고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