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 교신도시 랜드마크인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상가(광교 월드스퀘어) 광장 한복판에 지난 12월 초 스케이트장이 등장했다. 마치 뉴욕 맨해튼 도심에 있는 복합 빌딩 록펠러센터의 아이스링크처럼 신도시 고층 아파트촌 한복판에 아이들이 스케이트와 썰매를 즐기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날 개장한 330㎡ 규모 스케이트장은 서울시청 앞 스케이트장의 4분의 1 크기다. 스케이트장이 들어서면서 겨울철 인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스트리트형 상가가 다시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복합 단지를 기획한 시행사 엠디엠은 아파트와 상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게 오락(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도입했다.
엠디엠 관계자는 “안전상 문제로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로 한정해 입장료를 무료로 하고, 스케이트 썰매 대여료도 저렴하게(2000원) 책정해 지역민들에게 즐길거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주말이면 어린이 300~400명이 스케이트장을 이용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광장 인근 카페와 식당, 대형 서점 등 입점 상가들은 홍보·판매의 장이 활짝 펼쳐지게 됐다.
인근 스트리트몰인 광교 아비뉴프랑처럼 주민들이 몰리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광교 월드마크 상가는 물론이고 주상복합 단지의 가치도 오를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신도시에서 입주민들이 교류하고 흥미를 느끼는 공간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거 신도시 아파트촌과 상가는 난개발의 대명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가를 쪼개서 구분소유권으로 선분양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 종합적으로 쇼핑공간을 개발하려는 개념이 약했다. 선분양만 제대로 한다면 쇼핑몰 운영 수익률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택지개발촉진법으로 형성되는 신도시의 도시계획 단계에서 주거와 일자리가 공존하는 자족도시를 지향하고 대규모 상업용지를 계획한다. 그러나 주택용지나 공립학교용지는 감정평가액이나 조성원가에 공급해야 하지만 상업용지만 가격경쟁입찰에 의한 낙찰가격으로 공급하다 보니 공급이 과다했다. 이 때문에 고밀도로 근린생활시설을 개발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선분양하는 것이 낙찰가액에 맞는 수익률을 내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분당과 일산, 중동 등 신도시 중심 입지에 대규모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고 많은 간판이 달린 유흥가 중심 상권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일종의 신도시 상가 ‘공식’이 됐다. 지역민들 입장에서는 자녀 교육에 유해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해당 지역의 평판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같은 반성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디벨로퍼들과 건설사들은 차별화된 콘셉트로 상권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과거 단지 저층에 부속처럼 있었던 것과 달리 최근 주상복합 상가는 주거시설과 상가시설이 분리된 형태에 중심 상업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외관과 업종으로 입주자들의 마음뿐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까지 끌어모으고 있다.
중견건설사 호반건설이 판교신도시에 공급한 주상복합 ‘호반써밋플레이스(2012년 12월 입주)’의 단지 내 상가 ‘판교 아브뉴프랑’이 새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꼽힌다. 상가를 선분양하고 빠지는 모델 대신 직접 운영, 상품구성(MD)을 철저히 하면서 기존 신도시 상가들과 차별화했다.
특히 공들인 것이 서울에서 이사 오는 판교 신도시 입주민과 직장인들 눈높이에 걸맞은 식당과 상점들이었다. 상가 구조도 기존의 흔한 박스 형태를 탈피해 유럽풍 스트리트 몰로 구성하고 독특한 조형물과 휴게공간을 심었다.
 위례신도시 아이파크2차 북카페
▶위례 아이파크2차 복합문화공간 북카페
위례신도시 아이파크2차 단지 상가가 대표적이다. 이곳 2층에는 쾌적한 복합문화공간 북카페 ‘니어 마이B’가 최근 개장했다. 일본의 카페형 서점 ‘츠타야’처럼 감각적이고 편안한 공간에 엄선된 책들과 꽃집, 독특한 수공예품, 프린트 베이커리(그림), 고급 가전을 함께 전시·판매한다. 입주민들은 스텀프타운이나 졸리 등 스페셜티 커피를 주문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의자에서 한껏 특별한 기분을 낼 수 있다. 매장 내 교육룸에는 소규모 그룹으로 어린이 영어 교실이나 인테리어 소품 만들기 등이 운영되고, 정통 몬테소리 교구로 맞춤 수업을 진행하는 ‘카사 데이 밤비니 몬테소리’ 키즈센터에서는 정규수업과 무료 교육 세미나가 진행된다. 이 공간은 자연친화적인 삶을 즐기며 지역문화를 교류하고, 본인의 취향과 개성을 살려 가치소비를 하며 위례에서 거주하는 3545 여성층을 겨냥해 마련됐다.
상가 앞 광장에는 성수동의 유명 빵집 ‘밀도’ 위례점도 하얗고 귀여운 외관을 뽐내며 서 있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미완의 도시 위례신도시에서도 ‘오아시스’ 같다.
 문정 엠스테이트 상가
▶문정 엠스테이트 창의적 공간 디자인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 상가 등이 들어선 문정동 복합단지 ‘문정 엠스테이트’ 사례도 흥미롭다.
아예 기획 단계부터 시행사 해냄개발이 지식산업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상가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려고 동양화 정서를 서양 사조인 팝아트 형식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권기수 씨를 기용했다. 우리나라에서 미술작가가 본격적으로 총체적인 공간 디자인 기획에 참여해 구현한 사례는 흔치 않다. 준공을 앞두고 마지막 단계에 법정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됐을 뿐이다. 권 작가는 본인만의 상징인 ‘동구리’ 소년을 꽃나무 형상 조형물에 담거나 광장에서 지하상가로 이어지는 아트리움에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 공간에 진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색다른 탐험길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게끔 한다.
이유훈 해냄개발 대표는 “문정동에 법조단지와 지식산업센터 등이 들어서는 가운데에 우리 복합 단지가 조성된다. 하지만 주변에 공원 외에 문화시설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공간에 문화적 색채를 더하고자 기획과 골조 설계를 마치자마자 작가와 협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포함해 문정지구에서 다양한 업무용 공간이 대거 들어서겠지만 차별화된 공간의 매력에 끌려 오피스텔 입주민이나 오피스와 상가 등에서 일하는 상주인구, 방문객들이 찾아오면 그만큼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인근 상가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노력은 상가 자체는 물론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주거 단지의 전체 가치를 끌어 올리는 효과가 있다.
강정구 CBRE GI 전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처럼 단순 판매를 넘어서서 차별화된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 성향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시행사들도 이 같은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며 “절반은 분양하고 나머지 절반은 핵심 임차인(key tenant)을 유치해 상권을 활성화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시험장)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신도시의 경우 외부 광역 상권이 목표가 아니라 지역 내 1등이 되는 것도 효과 만점이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단지 개발 디벨로퍼들이 입주 후에도 관리
기획 단계에서 준공 후 상가 운영까지 감안해 소비자들의 변화를 포착하려는 시행사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시행사들이 직접 경영하는 식당이 등장하는 것도 수요자들의 니즈를 섬세하게 포착해 기획에 포함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시행사 네오밸류는 지난해 초 자회사 ‘어반라이프’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공간을 꾸미는 일이다. 호텔업계, 디자인회사, 출판사, 외식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직원들이 모여 북카페 브랜드 기획·설립은 물론 서울 성수동의 빵집 ‘밀도’를 인수했다. 앞으로 수도권 신도시와 택지지구 곳곳에 자체 쇼핑센터 브랜드 ‘앨리웨이’를 조성할 예정이다. 손지호 네오밸류 대표는 “앨리웨이는 지역민들이 마실 나오듯 편안한 복장으로 가볍게 들를 수 있고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편안한 공간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엠디엠은 직접 개발한 광교와 판교의 복합단지 안에 ‘홀썸치킨’이라는 식당을 직영하고 있다. 기존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들과 차별화되는 고급 식재료와 넓은 실내 공간 등으로 지역 내 명소로 키우려는 것이다. 남악 신도시 옥암 푸르지오 개발 사업 등에 참여했던 내외주건도 외식 담당 법인을 설립해 교대역 인근에서 치킨집 ‘캔프’를 운영 중이다. 사당역을 대표하는 대형 상업시설 파스텔시티를 시행한 파스텔도 같은 건물 6층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올리브에비뉴’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상가가 과거에 물건을 파고 사는 ‘시장’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경험’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과거에 입지와 물리적 공간 구조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면 이제 공간이 유기체와 닮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꾸준히 유지·관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온라인 쇼핑의 확산과 1~2인 가구 증가, 공유경제 확산 등 최근 추세와도 궤를 함께한다.
 문정 엠스테이트 상가 내 조형물
▶역세권만큼 중요한 Mall세권
주거지 입지를 선택할 때 핵심 요인으로 꼽았던 역세권이 교통에만 기반한 것이었다면 최근 쇼핑공간에 기반한 ‘몰(Mall)세권’이 부상하고 있다. 스타필드 1호가 들어선 하남시와 2호가 예고된 고양 삼송 등이 분양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신세계그룹이 지난 9월 개장한 국내 최대 규모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쇼핑몰이라기보다는 한자리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스타필드 하남’은 백화점이나 대형 창고형 할인점 등은 공통적이지만 아쿠아필드와 스포츠몬스터 등 쇼핑 테마파크에 걸맞은 엔터테인먼트 공간, 전 세계 맛집을 끌어모은 음식료(F&B) 공간으로 다른 상권과 차별화했다.
쇼핑몰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면서 인근 아파트 단지도 덩달아 뛰는 효과가 나타났다. 단지 인근에 대규모 복합 쇼핑몰이 조성되면 쇼핑부터 문화, 여가생활까지 한곳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데다 교통여건도 좋아지는 등 생활인프라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하남시 평균 아파트 시세는 지난해 1분기 ㎡당 326만원이었지만 2분기 ㎡당 415만원이나 됐다. 11월 9일 기준 ㎡당 423만원에 달해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30% 가까이 뛴 것이다. 이케아가 들어선 광명시나 고양 삼송 등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2인 가구의 경우 본인의 주거 공간은 최소화하면서도 카페나 서점 등 외부 공간에서 가치 소비를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에게 쇼핑몰은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상가 안에 들어서는 업종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카카오프렌즈숍’처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는 상점이나 신발 편집숍 등이 상가 안에서도 목이 가장 좋은 곳에 입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최근 분양 상가는 프렌차이즈보다는 수요자들 라이프스타일과 연관이 있는 브런치 카페 등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며 “판교 라스트리트는 키덜트를 위한 피규어 스토어를 대규모로 마련해 각 층별로 특색 있는 수요자들을 끌어들인다”고 밝혔다.
특정 마니아 소비층을 겨냥한 소형 가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국내 최초 팝업 쇼핑몰인 ‘커먼그라운드’처럼 대형 컨테이너로 구성된 건축물이 등장해 백화점·복합상업 공간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의 마켓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