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사용자들을 위한 애플의 본격적인 인공지능(AI) 기능 도입이 시작됐다.
애플은 지난 10월 28일(현지시간) 새로운 아이폰 운영체제인 IOS 18.1 버전을 배포하면서 ‘애플 인텔리전스’의 일부 기능을 적용했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애플의 자체 생성형 AI 시스템을 뜻한다. 올해 초 삼성전자가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4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갤럭시 AI를 처음 선보였다면, 하반기에는 애플의 AI 기능이 첫 선을 보이며 AI 스마트폰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애플이 이번에 선보인 기능은 통화 녹음, 이메일 요약, 키워드를 활용한 사진 검색과 같은 기초적인 기능이다. 애플은 여기에 향후 이미지 생성 기능, 음성 비서 시리(Siri)와 챗GPT 통합 등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글을 요약해주거나, 매끄럽게 교정해주는 ‘글쓰기 도구’다. 메일이나 메시지, 메모 애플리케이션(앱) 등 텍스트가 있는 곳에서라면 대부분 사용할 수 있다.
‘전문적으로’ ‘간결하게’ ‘친근하게’와 같이 사용자가 선호하는 어조를 선택하면, 사용자가 작성한 내용을 이에 맞게 재작성해주는 기능이 새롭게 생겼다. 또한 맞춤법뿐만 아니라 문법, 단어, 문장 구조를 점검하며 편집을 제안해주는 교정 도구도 있다.
사용자의 글이나 인터넷에서 읽던 뉴스 기사를 요약해주는 기능도 있다. 요약하고 싶은 글을 드래그한 후 글쓰기 도구를 사용하면 된다. 단락 형식의 줄글로 요약해주는 방식 외에도 글머리 기호를 활용해 정리해주는 방식, 표와 목록 형식으로 요약해주는 옵션도 있다.
사진첩에서 사진 검색과 편집도 AI가 도와준다. 키워드 검색 기능을 활용하면 사진의 특징을 AI가 분석해 키워드에 맞게 필터링한다. ‘후드티’라고 입력해 검색할 경우 AI가 후드티를 입고 있는 사진을 추려 제시하는 방식이다. 사진에서 원하지 않는 피사체를 선택하면 AI가 지워주는 ‘클린업’ 기능도 추가됐다.
애플은 이번 iOS 18.1에서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처음으로 통화 녹음 기능도 선보였다. 통화 녹음 기능은 AI가 아니지만, 통화 녹음이 끝나면 AI가 통화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알려준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AI도 애플 인텔리전스처럼 텍스트를 요약해주는 ‘노트 어시스트’, 사진의 피사체를 지워주는 ‘AI 지우개’와 같은 기능을 모두 지원한다.
갤럭시 AI에만 있는 차별점은 실시간 통역이다. 갤럭시 AI는 대면 대화를 즉시 통역해주는 기능과 함께 통화 중에도 음성을 실시간 통역해주는 기능을 갖췄다. 첫 출시 때에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13개 언어를 지원했지만, 점차 지원 언어를 확대해 현재 20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다.
화면에서 원을 그려 궁금한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는 ‘서클 투 서치’ 기능도 구글과 협력해 갤럭시에서 제공하고 있다. 갤럭시 스마트폰에 이어 아이폰에도 AI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AI 기능의 활약이 시작됐다.
iOS 18.1을 선보인 이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고객과 개발자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iOS 17.1의 두 배에 달하는 속도로 이용자들이 iOS 18.1을 채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전체 스마트폰 중 AI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6%, 내년 28%로 성장해 2028년에는 전체의 5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애플 인텔리전스는 아직 한국어로는 쓸 수 없으며, 현재 미국 영어로만 사용 가능하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언어는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된다. 애플은 2025년 4월 업데이트를 통해 한국어, 중국어, 영어(인도), 영어(싱가포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의 언어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애플 모두 스마트폰에서 AI를 활용한 사용자 경험 증진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AI를 어떤 기종에 배포할 것인지 등 세부 전략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는 신제품뿐만 아니라 구형 기종에도 AI 기능을 도입하면서 갤럭시 접근성 확대에 힘쓰고 있다. 성능이 뛰어난 최신 모델에는 모든 갤럭시 AI 기능을 도입하고, 구형 모델에는 일부 기능만 적용하는 등 기종에 따른 편차는 있지만, 최대한 많은 사용자가 갤럭시 AI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방향성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출시한 갤럭시 S24 시리즈를 시작으로 폴더블 스마트폰 등 주요 플래그십 제품과 함께 갤럭시 A 시리즈까지도 AI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태블릿 제품인 갤럭시 탭에도 AI를 적용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약 30여 종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품에서 갤럭시 AI를 제공하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이 올해 7월 갤럭시 Z6 시리즈 언팩 당시 “연말까지 2억 대의 갤럭시 기기에 갤럭시 AI를 담겠다”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로서는 애플보다 약 반년 이상 빠르게 AI 스마트
폰을 선보인 만큼, 애플이 차세대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발빠르게 생태계를 넓혀 시장을 선점하려는 목적도 있었던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전략에 힘입어 지난달 국내 기준 AI를 적용한 갤럭시 단말기 수는 2000만 대를 넘어섰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다르게 고성능 프로세서를 탑재한 최신 제품군에서만 애플 인텔리전스를 제공한다. 애플 인텔리전스의 경우 신제품인 아이폰 16 시리즈와 아이폰 15 프로 이상 아이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AI 기능을 구동할 수 있는 최적의 프로세서를 탑재한 제품에 한해서만 애플 인텔리전스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애플은 최신 아이폰에 대한 수요를 끌어내고, 소비자들의 아이폰 교체 주기를 가속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에는 각 스마트폰의 음성 비서인 삼성전자의 ‘빅스비’와 애플의 ‘시리’도 AI로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현재 사용자들도 ‘하이 빅스비’나 ‘헤이 시리’와 같은 호출어를 통해 음성 비서를 부르고 활용할 수 있지만, 주로 알람 맞추기, 타이머 켜기, 날씨 확인 정도의 단순한 기능에 그치고 있다. 또한 사용자가 질문을 할 경우, 답변을 제공하기보다는 질문을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에서 찾은 후 결과를 제시하는 수준이었다.
복합적인 명령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와 달리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이 제한적인 탓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보다 복합적인 명령도 이해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빅스비를 스마트폰에 적용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8월 삼성전자는 음성으로 티비, 가전 등을 보다 세밀하게 제어하는 업그레이드된 빅스비를 TV 및 가전제품에 먼저 적용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10월 31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향후에는 보다 복잡한 기능 수행까지 가능한 스마트폰 빅스비 버전도 출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애플의 경우 12월 중 iOS 18.2 업데이트를 통해 챗GPT와 통합된 ‘시리’를 선보인다. 간단한 명령은 기존 시리가 처리하지만, 복잡한 명령은 챗GPT로 이관해 처리하도록 하는 식이다. 만약 사용자가 “참치캔과 김치로 어떤 요리를 만들 수 있어?”라고 묻는다면, 기존 시리는 구글에서 찾은 한 검색 결과의 일부를 발췌해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GPT와 통합된 시리는 참치김치찌개, 김치볶음 등 간략한 요리 리스트와 설명을 정리해 제시하는 단계로 발전할 전망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노트북과 같은 개인 PC도 이제는 AI PC로 탈바꿈하고 있다. AI PC란 AI 컴퓨팅을 처리할 수 있는 중앙처리장치(C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을 기반으로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지원하는 컴퓨터다. 기기 자체에서 AI 기능을 활용하면, 인터넷 연결 없이도 문서를 요약하거나 사진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등의 작업이 가능해진다.
올해 인텔에서 NPU를 탑재한 ‘인텔 코어 울트라 프로세서’를 내놓는 등 AI PC를 위한 하드웨어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제조사들도 이를 활용한 AI PC 신제품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자사 첫 AI PC인 ‘갤럭시북4 엣지’를 글로벌 출시했고, 10월에는 국내에서 최신작 ‘갤럭시북5 프로 360’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문서 요약, 실시간 통역과 같은 갤럭시 AI를 노트북에도 도입했으며, 갤럭시 스마트폰과 갤럭시북의 연결성을 활용해 스마트폰에서 ‘서클 투 서치’로 찾은 검색 결과를 노트북으로 바로 가져와 사용할 수 있게 했다. LG전자의 경우 올해 출시한 2024년형 LG 그램부터 AI 프로세서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여기에 AI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의 사진과 영상을 인물, 시간, 장소 등에 따라 38개의 카테고리를 자동 분류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PC에 특화된 AI 에이전트 서비스 개발도 활발하다. 단순히 챗봇 형식의 AI에 사용자가 질문하는 단계를 넘어, “O월 O일 미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찾아서 예매해줘”와 같은 요청을 하면 AI 에이전트가 직접 사이트에 접속하고 최적의 상품을 클릭해 예약까지 완료하는 비서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히는 AI 기업 앤스로픽은 지난 10월 PC를 직접 조작해 복잡한 작업을 대신 해주는 AI 에이전트를 일부 개발자를 대상으로 베타 출시했다. 해당 에이전트는 실제 사람처럼 PC 화면을 파악하고, 커서를 움직이거나 텍스트를 입력하면서 사용자의 요청을 처리한다. 구글 또한 ‘프로젝트 자비스’라는 이름의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구글의 웹브라우저인 크롬을 기반으로 작동할 것으로 전망되며, 웹 브라우저 상에서 AI 에이전트가 사용자 대신 특정 제품을 구매하거나, 사용자가 요청한 항공편을 예약해 주는 등의 기능을 구현할 전망이다.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