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동작구에 사는 박민호 씨는 일어나자마자 TV가 위치한 작은방으로 향해 홈트레이닝 영상을 켰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옷방이었던 이곳은 홈트레이닝 장비를 갖춘 미니 헬스장으로 변신했다. 운동을 마친 박 씨는 최근에 구입한 커피머신으로 아메리카노를 내려먹고 홈쇼핑으로 주문한 밀키트를 전자레인지로 데워 아침 식사를 했다.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을 통해 회사 회의를 마친 뒤 점심에는 배달의민족 앱 배달을 통해 점심을 해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오후 업무를 마쳤다. 저녁에는 넷플릭스에 개봉한 신작 영화를 감상하고 떨어진 칫솔을 쿠팡을 통해 미리 주문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재확산되며 슬기로운 ‘집콕’생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주말 등 휴식시간에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가 소비문화와 여가 문화를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평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유로운 외부 출입이 제한되면서 집은 일하고 먹고 즐기는 일상생활 전반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씨는 “2020년은 완전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라며 “일도, 취미도, 운동도 집에서 다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으로만 했는데 이렇게 가능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대세는 홈베이킹?! 술·초콜릿 판매량 급증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3요소로 불리는 ‘의식주’ 중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분야는 단연 ‘음식’이다. 주말이면 으레 하던 외식문화는 완전히 단절됐고 이로 인해 집에서 요리하는 ‘홈쿡’ 문화와 배달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다.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만큼 요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최근에 수백 번 저어야 만들 수 있다는 달고나 커피 만들기 챌린지나 수플레 오믈렛 만들기 등 ‘킬링타임’용 요리 도전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 대표적이다. 달고나 커피는 커피 분말과, 물, 설탕 등을 섞어 걸쭉하고 끈적한 상태가 될 때까지 400번 이상 저어야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만들어본 사람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작했다는 둥, 잠시도 가만있기 힘든 현대인들의 고충이 담긴 음식이라는 둥 다양한 후기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요리 챌린지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 등 연예인들도 도전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00번 이상 저어야 만들 수 있다는 수플레 오믈렛·팬케이크·계란말이 등 요리 영상들도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역시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문화 중 하나다. 이런 음식들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요리법의 극단적인 형태이지만, 이처럼 집에서 요리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려는 시도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홈메이드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식재료와 홈쿠킹 용품 등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J제일제당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직접 밥을 조리해 먹는 빈도가 늘었다는 소비자가 조사 대상의 84%를 넘었다. CJ제일제당 홈메이드 믹스 브랜드인 ‘백설 베이킹 믹스’ 역시 지난 2~7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3% 급증했다. 백설 베이킹 믹스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핫케익믹스지만, 올해는 유독 호떡믹스 판매가 급증해 전년 대비 172%의 증가를 보였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보통 호떡은 겨울철이 성수기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서 아이들 간식으로 만들어 먹는 수요가 증가해 판매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홈메이드 푸드에 대한 소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큐원 홈메이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삼양사도 전년 상반기 대비 홈메이드 믹스 부문 매출이 약 28% 증가했다고 밝혔다. 매출이 많이 늘어난 제품으로는 와플믹스, 영양쿠키믹스, 우리밀팬케익믹스 순이다. SSG닷컴이 올해 2월 1일부터 이달 12일까지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직접 반죽을 활용해 과자를 만들 수 있는 ‘토이쿠키’ 매출은 150% 증가했다. 팬케이크, 쿠키, 브라우니 등을 만들 수 있는 믹스류 상품 매출도 152% 늘었다.
홈메이드 믹스의 인기가 높아진 데는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지 못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잇달아 등교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놀이처럼 만들어먹을 수 있는 홈킷의 인기가 늘어난 것이다. 주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또 간식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홈메이드 믹스를 많이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홈베이킹을 시도하고 싶지만 본격적인 베이킹에 도전하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간편한 홈메이드 믹스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또 에어프라이어 보급이 확대되며 홈메이드 쿠킹이 보다 쉬워졌다는 점도 판매가 증가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분위기에 재빠르게 대응해 기업들도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등을 타깃으로 편의성을 극대화한 소용량 믹스 제품을 늘리고 있다. 삼양사는 고구마케익믹스, 초코케익믹스, 계란빵믹스 등 대표적 1인분 소용량·초간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홈메이드 믹스뿐 아니라 간단한 술안주 요리나 달콤한 군것질거리 만들기에 도전하는 집콕족도 늘어나고 있다. 집콕의 답답함과 무료함을 달래려는 혼술족의 온라인 주류 구매가 늘어나면서 전통주의 인기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주세법상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대면 판매가 허가된 전통주가 코로나19의 반사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식품명인이나 지정문화재가 만든 술, 지역 농산물로 빚은 특산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자레인지로 쉽고 간편하게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CJ제일제당의 ‘백설 케익믹스’.
온라인유통업체 G마켓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7월 28일~8월 27일) 판매된 전통주는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했다. 세부적으로는 복순도가를 비롯한 막걸리가 185%, 배상면주가 보리아락과 안동소주 등 일반 증류주가 63%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약주 역시 판매량이 34% 늘어나며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감홍로, 이강주 등으로 대표되는 약주는 증류한 소주에 특정 효능이 있는 약재를 담가 우려낸 뒤 숙성시킨 술이다. 연령대로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전통주 수비가 많은 40~50대가 전체 60%에 해당하며 이러한 성장세를 이끌었다. 40대 주문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0%, 50대는 123% 증가했다.
G마켓 관계자는 “오랜 기간 지속된 장마에 태풍, 코로나19 재유행 등이 겹치면서 집에서 직접 술을 주문해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며 “특히 유난히 많이 내린 이번 여름 장마의 특수효과로 인해 전통주와 안주류 판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코로나19발 우울증 극복을 위한 초콜릿 등 간식들의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진 지난 4주간(7월 20일~8월 13일) 초콜릿 매출은 전년 대비 43.8% 급증했다. 스낵(7.5%) 파이류(12.4%) 쿠키·비스킷(15.5%) 캔디(11.6%) 등 다른 과자류 카테고리 수치에 비하면 초콜릿 매출 신장률이 많게는 6배 이상 높았다. 초콜릿 판매 비수기인 여름철에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외출이나 여행을 못하는 기간이 늘어났고 긴 장마로 일조량이 부족해져 기분이 처지거나 우울해지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판매량 신장을 이끈 요소로 보인다”며 “특히 올해 내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소비 패턴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술의전당이 ‘SAC On Screen’을 유튜브로 스트리밍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연극 <페리클레스> 공연장면.
▶코로나19 시대 대세는 ‘랜선 라이프’… 집에서 놀자
영화, 음악, 공연 등 문화생활도 집에서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영화계는 개봉작 기근으로 하루 전체 관객은 1만 명대로 주저앉았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 접속 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 시점을 잡지 못해 계속 미루다 개봉 대신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극장들은 ‘뉴노멀’에 대응하기 위해 키오스크와 자율 주행 로봇 등으로 대면 서비스를 최소화한 ‘언택트 시네마’를 선보이며 새로운 길 개척에 나섰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 네이버, 카카오 등 언택트 관련 주식들은 이러한 뉴노멀 시대상을 반영하듯 연일 신고가를 갱신하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음악 감상 역시 집에서 이뤄지고 있다. 음악 팬들은 가수들이 집이나 스튜디오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지켜보면서 오프라인 공연에 대한 갈증을 달래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과거 콘서트와 팬 미팅 실황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하면서 팬들이 지닌 응원봉을 영상에 실시간으로 연동할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는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공연들도 줄줄이 유튜브 등에 무료공연을 올리며 집콕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 달래기에 동참했다. 예술의전당은 유튜브로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해 2주 만에 조회수 70만 회를 넘기는 등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세종문화회관도 기획프로그램 ‘힘내라 콘서트’를 온라인상으로 진행하며 대응에 나섰다. 국립극단도 기존 공연한 연극을 보여주는 ‘온라인 전막 상영회’와 4∼5분 분량 희곡 낭독 영상 6편을 공개하는 ‘짧은 연극 낭독회’를 진행했다.
코로나19 확진자보다 무섭다는 ‘확찐자’가 된 사람들을 위한 홈트레이닝도 대세 중 대세다. 구인·구직 포털인 알바천국이 최근 개인회원 824명에게 ‘코로나19 이후 건강관리’를 주제로 설문 조사한 결과 2명 중 1명(52.1%)이 올해 초와 비교해 체중이 늘었으며, 증가한 몸무게는 평균 4.9㎏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성별로 살펴보면 체중이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54.9%)이 남성(44.8%)보다 10.1%P 높았다. 하지만 늘어난 몸무게 평균은 남성이 6.4㎏으로 여성(4.5㎏)보다 1.9㎏ 많았다. 직업별로는 성장기인 ‘중·고등학생’ 그룹의 답변이 56.7%로 제일 많았고, 늘어난 체중은 ‘취업준비생’이 평균 5.9㎏으로 가장 높았다. 체중이 늘어난 이유로는 ‘고열량·고지방의 배달 음식 섭취량 증가(52.2%, 복수 응답)’를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올해 초와 비교해 현재 체중이 줄었다는 응답도 18.2%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평균 5.2㎏ 차이를 보였다. 체중 관리를 위해 다이어트한 경우(47.0%, 복수 응답)를 제외하고는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전반 제재로 스트레스(27.1%)’가 체중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모델들이 홈트레이닝을 위한 헬스기구를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체중이 불어나고 집콕생활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이나 사우나 등 운동·건강관리 관련 시설들의 운영이 멈추면서 운동할 장소가 마땅찮아진 운동족에게 홈트레이닝은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CJ대한통운이 최근 발표한 ‘일상생활 리포트 PLUS’에 따르면 올해 3~4월 러닝머신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6% 증가했으며, 계단 밟기 운동 기구인 스테퍼는 162% 증가했다. 아령 제품은 140%, 훌라후프는 60%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각종 SNS에서는 집에 효율적으로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방법을 공유하거나 본인이 직접 꾸민 미니 헬스장을 보여주며 홈트레이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한 직장인은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이 수개월째 운영을 못해 최근 살이 많이 쪘다”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하나둘 헬스용품을 사모으다 보니 방 하나를 완전히 헬스장처럼 꾸미게 됐다”고 말했다. 또 밖에 나가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마음을 편히 다스리고자 명상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 역시 늘어났다. 유튜브에는 108배처럼 운동과 마음수련 효과를 동시에 기대하는 사찰식 홈트레이닝도 소개되고 있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도 명상과 관련된 서적이 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다.
호텔이나 펜션 등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여행지 대신 최근 관심이 모아지는 차박 문화 관련 판매량도 늘었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차박매트 배송량 역시 329% 증가했으며, 간단하게 여행짐을 챙길 수 있는 보스톤백 물량은 158% 증가했다. 차량 내비게이션은 80%, 후방카메라는 42%, 트렁크 정리함은 53% 증가하는 등 자동차 관련 용품 물동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 가꾸기에 대한 관심 역시 급증하고 있다. SSG닷컴이 지난 2월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집에서 식물을 기르는 ‘홈가드닝’ 관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2% 증가했고, ‘홈인테리어’ 제품 판매도 40% 늘었다. 집에만 있다 보니 무료해지고 따분해진 집생활을 인테리어 등을 통해 분위기 전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집 안이나 베란다, 옥상 등을 활용해 캠핑 온 듯한 분위기를 내는 ‘홈 캠핑’ 역시 인기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