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 다니는 50대 초반의 A씨.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 지난 시절을뒤돌아보니 다소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뭔가 꼬였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윗세대인 지금의 586 선배들이 학과 사무실에 넘쳐나는 입사지원서 중 하나를 골라 쉽게 취업하는 모습을 봤지만 나름의 뜻이 있어 당시 대학생활을 즐기자는 분위기와는 달리 미래 준비도 착실히 했다. 그런데 졸업 즈음에 IMF가 터졌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탓에 갈 일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IMF의 후유증으로 눈에 차는 일자리는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구직활동을 시작해 원서만 100여 장 넘게 썼고, 어렵사리 취업을 했다. 그런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 소리듣는다. 요즘 청년층들은 자기들도 어렵다고. 그런데 나라가 망해 일자리들이 사라진 것과 요즘 같은 시대의 일자리 부족, 어느 것이 더 암울했을까.
1970년대생들은 직전 세대인 586과 아랫세대인 MZ 사이에 딱 끼인 세대다.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인생의 성장과정을 묵묵히 걸어왔다. 한때 자유로운 X세대로 불리기도 했지만, 사회 내 ‘성정’은 분고분해야 했다. 물론 치열하게 산 측면도 있다. 베이비부머의 자녀들로 태어나 세대 내 숫자가 많았고, 그래서 인생의 걸음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한 반 구성원은 50명이 넘었고, 대학 입학 경쟁은 치열했다. 그래도 그 과정을 으레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커왔다.
그런데 온라인 발달로 사회가 급속하게 변하면서 70년대생들의 가치관은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70년대생들이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를 가질 즈음 MZ 세대란 용어가 나왔는데 단지 용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X세대보다 더 개인적 성향이 강한 이들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자, 전체 큰 그림을 봐야 하는 조직의 리더는 70년대생을 건너뛰고 이들을 우대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X세대는 세대 담론의 투명인간이었다. ‘워라밸’과 ‘욜로족’으로 상징되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민주화 주역이자 고도 성장기 과실을 향유하며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한 ‘윗세대’와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다 하는 ‘센 아랫세대’에 껴 ‘피기도 전에 지는 세대’ ‘영원한 조연 세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20년 이상 주름잡았던 60년대생 뒤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정혜영 정의당 의원 같은 MZ가 물려받는 형국이었다.
기업에서도 IT기업들이 급부상하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80년대 이하 세대가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IT 대기업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처럼 60년대생이 설립한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상대로 보이는 70년생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양상이 바뀌고 있다.
1970년대생들이 인구나 소비 측면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중위연령은 약 45세, 평균연령은 43세다. 우리나라의 중위연령과 평균연령은 X세대가 20대일 때는 20대, 30대일 때는 30대,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은 40대가 됐다. 중위연령에 해당하는 세대가 그 사회의 시대정신을 이끈다. 예전에는 40대라 하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50대 초반에서 40대가 된 X세대는 여전히 젊다.
X세대는 가장 힘 있는 소비자 집단이기도 하다. 인구도 많고 경제력도 탄탄하다. 그냥 돈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최신의 트렌드를 소비한다. 중년이 됐어도 수동적 소비자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가장 트렌디한 것을 만들어내는 콘텐츠 제작자, 인플루언서, 경영자에 X세대가 다수 포진해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콘텐츠와 비즈니스에 MZ세대가 열광한다. 실제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황동혁 감독(1971년생)과 그 뒤를 이어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지옥>의 연상호 감독(1978년생),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의 산파 방시혁 하이브 의장(1972년생) 등 글로벌 한류 붐의 주역도 1970년대생이다.
1970년대생들은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자수성가와 계층 이동이 가장 활발했던 세대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71년생에서 1975년생의 경우, 하위층 출신이 상위층 직종을 얻은 확률에 대한 상위층 출신이 상위층 직종을 얻은 확률의 비가 1.93에 그쳤다. 이전 세대보다 확실히 낮다. 즉, 1971년생에서 1975년생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계층 이동이 그만큼 활발했다는 의미다. 1976년생에서 1980년생은 그 수치가 더욱 낮아 1.66에 그친다. 1980년대생부터는 이 수치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X세대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했다’는 설명이 붙는다. X세대는 산업화 수혜를 입은 산업화세대(1940~1954년생)와 1차 베이비부머세대(1955~1964년생) 부모 품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10대까지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19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비하며 ‘신세대’로 화려하게 등장했고 대학 시절 삐삐, 휴대폰 등을 사용한 경험으로 스마트폰 시대 전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디지털 환경에 비교적 익숙하다. 하지만 막상 사회 진입 과정은 만만찮았다. IMF 외환위기와 닷컴버블 붕괴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취업에 좌절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속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결혼, 출산으로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어느 정도 자산 축적에도 성공했다.
<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의 저자 이선미 씨는 “X세대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평균이었고, 21세기 모든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의 시작에 그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거대한 소비자 집단이자 유권자 집단이기도 하다. 그들은 20대와 30대를 거치며 대한민국 사회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사회, 문화, 경제,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X세대의 한계와 고민도 여전하다. 산업화 시절을 겪은 부모 영향을 받아 ‘평생직장’을 목표로 조직에 충성했지만 정작 사내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X세대는 팀장이나 임원급으로 성장했지만 과거 선배들이 누렸던 대접은 온데간데없고, 조직원인 MZ세대로부터는 ‘꼰대’ 소리를 듣기 일쑤다. 온갖 실무를 도맡아 하고 조직 관리까지 하면서 신구세대 갈등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한마디로 ‘낀 세대’ 신세다.
모 대기업의 인사 팀장은 “단순한 직급이 아닌 역할을 중시하는 수평적 조직 제도가 도입되면서 능력 있는 MZ세대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70년대생의 포지션이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전했다. 위로는 산업화 수혜를 누리며 비로소 실무에서 벗어난 베이비붐세대, 아래로는 제 목소리를 높이는 MZ세대의 중간에 끼면서 점차 존재감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70년대생이 운다> 저자 박중근 씨는 “1970년대생이 실무와 조직 관리 역할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급과 권한이 올라갈수록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조직 관리를 핑계로 실무를 하지 않았던 과거 상사들이 잘못됐을 뿐이다. 조직 경영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지는 과정에서 1970년대생이 어려움을 겪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中 치링허우·美 X세대 활약 도드라져
日 ‘로스제네’ 불리며 프리터족 대명사
미국의 1970년대생들은 ‘원조 X세대’다. 기성세대와 달리 톡톡 튀는 세대라는 뜻에서 붙여진 ‘X세대’라는 명칭은 본래 미국에서 시작됐다. 국내 X세대와 다른 점은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미국 X세대는 부모가 모두 맞벌이를 하거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1970년대부터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혼율이 늘어난 결과다. 학교를 마치면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열쇠 아동’이라고도 불렸다. 현재 이들 원조 ‘X세대’는 미국 정계·경제·문화 분야 곳곳에서 활약을 펼친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X세대’는 백악관 실세로 자리잡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인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1976년생), 브라이언 디스 전 국가경제위원장(1978년생),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1974년생) 모두 X세대다.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 면면 역시 화려하다. 괴짜 사업가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1971년생)를 포함,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1973년생)와 세르게이 브린(1973년생),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1972년생) 등이 포진해 있다.
중국 역시 1970년대생 약진이 두드러진 나라다. 1970년대생 세대를 ‘70 후’라는 뜻으로 ‘치링허우’라 부른다. 치링허우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세대다. 1960년대생 ‘류링허우’에 비해 활동력이 높고 1980년대 이후 세대인 ‘바링허우’ ‘주링허우’에 비해 경제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상 중국 사회의 핵심 세대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들 영향력이 더 커졌다. 1953년생인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의 뜻을 내비치며 차기 권력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측됐던 류링허우가 후계자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차기 후계자가 치링허우세대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지며 중국 정계 중심으로 떠올랐다.
모든 나라의 1970년대생이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생을 부르는 별칭이 ‘로스제네’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줄임말로 ‘잃어버린 세대’라는 뜻이다. 사회·경제 활동에 참여조차 못하는 이들을 두고 ‘열외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로스제네’라 불리는 이들 세대 규모는 약 2000만명이다. 이 중 500만명이 비정규직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후 닥쳐온 취직 빙하기(1994~2005년)를 맞아 이 세대의 상당수가 정규직을 얻지 못하며 경제 최약자층으로 떨어졌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프리터, 일용 파견 노동자, 월 수백 시간의 수당 없는 노동을 강요당하는 ‘무늬만 관리직’들이 로스제네에 속한다. 이들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복지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병수·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