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기 위해, 제품 개발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현재 제품의 성능 또는 기능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품과 기술이 보다 다양화, 고도화 그리고 복잡화 하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외부로부터 도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라는 경영 기법이 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 알려지고는 있지만 기업들이 직접 실천할 수 있고, 계획적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활용
졸음운전 사고를 방지하는 시스템 개발은 개방형 혁신을 활용한 좋은 예다. 모 글로벌 자동차 제조기업은 운전자가 졸린다는 것을 감지하고 자극을 가함으로써 졸음을 완전히 깨도록 하는 시스템 개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제품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당장 시스템 개발이 가능한 회사가 있는지 조사했을 때 부정적인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 회사는 제품 개발에 필요한 일정 정도의 자체 기술은 있었다. 때문에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였지만 이의 실현을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기술과제에 대한 해석부터 시작했다.
먼저 기술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즉 인체의 다양한 생체 신호, 예를 들어 맥박이라든지 뇌파, 체온 등과 졸음의 관계를 해명하는 기술, 또 그런 신호를 신체와 접촉하지 않고 측정할 수 있는 센서기술, 마지막으로 운전 중에 놀라면 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안전하게 졸음을 깰 수 있도록 하는 기술 등이 그것이었다.
생체신호와 졸음의 관계 해명, 운전 중 안전하게 졸음을 깨게 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해결 가능했다. 그러나 접촉하지 않고 인간 생체 신호를 측정하는 센서기술의 개발은 자체 역량으로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발을 시도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실패 위험, 비용, 많은 시간 소요 등의 리스크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외부의 관련 기술을 조사해 항공우주 산업이나 의료분야 같은 타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개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개발하고자 하는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하게 됐다.
자동차 내부라는 특수한 조건과 소음 속에서 미약한 신호를 잡아야 한다는 조건을 기술 보유 전문가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해 전달한 결과 항공우주, 특히 의료분야에서 상상을 초월한 기술을 제안 받을 수 있었다. 또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지 않고도 이 기업은 훨씬 빠르게 자체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외부 노출에 대한 리스크
오픈 이노베이션을 경험해보지 못한 기업에서 볼 때 필요한 기술과 관련 기술의 수집 방법을 외부에 공개할 경우 경쟁사에 신사업 아이디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하다. 그러나 획기적인 신제품 또는 아이디어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운전 중 졸음을 깰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의 경우에도 이 기업만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동차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세계 여러 자동차 제조기업들이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기업만의 비밀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 기업의 경우 생체신호와 졸음의 관계 해명 그리고 운전 중 졸음을 안전하게 없애는 수단에 대해서는 내부 기술로 해결이 가능했다. 다만 자동차 실내라는 특수한 조건하에서 센서기술에 대한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제품 개발을 위해 요구되는 여러 기술들을 모두 외부에만 의존한다면 경쟁사도 기술 개발이 가능해 문제가 되겠지만 중요 기술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경쟁사에 신사업 또는 신제품에 대한 힌트를 줄 수는 있다. 이 경우에도 필요한 기술의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순수하게 이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면 외부 조직의 협조로 개발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셔츠의 주름을 방지하는 기술 개발을 원하는 기업이 있었다. 이 기업은 그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길 꺼렸다. 셔츠의 주름이 생기는 원인은 섬유의 표면에 일어나는 수소 결합 때문이다. 이 기업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때 셔츠의 주름이나 섬유의 표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특정한 조건에서 수소 결합을 막는 기술을 찾는다고 공개했다. 이후 여러 제안서가 수집되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요구 기술 보유자와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흥미롭게도 주름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은 반도체 표면처리 전문기업의 기술을 활용했다. 처음부터 셔츠의 주름 방지를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공개했다면 반도체 산업 분야의 연구원은 흥미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기술 요건인 수소 결합에 대해서만 설명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분야의 기술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찾고 있는 기술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vs 아웃소싱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오해로 자주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아웃소싱(Out-Sourcing)이란 말이다. 자사 제품을 외부 공장에서 생산하도록 기술이나 스킬을 건네주게 되면 의뢰받은 외주 기업은 점차적으로 제품의 제작과정 등에 대한 노하우를 축척하게 된다. 외부 기업에 기술이 축적됨으로써 기술 공동화의 우려가 있지만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것은 외부로부터 기술을 제안 받아 내부를 개선해 기술을 축적해 나가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아웃소싱이 아닌 오히려 ‘인소싱(In-Sourcing)’이 된다.오픈 이노베이션을 잘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 식품 기업 제너럴 밀즈(General Mills)의 CTO(Chief Technology Officer)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사내의 개발자를 외부와 경쟁시키는 수단이 아닌 서로 보완하는 툴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연구자 또는 개발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vs 크라우드 소싱
사업이나 제품 개발 목표는 내부에서 정의를 내리고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과 혼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무엇을 할지 목표를 정한 후 내부적으로 부족한 기술이나 스킬을 검토한 후 펼치는 활동을 말한다.
사실 기술이나 제품은 현장에서 어느 정도 조사를 해보면 그 성숙도가 파악될 수 있다. 이 제품이라면 80~90% 현존하고 있을 것 같다는 예상도 가능하고, 상품화 가능성이 낮아도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기술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반면에 크라우드 소싱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창출해 해는 활동이다. 아이디어 창출, 제품 디자인, 제품 생산, 제품 판매에 걸쳐 진행되는 제품 수명(Product Lifecycle)상에서 베타 유저나 블로그,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을 통해 크라우드 소싱이 폭 넓은 의미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제품을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까’라는 도전과제를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외부에 문의함으로써 의외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다음 세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의견을 취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기업에서 사업화를 위한 아이디어는 자신이 돈을 모아 스스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의견을 모으기가 힘들게 된다.
두 번째는 각 회사에서 사업화를 위한 추가 투자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투자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조사, 사업 타당성, 내부 리소스 등의 조건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업 내부의 사항을 외부 인력이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을 확률은 사실 적다. 간혹 크라우드 소싱을 사업화해 성공했다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현재 사업의 수익보다는 엄청난 행운이 더 크게 작용해 벤처 캐피털로부터 펀딩에 성공한 경우나 크라우드 소싱을 활용한 홍보 결과가 다른 매체와 대비해 큰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세 번째로 제품의 경우에는 시장을 조사해 보면 어떠한 제품이 있고 그 성능이 어떤지를 알 수 있지만 어떤 제품이 성공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어서 조사를 해도 뽑아낼 수 없다. 실질적으로 리소스를 투자해 사업을 해봐야지 잘 될지 잘 되지 않을지 운명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기업 활동에 있어서 크라우드 소싱은 관리하기 힘들다는 점이 있다. 이와 같이 크라우드 소싱은 오픈 이노베이션과 비교해 기업 활동에서 관리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졸음운전 방지기술 개발 사례 외에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한 성공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영복 제조사가 한정된 예산으로는 물에서 보다 빠르게 수영할 수 있는 수영복 개발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미국 나사가 개발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극 활용해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식품 회사가 연구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약 회사들이 이미 확보한 연구 데이터를 활용한 것도 훌륭한 사례들이다.
과거 1970~1980년대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한국 기업들이 대기업을 필두로 세계무대에서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원천기술의 확보보다는 선진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한 보다 빠른 신제품 개발에 핵심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우리만의 기술과 노하우가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고, 과거와 달리 기술의 리더로 앞서 나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 이상 아웃소싱을 받는 형태로 우리만의 기술 축적을 갈구하는 것은 힘들다. 경쟁 우의를 가진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외부 기술을 활용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더한 후 자신만의 신제품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선진 국가와 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사례를 빠르게 습득하고 적용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준혁 나인시그마 프로그램 매니저 jhlee@ninesigm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