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공사가 무서운 속도로 부채를 줄이고 있다. 서울시와 SH공사에 따르면 SH공사는 지난 1월 13일 2012년 말 12조5882억원에 달했던 채무가 지난해 말 10조6500억원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약 1년 사이에 2조원의 빚을 갚은 셈이다.
부실공룡으로 불리며 서울시의 재정악화를 불러왔던 SH공사가 빠른 속도로 빚을 청산하고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지난 한 해 동안 2조원의 부채를 줄인 데 이어, 올해에는 3조5000억원의 부채를 더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SH공사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SH공사의 ‘부채줄이기’ 프로젝트는 지난 2011년 박원순 시장의 당선 이후 시작됐다. 당시 SH공사의 채무는 무려 13조5789억원에 달했다. 이에 박 시장은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채 줄이기’에 나섰지만 2012년에는 5000억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위기감을 느낀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해 1월, 뼈를 깎는 수준을 넘는 사업재조정 계획을 발표했고 1년 만에 2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줄이며 몸집 줄이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SH공사는 올해도 3조5000억원에 달하는 채무를 줄일 계획이다.
2조원이라는 엄청난 빚을 털어냈지만 SH공사는 여전히 10조원대의 채무를 짊어진 부실공룡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속도로 빚을 갚고 있지만, 여전히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는 SH공사의 사업재조정 1년을 살펴봤다.
뉴타운 땅값 보상하다 빚더미 올라
SH공사가 빚더미에 오른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2000년까지만 해도 SH공사의 금융부채는 3183억원에 불과했고, 부채비율도 65%로 양호했다. 하지만 2005년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2005년에만 부채가 2조5919억원으로 급증했으며, 2006년에는 6조5770억원으로 무려 2배 넘게 빚이 늘었다.
이처럼 SH공사의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뉴타운 공약을 이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은평·길음·왕십리 등 시범지구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거주민들의 토지보상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청계천 개발로 인해 이전지로 제공된 동남권유통단지(현 가든파이브)에 대한 보상이 더해지면서 SH공사의 부채는 8조5344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1조7000억원이 투입된 가든파이브 사업은 분양에 실패했고,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SH공사의 부채증가를 가속화했다.
이뿐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전 시장은 2008년 마곡지구와 강일·마천·천왕지구 등에 대한 토지보상을 시작했다. 또 이듬해인 2009년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세빛둥둥섬을 건설하면서 SH공사의 부채는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같은 해 SH공사의 부채는 13조5671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엄청난 규모의 부채가 알려지면서 SH공사와 서울시는 대대적인 감축노력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10년 부채비율이 30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장기전세주택(시프트)과 국민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비금융부채(임대보증금)가 늘면서 전체 부채규모는 계속 증가했다.
SH공사의 부채규모가 계속 논란이 일자, 2011년 11월 당선된 박원순 현 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SH공사의 부채줄이기에 손을 걷고 나선 것이다. 박 시장은 당선 직후 SH공사의 부채 해결을 위해 현장시장실을 운영하는 등 부채 감축에 공격적으로 임했다.
1년 새 2조원대 부채 줄여
그래서일까. SH공사는 지난해 6조원의 엄청난 수익을 냈다. 주택사업 부문에서 1조1000억원, 토지사업 부문에서 2조5000억원, 임대사업을 비롯한 기타부문에서 2조5000억원의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특히 토지매출이 활발했다. 지난해 강서구 마곡지구와 송파구 문정지구 등에서 4조2000억원 규모의 토지를 매각했다. 지난 2012년 1조6000억원에 실적과 비교하면 150%가 넘는 규모다.
이처럼 막대한 수익을 올린 SH공사는 현금이 유입되는 족족 높은 이율로 부담이 되는 민간차입금을 갚아나갔다. 지난 2012년 말 9조1000억원에 달했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민간차입금 항목을 지난해 7조3000억원대로 낮춘 것이다. 사라진 부채 2조원이 바로 이 부분인 셈이다. 반면 다른 채무 항목인 국민주택기금 등의 정책자금은 여전히 3조원대 중반 수준을 유지했다. SH공사의 부채가 1년이란 짧은 시간에 2조원이나 줄어든 것은 박원순 시장과 이종수 사장이 부채줄이기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실제 박 시장은 지난 2012년 11월 SH공사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던 은평구 은평뉴타운 분양이 지지부진하자, 이곳에 현장시장실을 설치해 미분양 해결방안과 생활·교통환경 개선대책 등을 모색했다. 지난해 3월에는 마곡사업관에 현장시장실을 마련해 기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들었고, 같은 해 4월에는 강남구 개포로 SH공사 사옥에서 송파 문정지구, 마곡지구 택지매각에 대해 기업체들을 설득했다. SH공사의 경영을 맡고 있는 이종수 사장 역시 부채줄이기에 사활을 다해 뛰었다. SH공사의 부채가 논란이 된 후 사표까지 냈던 이 사장은 지난해 말 “100일 만에 성과를 내겠다”며 서울시 신청사 1층에 은평뉴타운 상담실을 마련하고 직접 홍보에 나서는 등 SH공사의 악성종양과도 같았던 미분양 아파트 해결에 나섰다.
두 사람의 노력은 은평뉴타운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은평뉴타운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600여 가구에 달하는 장기 미분양이 남아있었는데, 이 미분양을 지난해 초 해결한 것이다. 이어 미분양이 발생했던 구로구 천왕2지구의 주택분양을 마무리했고, 중랑구 신내 3-2단지도 지난해 말까지 90%가 넘게 분양에 성공했다.
정부 정책에 힘입어 추진한 강남 세곡2지구, 서초구 내곡지구, 강서구 마곡지구에서는 6000여 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약 2조7000억원 규모라는 게 SH공사의 설명이다.
올해에는 3.5조원 줄인다
서울시는 SH공사가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6조1000억원의 총수입을 올렸다고 밝혔다. 반면 임대주택 2만가구 추가 공급 등 각종 공익사업을 비롯한 지출내역은 4조1000억원으로 묶었다. 수입은 많은데, 지출을 줄였으니 당연히 당기순이익도 11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부채다. 앞서 밝힌 것처럼 SH공사의 부채는 2012년 12조5882억원이었지만, 지난해 10조6575억원으로 1년 만에 1조9307억원이 줄었다. 박 시장이 취임했던 2011년 말과 비교하면 불과 3년도 안돼 2조9214억원의 부채를 갚은 셈이다.
건설업계에서는 SH공사가 올해에도 빠른 속도로 부채를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계약한 아파트와 택지의 중도금과 잔금 5조7000억원이 올해 SH공사에 입금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곡지구와 문정지구 등 토지매각 대금 8000억원, 미분양 아파트의 분양수익 9000억원, 신규분양 수익 3000억원 등을 포함해 총 2조원의 추가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금액을 포함하면 채무감축 가능금액은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SH공사와 서울시가 올해에도 3조5000억원의 부채를 줄이겠다고 밝힌 이유다. SH공사는 관계자는 “컨트롤타워인 서울시와 채무감축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가 이제야 나타나고 있다”며 “올해에는 더욱 더 빚을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SH공사는 과거 건설회사 중심의 경영관행에서 탈피해 앞으로는 ‘도시 재생 전문 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이다. 기존 택지개발과 분양주택 공급 위주에서 벗어나 임대주택 공급과 관리를 포함한 도시재생 사업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UR(도시재생기구)과 JKK(도쿄도 주택공급공사) 등 해외공기업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서울 내에서 택지 개발이 가능한 토지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기존 주택들이 노후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사업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채 감축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도 계속 추진된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본사 사옥 판매 후 임차 △가든 파이브 미분양 물량 일괄 매각 또는 임대 △2014년 직접사업 재조정 △부동산펀드 및 리츠 매각 △토지리턴제 확대 적용 △용도변경 조건부 판매 등을 실행과제로 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SH공사는 이를 통해 지난해 말 10조6000억원에 달했던 채무를 올 연말까지 7조원으로 감축하고, 오는 2020년까지 4조원 이내로 줄여 관리할 계획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채무를 줄인 SH공사의 경영활동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여전한 상황에서 단 1년 만에 2조원대의 채무를 줄인 만큼, SH공사의 지난 1년을 높이 평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막대한 채무는 불안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1군 건설사의 한 임원은 “SH공사가 지난 1년 동안 치열하게 채무를 줄인 점은 높이 살만 하지만, 여전히 높은 부채는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가든파이브와 세빛둥둥섬의 부채 해결 방안은 여전히 미궁이며,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 역시 SH공사의 채무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