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9년도 3분기로 접어들었지만 게임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기대를 안고 출시한 게임들도 그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게임 질병 코드화 등 악재들까지 겹치며 지난 2분기 성적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3N으로 불리는 국내 대표 게임사들은 스테디셀러 선전에 힘입어 큰 위기는 없었지만 그만큼 큰 성과도 없었다. 그나마 펄어비스, 위메이드 등 그 뒤를 잇는 주자들이 영업이익이 개선된 지표를 받아들고 겨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모양새다.
이처럼 게임계가 힘들어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는 신작 부재가 꼽힌다. 최근 넥슨의 ‘트라하’, 넷마블의 ‘BTS월드’ 등 관심을 모았던 기대작들마저 시장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게임사들도 주춤하고, 게임 유저들이 만족할 만한 신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매출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이달 초 공개한 ‘2019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모바일 게임 기준 유저들의 월 이용액이 불과 작년과 비교해서도 30%가량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임 외적으로 경기가 불황인 것 역시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아예 장사를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게임사들은 신작을 준비하면서, 그 개발 기간 동안에는 기존 인기작들의 업데이트로 유저들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시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업데이트를 하는 게임이라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유저 층을 확보해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데이트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신작 발매보다 저렴한 개발 비용을 들여 기존 유저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게임 트렌드 특성상 기존에 성공을 거둔 IP(지적 재산권)를 이용해 출시되는 경우도 많기에 신작 개발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이미 보유한 IP를 그대로 이용하는 업데이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사로서 언제나 신작을 고민하고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게임이라는 상품은 성공과 실패의 간극이 큰 데다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어려워 때로는 신작 개발보다 기존에 잘 되고 있는 게임을 잘 업데이트하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엔씨 리니지M
▶여름방학을 잡는 자, 시장을 잡는다
그렇다면 게임 업데이트의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 물론 정답은 없는 문제다. 유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업데이트의 성패도 갈리기 마련이라 각 게임사들은 업데이트 시기나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해외 시장에 나선 게임의 경우 각 시장의 유저들 스타일에 따라 차이를 두기도 할 정도다. 가령 한국 유저들은 최종 콘텐츠까지 게임을 플레이한 뒤 보상을 얻기 위해 반복도 불사하는 이가 많아 플레이 타임에 따른 이벤트를 새롭게 주는 것이 좋고, 일본 유저들은 무조건 높은 등급의 캐릭터를 모으기보다 조합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매 업데이트마다 새로운 캐릭터 조합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국내 게임 시장에서 가장 많은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시기를 찾아보자면 바로 여름이다.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은 물론, 휴가철 동안 밀린 게임을 즐기려는 직장인들까지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미디어플랫폼이 제공하는 PC방 게임 통계서비스 더로그 기준 최근 6개월 PC방 순위 1위부터 20위까지 게임의 전체 이용시간을 살펴보면 2분기 평균 대비 본격적인 여름방학 시즌인 7월에 PC방 전체 이용시간이 12.7%나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카트라이더’ ‘돼지바’ 제휴 이벤트
3N을 위시한 국내 게임사들 역시 여름 시즌 이벤트에 공을 들이고 있다. 10대 유저도 많이 보유해 방학의 최강자로 꼽히는 넥슨은 업데이트는 물론 유통, 식품,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게임 외 다양한 영역에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여 인기 게임 캐릭터로 제휴 상품을 선보이고 다채로운 이벤트를 여는 등 다방면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올 여름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는 전국 CGV, 메가박스와 협업해 ‘핑크빈’, ‘돌의 정령’ 등 인기 캐릭터를 활용한 한정판 영화관 굿즈 ‘팝콘통’, ‘음료컵’을 출시하고, ‘카트라이더’와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는 SPA브랜드 스파오와 손잡고 컬래버레이션 의류 및 패션 잡화를 선보였다. 특히 최근 ‘카트라이더’는 롯데푸드와 협업을 해서 아이스크림을 모티브로 한 카트바디 ‘돼지바 S X’, ‘돼지바 I X’와 ‘돼지바 전자파밴드’, ‘돼지바 핸드봉’ 등 게임 아이템 총 6종을 선보였고, 실제 편의점에서도 카트라이더 캐릭터를 포장지에 넣은 돼지바를 출시해 게임카페 커뮤니티 등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물론 본업인 게임 자체의 업데이트야말로 수익 지표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예컨대 정통 온라인 축구 게임 ‘FIFA 온라인 4’는 실제 축구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보니 내용적으로 큰 업데이트를 하는 것보다도 클럽 간 선수 이적이 활발한 여름 및 겨울 이적시장 결과를 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넥슨은 여름 이적시장의 경우 유럽 축구리그 시즌이 마감되는 7~8월에 진행하며, 라이선스 확보, 능력치 조율 등의 작업을 거쳐 11월 업데이트에 반영하고 겨울 이적은 1월에 반영한다. 또한 월드컵 본선 개막 시즌에 맞춰 기간한정으로 게임 내 국가대표팀 스쿼드를 활용해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는 월드컵 모드도 선보이고 있으며, 그 밖에 아시안 게임, U-20 월드컵 등 국가대항전 관련 이벤트 업데이트를 수시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로스터패치’와 ‘에이전트 시스템’ 추가 등 업데이트로 전월 대비 총 이용자수가 42.1% 증가해 약 1008만여 명을 기록했고, 7월 여름방학 업데이트와 이벤트 이후 다시 이용자수 1290만여 명을 기록하며 22% 증가로 달콤한 업데이트의 결실을 맛봤다. 모바일 게임의 명가인 넷마블 역시 최근 여러 게임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시하며 매출 순위가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니지2 레볼루션’과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에 이어 지난 14일에는 출시 후 6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캐주얼보드게임 ‘모두의 마블’도 6주년 업데이트를 단행했다.
FIFA 온라인 4 이미지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은 지난 8일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시하며 구글 매출 순위 2위로 반등했다. 물론 출시 이후 10위권 내를 유지하며 흥행하고 있는 게임이었지만 처음으로 독자적 스토리를 선보인 이번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2위 자리까지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다. 출시 3주년을 앞두고 있는 ‘리니지2 레볼루션’도 지난 6월 업데이트 이후 매출 2위권까지 올라오며 다시 순위 도약을 했고, 넷마블 최장수 게임 중 하나로 꼽히는 ‘모두의 마블’ 역시 지난 14일 출시 6주년을 기념해 ‘오락실’과 ‘신의 손2’ 등 신규 맵 2종을 추가하는 등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시해 관심을 받았다.
때로는 부진한 게임도 업데이트를 통해 심기일전하고 반등을 노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BTS월드’는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방탄소년단과의 협업을 통해 출시 이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놓여있었지만 정작 출시 이후에는 파괴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넷마블은 지난 8일 첫 업데이트를 실시하면서 순위 상승의 꿈을 꾸고 있다. 유저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멤버 카드와 신규 음원 등 업데이트를 통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각오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전쟁터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고 있는 게임 시장에서 대규모 업데이트는 순위와 매출 반등을 꾀할 수 있는 좋은 무기나 다름없다. 여름 시즌에 맞춰 업데이트를 한다는 의미는 게임사도 그만큼 그 게임에 기대감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3분기에 신작들이 예고된 상황이지만 그 이전에는 주요 게임사들이 업데이트를 통해 유저를 유지하려 할 것”이라 밝혔다.
던전앤파이터 여름 일러스트
▶장기 흥행, 업데이트에게 물어봐
이와 같이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유저 이탈을 방지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한 게임에는 기대 이상의 선물이 찾아오기도 한다. 바로 ‘장기 흥행’이라는 이름의 선물이다. 특히 게임 시장의 무게 중심이 PC나 콘솔에서 모바일로 넘어가고 있는 최근 분위기에서는 게임의 수명 자체가 짧아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장기 흥행작의 탄생은 각 게임사들에게 그만큼 더 기쁜 소식이다.
실제로 게임사들이 마주하는 현장에서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수명을 의미하는 PLC(Product Life Cycle) 개념까지 빌려와 유저들이 특정 게임을 시작해서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뒤 이를 달성하고 게임을 그만두는 시점을 연구한다. 개별 유저들의 목표나 욕구는 다를 수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빠르게 업데이트에 반영하는 것이 유저 감소를 막는 비법이다.
다양한 IP를 보유한 넥슨은 그만큼 업데이트를 통한 유저 관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국내 게임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2005년 이후 14년간 인기를 얻으며 국내 대표 온라인게임으로 자리매김한 온라인 액션RPG ‘던전앤파이터’는 거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크게 새로운 시즌을 선보이고, 시즌 중에 액트(Act)별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특히 12회째 매년 겨울 진행하고 있는 ‘던파 페스티벌’은 국내 단일 게임 최대 오프라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넥슨은 수천 명의 유저를 초청해 다양한 현장 이벤트를 진행하고 유저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 뿐만 아니라 그 해 겨울에 예정된 대규모 업데이트 콘텐츠 발표는 ‘던파 페스티벌’에서 유저들에게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는 코너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유저의 눈높이에 맞는 업데이트가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사다.
15주년을 맞이한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와 16주년을 맞이한 메이플스토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한국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장기 흥행 게임으로 출시한지 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출 1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는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M’도 빼놓을 수 없다. 엔씨소프트 또한 인기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로 역시 업데이트를 지목한다.
리니지 리마스터
리니지M은 1년에 약 4~5차례의 대규모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현재까지 3종의 에피소드(블랙 플레임, 라스타바드, 이클립스)를 선보였으며 각 에피소드 별로 새로운 클래스(직업)가 등장했다. 특히 ‘총사’와 ‘암흑기사’는 원작 PC 리니지에 존재하지 않는 클래스로, 이용자는 색다른 전투 방식과 스킬로 리니지M 플레이가 가능하다. 기존의 ‘기사’, ‘요정’, ‘마법사’, ‘군주’ 등의 클래스 사이에 존재했던 상성 관계가 신규클래스의 등장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또한 서버 내의 가장 강력한 혈맹을 뽑는 ‘공성전’, 같은 월드에 속한 다른 서버 이용자와 전투를 펼치는 ‘월드 던전’ 등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리니지M 특유의 PvP(유저 간 대전) 재미도 추가했다.
특히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에서 최대 1000명의 이용자가 생존 경쟁을 펼치는 ‘무너지는 섬’은 전략적인 플레이 방식과 풍성한 보상으로 높은 유저 참여율을 이끌어냈다.
리니지M은 일단 장기 흥행작으로 자리를 잡으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업데이트를 통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단초를 찾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월 ‘마스터 서버’, ‘무접속 플레이’, ‘보이스 커맨드(Voice Command)’를 선보이며 리니지M의 향후 개발 비전을 공개했다. 우선 ‘마스터 서버’는 리니지M의 모든 서버 이용자가 같은 시공간에서 전투를 펼칠 수 있는 서버다. PC 게임에 비해 대규모 이용자를 수용하기 어려웠던 모바일 게임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스템이다. 무접속 플레이는 게임에 접속하지 않고도 플레이 가능한 기능이다. 자동사냥 플레이환경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이용자가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캐릭터를 계속 성장시킬 수 있다.
추후 업데이트 목표 중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음성으로 캐릭터를 조종할 수 있는 시스템인 ‘보이스 커맨드’다. 화면을 터치하지 않고 목소리로 전투, 사냥, 던전 입장, 아이템 구매 등을 실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이 기능을 위해 엔씨소프트는 내부에 일반 게임 개발을 넘어선 수준의 AI센터를 마련하고 AI 연구 및 개발 역량까지 보유한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자사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에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유저들의 반응을 직접 살필 수 있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이를 확대해 새로운 대세를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