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경남 양산 통도사 천년의 숲길 발끝으로 느끼는 불보(佛寶)의 땅

    입력 : 2026.04.22 17: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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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코앞에 주차장이 있는데 왜 30분이나 걸어가야 하냐고?”

    통도사 외부 주차장을 나설 즈음 앞서가던 커플이 티격태격이다. 서울서 양산까지 약 5시간을 운전한 남자가 경내가 아닌 외부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게 화근이었다.

    “통도사는 좀 더 들어가야 하잖아.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는데 왜 굳이 여기에 차를 세운 거냐고?” 남자가 씨익 웃더니 차분히 설명한다.

    “여기부터가 진짜거든. 여기서 천천히 시작해야 통도사를 제대로 볼 수 있어. 힘들면 저기 카페서 커피 한잔하고 갈까?” 남자의 설명을 듣고 내심 미안한 듯 여자가 손을 내민다.

    “아니 나 말고. 힘들게 운전하고서 또 걷는다니까 그러는 거지. 길 좋은거 누가 모르나….”

    영화 한 편이 따로 없다. 어쩌면 봄볕 따뜻한 풍경이 낳은 산뜻한 시작이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 자리한 통도사에 왔다. 이곳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불보사찰이다. 그리고 남자의 말처럼 수백 그루의 노송이 하늘을 덮고 계곡물이 발아래 흐르는 무풍한송로(無風寒松路)가 출발점이다. 소나무가 막아선 덕에 바람도 쉬어간다는 숲길을 걷다 보면 1400여 년의 세월도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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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시작되는 곳…

    외부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무풍한송로는 약 1.6㎞의 평탄한 흙길이다.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는데, 오랜 세월 구불거리며 춤을 추는 소나무들이 마음 놓고 자태를 뽐내는 녹음의 복도다. 수백 그루의 노송 사이로 영축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새들의 지저귐이 그 사이사이를 메운다.

    일삼아 걷는다면 20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여기저기 짙은 초록 사이로 돋아난 연둣빛 이파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금 봄이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특히 3월 중순에 절정을 맞는 이 일대의 홍매화는 상춘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봄의 전령이다. 그럼 4월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고? 앞서가던 이가 이 질문에 적확한 답을 내놨다.

    “봄꽃이 어디 매화뿐인가. 뭐 그리 급해, 이제 시작인데!”

    산책로 끝에 기둥 하나로 우뚝 솟은 일주문은 세속과 불국(佛國)의 경계다. 그 너머에 통도사가 자리했다. 신라 선덕여왕 15년, 서기 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곳은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한국의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다. 해인사가 팔만대장경을 품은 법보사찰, 송광사가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라면,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사찰이다. 통도사(通度寺)라는 사찰명에는 3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에서 득도한다는 것, 둘째는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영축산의 산세가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과 통한다는 의미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불이문을 차례로 통과하면 비로소 경내가 열린다. 통도사의 가람 배치는 독특하다. 영축산 사이의 좁고 긴 부지 탓에 남북 축을 유지하면서 동서로 길게 확장된 삼원식 배치를 취했다. 동쪽의 하로전(下爐殿), 중간의 중로전(中爐殿), 서쪽의 상로전(上爐殿)이 낮은 높이차로 구분돼 순례하듯 걸을 수 있다. 경내에만 65동의 건물이 있고 문화재만 약 3만 점에 달해 2018년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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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상 없는 대웅전…

    길은 결국 대웅전으로 향한다. 그런데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대웅전 뒤편 금강계단에 봉안돼 있어 굳이 불상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

    대웅전의 북쪽 벽면이 유리로 마무리돼 참배객들은 그 너머 금강계단을 향해 합장한다. 1645년에 중건된 대웅전은 사방 네 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 동면에 ‘대웅전(大雄殿)’, 서면에 ‘대방광전(大方廣殿)’, 북면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네 편액 모두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전해진다.

    영각(影閣) 앞에 자리한 홍매화는 수령이 370여 년이나 된 고목이다. 자장율사의 이름을 따 자장매라 부르기도 한다. 통도사 산책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깊은 순례길이 기다린다. 영축산 자락을 휘두르며 이어지는 ‘13암자 순례길’이다. 통도사에는 총 19개의 암자가 산재해 있는데, 그중 13곳을 잇는 약 12㎞에 이르는 길이다. 여유롭게 걸으면 6~7시간이 걸리는 본격적인 등산 코스이다. 물론 산책과 달리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등산화와 물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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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암자 순례길
    순례의 문은 무풍한송로에서 시작된다. 소나무 숲을 따라 경내에 들어선 뒤 백련암, 서운
    암, 반야암을 거쳐 극락암으로 향한다. 서운암에는 100여 종의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계절마다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반야암으로 가는 숲길은 13암자 중에서도 으뜸으
    로 꼽히는 풍경이다. 영축산이 두 팔로 안은 듯한 지형에 적송 군락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극락암은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암자 앞에 극락영지(極樂影池)라 불리는 연못
    이 있고, 그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홍교(虹橋)가 한 폭의 수묵화를 만든다. 조금 더 오르
    면 비로암이 나온다. 잘 가꿔진 정원 같은 화려함이 극락암과 대비를 이룬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처음 창건의 뜻을 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전체 코스가 부담스럽
    다면 두 구간으로 나눠 걸어도 좋다. 무풍한송로에서 극락암까지를 1코스, 극락암에서
    자장암을 거쳐 하산하는 길을 2코스로 잡으면 각각 반나절로 충분하다.

    [안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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