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계적인 ‘가업승계 공화국’이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작은 우동집, 덮밥집을 물려받기 위해 대기업을 퇴사하는 자녀들이 흔했다. 이 문장이 과거형인 것은 일본도 더는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초 뉴욕타임스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회사를 거저 주겠다’고 광고를 낸 요코야마 씨의 이야기를 실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기업 63만 개가 이익을 남기는 상황(흑자도산)에서 문을 닫고 일자리 650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경고가 나온 것은 작년이나 올해가 아닌 2019년이다. ‘가업승계 위기’가 이미 심각하게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일본 기업 오너의 평균 나이는 62세인데, 이들 중 60%는 승계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원인은 저출산과 지방도시 인구 감소이다. 그나마 일본은 업력 100년을 넘긴 기업이 3만3000개가 넘는다. 한국은 고작 7개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백년기업’을 키우려면, 장기적인 가업승계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행히 올해 1월 1일부터 새로운 세법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관련 요건이 대폭 완화됐다. 삼성생명 패밀리오피스의 조언을 받아 달라진 가업승계제도를 분석했다.
가업승계지원제도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업상속공제제도,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과세특례제도, 창업자금 가업승계에 대한 증여세과세특례제도이다. 이 중 가업상속공제와 가업승계 주식 증여세과세특례는 기업주가 생전에 쌓아온 사업의 기술, 경영 노하우 등을 효율적으로 승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만들었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가업을 경영해온 부모의 사후(死後)에 18세 이상의 자녀들이 선택할 수 있다. 이때 공제 대상 업종에 해당하는지를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에 열거된 업종만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법령에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른 업종별로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예를 들어 무형재산권 임대업은 가능하지만 부동산은 제외되고, 교육서비스업 중에는 유아교육기관과 사회교육시설, 직원훈련기관 등만 가능하다. 영상이나 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은 가능하지만 비디오물 감상실 운영업은 제외된다. 창작, 예술, 여가 관련 서비스업은 가능하지만 독서실 운영업은 제외하는 식이다.
해당 업종에 속하는 회사라 해도 매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가 가업승계 활성화를 위해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규제를 완화한 것도 이 부분이다. 유인경 삼성생명 명인(타워팰리스 강남FP지점 컨설턴트)은 “작년까지는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 평균 매출 4000억원 미만이었는데, 올해부터 평균 매출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확대됐다”면서 “가업 영위기간에 따라 공제금액도 정해져 있는데, 올해부터는 구간별로 100억원씩 늘어나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여자 지분 의무보유 비율 규제도 완화됐다. 기존에는 상장법인일 경우 30%, 그 외 법인은 50% 이상을 보유해야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상장법인 20%, 그 외 법인은 40%만 보유하면 된다. 특히 사후관리 요건이 완화된 것이 눈에 띈다. 유 컨설턴트는 “사후관리 요건은 그간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선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는데, 사후관리 기간이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됐다”면서 “고용 유지 조건도 7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 100% 또는 총급여액 100% 이상을 유지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5년 통산 90% 이상 유지하면 되도록 기준이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만약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고려할 수 있다. 10년 이상 가업을 경영해 온 60세 이상의 부모가 본인이 경영하는 기간 동안 본인이 원하는 18세 이상의 자녀에게 주식을 줄 수 있는 제도이다. 경영자 본인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의 주식을 줄 수 있으므로, 부모 입장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게다가 올해부터 가업상속공제 제도와 동일하게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중소기업은 물론 직전 3년 평균 매출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적용 한도도 기존 100억원에서 가업 영위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받아 주식을 이전할 수 있다.
삼성생명 패밀리오피스 관계자는 “실질적인 세율도 최대 20%를 적용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에 일반 증여보다 세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여자 지분 요건 또한 상장법인은 20% 이상, 그 외 법인은 40% 이상 보유한 경우로 완화되었고 사후관리 기간도 5년으로 단축됐다. 가업상속공제 제도와 달리 ‘고용 유지’에 대한 요건이 없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다만 수증자가 3년 이내에 대표이사에 취임해야 하고, 가업을 이어받은 것이므로 1년 이상 휴·폐업을 하거나 지분을 처분할 수 없다. 주의해야 할 점이 또 있다.
일반적으로 증여를 하면 상속 개시일로부터 10년 이내에 증여받은 자산만 상속세 신고 때 합산한다. 하지만 증여 특례로 주식을 이전하게 되면 기간에 상관없이 전부 합산이 된다. 예를 들어 2023년에 증여특례로 주식을 이전한 경우, 만일 30년 뒤에 상속이 개시된다고 해도 현재 시점에 주식 이전한 주식 가치 그대로 전부 다 합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증여를 하는 이유는 계획적으로 주식을 이전할 수 있고, 세금 부담을 일반 증여보다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컨설턴트는 “만약 기업 주식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우라면 그 주식 상승분에 대한 방어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주식 가치로 미래의 주식 가치를 고정할 수 있으므로, 기업 가치가 상승했을 때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번 세법 개정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가업승계 시 상속세 및 증여세 납부유예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가업상속공제나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요건을 충족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이 두 가지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납부유예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담보를 제공하고 이자 상당액을 포함해서 납부해야 한다. 이는 가업을 승계 받은 수증자가 승계를 받은 후 또 다시 가업을 양도, 상속, 증여하는 시점까지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다.
납부유예 받은 세액은 향후 해당 주식을 매각하는 경우 등 세법에서 정한 몇 가지 사항이 발생했을 때 내면 된다. 승계 직후에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납부할 유동성이 부족하니 일단 납부를 미뤄주고, 추후에 이를 매각하여 유동성을 확보하면 그 때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납부유예 때에도 사후관리 요건이 있다는 점은 알아두어야 한다. 사후관리기간 5년 평균 정규직 근로자 수 70% 이상 또는 총 급여액 70%이상 유지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에 비해 요건이 완화되었고, 업종 유지 요건이 없기 때문에 다른 업종으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주가 저평가된 지금 승계 작업 시행할 때”
“유 박사, 이런 말 들어봤어요? 상속세를 세 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100년 기업’은 요원한 이야기에요.”
어느 기업인 고객이 하신 말씀이다. 자칫 가업승계 작업 시기를 놓치면 충분히 생길 법한 이야기이다. 가업승계지원제도는 가업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에게 ‘나라에서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곤 한다. 각 기업 사정에 맞는 가업 승계 방법을 선택하고 미리 전략을 짜서 준비한다면 경영권 확보는 물론 절세까지 혜택을 볼 수 있어서다. 사전사후 요건이 명확하게 나와 있으므로 미리 준비해둔다면 평생을 다 바쳐서 일구어온 가업을 보존할 수 있다. ‘100년 기업’을 넘어 유럽처럼 ‘1000년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을 때가 가업승계를 실행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가업승계주식에 대한 증여세과세특례제도’를 활용하면 승계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함께 경험과 지혜를 모아 대폭적으로 완화된 가업승계지원제도를 잘 활용하여 승계 작업을 실행해야 할 시의적절한 때이다.
흔히 능력이 출중한 창업자일수록 가업 승계에 소홀한 경향을 보인다. 기업 경영에만 몰두하다 보니 가업승계의 중요성은 간과하게 되거나 고민만 하고 실행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짱짱한데, 벌써부터 승계 계획이라니!”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수많은 세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상속세율이 높다. 이는 가업을 승계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어 왔다. 심각한 경우 경영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사례들도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업승계 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살펴보고 각 기업에 맞는 방법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활용해서 가업이 승계되고 있는 건수가 1년에 100건(2021년 국세통계연보)도 채 되지 않는다. 가업을 영위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1만200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가업상속공제제도의 혜택을 본 사람들이 1%도 안 되는 셈이다. 사전에 충족해야 하는 요건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거나, 까다로운 사후관리에 대한 부담감으로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서 뒤늦게 가업을 승계 받은 자녀가 다시 상속을 준비해야 하는 ‘노노(老老)상속’도 최근 늘어난 가업승계 포기 이유 중 하나다.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이 가장 아끼는 자식은 ‘순양그룹’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평생을 바쳐 일군 회사가 100년 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나아가 가문 전체가 대한민국의 존경받는 ‘명문가’가 되도록 창업주가 미리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첫걸음이 가업승계 준비다. 이는 언제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
신찬옥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