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구축해온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및 무단 수집’이라는 악재를 맞이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로 소비자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네이버가 AI(인공지능) 기술력과 물류 인프라를 전면에 내세워 이탈 수요 흡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는 최근 전체회의를 통해 쿠팡에 총 6246억8100만원의 과징금과 1680만원의 과태료 부과를 의결했다. 이는 국내 단일 기업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광고 파트너사 관리·감독 부실로 인해 이용자의 동의 없이 쿠팡 사이트로 이동하게 만드는 이른바 ‘납치광고’ 행위도 공식 적시됐다. 쿠팡 측은 행정소송에 나설 것을 예고했지만, 대규모 개인정보 이슈와 불투명한 광고 운영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틈을 타 경쟁 플랫폼들은 이용자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네이버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네이버의 AI 쇼핑 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지난 5월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875만 명을 돌파하며 전월 대비 7.5% 증가했다. 확고한 2위 자리에 안착한 모습이다. 반면 같은 기간 쿠팡의 MAU는 약 3490만 명대에 머물며 성장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성장세가 매섭다”라며 “업계 내의 다양한 여건을 고려했을 때 쿠팡을 위협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급격한 성장 배경으로 ▲국내 최대 검색 플랫폼과의 연계 효과 ▲독보적인 생태계 등이 거론된다.
실제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과는 태생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쿠팡은 ‘쇼핑몰’ 그 자체가 최초의 출발점이지만,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기원은 검색 포털사이트다. 사용자는 네이버에서 상품 검색어를 입력하면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에 등록된 상품의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판매자 역시 네이버플러스에 자사의 상품을 등록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 가격비교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 상품을 소개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상품을 검색하면 쇼핑 결과뿐 아니라 블로그, 카페, 뉴스, 클립 등 다양한 콘텐츠가 함께 노출되는 점도 강점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상품으로 유입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사실상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 유입 포털’을 보유하고 있고, 이 점이 가장 근원적인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약 60만 개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데이터, 수억 건의 상품 리뷰, 100억 건 이상에 달하는 블로그·카페 콘텐츠, 검색 데이터, 결제 데이터 등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커머스 플랫폼은 구매 데이터 중심이지만 네이버는 소비자가 구매를 고민하는 단계에서 남긴 검색 기록과 콘텐츠 소비 기록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게 큰 특징이다. 이와 함께 네이버의 독보적인 온오프라인 생태계 역시 강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배송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화도 눈에 띈다. 네이버는 도착 보장 서비스 ‘N배송’의 커버리지를 올해 25%, 내년 3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멤버십과 결합된 배송 혜택을 통해 이용자 록인 효과도 강화되는 추세다. 실제 멤버십 가입자의 주문 빈도는 25%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강력한 록인(Lock-in) 효과를 자랑하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도 주요 비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은 각종 네이버 서비스 결제 시 5% 적립·디지털 콘텐츠 무료 제공·무료 배송 및 반품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월 4900원으로, 쿠팡의 와우 멤버십(월 7890원) 대비 약 38% 저렴하다는 점도 경쟁력 중 하나다.
또한 네이버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을 통해 정기구독, 포인트 적립, 배송 혜택 등을 결합해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특정 스토어를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네이버도 멤버십에 기반한 ‘단골 기반 커머스’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성장세는 단순히 쇼핑앱 이용자 증가만으로 보기 어렵다”며 “검색과 콘텐츠, 커뮤니티, 결제, 멤버십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한 결과가 이용자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과는 나오고 있다. 이용자가 일단 많이 쌓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간 5만원 이상 적립한 이용자는 956만 명으로 1년 전보다 12% 늘었고, 10만원 이상은 636만 명으로 20% 증가했다. 포인트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충성 이용자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매출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네이버 커머스 매출은 지난해 3조6884억원으로 전년보다 26%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쿠팡 역시 여전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실제 논란 이후에도 쿠팡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에도 대다수의 기존 고객과 와우회원이 이탈하지 않은 셈이다. 업계에서는 그 배경으로 ‘로켓배송’이 만든 빠른 배송 경험에 주목한다. 상품 입고와 보관, 포장, 배송, 반품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자체 물류망과 기술 시스템으로 연결해 배송 속도와 서비스 품질을 높여왔다. 이 구조는 국내 이커머스 경쟁에서 쿠팡을 차별화한 핵심 자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로켓배송은 단순한 빠른 배송 서비스가 아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생필품과 신선식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생활 인프라가 됐고, 판매자 입장에서는 상품을 전국 고객에게 연결하는 유통 채널로 기능한다. 쿠팡이 2027년까지 로켓배송 가능 지역을 전국 대부분으로 넓히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이커머스 초창기에는 저렴한 가격이 핵심 경쟁력이었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경쟁은 가격에서 다양성으로, 이후 편리함으로 이동했다”며 “빠른 배송은 서비스 차별화 요소로 매우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쿠팡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3조원 이상을 투자해 신규 풀필먼트센터 확장, 첨단 자동화 기술 도입, 배송 네트워크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투자는 단기 비용 부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물류 효율과 고객 접근성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글로벌 체급도 커지고 있다. 쿠팡은 2026년 포춘 500대 기업 순위에서 132위에 올랐다. 국내에서 출발한 커머스 기업이 글로벌 기업 순위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은 쿠팡의 성장 단계를 보여준다.
신사업 부문도 장기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쿠팡의 성장사업 부문에는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핀테크, 대만 사업, 파페치 등이 포함된다. 2025년 성장사업 부문 매출은 49억 달러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성장사업 부문 매출은 28% 늘었다.
물론 성장사업은 아직 투자 단계다. 2025년 성장사업 부문 조정 EBITDA는 9억9500만 달러 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도 손실이 이어졌다. 하지만 쿠팡은 본업에서 확보한 고객 기반과 물류·기술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키우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쿠팡은 이제 단순 온라인 쇼핑 기업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류, AI, 콘텐츠, 음식배달, 핀테크, 글로벌 럭셔리 플랫폼까지 연결하는 커머스 생태계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두 회사는 최근 ‘배달앱’으로 대표되는 퀵 커머스 시장을 놓고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네이버와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 우버가 국내 1위 배달 서비스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 인수에 뛰어들었기 때문. 플랫폼·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우버와 네이버는 배민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배민 최대주주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 측에 인수 의향을 밝힌 상태다.
네이버는 배민 인수로 검색·쇼핑·멤버스 결합을 통한 생태계 확장이 가능하다. 네이버는 검색을 기반으로 한 지도 서비스, 네이버플레이스 등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 검색, 음식 주문, 결제, 리뷰를 하나로 이어 시너지를 창출하고,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혜택에 배민 할인까지 적용한다면 이용자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인수가 이뤄지면 네이버의 커머스 생태계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배민은 5월 기준 월간활성이용자수가 2341만 명에 달하는 배달시장 1위 사업자다. 두 회사의 사업 모델을 결합하면 검색부터 배달까지 한곳에서 진행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또 배민 B마트(퀵 커머스 서비스)와 사업 채널을 공유하는 등의 생태계 확장도 기대해볼 수 있다.
특히 자체 물류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네이버 입장에서는 배민과의 결합으로 약점으로 꼽혔던 배송 경쟁력을 높이고, 라이더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짤 수 있다. 특히 네이버가 배민 인수를 통해 진짜 욕심을 내는 것은 ‘사용자 데이터’다. 향후 사용자 위치를 비롯해 음식 취향은 물론 소비 패턴과 결제 데이터 등 생활밀착형 데이터를 대거 확보할 수 있다. M&A가 성사되면 배달앱 시장 지각변동은 불가피하다. 배달앱 1위 배민의 최근 입지는 쿠팡을 등에 업은 쿠팡이츠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쿠팡은 쿠팡이츠를 비롯해 로켓배송, 와우멤버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까지 묶어 배민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멤버십 혜택 강화와 물류 인프라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쿠팡의 수성 전략과 네이버를 필두로 한 추격 세력 간의 점유율 전쟁이 이커머스 시장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이버의 가장 큰 무기는 앞서 축적된 데이터와 AI다.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쿠팡 이탈 수요를 흡수하는 핵심축은 ‘AI 기술 중심의 커머스 구조 전환’과 ‘멤버십 기반 연계’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네이버는 쇼핑 전반에 적용된 AI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의 검색·구매 이력 등을 분석하고, 개인 맞춤형 상품 추천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올해 1분기 네이버 쇼핑 내 AI 추천 영역 거래액은 전분기 대비 50% 증가했다. 지난 2월 도입된 ‘AI 쇼핑 에이전트’ 역시 단순 검색을 넘어 구매 전환을 유도하는 실행형 서비스로 기능하고 있다. 단순히 온라인 쇼핑 행동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온오프라인 관심사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네이버 지도는 국내 대표 위치 기반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용자들의 검색·예약·리뷰·방문 인증 등 다양한 활동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이는 AI가 이용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성향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보유한 검색·콘텐츠·커뮤니티 데이터가 AI 추천 정확도를 높이는 핵심 자산이며, 이는 경쟁사가 단기간에 구축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강점 중 하나는 천문학적인 온오프라인 데이터가 매 순간 수많은 서비스를 통해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데이터 축적은 곧 고도의 AI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쿠팡은 시장 주도권이 흔들릴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역시 “대다수 고객은 여전히 쿠팡을 선택하고 있다”면서 “가격과 선택지, 배송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가 유지되는 한 쿠팡의 성장 엔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성장사업 부문에는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핀테크, 대만 사업, 파페치 등이 포함된다. 이들 사업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쿠팡이 보유한 고객 데이터, 결제 경험, 물류·운영 기술, 멤버십 기반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주목되는 해외 시장은 대만이다. 쿠팡은 대만에서 로켓배송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 회사는 2026년 대만에 네 번째 스마트 풀필먼트·물류센터를 열었다. 이를 통해 대만 내 로켓배송 적용 지역은 지리 기준 약 70%까지 확대됐다. 7일 내내 다음 날 배송을 제공하는 모델을 대만 시장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사업은 쿠팡에 중요한 시험대다. 한국에서 검증한 로켓배송과 풀필먼트 모델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다. 파페치도 글로벌 확장의 또 다른 축이다. 쿠팡은 글로벌 럭셔리 플랫폼 파페치를 통해 190개국 이상 고객과 1400개 이상의 브랜드, 부티크, 백화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확보했다. 파페치는 럭셔리 커머스 시장에서 글로벌 고객 접점을 가진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쿠팡의 기존 사업과 다른 차원의 확장성을 제공한다. 쿠팡플레이는 멤버십 생태계를 강화하는 콘텐츠 축이다. 콘텐츠는 쇼핑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멤버십 경쟁에서는 중요한 무기다. 고객이 와우 멤버십 안에서 배송 혜택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와 스포츠 중계까지 이용하면 멤버십 가치가 높아진다. 쿠팡이 쇼핑 플랫폼을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쿠팡플레이는 고객 접점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앞서 쿠팡이츠 역시 성장사업의 한 축이다. 음식배달은 쇼핑과 이용 빈도, 결제 경험, 지역 기반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쿠팡 생태계와 맞닿아 있다. 와우 멤버십과 결합될 경우 고객은 쇼핑, 신선식품, 음식배달, 콘텐츠를 하나의 앱과 멤버십 경험 안에서 이용하게 된다. 쿠팡의 전략은 분산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생태계 확장에 가깝다. 로켓배송으로 확보한 고객 신뢰와 물류 기술을 기반으로 대만 시장을 넓히고, 파페치로 글로벌 럭셔리 고객을 연결하며, 쿠팡플레이와 쿠팡이츠로 고객의 일상 접점을 늘리는 구조다. 물론 성장사업의 수익성 개선은 앞으로의 과제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