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 서울 부동산 시장 향방은 재건축 위축 불가피… 용산 개발 눈여겨볼 만
강다영 기자
입력 : 2018.07.12 09:56:40
수정 : 2018.08.10 13:52:17
대치동 은마 아파트
6·13 지방선거가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남북대화가 무르익고, 미북정상회담까지 개최되는 등 여러 대외적 빅이슈에 묻혀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6월 13일 선거일 당일이 되자 투표율이 처음으로 60%대를 넘기는 등 ‘지역일꾼’을 뽑는 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공을 들이고 있음이 증명됐다. 북한과의 평화무드를 타고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쉽게 점쳐졌지만, 생각보다 그 승리의 정도는 대단했다. 서울시장에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50%가 넘는 득표율을 얻어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은 물론이고, 지난 20여 년간 한 번도 진보 쪽에서 잡은 적 없던 강남구청장마저 민주당이 가져갔다. 서울 내에서 ‘보수의 성지’라 불리는 강남4구에서 서초구 한 곳을 빼고는 민주당이 싹쓸이했고,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자유한국당은 1개를 가져가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선거의 정치적 결과만큼이나 주목되는 점은 바로 부동산 시장의 향방이다. 이유는 과거 경험치 때문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는 부동산 정책 면에선 놀랄 만큼 비슷하다. 강남을 중심으로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한 각종 정책이 나왔고, 규제가 세게 들어갔다. 2003년 10·29 부동산대책에서 종부세법 제정 방침이 나왔고, 이후 입법 과정을 거쳐 2005년부터 과세에 들어갔다. 이 밖에도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투기과열지구 확대, 민간택지 분양원가 공개 등이 줄줄이 나왔다. 작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한 달 만에 가계부채 대책이 나왔고, 8·2 부동산대책이 나왔는데, 놀랄 만큼 비슷한 행보다. 여기에 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까지 모두 여당으로 꾸려진 만큼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각종 정책이 도입되고, 실제로 시행에도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재건축 시장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작년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을 때도 가장 예민하게 본 것은 바로 ‘강남 재건축’이었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집값을 폭등시켰다는 분석을 한 정부는 일단 이들 재건축에 대한 거래 자체를 금지시키는 등 여러 가지 규제책을 내놨다. 그러나 문제는 이 규제의 약발이 잘 먹히지 않았다는 것.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올 초까지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가격상승이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은 지난 2월 재건축 안전진단이 강화되면서 양천구 목동과 노원 일대 재건축 대기 아파트 가격이 하락을 시작하고, 4월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 예상액수가 발표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아직까지 작년의 폭등을 상쇄할 수준의 하락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상황은 달라질 전망이다.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약으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부담금 징수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고, 한강 변 제3종일반주거지에 대한 35층 규제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재건축 절차를 마무리하고 관리처분인가를 마친 단지들은 상관없지만, 현재 재건축 초기단계에 있는 재건축 단지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데자뷔도… 2003년 추진위 설립한 대형단지들 모두 10여 년 사업지연
특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피하지 못한 데다가, 서울시 심의 중간에 끼어있는 대규모 단지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지들은 현재 서울시로부터 재건축 관련 각종 심의를 받는 상황이라, 서울시의 인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고 미루기엔 너무 먼 길을 온 곳들이다. 두 단지 모두 현재도 4000가구 안팎의 초대형 단지이고, 재건축 후에는 6000가구가 넘는 초대형단지로 거듭나는 데다가, 입지가 좋아 부동산 시장에서 ‘최대어급’으로 꼽히는 곳들이다. 이미 두 단지의 매매가는 떨어지고 있다. 은마아파트 전용 76㎡은 올해 초만 해도 16억원에 많이 거래됐지만, 5월 들어 13억8250만원까지 가격이 낮아졌다. 올해 1월 19억원대까지 치고 올라갔던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의 5월 실거래가는 17억4000만원까지 내려갔다. 6개월도 채 안 돼 2억~3억원씩 가격이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아파트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2003년 추진위원회가 설립됐지만 이후 참여정부가 출범하며 내놓은 각종 부동산 규제에 묶이고, 구성원 간 여러 가지 갈등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끌고 온 단지들이다.
아예 재건축 속도를 확 늦추는 단지들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건축 절차를 모두 마무리한 강남구 개포동의 저층주공과 달리 이제 시작인 중층 주공아파트(5·6·7단지)의 경우 초과이익환수제에서 초기값이 되는 ‘추진위 설립 시점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직 이 단지들은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지 않았는데, 일정상 문제가 아니라 환수제에 따른 부담금을 줄이기 위해 계속 눈치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은마아파트나 잠실주공5단지가 그랬듯 한번 일정을 늦추면 언제까지 늦춰질지 알 수 없는 재건축의 특성상 마냥 미루기도 어려워 이 같은 단지들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치동 최고의 부자 아파트로 꼽히는 ‘우·선·미(우성 선경 미도아파트)’도 현재 재건축 추진을 위한 위원회 결성 등을 준비 중인데, 일단은 서두르지 않고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압구정의 경우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1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포진돼 있는 ‘서울 최고의 부촌 아파트’ 압구정아파트지구는 서울의 그 어떤 단지보다 고층 재건축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에 성공하면서, 공고했던 35층 룰은 더욱더 굳건해질 가능성이 크고, 사실상 최소 4년 내 압구정 아파트들이 50층 재건축을 할 가능성은 ‘0’이다. 워낙에 가격이 많이 나가는 아파트들이다 보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다른 곳에 없는 ‘압구정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도 1년 넘게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는데, 최고 35층 재건축이나 기부채납 관련 각종 사안들이 확정되면 여기에서 규정하는 대로 재건축을 하거나, 아니면 하세월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미 대부분 40년이 되어가는 서울 최고의 부자 아파트 재건축도 당분간 요원해질 전망이다.
재건축 아파트에서 ‘후분양제’ 이야기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후분양제란 말 그대로 아파트를 80% 정도까지 지은 후 입주자를 모집하는 방식인데, 건설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어려울 때가 아니면 잘 하지 않던 방식이다.
과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현재는 반포 대표 아파트 중 하나가 된 ‘반포자이’가 후분양제를 채택했지만, 분양이 잘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후분양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현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최대한 낮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
이미 4월 분양 예정이었던 서초동 ‘래미안 서초우성1차’는 HUG와 분양가 줄다리기를 계속하다가 분양일정을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의 기조 속에서 손해를 보고 선분양을 하느니 분양가 규제가 없는 후분양을 하겠다는 조합의 계산이 깔려 있다.
환수제 대상이 아닌 곳 중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 재건축)’와 ‘잠실 미성크로바’ 조합이 후분양제 도입을 고심 중이고, 아직 추진위조차 설립이 안 된 개포주공5·6·7단지도 후분양제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다.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
▶회피 가능한 리모델링이나 1:1 재건축 힘받을 수 있을지 주목
이렇게 재건축 사업 곳곳에 난관이 도사리다 보니 1:1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 규제를 피할 수 있으면서, 정부 기조에 맞는 방식의 정비사업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1:1 재건축은 이미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 재건축에서 시행됐던 방식이다. 일반분양이 0이기 때문에 재건축 부담금에 대한 부담이 적고, 속도를 비교적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 부담이 크다. 다만 렉스아파트를 재건축해 올라간 ‘래미안 첼리투스’는 이촌동 대장주가 돼 당시 조합원들이 부담했던 추가금을 훨씬 뛰어넘는 차익을 시세로 봤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입지가 좋고, 조합원들이 초기에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이라면 1:1 재건축도 시도될 수 있다. 현재 가장 대표적으로 압구정 구현대아파트가 1:1 재건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고, 이촌동의 또다른 한강변 아파트인 왕궁아파트도 1:1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리모델링도 또 다른 대안이다. 그동안 서울시 기조를 보면 재건축은 굳이 장려하지 않지만, 기존 골조를 살려 짓는 리모델링에 대해선 관대했다. 자원낭비가 덜하고, 일반분양 자체가 많지 않아 조합원이 거둘 수 있는 수익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강남권에서도 청담동 ‘래미안로이뷰’나 ‘대치 래미안 하이스턴’ 등이 리모델링을 완료했고, 개포동 ‘대치2단지’와 ‘대청아파트’도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남향으로 양재천을 조망할 수 있는 중대형 위주의 개포동 경남아파트 역시 아직 정비사업 자체가 본격화되지 않았는데, 리모델링을 원하는 의견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상황이다. 막대한 재건축 부담금을 내느니 이 같은 규제가 없는 리모델링이 낫다는 의견도 꽤 있는 것. 또 정부가 안전진단 규제를 강화하면서 시작 자체가 어려워져 이 같은 의견도 힘을 받는 중이다.
강남권 부동산 시장은 재건축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위축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아파트의 경우 자사고·특목고 폐지라는 현 정부와 재선에 성공한 조희연 교육감 체제하에서 오히려 더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폐지되면, 오히려 ‘이미 검증된’ 강남권 일반고등학교가 주목받게 되고, 학부모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에 집을 사거나 이주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 다만 이 경우에도 재건축은 리스크가 상당하기 때문에 지어진 지 10년 전후의 새 아파트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대치동에선 신축 대장으로 꼽히는 ‘래미안 대치 팰리스’, 도곡동에선 ‘도곡렉슬’과 ‘대치아이파크’, 2~3년 내 입주가 시작되는 개포동 일대 저층 아파트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강남권과 달리 박원순 시장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용산마스터플랜’을 통한 개발이나 ‘마곡스마트시티’ 등 굵직한 개발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 이 지역의 부동산이 들썩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토부와 박 시장,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함께 추진해 온 용산 개발의 모든 것이 담긴 마스터플랜은 8월경 공개될 예정이다.
▶용산마스터플랜·마곡스마트시티 등 국책사업은 더 힘받을 수도
박 시장은 선거 직전인 6월 3일 명예 서울역장 이벤트에서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서울역에서 용산역까지를 지하화하고 지상은 철도 편의시설, 관광 지역으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고, 13일 선거 당일 밤 당선 직후 회견에서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평양을 방문해 서울과 평양 간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철도 지하화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와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만드는 내용을 모두 포함하는 ‘용산마스터플랜’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며, 이 경우 용산 한강로동, 이촌동, 문배동 등 일대는 모두 직접적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용산은 최근 강남권 아파트가 주춤했을 때도 밀리지 않고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다.
강서구 마곡지구 스마트인프라 시범단지 조성도 빨라질 전망이다. 박 시장은 지난달 28일 마곡지구를 찾아 “도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로 마곡에서 스마트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마곡단지 내 미매각 부지 11만㎡에 시범단지를 조성해 강소기업 1000여 개가 입주할 수 있는 연구개발(R&D) 거점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