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이 물에 투자하는 이유…“블랙골드(석유) 이어 블루골드(물) 시대 올 것”
용환진 기자
입력 : 2016.09.22 10:40:12
두산중공업의 사우디 해수담수화설비
영화 <빅쇼트>는 남다른 혜안을 갖춘 한 펀드매니저가 대세를 거슬러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다. 미국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어서 화제가 됐다.
영화의 배경이 된 지난 2000년대 중반에는 오랫동안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상품을 이용해 집을 구입했다.
이들의 대출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금융상품은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받아 거래됐는데 <빅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는 이들 상품의 신용도가 과대평가됐다고 봤다. 최소한의 신용도조차 갖추지 못한 미국인들이 대출상품을 이용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이 부도 위험이 적다고 판단했기에 이들 금융상품이 부도날 경우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파생상품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시장에서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마이클 버리는 이들 CDS를 싼값에 대량으로 사들였고 결국 마이클 버리의 예상대로 부도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보험금을 수령해 큰 이익을 남겼다. CDS 투자로 그가 운용하던 펀드가 벌어들인 수익만 8억달러에 육박한다.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당시 월가를 주름잡던 투자은행들도 저금리의 지속과 주택담보 대출 상품의 안정성에 대해 의심조차 않던 상황에서 이들이 놓치고 있는 맹점을 예리하게 포착해 끝까지 물고 늘어진 마이클 버리의 통찰력과 결단력은 단연 돋보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마이클 버리가 지금은 어디에 투자하고 있을지 궁금해질 것이다. 친절하게도 영화는 말미에서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마이클 버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으로 큰돈을 번 뒤 자신이 운영하던 헤지펀드를 청산하고 개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가 투자하고 있는 자산은 단 하나인데 바로 물이다.(Michael Burry is focusing all of his trading on one commodity: Water)”
▶“물이 풍부한 국가, 수자원을 무기화할 것”
마이클 버리는 왜 물에 투자할까. 거품이 가득 찬 미국 부동산 시장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부동산 붕괴에 베팅했듯이, 자연 파괴에 따른 이상 기후 때문에 물의 희소가치는 향후 올라갈 수밖에 없어 물 관련 산업에 미리 투자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주요 이유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 때문이다. 물 산업의 특성상 물은 대체재가 없으며 지구 전체의 수자원량은 한정돼 있다.
기후변화는 물 공급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사라지면서 유역 주민 5000만 명이 물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3도 오르면 남부 유럽에서 10년마다 심각한 가뭄을 경험하게 되며, 5도 올라가면 히말라야 대형 빙하의 소멸로 중국 인구의 4분의 1과 인도인 수억명이 물 부족 사태를 겪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물의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현상을 예상하며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2003년 국제연합(UN)은 2050년까지 적게는 48개국 20억 명이, 많게는 60개국 70억 명이 물 부족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듬해 캐나다의 한 시민단체는 “산유국이 카르텔을 형성, 석유자원을 무기화했듯이 머지않아 물이 풍부한 국가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9년 세계경제포럼은 “석유 파동(Oil shock)이 아니라 물 파동(Water shock)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전 세계 인구의 40%가 심한 물 부족을 겪으며 강 유역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올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물 위기(Water crises)가 글로벌 리스크로 부각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자원 확보를 위해 거액의 거래가 이뤄지는 사례는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4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극심한 물 부족 문제에 시달리던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가 최근 이웃 네바다 주에서 500억갤런(1억9000만㎥)의 물을 4500만달러에 구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물 산업 규모 5960억 달러
석유·자동차·전력·IT이어 다섯 번째 규모
물 산업은 생활용수·공업용수를 생산해 공급하는 산업과 하폐수의 이송·처리 산업을 말한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전 세계 물 산업 규모는 5960억 달러로 석유(1조3580억달러), 자동차(1조1600억달러), 전력(6000억~8000억달러), IT(6 000억~6500억달러)에 이어 다섯 번째로 규모가 크다. 프랑스의 베올리아, 수에즈, 브라질의 SABESP, 이탈리아의 ACEA, 중국의 광동 인베스트먼트 등의 민간 기업들이 물 산업 성장을 이끌고 있다. 국내 물 산업도 빠르게 팽창 중이다. 지난 2013년 기준 91억달러에 불과했던 국내 물 산업시장은 오는 2018년 106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물 산업은 중국 물 산업 성장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물 산업은 2013년 기준 581억달러로 세계 물 시장의 11%를 차지하며 2018년에는 연 평균 9.2% 성장해 911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물 산업 무역에 있어서 중국은 약 30%에 달하는 최대 교역국이며 물 산업 최대 무역 흑자 대상 국가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중국으로 이온정수기,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밸브 부품 등 부품 및 소재의 수출이 늘고 있다.
물 산업은 크게 부품 및 소재, 상수 및 하수도망, 담수화 시장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는 파이프·펌브·밸브 등으로 구성돼 있는 부품·소재 산업이다. 기술력 향상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가 성장 여력도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 및 소재 시장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파이프 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으로 약 210억달러 수준이다. 최근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서 복합 소재의 파이프가 등장했고 파이프 산업의 성장 속도도 빨라졌다. 세계 파이프 시장은 매년 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2018년에는 258억달러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상수·하수의 운송 및 분배 등에 이용되는 핵심부품인 펌프의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113억달러이다. 내후년에는 139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수 처리 및 담수화에 사용되는 분리막은 부유고형물 등을 필터링하는 부품이다. 분리막 시장은 물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부 시장으로 꼽힌다. 분리막 기술은 물 자원 부족 현상을 해결해 줄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기술적 장벽이 높다 보니 소수의 전문기업들이 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분리막을 이용한 수처리 시장규모는 2015년 20억달러에서 2018년 28억달러로 3년 만에 40%의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담수화란 생활용수 등으로 직접 사용하기 힘든 바닷물로부터 염분을 제거하고 음용수 및 생활용수 등을 얻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이 시장은 생활용수 공급 문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부각된다.
수처리를 위한 살균 시장은 염소처리, UV살균, 오존처리법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염소 처리 시장 규모가 2015년 기준 26억달러로 가장 크다.
▶미국 상장 물 ETF
최근 5년 수익률 17.6~66.7%
국내 물 산업은 비상장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물 산업에 진출한 상장기업들도 수자원 관련 사업이 주력 산업이 아닐뿐더러 관련 사업 비중도 매우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물 산업 성장이 기업 주가에 반영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내 주식을 통해 물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또한 국내 증시에는 물 산업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돼 있지 않다.
따라서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마이클 버리처럼 물에 투자하려면 해외에 상장된 주식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물 산업에 투자하는 ETF가 여러 개 상장돼 있다. ‘PowerShares Water Resource s(PHO)’, ‘Guggenheim S&P Global Water Index(CGW)’, ‘PowerShares Global Water Portfolio(PIO)’, ‘First Trust ISE Water Fund(FIW)’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ETF는 전 세계 물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인데 최근 5년 수익률이 17.6~66.7% 수준으로 꽤 양호하다.
ETF는 일반펀드에 비해 수수료 부담이 훨씬 적은 데다가 거래소에서 쉽게 사고 팔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상품 유형이다. 김형래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로 수자원의 희소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다면 물 ETF에 대한 투자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한 소액으로 물 관련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공모펀드가 국내 증권사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가령 ‘삼성글로벌Water증권자투자신탁’에 자금을 맡기면 전 세계의 수자원 및 물과 관련된 주식에 투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 부족 문제가 심해질수록 이 펀드가 투자하는 기업의 가치는 올라가게 되고 이에 따른 투자수익은 펀드투자자에게 배분된다. 이 펀드는 최근 5년 수익률이 55.9%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