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항공교통(UAM·Urban Air Mobility)을 둘러싸고 동아시아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기체 개발은 물론이고 각종 규제 정비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최근 양상을 보면 일본이 먼저 치고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자국 UAM 상용화 시기로 오는 2025년을 내걸었지만 준비 상황은 일본이 한 발 앞선 모양새다.
▶공항서 교토 시내 전시장 연결
최근 관련 업계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과 국토교통성은 2025년 오사카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오사카 공항과 교토 시내를 연결하는 8개 UAM 노선을 최근 확정했다. 구체적으로는 박람회가 열리는 장소(유메시마)와 간사이국제공항, 오사카국제공항(이타미공항), 고베공항, 오사카 시내, 교토 시내 등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매시간 UAM 20개편 운항을 목표로 2025년부터 해당 노선에 띄운다는 계획이다.
일본 ANA항공은 미국 UAM 전문회사 조비에이비에이션과 일본에서의 UAM 운항을 추진한다는 협약도 맺었다. 조비에이비에이션은 도요타가 출자한 기업으로 일본 기업들과 폭넓은 사업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항공(JAL)은 독일 볼로콥터에서 UAM 기체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토종 UAM 업체인 스카이드라이브도 UAM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일본 정부는 올해 안으로 UAM 기체를 제작하는 회사는 물론 도심항공을 운영하고 이·착륙장을 관리하는 회사도 선정할 예정이다. 기체 개발과 운항은 특정 기업이 아닌 복수 기업에 맡길 예정이며 이들 기업이 운항 노선과 운임을 관련 협회 등과 협의한 후 책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토교통성은 내년부터 UAM 운항에 필요한 관리 지침 등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열린 ‘도심항공교통(UAM) 비행 시연 행사’에서 볼로콥터가 시험 비행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8개까지는 아니지만 주로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에서 서울 강남지역까지 이어지는 노선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기존 공항과 도심을 UAM으로 연결하겠다는 방안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일단 UAM이 뜨고 내리려면 ‘공역’ 문제가 중요하다. 공역은 비행에 적합하도록 통제에 의해 안전조치가 이뤄지는 공중 설정 구역이다. 수도권의 경우 현재 비행금지구역이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로드맵을 2년 전부터 구축해 2025년 서울 도심에 드론 에어택시가 오가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추후 UAM 특별법 제정으로 공역 등의 규제사항을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그같은 규제 해결은 밑바탕이다. UAM 기체 개발과 통신망 구축, 이·착륙장 건설 등은 대기업이 이미 추진 중이다. 특히 이들 기업은 이른바 ‘UAM 팀코리아’ 체제로 상호 협조해가며 관련 기술 공동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2019년 7월 UAM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고 미국 오버에어와 함께 에어택시 ‘버터플라이’ 공동 개발을 진행해오고 있다. 한화시스템과 오버에어는 2024년까지 기체 개발을 완료하고 2025년 국내에서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전투기 등 기체 개발을 해온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국내 최초 ‘틸트로터’ 시연에 성공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UAM과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틸트로터는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이·착륙하며 수평 상태에선 고속으로 비행 가능한 기체다. KAI는 2025년까지 총 2조2000억원을 투자해 UAM을 비롯한 미래 항공 교통수단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국내 상용화 시기는 오는 2028년으로 잡고 있지만 그에 앞서 미국에서 UAM 상용화를 계획 중인 현대자동차그룹의 행보는 가장 관심을 끈다. 이미 미국에 관련 법인 ‘슈퍼널’을 세운 현대차그룹은 미국 서부에서 UAM 실증 테스트가 가능한 부지를 물색 중이며 국내 UAM사업부도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용산구 원효로 현대차 부지로 옮긴 상태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슈퍼널을 통해 영국의 UAM 수직 이·착륙장(버티포트) 건설 새싹기업인 ‘어반에어포트’에 투자하며 UAM 기체 개발 외에도 공항 건설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어반에어포트는 오는 4월 말 영국 서부 미들랜드 코번트리에 세계 최초로 UAM 버티포트를 구축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향후 현대차그룹이 어반에어포트에 대한 지분을 더 늘려 아예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24일 항공안전기술원과 협약을 맺어 UAM 팀코리아의 원활한 업무 수행에 협조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UAM 비행 계획 수립 단계부터 비행 종료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안전저해 요소를 식별하고 안전성을 체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UAM과 공항만 있어선 될 일이 아니다. 공항과 UAM 간 끊임없는 통신체제 구축도 핵심이다.
이에 SK텔레콤은 T맵모빌리티와의 협력을 통해 UAM과 지상 모빌리티 서비스를 연계하는 플랫폼 구축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UAM 탑승 예약부터 버스·철도·개인이동수단 등 육상 교통수단과의 환승 서비스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KT 역시 현대차·현대건설·인천공항공사·대한항공 등과 UAM 생태계 구축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지난 2020년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소개된 현대차그룹 UAM이 행사 직후 서울 서초구 양재 사옥에서 축소 모형으로 전시된 모습. 사진 현대차그룹.
한국과 일본 모두 UAM은 물류 카고 형태로 먼저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물건을 이동시키는 데 활용한 후 실제 사람 탑승을 위한 안전 조건을 더 점검한 뒤 에어택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UAM은 기본적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100% 전동화 기체로 등장할 전망이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은 기존 자동차용 수소연료전지 대신 UAM용으로 별도 제작한 수소전지를 탑재해 전동화 수준을 높일 계획도 갖고 있다.
신재원 현대차그룹 UAM사업부 사장은 “UAM을 실제 상용화하려면 기체 개발뿐 아니라 비행 허가·인증, 버티포트, 착륙 후 이동할 다목적차량, 텔레커뮤니케이션(데이터 송수신) 등 다양한 분야 기업과 정부가 럭비팀처럼 한 몸이 돼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UAM 어떻게 날게 될까
“세상에 없던 제품을 개발하는 일 아닙니까. 저를 비롯한 사업부 직원들도 그것에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신 사장은 UAM에 대해 “흥분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제품 개발이 만만치 않지만 그만큼 흥도 나는 일이라는 얘기다. UAM은 프로펠러가 하나인 헬리콥터와 달리 크고 작은 프로펠러를 여러 곳에 배치해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비행체다.
어떤 이는 자동차 회사가 왜 비행체를 만드느냐고 묻는단다. 이에 신 사장은 “최소의 불편으로 내가 원하는 곳에 가게끔 하는 게 모빌리티(이동수단)의 정수”라며 “현대차는 인류에 도움 되는 기업이 되기 위해 UAM을 만든다”고 말했다. UAM 개발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에코 시스템’이다. 이것저것 다 얽혀 있다는 말이다. 비단 비행체 개발뿐 아니라 그 기체의 인증과 실제 비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행체가 뜨고 내릴 장소와 시설도 중요하다. 해당 비행체에서 내려 다른 기·종점으로 옮겨갈 또 다른 이동수단(목적 기반 차량) 개발 역시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를 비롯해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에서도 인증·허가를 받아야 글로벌 사업이 가능하다. 럭비팀을 떠올려보면 된다.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한 팀 선수들이 서로 팔을 끼워 스크럼을 짜듯이 말이다. 현대차그룹 같은 비행체 개발 업체와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존 공항, 텔레커뮤니케이션 업체 등이 새 시장을 열겠다는 한 목표를 갖고 전진해야 한다. 이게 UAM 시장을 여는 데 가장 중요하다.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물론 현재 세계는 공급망 붕괴 위기로 시끄럽다. 현대차그룹 UAM의 상용화 목표 시기도 2028년이지만 만약 그때까지 물류난이 재현되면 UAM 사업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반 항공기는 주문 생산한 뒤 조종사가 생산지에 가서 몰고 오면 된다. 하지만 UAM은 100% 전동화 장치여서 전기배터리가 갖는 항속거리 한계를 고려하면 150마일 이상 장거리를 한번에 날아갈 수 없다. 물류가 중요한 셈이어서 UAM 개발 후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전략 시장 현지에도 현대차그룹이 UAM 공장을 지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소전지 활용도 기대
오는 2028년부터 현대차 UAM이 날아다닌다면 소음부터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일단 헬리콥터는 내연기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크다. 하지만 UAM은 전기배터리로 움직인다. 지금도 전기차가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조용히 달린다. 다른 하나는 프로펠러 크기다. 헬리콥터는 큰 프로펠러 하나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를 아주 빠른 속도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UAM은 비행체 곳곳에 그보다 훨씬 작은 프로펠러 여러 개를 분산 배치한다. 각 프로펠러의 회전 속도는 헬리콥터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덜 빠르기 때문에 여기서도 소음이 줄어든다.
물론 소리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헬리콥터 비행 시 소음이 80㏈(데시벨) 정도인데 UAM은 비행 시 60㏈ 이하를 목표로 한다. 이는 현재 일반 대도시 생활 소음과 유사한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현재 UAM을 제작하는 업체의 목표는 ‘(UAM이 날아다니는 동안)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지 않도록 하자’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UAM은 도심에서 대략 40㎞ 거리를 주로 오갈 텐데 이 경우 너무 높게 올라갔다간 그 즉시 바로 내려와야 할지 모른다. 높이 날아서 지상의 사람들에게 소음을 주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아 비효율적이다. UAM 최대 고도는 500m 정도면 된다. 같은 무게의 사람과 물건에서 사람을 이동시킬 땐 비행체가 훨씬 더 견고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사람 이동의 경우 기체 안정성 인증 기준이 훨씬 더 높아야 한다. 대상이 사람이냐 물건이냐에 따라 비행체 디자인도 다르게 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미국 UAM 사업부 독립법인 ‘슈퍼널’ 로고.
국토교통부가 당장 4년 뒤부터 에어택시를 띄우겠다고 밝힌 건 일단 긍정적이다. 미국 독일 등의 회사가 기체 인증을 받아 2025년께 국내 시장에 진입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행체가 뜨고 내릴 ‘버티포트’ 건설부터 주력해야 한다. UAM이 수직(버티컬)으로 이·착륙하니 기존 에어포트(공항) 개념에 더해 버티포트라고 부른다. 미국에선 버티포트 하나 세우려면 규제가 20개는 넘는다.
향후 UAM에는 수소연료전지 활용도 기대된다. 물론 현재 수소전기차에 쓰는 형태를 그대로 가져올 순 없어 UAM용으로 별도 개발이 유력하다. 자율주행차가 늘어나듯 UAM도 자율비행을 목표로 한다. 상용화 초기에는 조종사가 있어야 할 테지만 향후 기술적으로는 무인 운용도 고려되고 있다. 여기엔 정부 허가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