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조원태 회장 연합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롯한 KCGI, 반도건설 등 ‘반(反)조원태 3자 연합(이하 주주연합)’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조원태 회장 연합은 한진그룹 내 3개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는 등 내부단속에 나서고 있다. 주주연합은 지난해 주총에서 현 경영진에 반기를 들었던 행동주의펀드 KCGI가 추가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반도건설과 손을 잡고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등 표심잡기에 나서고 있다. 당장 3월에 열릴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할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원태 회장 연임 두고 표 대결, 국민연금·소액주주가 승패 가를 듯
다가올 주총에서 의결권이 있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반(反)조원태 연합군’ 간 지분율 차이는 1.47%포인트로 박빙이다. 근소하게 조 회장 진영이 앞서고 있다. 조 회장의 우호 지분은 총 33.45%다. 본인 소유 6.52%를 비롯해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5.31%)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 임원·재단 등 특수관계인(4.15%), 사업파트너인 델타항공(10%), 카카오(1%) 등이 포함된다. 반면 주주연합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모두 32.06%인데, 반도건설의 의결권 유효 지분(8.20%)을 고려하면 지분율은 31.98%로 조 회장 측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과 소액주주가 다가올 주총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주총 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예상보다 적은 2.9%가량으로 알려졌지만, 양측 모두 1%가 아쉬운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전권을 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한진칼 주총에서 어떠한 의결권을 행사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수탁위는 조만간 전문위원 위촉 등 후속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조 회장의 연임 여부에 대한 찬반 등 한진칼을 둘러싼 여러 안건에 대한 의견들을 정리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도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고(故)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반대로 경영권을 상실한 바 있다. 주주권 행사로 재벌 총수 자리에서 물러난 첫 사례로 기록됐다. 대한항공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필사적으로 의결권을 모아왔던 터라 충격이 더욱 컸다. 당시 국민연금(지분율 11.56%)뿐만 아니라 외국인 주주(20.50%)를 포함한 소액주주 상당수가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이러한 과거사례로 소액주주의 투표참여 여부가 양측 모두에게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연유로 양측은 전자투표제 도입 여부를 두고 한 차례 부딪혔다. 전자투표는 주주들이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직접 주총 행사장에 참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빠르게 주총 안건에 찬반 의견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
주주연합 측은 주주제안에서 주주가치 제고 수단 중 전자투표제 도입을 가장 우선으로 내건 바 있다. 주주들의 표심을 잡고 조 회장을 압박할 수 있는 ‘만능 키’로써 향후 여론전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한진그룹 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불가 방침을 내놨다. 한진칼의 전자투표제 도입 거절은 지난해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한진그룹은 전자투표제가 없어도 주총 참석률이 지난해(77.17%)보다 높은 수준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높이기 위한 전자투표제 도입 유인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강성부 KCGI 대표
▶1년간 절치부심한 KCGI 이번엔 다를까
지난해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KCGI는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당시 타깃은 석태수 한진칼 대표였다. 당시 KCGI는 석태수 대표에게 경영 성과 부진과 오너와의 밀착관계를 지적하며 경영인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31일에는 이사 선임을 골자로 한 주주제안서를 회사 측에 보내기도 했다. 감사와 사외이사 후보를 제안하고 석태수 대표를 대체할 사내이사 선임을 요구했다.
몇 달간 한진칼에 대한 지분율을 야금야금 높이며 주주총회 표 대결을 준비한 KCGI는 당시 한진칼에 대해 10.81%, 한진에 대해 8.03%의 지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주총에서 KCGI와 소수지분들로 구성된 연합세력의 입김은 매섭지 못했다. 모든 안건을 표결에 부치며 팽팽한 긴장이 맴돌았으나 결국 한진칼이 제안한 모든 안건이 통과되며 씁쓸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후로 1년 만에 KCGI는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반도건설이다. KCGI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은 지난 1월 31일 공동 성명을 통해 “국민의 기업인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현재 경영상황이 심각한 위기이며 이는 현재의 경영진에 의해 개선될 수 없고 전문경영인제도의 도입을 포함한 기존 경영방식의 혁신,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 효율화를 통해 주주가치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점에 함께 공감했다”며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 등 한진그룹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활동에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조원태 연합과 견줄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한 주주연합은 다가올 정기 주총에서 다시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올해 주총은 지난해와는 달리 박빙 승부를 점치는 시각이 많다. 지분율 측면에서 한진그룹도 우호지분을 늘리려 할 테지만, KCGI 측도 추가 지분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경영인체제 도입과 이사회 중심 경영을 목표로 관련 제안을 준비하는 단계지만 어떤 안이든지 결국은 현 오너와 부딪힐 수밖에 없을 전망인데 현재의 지분율을 감안하면 결과를 뒤엎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주총에서 KCGI 컨소시엄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쪽은 한진칼을 장악한 이후 나올 후속작업에도 주목하고 있다. 당장 주력인 대한항공에 대한 전략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CGI가 애초 대한항공보다는 한진칼 지분을 사들였을 때도 결국은 대한항공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지주회사 지분을 공략하는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주주연합, 경영부진 책임 오너 퇴진요구, 이사회 교체로 전문경영인 선임 노려
주주연합 측은 줄기차게 경영부진의 책임을 물으며 조원태 회장의 퇴진과 전문경영인체제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3자 연합은 한진칼 이사회에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4명을 각각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발표했다. 3월 27일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이들 8명의 이사 후보의 선임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주주연합 측은 이에 대해 “참신하고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과 외부전문가들로 한진칼의 이사진이 구성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라며 “한진그룹의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은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주주연합 측의 이사 8명 선임이 완료될 경우 이사회에서 현재 조원태 회장 진영으로 분류되는 이사 4명을 압도해 3분의 2의 지분확보가 가능해진다. 현재 한진칼은 조원태 회장, 석태수 사장 등이 사내이사로 있고 사외이사로는 이석우 변호사, 주순식 전 공정위 상임위원, 주인기 연세대 명예교수, 신성환 홍익대 교수 등 4명이 포진해 있다. 이 가운데 조원태 회장과 이석우 변호사는 3월로 3년 임기가 끝난다.
이러한 주주제안은 현재 한진칼 정관에 이사 숫자 제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파악한 노림수다. 보통 회사들은 정관에 이사 숫자를 제한해 무분별한 이사 선임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진칼은 현재 정관에 이사회 구성원을 ‘3명 이상’으로만 규정하고, 상한을 명백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순조로워 보이던 주주제안은 돌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주주연합이 내세운 이사 후보 중 한 명인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가 닷새 만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김 전 상무는 서신을 통해 “3자 연합이 주장하는 주주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며, 본인의 순수한 의도와 너무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진그룹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동료 후배들로 구성된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자신을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한 3자 연합대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사진 후보 명단을 공개한 이후 (김 전 상무) 주변의 여론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주제안 이후 3자 연합과 김 전 상무를 향해 대한항공 노조를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사 노조와 대한항공 OB임원회 등의 비난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앞서 대한항공 노조는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3자 동맹이 허울 좋은 전문 경영인으로 내세운 인물은 항공산업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그들 3자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조 전 부사장의 수족들로 이뤄져 있다”며 “그들이 물류, 항공산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진그룹 노조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롯한 3자 연합을 비난하는 상황에서 3자 연합의 이사 후보마저 돌연 이탈하면 주주총회를 앞둔 상황에 명분 싸움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반격
호텔사업 정리·지배구조 개편
조원태 회장 측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직 분리, 서울 송현동 부지 매각 등 회사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을 발표하며 반격에 나섰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관련된 호텔 및 레저사업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하는 한편 조 회장 스스로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것은 주주연합 측의 제안을 선제적으로 받아들여 힘을 빼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먼저 조원태 한진 회장이 대표이사 자격으로 겸임하던 이사회 의장직을 외부인에게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주총에서 조 회장의 대표이사 연임을 안건으로 상정하되, 동시에 이사회 의장을 외부인으로 선임해 주주연합이 내세울 대표이사 후보와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한진 측은 이에 대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는 한편 이사회 의장을 외부에 개방해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한진의 이 같은 발표는 조현아 전 부사장 진영이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선임하겠다고 나선 데 대응한 조치다. 사외이사의 역할을 확대하고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방식이다. 이밖에도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키로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와는 별도로 한진칼은 호텔·리조트 사업 등 비주력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수익성이 낮은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자신의 주특기로 삼아왔던 사업의 실패를 부각시키면서, 해당 사업에서 쌓인 부실을 털어 재무여건을 재건하겠다는 포석이다. 구체적으로 한진 측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윌셔그랜드센터 및 인천 소재 그랜드 하얏트 인천 등은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구조 개편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호텔과 레저 사업을 전면 개편해 재무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한진칼 측은 항공우주사업, 항공정비(MRO), 기내식 등 전문 사업영역은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항공우주와 항공정비 사업은 KCGI가 자회사로 분리 후 상장을 요구해왔던 사업부다. 이는 KCGI의 제안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이에 대해 강성부 KCGI 대표는 지난 2월 2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우리가 요구한 것들을 커닝하듯 베껴서 내놓고 자기들 공인 양 호도하는 걸 보면서 실망했다”라며 “갑자기 열심히 한다고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건설과의 ‘3자 연합’이 주주총회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음 달 주총을 앞두고 양측의 대결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가 되면서 3자 연합이 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것에 대한 반박이다. 사모펀드 특성상 단기차익을 노리고 한진칼 지분율을 사들였다는 의혹에는 “먹튀는 없다”고 일축했다.
▶여론전 나선 주주연합, “3자 연합 끝가지 간다”
주주연합은 KCGI를 필두로 조 회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진칼의 선제적인 경영효율화 방침과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노조를 중심으로 반발여론이 높아지며 기세가 한풀 꺾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주연합의 협력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주주연합 측은 여론전에 나섰다. 특히 한진칼 경영개입 이후 공개적 행보를 극도로 자제해오던 강성부 KCGI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강 대표는 지난 2월 20일 3자 연합의 대표자격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3자 연합은 끝까지 함께 완주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먹튀 의혹에 대해서 강 대표는 “펀드 최장 만기가 14년이고 록업이 10년 이상 걸려있다”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펀더멘털을 개선해 그에 따른 기업 가치가 올라가면 정당한 이익을 받겠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날 조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한진그룹은 총체적인 경영 실패 상태”라며 “가장 큰 원인은 오너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사모펀드 엘리엇과 KCGI는 다르다며 “과도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대주주가 지분을 팔아도 욕을 먹는 분위기가 아닌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 대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에 선을 그으며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강성부 대표는 “주주연합 협약 내용에 경영에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확약이 있다”며 “조 전 부사장 경영 복귀를 막을 수 있는 정관 변경안을 주주제안을 통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혐의 선고가 확정되고,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는 이사직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날 조현아 전 부사장은 간담회에 불참했다.
한편 강 대표는 이날 조원태 회장을 향해 공개토론을 재차 제안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오늘은 조원태 회장에게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하고 응답을 바라는 마지막 날”이라며 “주주로서 저희의 큰 비전과 주주제안 내용, 새로운 이사후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