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산업 규제 강화·경기 불황 등 악재 속에 KT&G의 약진이 눈에 띈다. 해외 담배의 깜짝 실적과 건강기능식품 업계 최초로 1조원 매출을 돌파한 자회사 KGC인삼공사의 매출을 기반으로 지난 1월 20일 KT&G는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 수준의 실적을 발표했다. KT&G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4조5033억원으로 전년보다 8.0% 증가했고, 연결기준 순이익도 전년대비 18.8% 증가한 1조2260억원을 달성했다. 해외 담배 판매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 연속 최고 판매량을 경신한 것이다. KT&G의 지난해 해외 담배 판매량은 전년대비 4.7% 증가한 487억 개비를 기록했고, 해외 판매액 역시 역대 최고인 8억 1208만달러를 달성했다.
KT&G 서울 사옥 전경
▶민영화 성공 경영혁신 주효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성공적인 민영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KT&G는 민영화 과정을 겪으면서 강도 높은 경영 혁신과 품질 향상에 온 힘을 쏟았다.
1987년 공사 창립 당시 임직원 수는 총 1만3000여 명에 달했다. 민영화가 이뤄진 2002년엔 4700여 명으로 줄었고, 최근엔 4000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제조공장은 9개에서 4개로 줄었고, 잎담배 가공공장은 9개에서 1개로 감소했다. 민영화 전후 KT&G는 품질 향상을 위해 당시 대기업에서 운용하던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해 브랜드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또한 품질경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잎담배 종자 개량부터 제품 유통에 이르기까지 총 42개의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종합품질관리시스템’을 통해 품질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1988년 담배시장 완전 개방 이후 외국계 담배회사들과 무한경쟁에 돌입했지만, 담배시장이 개방된 국가 중 로컬기업으로서 유일하게 자국시장 점유율 60%를 유지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고스란히 실적으로 나타났다. 민영화가 이뤄졌던 2002년 대비 매출액은 지난해 연결 기준 121.7% 늘어났고, 영업이익도 150.7% 성장했다. 시가 총액은 3조원에서 14조원으로 366.7% 증가했다.
▶담배·홍삼·제약·화장품
균형적 사업포트폴리오 구축
주력사업인 ‘담배, 홍삼’의 연관 사업 투자를 통해 균형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업계 1등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홍삼 브랜드 ‘정관장’을 앞세운 대표 자회사 KGC인삼공사는 지난해 건강기능식품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시장의 우려와는 달리 김영란법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삼정 에브리타임, 화애락’ 등 고객 니즈에 맞춘 신제품 및 전략제품 운영을 통해 기존 40~50대 홍삼 고객층 외에 20~30대까지 확대된 것은 물론 최근 몇 년간 ‘메르스, 미세먼지, 독감유행’ 등으로 인해 건강 이슈가 부각되면서 개인과 가족의 건강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카페 ‘사푼사푼’, 반려동물 프리미엄 건강식 ‘지니펫’, 홍삼 스파(SPA) ‘스파G’ 등 관련 신사업에도 박차를 가하며 종합건강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제약 계열사인 ‘영진약품’과 ‘KT&G생명과학’은 지난해 12월 합병이 완료되어 제약사업 분야의 시너지 효과가 높아질 전망이다. 프리미엄 홍삼화장품 브랜드 ‘동인비’는 지난해 KGC인삼공사의 브랜드로 편입되었다. 인삼공사는 배우 한가인을 모델로 발탁하는 등 마케팅, 연구개발 자원을 적극 투입해 ‘동인비’의 세계 시장 진출 확대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화장품 자회사인 ‘코스모코스(COSMOCOS)’는 지난해 10월 젊은 감각의 ‘비프루브(VPROVE)’를 론칭했다. 배우 박보검을 광고 모델로 기용, 명동 단독 매장 포함 현재까지 총 8개 매장을 오픈하며 브랜드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담배산업전시회 모습
KT&G 신탄진공장
▶호실적에 주가전망도 ‘맑음’
지난해 KT&G가 사상 최대 해외 실적을 거둔 요인은 주력 수출 시장인 중동과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넘어 신시장에서 유통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국가별로 다른 소비자 기호를 반영한 맞춤형 제품들이 해외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대만, 몽골, 인도네시아, 미국’ 등의 국가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대만은 지난해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 2002년 시작한 대만 수출은 2010년 ‘보헴’을 출시하면서 크게 증가했다. 쿠바산 시가엽을 블렌딩해 시가의 풍미를 살린 ‘보헴’은 대만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출시 첫해인 2010년 2000만 개비에 불과하던 판매량을 지난해에는 4억 개비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보헴’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체 판매량도 2010년 1억2000만 개비에서 2016년 6억1000만 개비로 늘어났다. 한류 열풍과 더불어 우수한 제품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몽골 역시 지난해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KT&G는 지난해 몽골에서 5억7000만 개비를 판매해 2010년 2억4000만 개비와 비교해 2배 이상 성장했다. KT&G의 몽골 담배 수출은 초슬림 저타르 브랜드인 ‘에쎄’가 이끌었다. ‘에쎄’는 몽골 로컬회사들의 일반적인 제품에 비해 2배가 넘는 가격임에도 우수한 품질로 큰 인기를 끌면서 몽골 내 대표적인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몽골의 담배시장이 타르 6~10mg의 고타르 레귤러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것에 착안해, 진출 초기 타르 3~4.5mg의 저타르 초슬림 제품인 ‘에쎄’를 내놓는 역발상으로 승부했다. 이에 몽골 현지인들은 ‘에쎄’를 기존 제품보다 자극이 덜한 저타르 고급 담배로 선호하기 시작했고, KT&G는 기존 글로벌 담배기업들이 독주를 했던 몽골 시장에서 급격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에는 신제품 ‘에쎄 체인지(ESSE CHANGE)’를 현지에 출시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브랜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란의 한 소매점에서 소비자들이 KT&G 담배 ‘에쎄’를 구매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최대 담배 시장이자 세계 4위 담배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는 정향(Clove)이라는 독특한 맛의 향료가 첨가된 ‘크레텍(Kretek)’ 제품이 전체 담배 판매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KT&G는 2011년 현지 담배회사인 ‘트리삭티’를 인수하고 법인을 설립하며 현지 맞춤형 시장 전략을 수립했다. 2014년 크레텍 블렌딩을 적용 출시한 ‘에쎄 체인지’는 출시 1년 만에 1억 개비 넘게 판매됐고,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KT&G 판매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담배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는 100여 개의 담배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KT&G는 여기서 세계 3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JTI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6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미국 담배시장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기업으로 꼽힌다. 작년 미국 수출량은 27억8000만 개비로 1999년 수출 첫해 대비 약 13배가 증가한 수준이다.
미국 시장 돌풍의 중심엔 ‘타임(TIME)’이 있다. 국내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수출용 타임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다. 굵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길이를 20% 늘리고, 진한 맛을 선호하는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춰 담뱃잎 블렌딩도 새롭게 했다. KT&G 미국 수출량 중 ‘타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17%에 불과했으나, 지속적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해 80%까지 증가했다. 또 다른 신흥시장인 아프리카는 판매 속도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곳이다. 2010년 4000만 개비에 불과하던 판매량은 지난해 32억 개비로 6년 만에 약 80배 성장을 했다. ‘에쎄’가 아프리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은 결과였다. 금융투자업계는 KT&G 호실적에 주가 역시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태현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부정적 요인들이 존재하지만 일시적으로 판단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담배 수출 및 홍삼의 매출 성장 기대감이 더 크다”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성장 전망이 밝다”고 밝혔다. 김정욱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싱가포르, 캐나다, 브라질 등 경고그림 도입 해외사례를 참고할 때 흡연율은 일시적 감소 후 다시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매수 투자의견을 내놓았다. KT&G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 담배 점유율은 60% 돌파가 기대되는 등 국내 매출이 여전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해외는 더욱 긍정적”이라며 “해외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해외담배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