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효성그룹이 한 해의 마무리를 이틀 앞둔 지난 12월 29일,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을 회장으로, 삼남인 조현상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3세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신임 조현준 회장은 지난 2007년 1월 사장 취임 이후 약 10년 만의 승진이고, 조현상 사장은 2012년 1월 부사장 취임 이후 약 5년 만의 승진이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그동안 효성을 이끌어온 조석래 회장이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회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대표이사는 유지하고,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사장이 현장경영을 지휘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효성그룹에 있어 2016년은 창립 50주년이란 상징성과 함께 2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한 첫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만큼 그룹의 3세 경영 출범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고 분석했다.
조현준 회장은 1997년 효성 전략본부 부장으로 입사한 이후 성과 중심의 PG/PU 시스템을 구축하며 현재 효성 조직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조 회장이 2007년부터 주도한 섬유PG는 현재 효성그룹 영업이익의 40%를 차지할 만큼 회사의 성장을 리드하고 있다. 특히 주력사업인 스판덱스 부문은 2010년 세계 1위(세계시장점유율 23%)에 올라선 이후 꾸준히 시장지배력을 높여왔다.
지난해에는 시장점유율 32%를 기록하며 확고한 글로벌 넘버1 스판덱스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조 회장은 일찌감치 “스판덱스 사업의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선 중국시장부터 공략해야 한다”며 직접 C(China)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중국 공략에 나섰고, 이후 베트남 생산기지 구축을 지휘하며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조 회장이 2014년부터 담당한 중공업 부문도 이듬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효성의 핵심계열사 중 하나인 노틸러스효성은 국내 1위 ATM 시장 점유율을 넘어 미국, 유럽, 아시아지역 등지의 시장 지배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1998년부터 미국에 ATM(현금지급기)을 수출하기 시작한 이후, 미국 지역의 주요 전시회에 직접 참가해 현지화 전략을 짠 조 회장은 미국 ATM 교체 시장을 본격 공략할 수 있는 차세대 하이브리드 ATM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노틸러스효성은 지난 2013년 기준 미국 전역의 시장 점유율 28.7%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섰다. 조 회장의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아시아시장 판매도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2015년 상반기에는 광동성 혜주에 약 2만5000㎡ 규모의 ATM 생산 공장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스판덱스와 중공업 등으로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뤄졌다는 것이 회사 내외부의 평가”라고 설명했다. 조현상 사장은 산업자재PG장(화학PG CMO 및 전략 본부장 겸임)을 맡게 된다. 1998년 효성에 입사한 조 사장은 타이어코드를 시장점유율 40%가 넘는 글로벌 1위 사업으로 성장시켰다. 이익도 5배 이상 키웠다.
현재 조현준 회장은 개인으로는 최대인 13.80%의 효성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석래 회장(10.15%)과 조현상 사장(12.21%)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36.97%에 달한다. 효성은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8조7375억원, 영업이익 8013억원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2015년에는 영업이익 9502억원을 기록하며 1조원 달성에 실패했지만 2016년에는 무난히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 공덕동 효성 사옥
▶조촐한 취임식, 100년 효성을 위한 포부
조현준 회장은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 1월 4일부터 닷새간 울산, 구미, 창원 등지의 국내 5개 생산 공장을 돌아보고 임직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효성 측은 “이번 현장 방문은 조 회장이 먼저 제안했다”며 “임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품질과 기술이 구현되고 있는 생산현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지난 1월 4일 구미의 스판덱스 공장과 노틸러스효성 구미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5일에는 효성그룹의 모태가 된 울산공장을 찾았다. 조 회장은 “울산공장은 전 세계 사업장에 사관생도를 보낼 수 있게 훈련시키는 사관학교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현장의 개선 아이디어를 칭찬하고 시상해 지속적으로 개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공덕동 본사에서 진행된 취임식에선 “효성의 새 시대를 여는 오늘 영광스러운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100년 효성으로 가기 위해 오늘부터 효성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 회장은 지난 50년간 효성과 함께한 임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3가지 실천 목표를 제시했다. 먼저 “효성을 경청하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조 회장은 “고객의 소리는 경영활동의 시작과 끝”이라며 “협력사는 소중한 파트너로서 세심한 배려로 상생의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현장에서 직접 느낀 고충과 개선점들이 기술 개발과 품질 혁신의 출발점이 된다”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작은 아이디어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배려하고 경청하는 문화를 정착 시키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실천목표로 조 회장은 “기술로 자부심을 갖는 회사로 만들겠다”며 “기술경쟁력이 효성의 성공DNA로 면면히 이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야구, 스키, 테니스, 축구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조 회장은 이날 취임식에서도 팀워크와 페어플레이 등 스포츠 정신을 강조했다.
조 회장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바탕으로 정정당당히 겨루되 반드시 승리하는 조직을 만들자”고 독려했다. 특히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All For One, One For All”을 인용하며 “팀워크로 끈기 있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때 승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마지막으로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세계를 향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도전해 100년 기업의 꿈을 이루는 주인공이 되자”며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3개 국어 능통, 다양한 인맥, 젊은 리더
조현준 회장은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세인트폴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일본 게이오대 법학대학원 정치학부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효성에 입사하기 전 일본 미쓰비시 상사와 모건 스탠리에서 근무하며 해외 활동영역을 넓혔다. 덕분에 영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하다.
정치,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미국, 일본, 중국 등지의 젊은 리더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의 정재계를 주름잡는 주요 인사들이 동문인 세인트폴스 고등학교 시절엔 동양인 최초로 야구팀 주장을 맡는 등 넓은 인맥을 쌓았다. 현재 세인트폴스 재단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며, 한국 동문회를 주도하고 있다.
재계에선 조 회장의 다양한 인맥과 경험 덕분에 전경련 회장을 지낸 아버지 조석래 회장만큼이나 글로벌 감각과 인맥을 갖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고 있다. 2014년 첫 외부활동으로 조석래 회장에 이어 한·일 경제협회 회장으로 나서게 된 것도 이러한 재계의 긍정적인 평가가 작용했다. 2015년 5월에는 한·일 주요경제인들의 모임인 ‘한·일 경제인회의’에 패널로 나서 ‘미래세대가 바라본 한·일 미래상과 협력방안’을 발표한 바 있는데, ICT산업 분야에서의 협력과 한국의 창조경제에 대한 투자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조 회장 자신의 일본생활 경험담과 사업가로서의 포부, 두 아이의 아빠로서 바라본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양국 기업인들로부터 “근래 보기 드문 인상적인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조현준 회장의 야구경영론 조현준 회장은 재계에서도 유명한 스포츠 마니아다. 야구, 아이스하키, 스쿼시, 테니스, 축구, 배구, 골프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한다고 알려졌다. 대학시절에는 야구, 미식축구, 스키 대표선수를 지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갖추고 있다. 조 회장은 그중에서도 야구를 가장 좋아하는데, 효성 입사 후 매주 일요일 효성 직장인 야구에 참가해 6년 연속 우승을 이끌어낼 만큼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조 회장은 야구와 경영이 비슷한 점이 많아 야구로 직원들과 소통하기도 하고 경영에 대해 배우며 장점을 공유한다”며 “야구는 개인의 장단점과 기록이 고스란히 데이터로 남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개인운동이면서도 팀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팀 스포츠다. 개인이 각자의 포지션과 역할을 충분히 해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를 맞았을 때는 팀워크가 승패를 좌우할 만큼 팀플레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팀워크를 강조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