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일대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용산 철거 참사로 지난 7년간 시계가 멈췄던 ‘국제빌딩 주변 4구역’ 개발사업이 올 가을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이에 따라 용산역 전면부 개발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용산 푸르지오 써밋, 래미안 용산이 2017년 완공 예정이고 신용산역 북측, 한강로구역, 정비창 전면, 용산역 후면의 옛 국제업무지구 개발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용산 주한미군이 이전하고 용산공원을 중심으로 캠프킴 유엔사 수송부 용지가 개발되면 용산역 일대가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한국판 ‘롯폰기힐스’로 탈바꿈한다. 용산 미군기지 개발에는 2020년까지 5조원에 달하는 민간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용산 유엔사 용지
▶삼각지역-용산역-이촌역
다시 뜨는 용산 신 트라이앵글
이미 용산에는 한강변 주거용 건축물 중 가장 높은 건축물인 래미안이촌 첼리투스가 들어서 있다. 래미안이촌 챌리투스는 3개동(최고 56층) 460가구 규모로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지난 연말 전용면적 124.02㎡(약 37.5평)가 19억원에 매매됐다. 2020년까지 신용산역 일대를 중심으로 삼각지역, 용산역, 이촌역으로 연결되는 소위 ‘삼룡이 트라이앵글’엔 30~40층 규모의 주거용 및 업무용 고층 빌딩 14곳이 들어서게 된다. LS용산타워, 용산파크타워(7개동), 시티파크(5개동) 등과 함께 용산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게 되는 셈이다.
용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하락, 2009년 용산 철거 참사, 2013년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린 국제업무지구 개발 무산 등 악재가 이어지며 오랜 기간 침체의 길을 걸었다.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가 최근 서울지역 주택거래 동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용산구의 주택가격 변동률은 -7.8%로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떨어졌다. 특히 주택경기가 활황을 보인 최근 3년 사이에도 용산구는 집값 변동이 -1.5%를 보여 같은 기간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하락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용산역 일대 도시환경 정비사업이 하나 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용산이 서울의 중심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용산역 주변은 △신용산 북측 1, 2, 3구역 △용산역 전면 1-1, 1-2, 2, 3구역 △정비창 전면 1, 2, 3구역 △한강로구역 △국제빌딩 주변 1, 2, 3, 4, 5 구역 △용산 시티파크 △용산 파크타워 등 크게 7개 정비사업지로 나뉜다.
용산 주한미군 부지 전경와 인근지역 일대
▶용산 참사 7년 만에 4구역 착공
올해 용산 개발의 시동을 건 것은 한강로 3가 ‘국제빌딩 주변 4구역’ 개발사업이다. 국제빌딩 주변 4구역은 2001년 재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2009년 1월 세입자 보상 시위 중 철거세입자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3명이 부상한 용산 참사가 발생했다.
이어 2011년 시공사 계약 해지로 개발 이자 비용만 월 12억원을 조합이 부담하며 파산 위기에 몰리게 된다. 결국 서울시가 나서게 됐고 정비계획 변경안이 최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국제빌딩 주변 4구역 정비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5만3066㎡에 달하는 사업용지에 총 개발비 1조9000억원을 투자해 △주상복합 아파트 5개동(31~43층) △업무시설 1개동(34층) △공공시설(5층) △광화문 광장 크기의 문화공원 용산파크웨이(1만7615㎡)를 건설한다. 용산 참사 후 8년 만에 정상화의 첫발을 떼는 것으로 오는 10월 착공해 2020년 준공 예정이다.
현재 4구역 부지는 공사를 준비하는 펜스가 처져 있다. 최고 43층 높이의 7개동이 들어서게 될 4구역은 미국 뉴욕 배터리 파크(Battery Park)나 독일 베를린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 Platz)처럼 시민 공원과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주거·상업·문화복합지구로 만들어진다.
또 용산역 광장에서 미디어광장(90m), 용산파크웨이(271m), 용산프롬나드(657m)를 지나 중앙박물관까지 약 1.4㎞ 공원길도 생긴다.
특히 건물 1층 면적의 20%가 넘는 공간에 공공 보행통로를 두고 용산파크웨이 공원과 연계해 주거단지가 24시간 전면 개방된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개인 주거단지를 외부와 차단하는 추세에서 이렇게 공공에 열어두는 것은 국내 첫 시도”라고 말했다.
▶용산역 주변 이미 개발 한창 진행 중
용산역 주위는 이미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용산역을 걸어 나와 우측 용사의 집 자리에는 높이 150m, 30층 규모의 국군호텔(용산역 전면 1-1구역)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 앞으로는 용산 푸르지오 써밋(용산역 전면 2구역)이 올라가고 있다. 주거용 38층, 업무용 39층으로 2017년 7월 준공된다. 좌측으로는 래미안 용산(용산역 전면 3구역)이 공사 중이다. 내년 5월 준공예정으로 저층 업무시설과 고층 주거시설로 구성된 40층 건물 2개동이 들어선다.
래미안 용산 맞은편으로 한강로 길을 건너면 한류 돌풍을 이끄는 아모레퍼시픽의 본사 건물(국제빌딩 주변 1구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22층 높이, 연면적 15만9905㎡ 규모로 2017년 6월 준공 예정이다.
아모레 본사 건물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기존의 랜드마크였던 LS용산타워(구 국제빌딩·국제빌딩 주변 2구역)와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용산(국제빌딩 주변 3구역)이 우뚝 솟아 있다.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용산은 2012년 8월 준공된 단지로 36층 주거용과 32층 업무용 빌딩 2개로 구성됐다. 국제빌딩 주변 4구역 남서쪽 모서리에 있는 5구역에는 지하 7층, 지상 34층 규모의 의료관광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 용산 국제빌딩 주변 4구역 개발은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용산 주한미군 이전용지 개발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전망이다. 한남동 용산공원 인근에 흩어진 유엔사·수송부·캠프킴 등 총 18만㎡에 달하는 부지는 2020년까지 50층 이상 초고층 주상복합이 즐비한 한국판 ‘롯폰기힐즈’로 변신한다.
▶유엔사 수송부 캠프킴부지 복합개발
용산 한복판 알짜배기 땅을 품고 있는 용산기지는 미군의 평택 이전에 따라 2027년까지 약 243만㎡ 규모로 축구장 340배에 달하는 국내 최대 단일 생태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을 마련하고자 정부는 이 공원 주변에 흩어진 유엔사·캠프킴·수송부 부지를 복합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간 개발 세부계획을 두고 생긴 정부와 서울시 간 이견 탓에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월 발표한 ‘관광 인프라 및 기업 혁신투자 중심 투자 활성화대책’에 유엔사 부지 사업 착수를 포함한 용산 주한미군 기지 개발 계획을 포함시켰다. 미군기지 이전용지 개발계획을 구체화하고 2019년으로 잡혔던 개발 착수시기를 앞당긴 게 골자다.
이에 따라 도시경관을 유지하면서도 민간개발이 가능하도록 용적률 등 각종 규제를 푸는 방식으로 단계적인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 곳 중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곳은 유엔사 용지다. 총 면적 5만1753㎡ 규모인 이곳은 향후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숙박·업무·판매시설과 공동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85㎡를 넘는 중대형을 780가구까지 지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승인·고시한 유엔사 부지 조성계획을 통해 유엔사 부지 용도지역을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했다. 전체 면적의 13.2%를 공원(4.1%)과 녹지(8.1%), 도로(1.0%) 등 공공시설용지로 사용하는 조건이다. 단 과밀개발에 대한 서울시의 우려를 반영해 건폐율은 60%, 용적률은 600%를 적용하고 개발 최고 높이도 반포대교 남단에서 남산 7분 능선 조망이 가능하고 도시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인 90m로 결정했다. 유엔사 부지에서 일정부분 서울시에 양보한 만큼 국토부는 캠프킴 용지의 경우 입지규제 최소구역으로 지정해 용적률 800% 이상의 고밀도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입지규제 최소구역은 터미널과 역사 등 도시 내 거점 및 주변지역을 주거와 상업, 업무, 문화 등이 복합된 지역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용적률 등을 탄력 적용하는 특별구역이다. 이에 따라 캠프킴 용지에는 50층 이상 빌딩 8개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빌딩 수가 줄어들면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73층·264m)와 같은 초고층 빌딩을 짓는 것도 가능하다. 수송부 용지는 유엔사와 캠프킴 용지 개발 상황을 보고 나중에 개발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현재 세 용지 중 비어 있는 곳은 유엔사 용지뿐이며 다른 두 곳은 미군이 2017년까지 반납하기로 했다.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현재 국방부가 가진 유엔사 용지 소유권을 넘겨받는 양여 절차를 진행 중이다. 조만간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감정평가 등의 작업을 거쳐 올 하반기 민간에 매각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유엔사 부지를 시작으로 용산기지 개발에 오는 2020년까지 총 5조원의 민간투자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전경
▶국제업무지구 개발도 다시 밑그림
국제빌딩 주변 4구역과 함께 용산의 노른자 땅으로 꼽히는 곳이 용산국제업무지구다. 31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제2롯데월드(555m)보다 높은 620m 높이의 랜드마크빌딩 등 66개의 빌딩을 지어 동북아 최대 경제·문화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으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라는 수식어가 달렸지만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등 민간출자사 간 소송만 남긴 채 지난 2013년 사업이 좌초됐다. 이후 줄곧 방치돼 왔다가 올 들어 서울시와 코레일이 각각 재개발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나서 주목된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시는 최근 ‘서울역 일대 미래비전 수립 용역’을 발주해 서울역 북부역세권과 용산역세권을 연계해 개발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 곳 모두 코레일 땅이어서 당장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할 동력은 없지만 서울역 북부역세권과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역할 분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코레일도 올 초 용산국제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 개발 계획을 다시 세우기 위해 ‘용산 역세권 개발 기본구상 및 사업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했다. 용산역세권 개발 방향을 세우고 도입 시설과 개발 규모 등을 산정하는 내용이다. 비용과 분양가를 추산하고 자금조달 계획도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발이익이 선반영된 탓에 비싸게 책정되는 땅값 부담을 줄이고 개발 사업을 지속적이며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코레일 수장이 자주 바뀌는 문제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묶여 있다가 사업이 무산되면서 붕 떠버린 서부이촌동도 지난해 서울시가 이 일대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시는 조합이 설립돼 정비계획안이 마련되면 현재 2·3종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상향 조정하고 용적률도 높여줄 예정이다. 용산 개발이 정상 궤도를 찾아가면 삼각지-용산-이촌으로 이어지는 ‘삼룡이 트라이앵글’이 서울의 최고 상권·부촌 지위를 다시 찾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용산역 신라아이파크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파크웨이를 따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 관람을 즐긴 뒤 용산공원을 가로질러 전쟁기념관까지 걷는 관광 트라이앵글도 형성될 수 있다. 관광객이 몰리면 용산 전자상가도 일본 아키하바라처럼 다시 활력을 찾게 될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용산 일대는 단순 개발 사업이 아니라 서울의 상징이 되는 지역으로서 남산에서 용산공원, 용산국제업무지구,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요한 축”이라면서 “주택과 상업, 업무, 문화 등 복합시설이 용산공원과 연계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큰 그림 속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용산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부로, 국제업무지구가 재추진된다면 한강과 연계된 자원으로 관광객 유치의 상징적 주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용산은 2017년 미군기지 이전과 더불어 공원 개방과 연계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자리”라면서 “용산 면세점과 파크웨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등이 연계되는 새로운 관광벨트가 탄생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구역별 개발이 아닌 지역 전반을 관리하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area manage ment·지역경영)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희윤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은 “일본의 대표적인 금융·상업 업무지구인 도쿄 마루노우찌는 미쯔비시지쇼라는 대형 부동산 개발사가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용산은 구역별로 단절된 채 개발되고 있는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지사장은 “앞으로 고급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서고 서울의 상징이 될 새로운 용산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이 지역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