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1인가구 증가, 소비패턴 변화 등의 외부 영향으로 가전시장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전 시장의 신(新) 트렌드는 ▲안티더스트 ▲대형화·프리미엄화 ▲렌털시장 급성장 등으로 요약 가능하다. 한반도를 뒤덮은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이에 대비하는 안티더스트(Anti-dust)가전이 눈에 띄게 잘 팔리고 있다. 이와 함께 소비자 인식 변화로 가전의 고급화·대형화가 진행되고 있다. 백색가전이 상위 품목에서 주를 이뤘다면 청소기, 공기청정기 같은 생활가전이 상위권에 진입했다. 또 1인 가구 증가와 공기청정기 등 이제는 주력으로 떠오른 틈새가전의 성장세로 렌털 시장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미세먼지로 안티더스트 가전 불티나게 팔려
숨 막히는 미세먼지가 일상이 되면서 올해 1분기 미세먼지 관련 용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일명 안티더스트 가전으로 불리는 공기청정기와 의류건조기 등 미세먼지 관련 가전제품의 판매는 몇 배로 늘었다.
온라인쇼핑사이트 G마켓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3월 27일 미세먼지 관련 가전용품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7% 증가했다. 올해 판매량을 2017년, 2016년과 비교했을 때 각각 196%와 245% 늘었다.
품목별로 보면 공기청정기 판매량이 최근 1년 새 183% 늘었고, 3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5배(515%)나 더 팔렸다.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소비자들은 빨래를 햇볕과 바람만으로 자연 건조하는 것을 꺼리게 됐다. 이는 과거 ‘틈새가전’으로 분류됐던 의류관리기(스타일러)와 의류건조기가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실제 의류관리기와 의류건조기는 지난해보다 104%와 24% 판매량이 각각 늘었다. 3년 전보다 각각 21배(2103%)와 18배(1825%) 급증한 수치다.
미세먼지 유입으로 집안을 청소하는 횟수가 늘면서 로봇청소기(276%), 무선청소기(94%), 물걸레청소기(67%)의 수요도 3년 새 크게 늘었다.
안티더스트 가전 중에서도 단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공기청정기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으면서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가전제품인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가전 업계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극에 달했던 올해 초부터 3월까지 창원 LG전자 공장의 공기청정기 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작년에 250만 대였던 국내 판매량이 올해 400만 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는 관측한다. 일반 가정용 시장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등에 도입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이 같은 수치 달성이 가능할 수 있다. 이는 판매액 기준으로는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미세먼지 유입과 함께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6년 처음으로 100만 대를 돌파한 공기청정기 판매량은 2017년 140만 대, 2018년 250만 대로 치솟았다. ‘틈새가전’을 넘어 작년 250만 대 판매된 에어컨과 더불어 대수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가장 ‘핫한’ 가전이 된 것이다.
‘없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건조기는 세탁기보다 더 많이 팔리는 ‘필수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연간 기준으로 건조기 판매량이 세탁기 판매량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작년 각각 30만 대, 100만 대 팔렸던 의류관리기와 무선청소기는 올해 각각 45만 대, 140만 대 판매될 전망이다. 지난해 각각 80만 대, 150만 대 팔렸던 전기레인지와 건조기도 각각 100만 대, 200만 대가 팔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경·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강화된 인식이 판매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전업계에서는 신가전 시장의 급성장에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신가전 시장이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LG전자는 상반기까지 좋은 실적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LG전자 생활가전(H&A) 부문 매출이 올해 국내 생활가전 사업부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LG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신가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생활가전 부문 1분기 매출에서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번 분기 영업이익은 분기 사상 처음으로 6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생활가전의 1분기 영업이익은 7년 연속으로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조기를 비롯해 공기청정기, 무선 청소기 의류 관리기 등 이른바 신(新)가전 시장이 실적 선방의 일등공신으로 손꼽힌다. 이 시장은 올해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로서는 현재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전 시장에서 파이가 커질수록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체급 바뀌는 가전시장… 대형 가전 유행
#얼마 전 결혼한 직장인 김성엽 씨(31)는 ‘가사노동 필수품’으로 떠오른 건조기를 사기 위해 가전매장을 찾았다. 애초에는 소형 건조기를 살 생각이었지만, 예산을 초과하더라도 대형 건조기를 사기로 했다. 부피가 큰 겨울옷과 이불 등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용량이 큰 제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김씨는 “이제는 겨울에도 미세먼지가 극심해 큰 겨울옷과 이불 등을 잘 관리하려면 돈을 좀 더 들이더라도 큰 제품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합리적인 소비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의류가전을 중심으로 생활가전의 ‘체급’이 바뀌고 있다. 용량이 작은 소형 제품에서 대형 제품으로 소비자의 선호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가전업체들도 마진이 높은 대형·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건조기 대형세탁기 의류관리기 등 의류 가전은 과거에는 ‘틈새 가전’으로 여겨졌지만 미세먼지 여파로 지난해부터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에 사치재로 인식되던 고가의 가전제품에도 선뜻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도 크게 늘었다.
LG전자 스타일러
올해 의류 가전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대형화다. 미세먼지는 예전에는 없어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대형 가전의 수요를 만들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올해 건조기 시장규모는 200만 대로 예상된다. 지난해 100만 대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200만 대 규모로 성장해 세탁기 시장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중 대용량인 14㎏,16㎏ 제품의 비중은 90%에 달해 170만 대로 예상된다. 지난해 30만 대에서 45만 대 규모로 또 한 번 급성장이 예고되는 의류관리기도 대용량 제품이 25만 대로 전체 판매의 절반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80만 대 규모의 드럼세탁기는 대용량 제품이 절반가량(약 40만 대)을 차지할 전망이다.
건조기는 미세먼지 걱정으로 실외에서 빨래를 말리는 것을 꺼리고, 빨래 건조 공간이 줄어든 영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초까지 소형 건조기(9㎏)만 판매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12월에 각각 기존 건조기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커진 14㎏, 16㎏ 제품을 선보였다. 최대 19㎏에 이르는 세탁기 용량과 맞추기 위해서였다. 용량 16㎏ 세탁기에서 빨래한 세탁물을 9㎏ 건조기로는 두 번에 나눠 말려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올 들어 판매한 건조기의 대부분은 14㎏ 이상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LG전자 드럼세탁기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16㎏ 제품이 핵심 라인업이었지만 지금은 대형으로 분류되는 21㎏ 제품이 주력이 됐다. 의류관리기인 스타일러는 최대 4벌까지 관리하는 슬림형과, 최대 6벌을 관리하는 대용량 플러스의 지난해 비중이 각각 7:3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두 제품이 비슷하게 판매되고 있다. 겨울철에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상황이라 부피가 큰 겨울옷을 관리하기 위해 대용량 제품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LG 건조기 14㎏
‘대형화 바람’은 생활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기존에 사치재로 인식되던 고가의 가전제품에도 선뜻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또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미세먼지는 대형 가전의 수요를 만들었다.
고객들이 이불, 패딩과 같이 부피가 큰 의류를 관리하고 싶어하면서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의 용량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사계절 내내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가 대형가전 시장의 전성기를 열고 있는 셈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소비패턴의 변화와 미세먼지와 대기 질 악화의 일상화로 대형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면서 “가전업체들 입장에서도 마진이 많이 남는 대형 가전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렌털시장의 급성장
신(新)가전과 함께 가전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렌털(임대)시장이다. 1인 가구와 고령 인구 증가 등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전업계 렌털(임대) 사업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생활패턴의 변화에 따라 가전을 구매하기보다 렌털해 사용하려는 수요자가 증가하고 있고 상업시설 등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가전업체들은 렌털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인 가전제품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TV·세탁기·냉장고·에어컨 같은 전통 가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품목에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LG 코드제로 A9 파워드라이브 물걸레
LG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LG전자가 가전제품 임대사업으로 거둔 수익은 총 2924억2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134억3200만원이었던 임대 가전사업 수익은 2017년에는 1605억4500만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 3000억원까지 육박하면서 2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2009년 정수기를 시작으로 렌털사업을 시작했고 작년 하반기부터 전기레인지·스타일러·건조기·공기청정기 등으로 품목을 대폭 확대했다. LG전자는 현재 공기청정기, 정수기, 건조기, 전기레인지, 스타일러, 안마의자, 얼음정수기 냉장고 등 총 7가지의 가전제품을 임대하고 있다.
KT경영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렌털시장 전체 규모(가정용품, 차량, 장비 등)는 2016년 25조9000억원에서 2017년 28조7000억원으로 성장한 데 이어 2020년 4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가정용품(생활가전, 헬스용품 등) 렌털시장도 2011년 3조7000억원 수준에서 2016년 5조5000억원으로 성장했고 2020년에는 10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경기불황과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소비의 개념이 ‘소유’에서 ‘경험’으로 바뀌고 있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소비자들 사이에서 프리미엄 가전을 선호하는 한편, 이에 따른 금전적 부담으로 제품을 소유하기보다는 렌털을 통해 경험해보려는 성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LG 퓨리케어 360
렌털시장에서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품목들은 공기청정기, 건조기 등 ‘미세먼지 가전’이다. 특히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와 황사 등의 영향으로 렌털 수요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품목 중 하나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렌털 시장 성장세에 따라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가전 렌털시장 1위는 코웨이(2017년 기준 매출 2조5167억원)이고 이어 LG전자·SK매직·교원·쿠쿠홈시스·청호나이스 간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사업 조직을 확대·격상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전 렌털사업’ 키우기에 나섰다. LG전자는 지난해 조직 개편에서 렌털 서비스를 담당하는 ‘케어솔루션조직’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1개 팀으로 운영했는데 이를 3개 팀으로 확대하면서 ‘케어솔루션담당’으로 격상한 것이다. 총괄은 한국영업본부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