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4일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 접수 마감 시기가 다가오자 다시금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사업자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당분간 시내면세점 사업권 선정이 없어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관세청은 입찰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후 2개월간 특허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연내에 대기업 3곳, 중소·중견기업 1곳 등 총 4곳의 신규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서울 시내 면세점 선정이 올 연말로 다가온 가운데 출사표를 던진 기업 중 유일하게 서울 동북권 지역(워커힐면세점)을 택한 SK네트웍스의 면세 특허 재취득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4년간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하며 중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작지만 강한 면세점’의 위상을 구축했던 SK네트웍스는 지난 연말 특허권 연장심사에서 신규 업체들에 밀려 특허를 상실했다. 당시 워커힐면세점과 함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도 특허권을 잃었다. 올해 관세청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 3곳을 내주기로 하자 두 업체 모두 재기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특히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은 여타 시내 면세점들과 달리 호텔, 카지노, 레스토랑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국내 유일의 복합 리조트형 면세점이란 점에서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지난해 특허 심사 과정에선 경쟁업체들이 내세운 연간 5000억원 이상의 매출계획에 비해 사업규모(약 3000억원 수준의 매출계획 등)나 역량 등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미 면세점 확장 공사를 통해 기존에 비해 두 배 이상 큰 규모를 확보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높은 매출을 달성하겠다며 지난해 특허권을 획득한 업체들의 실적이 대부분 신통치 않아 기존 워커힐면세점의 가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1960년대 워커힐호텔 입구
▶국내 관광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 워커힐
워커힐면세점이 다시금 회자되는 이유는 워커힐이란 입지 조건 때문이다. 정부의 관광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1963년 건립된 워커힐은 아차산과 한강 등 뛰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카지노와 워커힐 극장쇼, 한식당, 컨벤션 센터 등의 개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한·중 국교 수교 이전 우리나라에 불시착한 중국 민항기 승객 투숙, G20 서밋 회의 등 굵직한 역사적인 이벤트가 진행된 장소로 한국관광산업의 명소 역할을 담당해왔다. 중국 민항기 불시착 당시 워커힐 직원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중국 승객들이 귀국 후 워커힐 전도사가 돼 유커(중국 관광객)들로부터 ‘화커산장’이라 불리며 꼭 들러야 할 관광코스가 됐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워커힐면세점은 이같이 차별화된 입지조건 속에서 쇼핑·레저·엔터테인먼트·숙박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복합 리조트형 면세점으로서 거듭났다.
▶유커 대상 서비스 역량, 국내 중소기업 육성 분야 탁월
올 5월까지 운영됐던 워커힐면세점은 중국 현지와 대만 등지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았다. 특히 유커 특화 서비스가 유명했다. 도심에 자리한 쇼핑 중심의 면세점에 비해 럭셔리한 이미지로 각인돼 평당 단가와 객단가가 높아 국내 면세점 최초로 럭셔리 시계·보석 전문 부티크와 유커 전문서비스 인력을 집중 육성하는 등 차별화된 경쟁력을 구축했다. 면세점 운영 당시 매장 직원의 90% 이상이 중국어능력시험(HSK) 5급 이상의 중국어 응대가 가능했다. 중국인 전용 VIP 라운지에서 365일 상주하며 VIP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들의 만족도와 재방문 비율이 높았다. 이와 같은 서비스를 통해 연간 약 150만 명의 유커를 유치했고, 전체 매출액에서 유커가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 등 ‘유커 특화 면세점’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확장공사를 마친 워키힐면세점의 빈 공간
한국 출국 고객을 대상으로 해외 명품 판매를 진행했던 초기 면세점들과는 달리 워커힐면세점은 국산 브랜드를 육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워커힐면세점에서 판매됐던 70여 개 국산 브랜드 중 약 30%는 면세업계 최초로 발굴·입점시킨 것이며, 국산품 매출 비중이 전체의 54% 이상일 만큼 국산 브랜드를 지원해왔다. 일례로 전기압력밥솥이 유명한 ‘쿠쿠’는 워커힐 입점을 통한 외국관광객의 입소문에 수출판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보세물류 관리 역량과 인프라 또한 워커힐면세점의 노하우로 평가됐다. 업계 최초로 스마트폰 기반 물류관리 서비스를 개발했고 면세업계에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반의 관리체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과 운영 노하우를 통해 워커힐면세점은 2014년에 국내 면세시장 평균 매출 성장률의 두 배에 이르는 46% 성장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화권 관광객은 물론 이들을 안내하는 여행사 가이드들도 그동안 중국인들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온 워커힐면세점에 대한 니즈가 많다”며 “워커힐면세점의 역량에 보다 경쟁력 있는 사업 계획이 덧붙여진다면 이번 면세점 특허전에선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브랜드 쇼로 명성을 알려 온 워커힐쇼
▶인력, 공간, 협력사 관계 등
문제점 해결도 기대
한편 지난해 면세 특허 심사에서 고배를 마신 워커힐면세점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현재 직원들의 고용문제를 비롯해 재고 처리, 공간 활용, 협력사와의 관계 등 애로사항에 산적해 있다. 워커힐면세점의 경우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고 워커힐에서 계속 근무하길 원하는 인력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며 이번 면세 특허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 확장 공사를 마친 면세점 공간 역시 그대로 비워둔 채 면세 특허 획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지난 5월 문을 닫으며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브랜드 협력사들 또한 워커힐면세점이 특허권을 받게 되면 다시 입점하겠다고 약속한 상항이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면세 매장 운영을 못해 발생하는 손실이 수백억원 규모”라며 “만반의 준비를 통해 이번 면세 특허를 가져오게 되면 다른 신규 면세점들과 달리 공간 공사 등 별도의 준비 없이 단기간 내 바로 오픈할 수 있어 손실을 줄이는 것은 물론, 현재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규 면세점 부진이 반사이익 될 수도
업계에선 지난해 새롭게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를 획득한 4개 업체들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구관이 명관’이란 인식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라면세점과 현대산업개발이 공동출자한 HDC신라면세점의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올 3월에 오픈해 상반기에만 매출 945억원, 순손실 80억원을 기록했다. 당초 1조원이던 연간 목표액을 5000억원대로 하향 조정한 상태지만 이조차도 버겁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이 지속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대폭 보강하고 여행사들과 제휴를 통해 단체 관광객 유치를 늘리고 있어 상반기에 비해 매출규모는 증가할 것”이라면서도 “매출 3000억원 이상이면 성공적인 첫해일 것”으로 예상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신세계와 두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갤러리아면세점63의 경우 당초 매출 목표액은 5000억원대였으나 올 상반기 매출 640억원, 순손실 17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5월에 문을 연 신세계 면세점 명동점은 상반기 두 달 동안 매출 219억원, 순손실 174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일평균 약 1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신규 업체 중 가장 선전하고 있다.
면세업계에 정통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시내 면세점 특허 심사에선 사업역량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네트웍스는 올해 최신원 회장이 19년 만에 경영에 복귀해 직접 면세사업 재개를 이끌고 있다. 서울 동북지역의 유일한 면세점이었던 워커힐면세점이 다시금 그 위상을 찾을 수 있을지, 면세점 업계의 시선이 오는 12월에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