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경력사원 공채를 실시한 중견기업 A는 올 초 굵직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새롭게 팀을 꾸렸다. 우선 각 팀 에이스로 꼽히던 직원들이 자리했고 경력 공채 중 성적이 우수한 인재들이 합류했다. 일 잘하기로 소문난 이들이 뭉친 팀은 보고만 있어도 든든했다. 사내에서도 “프로젝트 성공은 따 놓은 당상” “연말 보너스는 기본”이란 말이 돌았다. 3개월 후… 사내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조용했다. 둘째가라면 서럽다던 인재들의 존재도 희미해져 갔다. 2분기 실적이 마무리되자 사내에선 “인재가 뭉치면 범재” “그들도 우리처럼…”이란 말이 돌았다. 특출 난 것 없는 평범한 실적이 둥둥 떠다니는 말풍선을 뒤따르고 있었다.
과연 이 팀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한 커리어컨설턴트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순수공채와 경력공채의 융화, 국내파와 해외파의 조화, 그들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리더십이 성공의 열쇠였다”며 팀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덧붙인 한마디, “국가대표 축구팀의 문제점이라 지적받고 있는 리더십 부재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캡틴 박의 도움이 필요해요!”
최근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56%가 박지성 선수의 국가대표 복귀를 희망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비단 축구 국가대표팀 뿐만 아니라 각 기업의 업무 현장에도 때때로 ‘캡틴 박’의 존재가 절실하다. 스크린을 주름잡는 히어로도 아니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불사신도 아니다. 축구경기의 캡틴은 우리말로 주장. 축구 종주국인 영국에선 스키퍼(Skipper)라 불리기도 한다지만 그랬거나 저랬거나 표준규격 105m×68m의 직사각형 운동장을 오롯이 지배하는 인물이다.
코치나 감독이 경기장 밖의 지휘자라면 주장은 스타플레이어로 구성된 대표팀을 한데 묶는 선수이자 선수들의 버팀목이다. 그렇다면 11명이 뛰는 경기에서 왜 단 한 명의 선수가 그리도 중요한 것일까. 스티븐 제라드(영국),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카를로스 둥가(브라질), 파울로 말디니(이탈리아), 지네딘 지단(프랑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홍명보, 김남일, 이운재를 보면 답이 나온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나의 팀을 완성해가는 주장의 힘은 당대를 호령하는 세계 각국 캡틴들의 과거와 현재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기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활약한 캡틴 박(박지성)이 새로운 주장의 전형을 제시했다. 당시 한국대표팀의 면면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서도 기세등등했지만 자타공인 톱은 그 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내세우거나 오버하지 않고 묵묵히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른바 ‘어머니 스타일’의 탄생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가짐은 예선전 당시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맨유에서 뛰다 한국대표팀으로 복귀하면 수준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한 해외언론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표팀에서 뛴다고 혼란스럽다거나 감각적인 차이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나는 한국축구 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대표팀에 돌아오면 기분도 감각도 맨유의 박지성이 아니라 한국대표 박지성으로 변한다.
‘맨유에서는 이렇게 하는데’라거나 ‘맨유 선수니까’라는 생각은 쓸데없는 자만심이나 이기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다. 한국대표팀에 돌아오면 대표팀의 일원으로 팀에 동화돼 기쁨도 슬픔도 함께 공유하고 싶다. 맨유에서의 경험을 한국대표팀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캡틴 박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원정 첫 16강에 진출했다.
한 CEO코칭 전문가는 “박지성은 윽박지르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수평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내가 지시했으니 해’ ‘선배 말씀은 하늘’ 등등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동등하게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축구인생의 목표이자 닮고 싶은 롤모델인 선배와 친구처럼 즐기고 운동했으니 어찌 아니 좋을 수 있을까. 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도 수평적 리더십이 강점으로 꼽히는 지도자다. 그의 리더십은 현역시절부터 유명했다. 축구전문가들은 “합리적인 원칙으로 선수들의 자발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홍 감독의 취임일성이 이러한 그의 소신을 방증한다. 하늘같은 선배이자 지도자가 왜 그래야 하는지 확실히 설명하고 개인보다 팀을 강조하니 신뢰와 존경이 바탕이 된 팀워크가 더 끈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수장, 홍명보 감독
캡틴이 되기 위한 임원의 선택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한 운동선수들의 분위기와 보수적인 기업문화는 서로 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포털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 내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들이 전체 응답자 중 88.0%, 그 사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91.7%나 됐다. 그럼 그 사람은 누굴까. 상사라는 답이 압도적이었다.
이쯤에서 캡틴 박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던 시점, 그러니까 2008년 당시 한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은 현 대표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선 한국 축구를 이끌던 2002세대가 대거 빠져나가고 젊은 선수들이 자리를 메웠다. 국내파와 해외파 선수들의 손발도 그다지 시원치 않은 상황. 말 그대로 혼란에 혼란을 낳았다. 이 시기에 주장 완장을 찬 박지성은 식사시간마다 후배들과 함께 식사하고 고민을 토로하며 서로의 벽을 허문다. 훈련할 때도 필승보다 웃음이 앞섰다.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심지어 이동시 버스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어달라거나 훈련 스케줄을 하루 먼저 체크하며 후배들을 배려했다.
덕분에 국가대표팀의 분위기는 늘 밝고 자유로웠다. 내부에서 위축되지 않으니 외부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실력을 발휘했다. 선배 김남일은 “지성이는 말로 지시하지 않고 솔선수범한다”며 “동료들을 부드럽게 대하며 선수들이 알아서 하도록 이끈다”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4:1로 패했을 때 박지성은 꼬박 두 시간 동안 아침식사 자리를 지켰다. 그리곤 선수들과 격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졌다고 의기소침했던 분위기는 시내버스 마냥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캡틴 박의 스타일은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창의성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가 창안한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에 뿌리를 둔 수평적 리더십이다.
에드워드 드 보노는 1970년대 초 전통적 사고 혹은 수직적 사고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평적 사고를 창안했다. 수직적 사고가 예측 가능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 비해 수평적 사고는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하되 옆에서 나란히 접근하는 사고방식이다. 다시 말해 ‘나와 다른 생각’에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다른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하려는 태도다. 수평적 위치에서 마음을 열어놓으니 리더의 위치에 있더라도 지시와 명령 대신 경청과 배려에 좀 더 힘쓰기 마련이다.
한 커리어 컨설턴트는 “수평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변화지향적이다”라며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하고 몸에 익혀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은 자신의 저서 <보스가 된다는 것>에서 조직의 리더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훈련 없이 리더가 되려 한다. 매년 수많은 직장인이 별 다른 준비 없이 보스가 된다. 회사의 인사발령에 따라 이렇다 할 고민 없이 보스를 맡는다. 그 결과 본인은 물론이고 구성원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낸다. 보스가 됐는데도 이전처럼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조직 분위기는 엉망이 된다. 그런 조직이 성과 부진에 허덕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조직의 모든 문제는 보스에게서 시작된다. 조직의 성과도 보스에 의해 좌우된다. 그만큼 보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직의 성과에서 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보스만 제대로 역할을 해도 조직 내 문제 2/3는 쉽게 해결된다.”
과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리더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게 될까. 축구중계를 보는 수많은 임원들은 간간히 듣게 되는 리더십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캡틴 박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Talk Talk 1나부터 준비해야 리더의 완성
B중소기업의 C상무는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은 각 부서 부장과 일련의 차장들. C상무는 월말 목표달성이 미진하자 다음 회의 때는 대책을 마련해 들어오라고 주문했다.
각 부서가 정신없이 월말업무에 매진하던 시점이라 각 부서장들에게 대책 논의는 언감생심인 상황. 결국 목요일 새벽에 부랴부랴 부산스럽게 움직였지만 대책을 제시한 부서장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대책이 있다는 겁니까”란 C상무의 말 한마디에 쥐 죽은 듯 조용해진 회의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D사장이 한마디 했다. “음…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는데…”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장의 의견에 살이 붙은 대책은 원안이 업그레이드되며 꽤나 그럴듯한 비전으로 재탄생했다. 회의를 마무리한 D사장이 회의실을 나서며 C상무에게 나지막하게 한마디 던졌다.
“이보게 회의실 적막은 각본에 없는 상황이야. 자넨 왜 대책이 없나. 어떤 기획이든 늘 자네가 먼저 준비해야 한단 걸 모르는 건가.”
Talk Talk 2비전을 공유해야 조직의 완성
<어린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마라.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비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일화다. 리더의 구상과 계획이 구성원의 동의를 받을 때 비로소 비전이 된다. 오죽하면 잭 웰치 전 GE 회장은 “회사의 비전을 700번 반복해 제시하면 비로소 성과가 난다”고 했을까.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입버릇처럼 늘 강조하는 대목도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비전을 확고히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파든 해외파든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누구든 실력과 컨디션이 앞선 선수가 그라운드에 나설 겁니다.”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8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들이 원하는 상사유형은 ‘말을 잘 들어주고 장점을 살려줄 것 같은 유재석’이 1위를 차지했다. ‘확실한 리더십으로 나를 프로로 만들어 줄 것 같은 양현석’(27.3%) ‘꼼꼼한 성격으로 일을 잘 가르쳐 줄 것 같은 손석희’(10.3%)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가져다 줄 것 같은 이건희’(7.4%) ‘강하게 훈련시켜 줄 것 같은 강호동’(3.4%)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직장 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질문한 결과,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88.0%를 차지했다. 그중 ‘그 사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91.7%나 됐다. 힘들게 하는 사람에는 ‘상사’라는 응답이 73.5%로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동료(19.7%), 부하직원(5.2%)이 그 뒤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