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의에 묻혀 뒷전이지만…옷차림 수준 차이 바지에서 난다

    입력 : 2014.06.27 11: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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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에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없이 결정해선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두말할 것 없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이 그렇고 자신의 옷에 대한 쇼핑이 그렇다. 결혼하는 당일에 비로소 배우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부모님 세대의 경험담을 들으면 지금이야 누구라도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하겠지만, 남성들의 쇼핑에 대해선 세월이 흘러도 비슷하게 유지되는 이른바 관습이 있다. 자신이 입을 옷인데 직접 사지는 않는 문화. 그래서 어릴 땐 어머니, 나중엔 배우자가 모든 걸 결정해 버린다. 하지만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판단하지도 못하는 이가 어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우리들의 복장은 1+1=2라는 식의 수학적인 논리나 비틀즈, 피카소처럼 천재적인 영감에 의해 좌우되는 예술과는 다르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면서 뭔가 주변 사람과는 은근하게 다르길 바라고, 하지만 너무 튀거나 앞서가는 옷차림은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평범해 보이는 옷이지만 그것을 소화하는 감성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이도 있고, 반대로 세계적인 수준의 고급 브랜드를 걸치고도 본래 값어치의 반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주위에 많다. ‘누군가 이 복잡한 방정식을 대신 풀어준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이들을 위해 이번에는 바지를 중심으로 한 해법을 준비했다.

    예컨대 상의와 하의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슈트나 재킷이란 복장은 시대에 상관없이 언제나 남성복의 핵심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착용자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좌우하는 상의에 대한 관심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바지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슈트나 재킷의 원단을 고르는 문제는 주로 얼굴과 가까운 상의에 집중될 뿐, 바지의 컬러나 소재가 무엇인지는 옷차림에 꽤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 입장에서도 제조 기술이나 패턴 면에서 상의에 쏟는 정열에 비해 바지에 대한 투자는 취약한 면이 많다. 슈트나 재킷을 잘 만드는 브랜드에 비해 바지 전문 브랜드는 그 수도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바지는 더욱 중요하다.

    우리 신체 중 움직임이 많은 다리를 감싸는 옷이자 순간순간의 착용감과 직결되기 때문에 직접 입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고를 수가 없다. 사이즈가 큰 코트나 셔츠가 신체적인 고통을 주진 않지만, 체형에 맞지 않는 바지는 분명 걸음걸이와 마음을 모두 불편하게 한다. 또한 바지는 옷차림의 수준이 드러나는 미세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훌륭한 슈트를 입고서도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 바지의 디테일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데, 대개 원단이나 브랜드보단 바지의 부적절한 길이나 필요 이상의 넓이가 문제일 것이다. 아직도 전 세계 남자들의 대부분은 바지를 너무 길게 입는다. 바지가 길면 다리가 길어 보일 것이라는 믿음이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입기 때문에 홀로 튀고 싶지 않은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이젠 생각을 바꿔볼 때다. 여성처럼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상, 남자의 바지가 구두의 반 이상을 덮을 정도로 길면 다리는 더 짧아 보이고 바짓단은 발목에서 뭉칠 것이다. 그렇게 복장의 전체적인 조화를 무너뜨리면 그 어떤 완벽한 체형이나 조각 같은 외모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을 현명하게 소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왼쪽)닥스, 마에스트로, 타운젠트
    (왼쪽)닥스, 마에스트로, 타운젠트
    맞춤복 바지 르네상스의 도시라 불리는 피렌체(지금 이 글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쓰고 있다)의 저명한 장인이든, 평생을 수제 바느질에 헌신해 온 서울의 고집스런 테일러든, 맞춤복이란 결국 수많은 착용자들의 각기 다른 체형을 어떻게 배려하는가의 문제다. 맞춤복을 명성이나 원단에만 의존한다면 이런 본질을 벗어나 자신의 돈으로 브랜드나 남을 위한 옷을 입게 된다. 맞춤복 바지는 철저하게 자신의 체형을 바탕으로 원치 않는 부분을 개선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보이도록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일단 고객을 배려하는 테일러라면 움직일 때 구두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바지에 구두 윗부분이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최종 길이를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착용감은 물론이고 최선의 실루엣을 유지하기 위해 바지 라인은 일자가 아니라 구두에 가까이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형상으로 재단한다.

    사람의 다리는 우리 희망사항처럼 곧게 내려가지 않고, 언제나 앞뒤로 곡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에 따라 누군가는 종아리 부분이 발달하고 다른 누군가는 앞무릎이 발달한 것처럼, 사람들의 다리란 옆에서 보면 완만한 S자형을 띠고 있다. 따라서 맞춤복에선 이 다리 부분을 전체적인 체형에 맞춰 커브를 이루도록 입체적으로 재단하고 패턴을 만든다. 단지 바지 길이만 조절하거나 수선해서는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복장의 밸런스를 위해 바지를 길게 입지 말아야 한다, 또한 길이는 넓이와도 불가분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즉, 바지의 통은 넓으면서 길이만 짧게 되면 실루엣도 나쁠 뿐더러 구두가 충분히 보이지 않아 몸의 비율도 전체적으로 깨져 버린다. 따라서 언제나 구두의 약 50% 이상이 보이도록 바지 밑단의 넓이를 너무 넓지 않게 설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맞춤복이라면 기계적인 느낌을 주는 지퍼보다 천연 소재를 사용한 버튼을 권한다. 버튼을 풀고 여미는 게 처음엔 익숙하지 않지만 금세 적응되니 한번 시도해봐도 좋겠다.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좋지만 버튼을 사용하면 아랫배를 조금 더 눌러주는 비밀스런 효과도 있다.

    기성복 바지 물론 맞춤복은 개인적인 체형에 딱 맞추는 좋은 선택이지만, 누구나 맞춤복을 입어야 하는 건 아니다. 체형이 남다르거나 단점을 극복하고 싶은 이에게 맞춤복은 궁극적인 처방이 되지만, 평균적인 사이즈와 신체 조건이라면 기성복도 전혀 문제없다. 이 경우에는 수많은 기성복 브랜드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실루엣과 피트를 발견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옷과 벨트까지 전체적인 복장을 다 만들어내는 종합 브랜드인지 아니면 슈트나 바지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곳인지 따져보는 게 좋겠다. 우리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때 인상보단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생각하듯 내가 입을 제품도 브랜드 네임이나 가격보단 메이킹 실력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PT01’이나 한국의 ‘GOTT’는 오직 바지만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메이커다. 경제 불황에도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들 기업은 용감하게도 모든 고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착용자가 슬림해 보일 수 있는 라인만을 출시하며, 밑위가 낮게 커트되어 있어 소위 아저씨 배 바지로는 절대로 입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토록 슬림해도 마치 원래 자신의 옷이었던 것처럼 편안하며 몸의 어느 부분도 구속하지 않는다.

    또한 버튼이나 안감의 색상 등을 다르게 표현하는 식으로 바지의 디테일을 크리에이티브하게 설정해 이 바지의 철학을 즐기는 이들에겐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우리나라가 아직 바지를 독립 브랜드로 생각하는 시장은 아니지만, PT01나 GOTT 같은 바지 전문 브랜드의 약진은 분명 남성복 시장의 성숙을 증명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면바지 즐겨 입는 바지의 색상으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남자들의 놀라운 컬러 감각은 스타일이나 패션에 대한 열정 이전에,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으로부터 상속받은 자산이다. 그들의 눈에 담긴 유서 깊은 건물의 색상, 어린 시절부터 쳐다본 오래된 흙빛, 시간의 흔적이 밴 낡은 벽이 이탈리아 남성복 특유의 컬러 감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옐로, 그린, 핑크, 스카이블루 그리고 퍼플은 넥타이에만 제한되는 컬러가 아니다. 밀라노의 어느 거리를 걸어 봐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컬러풀한 면바지를 입은 모습은 꽤 멋지다. 다만 화려한 컬러의 바지를 입더라도 언제나 그것을 중화시켜주는 네이비, 브라운 등의 재킷을 함께 입는다. 그렇게 포멀한 느낌의 재킷에 컬러풀한 면바지를 다양하게 실험해보는 것은 옷 입는 감각을 키우는데 아주 좋은 공부가 된다. 네이비 재킷에 그레이 팬츠는 비즈니스 캐주얼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영원히 그것만 입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화이트, 블루, 핑크, 그린, 와인, 브라운, 체크 등 차분한 네이비 톤을 즐겁게 변신시켜줄 재미있는 바지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모든 것이 밝아지는 여름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바지들은 바지 끝을 접는 형식인 턴업(Turn-Up)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턴업은 유행이 아니라 바지의 소재, 무게에 따라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옵션이며 특히 구두 바로 위의 바지 부분에서 무게중심을 잡기 위한 장치다. 턴업을 하지 않으면 바지 안쪽으로 접어 올린 단의 바느질 자국이 남을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매장이나 수선집에선 전혀 지키고 있지 않지만, 턴업의 폭은 4~5cm가 적절하다. 단 ‘카브라’는 일본식 표현이니 사용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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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바지는 우리 신체 중 움직임이 많은 다리를 감싸는 옷이자 순간순간의 착용감과 직결되기 때문에 직접 입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고를 수가 없다. 체형에 맞지 않는 바지는 걸음걸이와 마음을 모두 불편하게 한다. 남훈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제일모직 ‘란스미어’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현재 패션전략컨설팅회사 ‘더 알란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종로 GS타워몰에 액세서리 편집숍 ‘알란스(ALAN’S)’를 오픈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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