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헌터’ 유순신의 Upgrade Your Career] (3) 평생 직장 아닌 평생직업 시대 경력관리로 경쟁력 높여야
입력 : 2014.11.21 15:30:43
1996년도 후반, 갑자기 많은 이력서가 한꺼번에 회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쟁쟁한 대기업 직원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외환위기 직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었다. 그전까지는 ‘입사하면 퇴직 때까지 쭉 같이 간다’는 사실에 개인과 회사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직장인의 최대 관심사는 승진 문제였고, 회사를 옮기는 일이 전무했기에 개인이 따로 경력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로 인한 잔인했던 구조조정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180도로 바뀌었다. 특히 정리해고라는 사상 초유의 대량 감원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직장’과 ‘고용’의 개념이 뿌리 채 흔들리게 되었다. 직장인들은 ‘평생 직장’보다 ‘평생 직업’을 찾고자 했고, 직업은 돈벌이나 생계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질을 최적화시키는 방편으로 변화했다. ‘직장’이라는 하드웨어가 아닌 ‘직업’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 중요시하게 되자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경력관리는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된 것이다.
올바른 경력관리란
얼마 전 외국계 기업에 몸담고 있는 L상무가 만남을 요청해왔다. 그는 총 14년의 경력 중 10년 동안 미국 본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몇 년 전 싱가포르 지사로 파견되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글로벌 인재였다.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회계 업무를 기반으로 마케팅, 세일즈 등 다양한 직무를 경험했고, 지금은 2000억원의 매출을 일으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총 책임을 맡고 있다. 탄탄하게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L상무는 뜻밖에도 경력관리가 필요하다며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가 속한 조직의 CEO는 대부분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일하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이질적인 조직 문화를 경험한 후 높은 자리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저도 벌써 14년 차가 되었고, 총책임자라는 위치에 있긴 하지만 온실을 벗어나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를 경험해서 더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은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만, 한 회사 문화에만 익숙한 자신의 경력이 자칫 현재에 안주하거나 도전정신이 없는 직장인으로 비추어질 것에 대한 우려가 대화하는 도중에 배어 나왔다. 그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볼 수 있었다.
L상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현듯 퇴직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활발하게 CEO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B사장이 생각났다. 그 역시 다국적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국내 기업의 IT 수장으로 자리를 옮겨 성공 신화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IT산업에서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의 CEO 선임 인사가 있을 때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왔던 그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반면에 여러 회사를 옮기면서 직급과 연봉을 올리는 것이 경력관리의 정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학창시절 수재였던 K전무는 국내 유명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외국에서 박사과정까지 순조롭게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최고의 학벌과 여러 능력까지 갖춘 그는 귀국하자마자 국내 대기업 컨설팅사에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입사했다. 3년쯤 지난 후 IT 붐이 일면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겨나자 시대 흐름에 맞춰 벤처기업 부사장으로 첫 이직을 했다. 얼마 못 가 벤처붐에 거품이 많았다는 것이 드러나자 그는 소규모의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최고의 대우만을 받던 그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즈음에 국내 중견그룹 CTO로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이직을 했다. 하지만 중견그룹에서 3년쯤 일하고 나니 답답한 기분을 느껴 외국계 기업 상무 자리로 옮겼고 몇 년 후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이직해 한 부서를 책임지는 전무로 재직했지만 곧바로 퇴사했다.
그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추천할 수 없는 이유는 총 25년의 경력 중 여섯 번의 이직 때문이었다. 4년에 한 번 꼴로 이직한 것이다. 이직할 때마다 연봉도 오르고 직함도 높아졌지만 성과를 내야 할 시점에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옮겼다는 ‘철새 이미지’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경력관리가 필수인 시대
이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경력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19세기를 민족 국가의 시대라고 한다면, 20세기는 기업과 기구(organization)의 시대, 21세기는 일인(1人) 기업 시대’ 라고 한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똑같은 일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인정해 주었지만, 요즘은 단순한 기능공으로 생각하기 쉽다.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라야 전문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전문가를 바라보는 사회 시각의 변화는 직장인들이 경력관리에 힘쓰도록 만들었다. 또한 인재상의 변화도 경력관리의 필요성을 높였다.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서도 살아남거나 위기상황을 극복한 개척정신을 가진 직장인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좋은 부서에서 근무하며 온실 속에서만 지내온 사람보다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실적을 올린 잡초 같은 사람들이 진짜 인재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한 회사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부서나 다른 회사에 가서 그곳의 조직 문화도 경험해보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는, 즉 스스로 자신의 경력을 개발하는 사람이 더 인정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경력관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먼저 직장생활에 대한 로드맵(Road map)을 연령별로 만들어본다면 20대는 천직(天職)을 찾는 시기이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찾고 나서 그 일의 열매를 맺기 위해 텃밭을 가꾸는 시기로 30대를 보내다 보면, 40대에는 정점에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후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가 50대이다. 이처럼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은 본인의 경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 회사에서 최고의 업적을 내고,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될 때 또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K전무의 사례처럼 너무 잦은 이직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전체 경력 중 다섯 번 이상 회사를 옮기는 직장인을 환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5년에 한 번씩은 이직보다는 경력 확장에 중점을 두고 경력관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사 업무를 5년간 했다면 이후에는 총무 업무로 영역을 확장하는 등 ‘직무 확대’ 또한 경력관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단계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최종 목표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 고민해보고 그 목표에 따라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쌓을 것인지 설계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직만이 아니라 직무 이동, 직무 순환, 직무 확대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신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면 된다.
이렇게 경력개발을 할 때 유념할 점은 편한 곳보다는 어려운 부서로 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경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노력들이 경력으로 빛나게 된다. 한 명의 훌륭한 인재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고, 인재의 힘이 곧 기업의 힘인 세상이다.
‘경력관리’라는 말이 등장한 지 불과 10여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경력관리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의 성공이 곧 조직의 성공이라는 쌍방향의 문화 속에서 경력관리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내 경력은 내가 디자인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다. <노인과 바다>의 저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나는 우연히 성공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최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 관리하고 노력해서 쌓은 경력은 그 이상의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고,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안내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