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9년 미국 뉴욕은 거대한 마천루가 도시를 점령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이 높게 솟은 빌딩 사이를 누비는 건 ‘에어버스’, 하늘을 나는 자동차다.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로 구분하던 2차원적 도로 구분은 상·하·좌·우, 3차원으로 바뀌었다. 쉽게 말해 왕복 2차선, 4차선 등의 도로는 상·하 왕복도로가 됐다. 50층이든 100층이든 상관없다. 아무리 높은 빌딩에서 에어버스를 불러도 밖으로 통하는 문만 열면 이 정도 높이는 기본이라는 듯 둥둥 뜬 상태로 대기 중이다….
1997년에 개봉된 영화 <제5원소>의 한 장면이다. 무려 26년 전에 완성된 영화 속 도시의 모습은 한없이 높고 깊다.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란 우려는 영화적 상상력 앞에선 쓸데없는 기우일 뿐, 공간을 가르며 등장한 수십, 수백 대의 에어버스가 위아래로 차선(?)을 지키며 안전하게 이동 중이다. 높낮이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 시대.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일상화된 영화 속 미래는 교통수단부터 도시계획, 부동산 개발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여기서 잠깐. <제5원소> 속 뉴욕의 미래는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국토교통부의 ‘K-UAM 로드맵’을 살펴보면, 올해 UAM(Urban Air Mobility) 글로벌 시장 규모는 61억달러나 된다. 초기 상용화 시점인 2025년에는 109억달러, 2030년에는 615억달러로 급성장, 2040년에 이르면 60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모건스탠리는 2040년 글로벌 UAM 시장이 1조달러까지 성장한다고 예측했다.
UAM은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다. 앞서 말한 하늘을 나는 자동차(기체)로 승객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미래의 도시교통체계다. 흔히 에어택시나 에어버스, 드론택시, 플라잉카, 스카이버스 등으로 불리는데 단순히 기체만을 가리키는 용어는 아니다. 정류장인 버티포트(Vertiport), 교통정보와 통신 인프라, 기존 교통시스템과 연계하는 새로운 교통체계 등 관련된 모든 시스템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현재 UAM은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33곳이나 되는 지구에서 교통 혼잡과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체계로 떠올랐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개발과 상용화를 서두르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올 8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전라남도 고흥에서 1단계 실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후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수도권에서 2단계 실증사업을 완료한 후 2025년부터 UAM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시장에서 UAM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UAM 전용주파수를 공급하고 내년부터 UAM에 실시간 노선 안내, 도심 기상 상황 등을 제공하는 교통관리체계가 본격 개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상망 간섭이 없는 UAM용 주파수를 구축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기술 개발에 착수하기로 했다. 항공 안전과 보안이 확보된 ‘UAM 교통관리체계’ 구축도 추진한다. 국토부는 지난 5월 ‘도심항공교통의 2단계 실증사업’을 위한 버티포트 입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공개된 건 아라뱃길 노선, 한강 노선, 탄천 노선 등 총 3단계. 1단계는 아라뱃길 노선(드론시험인증센터∼계양 신도시)으로 내년 8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실시된다. 목표는 준도심지의 안정성 검증이다. 2단계는 한강 노선(김포공항∼여의도 공원∼고양 킨텍스)이다. 2025년 4월부터 한 달간 실시된다. 2025년 5월부터 한 달간 진행되는 3단계는 탄천 노선(잠실 헬기장∼수서역)에서 실시된다.
하늘로 이동하는 UAM과 기존 비행기의 가장 큰 차이는 도심형 교통체계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착륙에 필요한 넓은 땅을 확보하기 어렵고 고층 빌딩 사이로 이동해야 한다. 환경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적인 탄소배출권 강화에 일부 유럽 국가에선 기존 항공기들의 단거리 비행을 점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친환경 파워트레인, 즉 전기수직이착륙(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and Landing)이 가능한 개인항공기가 주목받고 멀티콥터 형태의 UAM 기체 개발이 이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역시 완성차기업들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제너럴모터스(GM) 등 주요 기업들이 UAM 선점을 향한 여정에 돌입했다. 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이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수석부회장이던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현장에서 UAM 사업 전략을 발표하고 PAV 콘셉트 ‘S-A1’을 선보였다. 1회 충전 후 최대 비행거리는 약 100㎞. 최고 시속은 290㎞에 이른다. 이미 2019년부터 UAM 전담부서를 구성한 현대차그룹은 2021년 10월에 UAM 미국법인 ‘슈퍼널(Supernal)’을 설립한다. ‘뛰어난 품질의’ ‘천상의’ 등의 의미를 품은 슈퍼널은 미래 항공 모빌리티를 전문적으로 연구·개발하는 현대차그룹 산하 독립법인이다. 지난해 7월 영국 판러버 국제 에어쇼에 참가해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UAM 인테리어 캐빈 콘셉트’ 모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모델엔 UAM의 핵심 키워드들이 숨어 있다. 다수의 프로펠러로 구동하는 추진 시스템은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구성된 친환경 파워트레인이 기반이다. 헬리콥터와 같이 수직이착륙이 가능해 착륙장인 버티포트만 있으면 간편하게 승하차할 수 있고, ‘하늘의 택시’란 개념에 탑승 인원도 5명으로 설정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인 신재원 사장이 총괄하고 있는 슈퍼널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시의 UAM파트너로 선정돼 LA시내에서 할리우드까지 비행하는 에어택시 서비스도 담당하게 됐다.
미국의 GM은 2021년 CES에서 전기 e-VTOL을 공개하며 UAM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90Kwh 전기모터와 4개의 프로펠러로 구동되는 e-VTOL은 시속 90㎞로 이동할 수 있는 수직 이착륙기 모델이다. 부피가 작고 기동성이 좋아 건물 사이를 오가는 데 유리하다. 탑승 인원은 2명, GM 내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의 정체성이 반영된다는 소식이다. 일본의 토요타는 지난해 미국의 전기수직이착륙기 스타트업 ‘조비 에비에이션’에 3억9400만달러를 투자해 생산 기술과 전동화 노하우 등을 확보했다. 토요타는 일본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 71만㎡ 규모로 건설되는 스마트시티 ‘우븐시티’에서 UAM 실증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피아트크라이슬러(FCA)도 미국의 전기수직이착륙기 개발업체인 ‘아처’와 협업해 UAM 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현재 베이징, 두바이,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기체 운행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올해 단거리 UAM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 독일의 다임러AG는 중국의 지리자동차와 ‘볼러콥터’란 전기수직이착륙기 업체에 투자했고, 폭스바겐AG의 프리미엄 브랜드 포르쉐는 보잉과, 아우디는 에어버스와 UAM 사업을 진행 중이다. 수입차 업체의 한 임원은 “내연기관차의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진행되고 있다”며 “전기차로의 전환이 더디지만 그 기간에 전기모터가 기반인 UAM 기체 개발도 함께 진행한다면 미래 교통수단과 체계를 모두 선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전했다.
UAM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정조준한 건 비단 완성차 기업만이 아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3사도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이 목표인 UAM은 네트워크 기술 비중이 높다. 그만큼 통신사의 역할이 주요한 축이다. 통신업계에선 “향후 안전한 비행을 위해선 5G를 넘어 6G 통신망 구축이 요구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선 KT는 현대차·대한항공·현대건설·인천국제공항공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UAM 실증 사업에 나섰다. KT는 현재 UAM 통신 인프라와 데이터 플랫폼 개발, 모빌리티 사업모델 연구, UAM 교통관리시스템 개발·실증 협력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UAM 전용 5G 항공망 구축을 완료하고 성능 검증을 마쳤다. KT는 전남 고흥항공센터 일대와 버티포트에서 UAM 운항에 필요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항공망에는 KT가 개발한 3차원 커버리지 최적 설계 기술과 네트워크 슬라이스 기술 등이 적용됐다.
SK텔레콤은 한국공항공사·한화시스템·한국기상산업기술원·한국국토정보공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축했다. 최근엔 미국 스타트업 조비 에비에이션에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조비 에비에이션이 공개한 수직이착륙기 ‘S4’는 업계 최고 수준인 시속 322㎞의 속도와 241㎞의 비행거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번 투자로 약 2% 규모의 지분(신주 인수)을 확보했고, 조비 에비에이션 기체의 국내 독점 사용이 가능해졌다.
카카오모빌리티·GS칼텍스·제주항공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LG유플러스는 지난해 7월 부산시와 UAM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지역 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UAM 교통관리시스템을 개발해 정부 실증사업에 적용하고, UAM 상용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시스템 고도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올 1월 서울교통공사와 UAM 복합환승센터 조성을 위한 MOU도 체결했다. 복합환승센터는 삼성역, 수서역, 구로디지털단지처럼 이용객이 많은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선진국과 대기업, 전문기업들의 발빠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2025년 UAM 상용화 계획에 대한 우려 섞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5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에서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과 매일경제가 공동주최한 ‘제2차 디지털 퓨처마킹 포럼’에서 전성배 IITP 원장은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정책, 규제, 국민의 수용성이 존재한다”며 “어떻게 안전하게 혁신을 이끌어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UAM 산업과 관련해 정연석 한국UAM협의회 상임회장은 “UAM 생태계 안착을 위해선 기체 운영을 위한 관제시스템과 버티포트, 보험 등 인프라, 사회적 수용성이 모두 중요하다”고 전했다. 강영일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새로운 모빌리티의 서비스 이용자와 개발자의 책임 소재 문제, 실증사업 과정에서 규제 특례 이슈 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법적인 대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활주로 없이 수직이착륙해 비행하는 UAM이 운항되려면 안정성부터 입증돼야 한다”며 “정부가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비행 관련 인증제도나 버티포트 관련 안정성 검증, 상업적 활용을 위한 요구사항까지 아직 단 하나도 완성되지 못한 점을 되짚어야 한다”고 전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