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
과거 프랑스인들의 유난스러운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이 단어는 1980년대 들어 의미가 많이 변했다. 지금은 동물성 지방을 영·미보다 많이 섭취하는 프랑스인들이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오히려 낮게 나오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프렌치 패러독스의 답을 다름 아닌 와인에서 찾았다. 프랑스인들이 습관처럼 즐기는 와인이 심장병 발병률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비단 심장질환뿐 아니라 하루 1~2잔의 와인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매일 와인을 즐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와인 마개를 딴 이후 공기에 노출되면 쉽게 맛과 향이 변해버리는 까닭이다. 새로운 와인을 매일 꺼내들지 않는 이상 그 온전한 향과 맛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술이라기보다 요리로 인식될 정도로 와이너리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와인의 보관은 풀리지 않은 숙제였어요. 전문적인 와인 관련 서적들을 살펴봐도 성냥을 태워 산소를 없애라거나 남은 와인을 페트병에 부은 후 병을 구겨서 보관하라는 등 민간요법 수준의 팁들이 대부분이죠. 문제는 이 방법들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거예요. 유럽에서도 남은 와인은 대부분 요리하는 데 쓴다거나 식초로 사용하고 있죠.”
서지선 제이엔터프라이즈 대표(33)는 3년 전부터 와인의 본 고장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원론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문득 소시지나 어묵 포장 속에 함께 들어있는 산화방지 패치를 와인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는 기존 제품들은 산소 흡수 속도가 느려 바로 사용할 수는 없었죠. 직분사 방식으로 패치를 만들어 산소 흡수 속도를 높인 결과 뛰어난 보관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을 확인했죠.”
지난해 그녀가 출시한 산소흡수 패치가 달린 기능성 마개 ‘플라빈(Flavin)’은 마개를 닫은 후 4시간 안에 병 안에 산소를 모두 흡수해 와인의 산패를 막는다. 이렇게 밀봉된 와인은 최대 1년간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한다.
“이전까지 와인 보관을 돕는 제품들은 크게 핸드펌프를 통해 공기를 빼내거나 산소보다 무거운 불활성 가스를 주입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두 방식 모두 산소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해 며칠이 지나면 향도 달아나고 가격도 상당하거든요. 플라빈 같은 경우는 완벽하게 산소를 제거하는 효율성과 함께 저렴한 1회용 패치를 다는 방식으로 실용성도 갖췄죠.”
반영구적으로 사용가능한 스테인레스 마개 1개에 700원 하는 산소흡수패치를 다는 방식의 플라빈은 면도기와 면도날처럼 소모품인 저렴한 패치만 재구입하는 방식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확실히 획기적인 제품이지만 알리기는 쉽지 않았어요. 우선 설명이 필요한 제품이다 보니 국제적인 박람회에 참가한 이후에도 바이어들의 반응도 더뎠고 특허를 얻는 비용도 상당하거든요. 1개국에 특허를 얻는 비용만 약 1000만원 가까이 드니 만만치 않았죠.” 2011년 서 대표는 4년간 재직하던 투자자문사를 그만뒀다. 퇴직금은 모두 특허출원에 사용해 현재 플라빈은 국내와 일본 특허등록을 마쳤고 유럽도 특허출원 중에 있다.
회사를 그만둔 서 대표는 오히려 더욱 분주해졌다. 야근은 물론 주말도 없이 유럽, 아시아, 미주를 누비며 플라빈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쉴 새 없이 팔았던 서 대표의 발품은 결국 빛을 발했다. 작년 하반기 완제품이 출시되자마자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판로가 거의 전무했던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 주로 수출되고 있는 플라빈은 유럽시장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국내에서는 이전까지 오픈마켓에서만 플라빈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향후 대형 백화점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지난해 말부터 수출을 시작했는데 미국에서는 벌써 패치 주문이 10만개 단위로 들어와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올해는 무난하게 1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는데 이것도 시작에 불과하죠. 향후 유럽에도 인지도가 쌓이면 회사가 안정 궤도에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사업을 한 아버지와 탄탄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착실한 남편을 둔 서 대표가 창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상호에 담겨있다. “제이(J)엔터프라이즈에서 J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저스티스(Justice)를 실현하고, 재미(Joy)를 찾는 동시에 하느님(Jesus)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복합적인 비전을 담아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