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3’이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28일 폐막을 알렸다. ‘모바일의 새로운 지평’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세계 220여 개국에서 1500여 개의 업체와 10만명의 관객이 참여하며 성황을 이뤘다.
구글과 애플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에서 삼성전자·LG전자·SK텔레콤·KT 등 국내 기업들은 물론 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한국앱 장터’까지 전체적으로 ‘IT코리아’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대 모바일 전시회답게 글로벌 IT 업계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 언론인 등 약 8만명이 시작 전부터 속속 집결했다. MWC 전시장 인근 호텔은 이미 두 달 전부터 모든 예약을 마쳤고, 40유로 정도의 하루 숙박비는 최대 400~500유로까지 급등했다.
바르셀로나 에어포트 호텔 앞에서 만난 한 중국통신업체의 천통마우 씨(45)는 “글로벌 IT시장을 놓고 올해는 총성 없는 전쟁이 한층 심화될 것 같다”며 “몇몇 파트너들과 사업 미팅을 했는데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적(경쟁사)과의 동침도 기꺼이 할 태세”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호텔과 행사장인 바르셀로나 컨벤션센터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수십 명이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도로가 혼잡하게 막혔다. 컨벤션센터에 진열된 수많은 신제품만큼이나 관람객도 많았다. 발 디딜 틈이 없어지나가다가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잠시 한눈을 팔면 관람객 사이에서 지인을 놓칠 정도였다.
올해 MWC 특징은 중저가(Moderate Price) 스마트폰 제품과 5인치 이상 넓은 화면(Wide Screen) 패블릿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또 ZTE와 화웨이 등 중국 휴대폰 제조사들이 최신형 제품을 앞세워 고급화 이미지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삼성전자·LG전자 새 지평 열다
MWC의 포문은 삼성전자가 열었다. 지난 2월 24일 신종균 삼성전자 모바일·IT(IM) 담당 사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츠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애플이 주도하고 있는 태블릿 시장을 적극 공략할 뜻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3’에서 처음 공개한 태블릿 ‘갤럭시노트 8.0’을 앞세워 올해 태블릿 시장에서 애플과 격차를 줄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신 사장은 “올해 글로벌 태블릿 시장은 지난해보다 50% 이상 높은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은 태블릿을 판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태블릿 시장 규모는 1억1640만대로 전년보다 2배 이상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점유율 14%(1660만대)로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56%(6570만대)를 차지한 애플.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태블릿 시장 점유율 16%를 기록하며 애플(49%)과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기업 간(B2B)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한다며 스마트 기기를 기업 입장에서 안심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보안 솔루션 ‘녹스(KNOX)’도 이날 공개했다.
삼성은 또 콘텐츠 유통 플랫폼 사업자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애플이 구축한 플랫폼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각오다. 삼성 단말기를 가지고 있다면 월트디즈니, 타임워너를 비롯한 유명 사업자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LG전자도 바르셀로나 레이후안 카를로스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3년 비전을 제시했다. 박종석 LG전자 MC사업본부장(부사장)은 “올해는 성장과 수익을 동시에 잡을 생각”이라며 “매 분기 스마트폰 1000만대 이상 판매액을 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LG전자는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는 평이다. 올해는 옵티머스G 등 플래그십 모델로 선진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동시에 이머징마켓에서는 고사양·중저가 제품으로 점유율을 올리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LG전자는 이번 MWC 2013에 옵티머스G 프로, 뷰2, F·L 시리즈를 선보였다. 3세대(G) 보급형부터 LTE를 지원하는 프리미엄 제품을 아우르는 모델들이다.
박 부사장은 “(풀HD급)화질, 사용자경험(UX), 디자인, LTE 기술력으로 승부를 볼 것”이라며 “보급형 제품이 수량으로 받쳐주고, 프리미엄 제품이 성장을 이끌면서 올해도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부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태블릿 시장에 LG전자도 제품 출시를 추진하고 있다”며 태블릿 시장에 진출한다는 뜻을 밝혔다.
구글, 모질라재단 등 운영체제(OS) 진영과의 협력도 강화함을 밝혔다. 박 부사장은 “올해 파이어폭스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파이어폭스는 모질라재단과 스페인 이동통신사 텔레포니카의 웹OS로 이번 MWC에서 처음으로 공식 발표됐다. 차기 구글 레퍼런스폰 개발을 위해 구글과 협의 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동차 업계도 경쟁… 글로벌 합종연횡 잇달아
MWC에선 스마트폰 제조사 못지않게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커넥티드카 경쟁도 달아올랐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아우디가 MWC에 참가해 LTE 기반 커넥티드카 기술을 선보였다. 포드는 자동차 업계 최초로 단독부스를 마련해 참가했으며, GM과 아우디는 협력업체 전시공간을 통해 참가했다.
아우디는 보안기업 젬알토와 함께 LTE 임베디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선보였다. 아우디는 A3 스포츠백 모델에 강화된 아우디 커넥트를 적용한 기술을 공개하면서 홍보문구도 ‘세상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아우디’로 내걸고 스마트화 하는 자동차의 미래 모습을 제시했다. 포드는 단독 부스에서 자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포드싱크’를 소개했다. 유럽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와 협력 등의 내용도 공개했다.
GM은 AT&T와 함께 대부분의 쉐보레, 뷰익, GMC, 캐딜락에 LTE 기능을 내장한다고 발표했다. GM은 차량안전과 보안, 진단, 인포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향상된 무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MWC에 AT&T 전시공간에 캐딜락과 쉐보레를 전시하고, LTE 기반 서비스를 시연했다.
MWC에서 커넥티드카 기술이 부각된 것은 LTE 보급이 확대되면서 무선으로 내비게이션 정보를 제공할 정도로 네트워크 속도가 향상되고, 안정성이 높아져 제공 가능한 서비스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사물지능통신(M2M) 기술 진화도 한몫 했다.
글로벌 합종연횡도 MWC2013에서는 하나의 트렌드였다. 스마트폰에서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이버의 탈몬 마르코 최고경영자(CEO)는 26일 인도네시아 거대 이동통신사인 엑시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통사·제조사 간, 이통사·이통사 간 전통적인 동맹도 이번 MWC에서 뚜렷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KT는 홍콩 차이나모바일홍콩(CMHK)과 함께 세계 최초로 서로 다른 롱텀에볼루션(LTE) 네트워크망에서 로밍 서비스에 성공했다. 또 LG전자는 가입자 7억명을 보유한 중국 차이나모바일과 ‘옵티머스G’를 활용한 LTE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시연했다.
신생 OS 등장과 중국의 추격… ‘절반의 행사’ 아쉬움도
삼성전자는 최고 스마트폰상 등을 수상하며 5관왕에 올랐고 SK텔레콤, KT 등도 모바일 관련 상을 휩쓸었다. 또 타이젠, 파이어폭스, 우분투 등 신생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등장은 이번 전시회 내내 화두였다. 스테판 리처드 오랑주텔레콤 최고경영자(CEO)는 “신생 OS 가운데 하나가 살아남아 제3의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번 MWC 2013 단말기 분야에서는 후발 기업 약진이 두드러졌다.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 플랫폼 위주로 재편되면서 SW와 하드웨어가 모두 상향 평준화됐다. ZTE와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추격은 그중 백미였다.
이들 모두 풀HD 화면에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소니와 HTC는 완성도 높은 품질과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풀HD 화질에 스피커를 화면 상하단에 위치해 독특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노키아는 보급형 라인업 제품만 선보였다.
그러나 MWC2013은 올해 슬로건으로 내건 ‘모바일 지평’을 기존 거대 이통사들이 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만을 남긴 채 막을 내리게 됐다. 이번 전시회에는 모바일 운영체제의 양대 산맥인 애플과 구글이 모두 불참했다. 애플은 2009년부터 참석하지 않고 있고, 구글은 올해부터 빠졌다. 모바일 회사로 변신을 시도한다던 페이스북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가 주최하는 MWC의 이 같은 퇴조는 글로벌 모바일 산업에서 갈수록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이통사업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평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MWC 기조연설에서 “브로드밴드 시대를 맞아 통신의 비중과 가치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며 성장 정체의 위기를 맞은 글로벌 통신사들에 직격탄을 날렸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시장에서 통신사업자들이 제조·콘텐츠 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며 “위기를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를 만드느냐, 아니면 네트워크를 빌려주는 사업자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