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장이 세아 제2의 창업이라고 하는 사이판 공장, 그리고 뒤를 이어 야심차게 진출한 첫 중미 시장 과테말라. 두 곳 모두 김 회장에게는 가시밭길이었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어려움을 딛고 끝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김 회장은 그 공을 임직원에게 돌린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를 ‘직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라고 썼다.
“어느 회사든 실제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직원들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생각입니다. 경영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직원들이 노력한 만큼 성장합니다. 축구팀이나 야구팀의 경우도 감독이 아무리 완벽한 전략과 전술을 세워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패배합니다.”
그가 직원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창업 후 2년이 지난 1988년이었다고 한다.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회사에 애착을 가질까? 직원들이 애사심으로 뭉치고 주인의식을 가지려면 사장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였다고 한다. 그 결론이 바로 ‘직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였다.
말로는 쉽다. 그러나 직원들 입장에서는 사장은 사장이다. 아무리 사장이 직원을 친구처럼, 동생처럼, 조카처럼 대한다 해도 오너와 월급쟁이 사이에는 큰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게 사실이다. 행동으로 입증해야 했다. 그게 솔선수범이었다. 말은 쉽지만 이 역시 실천하는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는 거의 없다.
“지금도 제가 회사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솔선수범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상급자가 해야 합니다. 저는 최상급자였기에 언제나 끝까지 남았고 힘든 일은 먼저 하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자기만 쏙 빠지는 상급자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그런 상사를 신뢰할까요. 자신을 희생하며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하는 게 리더입니다. 그렇게 리더가 직원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때 직원들은 스스로 움직입니다.”
그는 사업 초기 국내 임가공 공장에서 문제가 생겨 밤샐 때 항상 막내 사원부터 퇴근시켰다. 마지막 공장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가는 사람은 김 회장이었다. 사이판에서 자체 공장을 가동한 후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직접 들었다. 김 회장은 “그 덕에 이름은 일일이 기억 못 해도 얼굴은 다 안다”고 한다. 그는 직원들의 로열티가 언제 올라가는지를 그렇게 체득했다. 창업 초기 원사 파동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 서울 사무소와 대전 공장을 오가며 어려운 일은 팔 걷어붙이고 해냈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로열티다.
사이판 공장에서 납기를 맞추지 못하겠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서울 본사 직원 한명만 남기고 전원 사이판으로 2900km를 날아가 팔을 걷어붙여 일한 것도, 과테말라에서 납치된 법인장이 필사의 탈출을 하다 총을 맞았을 때 바로 수술 현장으로 달려간 것도 직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게 몸에 뱄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사이판에 간다고 납기를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병원으로 달려간다고 법인장 수술이 잘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있다. 직원의 마음을 얻는 일. 김 회장의 그런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졌고, 행동이 습관이 됐고, 습관은 세아의 자산이 됐다.
외환위기가 엄습한 1997년, 세아상역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 불요불급한 비용 지출은 최대한 억제하고, 원가 절감 및 생산성 향상에 총력을 다한다. 모든 기업들이 그렇게 했다. 이때 다른 회사와 차별화되는 세아의 포인트는 임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는 점. 직원들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매출을 늘려 위기를 정면돌파하자”고. 그는 내부의 살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수익을 늘려 위기를 극복했다. 믿기 힘든 수치가 나왔다. 1997년 매출액은 337억원. 다음 해인 1998년 매출액은 이보다 2배가 더 되는 701억원. 직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솔선수범은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직원들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이면 되레 독이 된다. 그래서 솔선수범과 함께 갖춰야 할 덕목은 ‘경청’이다.
“궂은 일에 팔 걷어붙이는 리더의 희생 못지않게 중요한 건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입자세입니다. 그게 바른 소통의 시작입니다. 리더가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할 때 비로소 조직 혁신이 가능해집니다.”
세아에는 독특한 회의 방식이 있는데 그게 화백(和白) 제도이다. 신라 시대 진골 이상의 귀족 출신들이 모여 나라의 중대사를 논의할 때 적용됐던 만장일치 제도. 그 화백 제도를 세아에서 시행하고 있다. 물론 100% 찬성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의견을 수렴해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다.
글로벌세아의 김기명 부회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토의를 통해 가능한 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유도한다”며 “과테말라에 첫 중미 생산법인을 설립할 때에도 오랜 토론 끝에 전원 찬성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말한다.
그는 “김 회장의 경우는 늘 마지막에 본인의 의견을 말하며 절대 직원들을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유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본인의 생각과 다를 경우 ‘사실 저는 이런 생각이었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마지막에 양보한다”고 보완 설명한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