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사람은 깊이 잠들어 있지만 몸에 붙은 센서는 쉬지 않는다. 손가락의 반지는 밤사이 혈압과 맥박의 변화를 읽고, 팔의 작은 센서는 저녁 식사 뒤 올라간 혈당이 언제 내려왔는지를 기록한다. 가슴에 붙은 패치는 잠든 순간에도 심장의 리듬을 저장한다. 현관 한쪽에는 다음 날 산책을 도와줄 보행보조 로봇이 충전되고 있다. 아침이 되면 사용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병원의 검사 결과지가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에 펼쳐진 자신의 밤이다. 몇 시간 잤는지, 심박수는 어떻게 변했는지, 어제의 식사와 운동이 몸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가 숫자로 나타난다. 건강검진은 대개 특정한 하루에 이뤄지지만 몸은 나머지 364일에도 끊임없이 변한다. 웨어러블 헬스케어가 노리는 시장은 바로 이 긴 공백이다.
웨어러블 헬스케어의 첫 번째 시대는 걸음수를 세는 시대였다. 하루 1만 보를 채웠는지, 운동 중 심박수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었다. 이제 시장은 ‘얼마나 움직였는가’에서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한 번의 정확한 숫자보다 장기간 이어지는 패턴이다. 병원에서 측정한 공복혈당은 검사 당일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최근 다이어트 시장에서 핫해진 연속혈당측정기는 식사와 운동, 수면 전후의 변화를 며칠 동안 연결해 보여준다.
진료실에서 잰 혈압이 정상이더라도 출근길이나 업무중, 수면 중 혈압이 계속 높을 수 있다. 짧은 심전도 검사에서 발견되지 않은 부정맥도 일주일 이상 심장 리듬을 기록하면 포착될 가능성이 커진다. 웨어러블은 병원의 검사를 대체한다기보다 검사 사이에 비어 있는 시간을 데이터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환자가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거나 “밤에 혈압이 오르는 것 같다”고 말로 설명하던 경험이 시간대별 숫자로 바뀌는 것이다. 건강관리의 단위도 병원 방문에서 생활 장면으로 세분된다.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잠들었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약을 먹은 뒤 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해석된다. 웨어러블이 만드는 가장 큰 변화는 검진 장소를 손목이나 손가락으로 옮긴 것이 아니다. 건강 상태를 한 장의 결과표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으로 바라보게 했다는 데 있다.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은 글로벌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시장이 2025년 452억9000만 달러에서 2030년 759억8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5년간 약 1.7배 커지는 규모이며 연평균 성장률은 10.9%다. 이 숫자에는 스마트워치와 활동량계뿐 아니라 의료용 패치, 연속혈당측정기, 심전도 기기, 스마트의류와 원격환자모니터링 장비가 포함된다.
시장을 키우는 첫 번째 힘은 만성질환이다. 당뇨병과 고혈압, 심혈관질환은 한 번의 치료로 끝나기보다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두 번째 힘은 고령화다. 고령자가 병원을 자주 방문하지 않고도 혈압과 심장 상태, 보행 능력을 살필 수 있다면 환자와 보호자, 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센서의 소형화다. 건강기기는 손목시계에서 반지와 패치, 이어폰과 의류로 이동하고 있다. 사용자가 기기를 의식하지 않고 오래 착용할수록 더 많은 생활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네 번째 힘은 인공지능(AI)이다. 센서는 숫자를 만들지만 인공지능은 그 숫자에서 평소와 다른 변화나 반복되는 패턴을 찾는다.
KT 엔터프라이즈의 2026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웨어러블이 단순한 활동 추적기에서 능동적인 건강관리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의 수익 구조도 기기 판매에서 데이터 분석과 센서 교체, 구독, 원격관리와 병원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웨어러블 본체는 시장에 들어가는 입구이고 지속적인 관리 서비스가 그 뒤를 잇는 구조다.
웨어러블 헬스케어는 하나의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산업이 겹쳐 있다. 대사 건강에서는 연속혈당측정기가 음식과 운동에 따른 포도당 반응을 보여준다. 아이센스의 케어센스 에어(CareSens Air)는 5분마다 포도당을 측정해 하루 288개의 데이터를 만들고 한 센서를 최대 15일 사용한다. 제품보다 중요한 변화는 환자 혼자 숫자를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데이터를 건강관리자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혈관 영역에서는 측정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스카이랩스의 카트 비피(CART BP)는 손가락에 끼우는 반지형 혈압감시기로 수면 중에도 혈압을 자동 측정한다.
휴이노의 메모패치(MEMO Patch)는 가슴에 부착해 최대 14일간 심전도를 기록한다. 두 제품은 진료실에서 짧게 측정하던 혈압과 심전도를 생활 속 장기 데이터로 확장한다.
수면과 예방 건강 영역에서는 갤럭시 워치와 갤럭시 링(Galaxy Ring) 같은 소비자 기기가 앞에서 있다. 이들 기기는 수면 시간과 심박, 활동량을 분석해 회복 상태와 생활 습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웰니스 점수는 병 진단과 구분해야 한다.
사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의 점수보다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반복되는 변화다. 웨어러블은 움직임에도 개입한다. 위로보틱스의 윔 에스(WIM S)는 허리와 다리 움직임을 감지해 걷는 힘을 보조하고, 엑소시스템즈는 근육과 관절 신호를 활용해 재활과 근골격 건강관리를 지원한다. 혈당 센서와 심전도 패치가 몸을 관찰하는 기기라면 보행로봇과 재활 센서는 몸의 움직임을 바꾸는 기기다. 같은 웨어러블이라는 이름 아래 측정, 예측, 코칭, 진단 보조와 재활이라는 서로 다른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웨어러블이 몸의 서로 다른 신호를 읽기 시작하면서 다음 경쟁은 흩어진 정보를 누가 하나의 경험으로 묶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전선을 펴고있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삼성의 웨어러블 헬스케어 사업은 갤럭시 워치와 링을 판매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워치는 수면과 심박, 체성분, 혈중산소와 활동 데이터를 측정하고, 링은 잠자는 동안의 회복과 활동 변화를 기록한다.
버즈는 음악을 듣는 이어폰에서 주변 소음과 청력 환경을 관리하는 기기로 역할이 넓어지고 있다.
이 정보는 삼성 헬스(Samsung Health)에 모여 수면, 활동, 영양, 마음건강과 생체신호라는 영역으로 정리된다.
스마트싱스(SmartThings)에 연결된 TV와 냉장고, 에어컨과 실내 기기는 식사와 수면, 소음과 온도라는 건강의 생활 맥락을 더한다. 삼성헬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는 7700만 명 이상이고 스마트싱스의 연결 이용자는 4억 6000만 명이다.
이 규모는 건강 기능을 의료기기 사용자에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전자기기 경험 안으로 확산할 수 있는 기반이다. 삼성은 의료와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젤스(Xealth)는 500곳 이상의 병원과 70곳 이상의 디지털 헬스 솔루션을 연결하며 웨어러블과 가정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의료진의 환자 관리 과정으로 옮기는 다리 역할을 한다.
삼성의 확장 시도는 몸을 측정하는 기기를 넘어 몸을 직접 움직이는 로봇으로도 향했다.
삼성전자는 2019년 보행강화동기시스템(GEMS)을 공개하고 엉덩이 관절의 움직임을 돕는 젬스 힙의 안전성을 국제표준으로 인증받았다. 이후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 봇핏(Bot Fit)의 상표와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인탑스(Intops) 등 협력사와 생산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봇핏은 보행이 불편한 고령자와 재활이 필요한 사용자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운동과 근력 향상에 활용하는 제품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디지털헬스넷은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이 단순 보조 도구를 넘어 임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웨어러블이 더 많은 데이터를 만든다고 의료가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문턱은 정확도다. 소비자용 기기의 수면 점수와 활동량은 생활 습관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수치가 의료적 진단에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을 움직이거나 센서가 피부에서 뜨고 착용 위치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두 번째 문턱은 과잉불안이다. 수면 점수가 낮았다는 이유로 잠을 못 잤다고 믿거나 식후 혈당이 올랐다는 이유로 특정 음식을 무조건 피할 수 있다. 알림은 확인해야 할 신호이지 질병의 확정 판정이 아니다. 세 번째 문턱은 비용이다.
연속혈당측정기는 센서를 반복해서 교체해야 하고 일부 기능에는 구독이나 분석 서비스 비용이 붙는다. 의료용 패치는 본체보다 검사와 판독, 진료비가 중요하다. 웨어러블 시장의 실제 가격은 기기 상자에 적힌 금액이 아니라 1년 동안 지속해서 사용하는 데 필요한 총비용이다. 마지막 문턱은 데이터의 책임이다. 수면과 식사, 이동, 심박과 혈당이 결합되면 개인의 생활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정보가 진료에 쓰이는지, 보험과 마케팅에 활용되는지에 따라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봇핏 사례처럼 기술 개발과 실제 상용화 사이에도 긴 거리가 존재한다.
임상적 효과와 안전성, 가격과 사후관리, 생산 규모와 시장 수요가 함께 증명돼야 연구실의 기술이 소비자의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다. 웨어러블이 병원이 될 필요는 없다. 병원에 가기 전 몸의 변화를 발견하고 생활 습관을 바꾸거나 의료진과 상담할 시점을 알려주는 문지기만 되어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시장의 승자는 가장 많은 숫자나 가장 화려한 시제품을 보여주는 회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측정한 숫자를 해석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며 실제 행동과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기업이 웨어러블 헬스케어의 다음 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