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ty] 사단법인 한국춘란회 조관식 부회장, “난(蘭)은 주인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
입력 : 2011.03.29 14:01:39
수정 : 2011.08.26 16:32:39
젊은 시절 난(蘭)이 좋아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난과 함께 반평생을 살아왔다.
퇴직 후 즐기는 난의 매력은 전혀 다르다. 조관식 한국춘란회 부회장은 “매력을 모르고 단기간 투자는 금물”이라고 말한다. 경기도 분당 율동공원 뒷산의 고즈넉한 품을 소나기가 시샘한다. 한참을 후드득 내닫더니 갑자기 뚝 끊기길 서너 차례. 선풍기가 쉴 새 없는 바람을 내뿜는 비닐하우스, 오롯이 자리한 난(蘭) 무리가 빗소리에 숨을 고르고 있다.
“가만히 놔두다가도 비가 오면 손을 봐요. 한번 손이 가면 하루가 모자라죠. 그래서 흔히 마누라가 싫어하는 대표적인 식물이 난이라고 합니다.”
느릿하게 말을 이어가던 조관식 한국춘란회 부회장이 난에 가위를 가져가다 물리곤 불에 그슬려 소독한다. 난에 손을 댈 때도 마찬가지. 30년 가까이 반복된 행동이지만 난이나 사람이나 품성이 똑같다는 생각에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가 처음 난을 접한 건 정확히 27년 전. 반도체 관련 기술자로 근무하던 젊은 시절, 친구의 권유로 분양받은 난이 취미가 됐고, 은퇴 후 든든한 노후가 됐다. 1000여 점의 춘란(春蘭)이 어지러운 난원에는 가치가 최고라는 소심(素心)이 그득하다. 난의 본색인 녹색, 황색, 백색 외에 다른 색이 전혀 없는 최상급이다. 난의 단위인 ‘촉’으로 따지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대뜸 수익을 묻자 “사자고 드는 이가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변할지 몰라 공들여 키우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좀 더 용기를 내 그래서 얼마냐고 물으니 혹시나 난이 들을세라 “가치가 최고에 이르면 촉당 10억원을 호가할 수도 있다”고 기어들어간다. 난과 함께 흘러가는 세월, 조 부회장은 노후생활에 필요한 돈이 1년에 3000만원이라면 몇 개만 팔아도 괜찮다는 말로 연 수입을 대신했다.
젊은 시절 난을 접했는데, 노후 대비를 위한 포석이었나.
1980년대 초부터 난 수입이 허용됐다. 그 전엔 중국이나 일본계 난이 밀수입돼 들어왔지.
그 당시에 난 키우는 일본 분들을 만나곤 했는데,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더라고. 젊어서 많이 재배하다 은퇴하고 나면 난의 촉수가 늘어서 상인들에게 분양할 수 있다고(웃음).
난테크란 말이 나올 만큼 한동안 난에 대한 바람이 일었다.
어떤 이는 난 산업이라던데 산업이라 하기엔 좀 그렇고. 난에 관련된 사업이 많긴 한데 워낙 성장이 느린 식물이다 보니 관련 산업의 발전 속도도 느리다. 지금은 어느 정도 조직배양기술도 발전됐고 품종을 등록해서 개체에 대한 값이나 로열티도 제대로 받게 됐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에 난을 재배하는 이가 어느 정도나 되나.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고 수십만 명이라고 하던데. 나처럼 직업으로 시작하지 않고 취미생활하는 애난인(愛蘭人)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은퇴 후 이곳에 정착한 건가.
오십 전에 은퇴했다. 원래는 판교에서 재배하다 재개발되면서 이리로 왔는데 한 10년 됐지. 처음엔 집 베란다에서 키웠는데 햇볕이나 온도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워야 말이지. 결국은 이렇게 자리를 펼쳤다.
은퇴한 이들에게 권하고픈 재테크라 소개했는데, 수익률은 어느 정도인가.
은퇴 후 지출하게 될 돈이 얼마나 될까. 1년에 쓰는 돈이 1500만~3000만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개념에서 보면 매년 몇 개만 팔아도 괜찮다.
난을 처음 대할 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던데.
'기다림의 미학'이란 책이 있는데, (난을 가리키며) 이 녀석에게 어울리는 제목이다. 굉장한 인내를 요구하지. 소위 시세를 걱정하고 일희일비한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
위탁재배는 절대 하지도 권하지도 않는다
그럼 처음 난을 접할 땐 어땠나. 실패는 없었나.
오히려 그 반대지. 이 녀석이 처음엔 곧잘 자라주거든. 친구에게 분양받아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달빛에 비친 놈이 너무 멋지더라고. 한참을 보고 또 봤다. 그 이후엔 캐러 다니기 바빴지. 경매장도 다니게 됐고 서투른 일본어로 일본 잡지, 책도 사다 봤다. 그렇게 애지중지 원리원칙에 입각해 키우다보니 정말 어려움 없이 잘 자라주더라고. 그랬더니 점점 더 욕심이 생겨. 그런데 그 욕심을 채우려면 기술이 필요하고. 그래서 지금도 어렵다. 아주 엄청 어렵지(웃음).
반도체 업체에 근무할 당시 취미생활로도 수익이 있었나. 꽤 수입이 좋았을 것 같다.
그것도 정반대지. 왜냐하면 월급은 집에 가져다주고 상여금이 나오면 그거 당겨다 난 사기에 급급했으니까. 짬만 나면 산에 올랐다. 당시엔 꽤 유명한 모임인 골빈당에 가입해서 빨간 날에는 무조건 전라도로 내려가곤 했다. 회원들 모두 마포였지, ‘마누라가 포기한 남편’. 그래서 경제적인 이득은 없었다. 오히려 쏟아 부었지. 이제는 조금씩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음에도 너무 헐값에 파는 것 아닌가 해서 쪼들리며 산다(웃음).
난에도 등록품종이 있다던데.
대한민국 난 등록협회에 매달 품종을 등록한다. 이번 달까지 1200개가 넘었어. 원예화가 된 품종이지. 지금 이 난원에 있는 난 중에도 등록을 앞둔 품종이 정말 많다.
품종이 굉장히 무궁무진하다.
그렇지. 마치 사람과 같다. 일란성 쌍둥이라도 성격이 다르고 버릇이 다르지 않나. 난도 다르지 않다. 같은 난을 포기나누기 하더라도 이게 계속 변이를 하거든. 서로 다른 양태를 보인다. 그러니 어찌 같을 수 있나.
그렇다면 난의 시세는 어떻게 결정되는 건가.
등록된 품종이 모두 다 시세가 있는 건 아니다.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들. 등록되고 세월이 지나면 사고자 하는 이와 팔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시세를 형성한다. 자연스럽지.
때론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겠다.
물론이다.
거래가 활발한 고가의 품종을 꼽는다면.
서로 간에 차이가 있긴 한데, 한없이 비싼 난들은 거래가 없고. 그 중 거래가 되고 있는 게 둥근달, 망월(望月)이라 표현되는 황화소신이다. 촉당 3000만~4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난테크라며 투자 개념으로 난을 위탁하는 이도 있던데.
7~8년 전에 그런 생각으로 투자한 분들이 많았지. 작게는 5억~6억원, 많게는 몇 십억원을 투자한 분도 있었다. 적어도 수익이 30%는 되니, 이런 투자가 없었지. 하지만 그것만 생각했지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가격이 폭락하거나 왕창 병들어 죽어 손해 본 이들이 태반이다. 예부터 전해온 말이 ‘난은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고 했다. 그만큼 주인의 애정이 섞이지 않으면 절대 잘 클 수 없거든. 그걸 어찌 남에게 맡기고 잘 크길 바라나. 난 그 방법은 절대 권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러한 투자가 있을 텐데.
아직도 그런 이들이 있긴 하지. 난업계에선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얘기들 한다. 과거 러시일 때 투자했다가 가격이 떨어지니 내놓을 수밖에. 하지만 가격이 떨어졌을 때 부동산이 팔리는 것 봤나. 난도 경제구조가 똑같다.
난 재배는 5년이 기본이다
몇 년 정도 기다려야 수익을 바라볼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짧아도 5년은 봐야한다. 난을 분양받아 자리 잡은 후 다시 포기를 나눠 분양하는데 드는 세월이다. 최소 5년이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 가치의 난은 어떤 품종인가.
재테크 개념일 텐데, 가격을 논하자면 촉당 7억원, 10억원을 호가하는 난이 있었다. 하지만 거래가 없으니 가격이 무슨 소용인가. 한 동안 믿을 건 부동산밖에 없다고들 했는데, 돈이 필요할 때 땅이 금방 팔리던가? 난 또한 그렇다. 투자를 하되 인생을 같이 할 각오로 해야지 단기 차익을 노리는 건 잘못된 방법이다.
초보자들이 협회차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나.
원하면 언제든지 도움 받을 수 있지. 구청 등지에서 아카데미가 운영되곤 하는데 그건 정말 초보를 위한 클래스고, 난 단체를 찾아 회원에 가입하면 정기적인 모임에서 선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 규모 있는 단체라면 대한민국 난 문화협회, 대한민국 자생난협회, 한국춘란회 등이다.
재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어떤 분야나 과한 욕심은 금물이다. 난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난(蘭)의 한자를 보면 문 위에 풀이 있고 문아래 동쪽이 자리했다. 동쪽, 문 위에 걸어놓고 키우는 풀이다. 햇빛과 통풍이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지. 그런데 급하면 어찌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