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ack Box]내 차 안의 변호사 ‘블랙박스’

    입력 : 2012.10.05 17: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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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박스는 있나요?” 도로상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렵다. 사고 상황만 놓고 보면 가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다르다. ‘내 차 안의 변호사’라 불리는 ‘블랙박스’가 대중화되면서 사고 당시의 동영상을 증거로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판가름하고 있어서다. 이에 교통경찰조차도 사고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블랙박스’의 설치 유무를 물어볼 정도다.

    과거 내비게이션만큼이나 핫한 자동차 애프터마켓 용품이 된 블랙박스는 운전 영상이 고스란히 저장되는 소형 영상기록물 장치다. 또 자신의 운전 영상이 저장되기 때문에 스스로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안전운전 습관을 길러주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블랙박스를 장착하면 일부 보험사에서 보험료를 할인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자동차 숍에는 대기업들과 여러 중소기업에서 나온 블랙박스들이 저마다 ‘최고 사양’임을 내세우며 전시돼 있다. 그러다 보니 섣불리 샀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한 블랙박스 때문에 고민하는 운전자들도 늘고 있다. 보험료도 내려주고 억울한 사고 책임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팔방미인 블랙박스. 제대로 골라보자.

    시장규모 2배씩 쑥쑥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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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 영상물기록장치인 차량용 ‘블랙박스’는 사실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높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기술력이 낮아 영상이 불량하거나 해상도가 낮아 가해차량을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지난해부터 블랙박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시장 규모 역시 2배 이상 성장하면서 누적 보급대수가 이미 100만대 이상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올해에는 누적 보급대수 200만대 돌파는 물론 시장 규모는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차량용 블랙박스를 제조하는 곳은 약 130여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 300여 개 이상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전체 차량 보급대수 1840만대 중 블랙박스 탑재 차량이 6%가 안 되는 만큼 업체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여기에 국토해양부가 지난 2009년 말부터 사업용 차량에 대해 디지털 운행기록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교통안전법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사업용 차량 중 택시에 한해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며 버스 역시 내외부에 CCTV를 설치한 상태다. 일반 차량의 의무 장착 역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보험사는 물론 법령으로 장착을 의무화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블랙박스 시장에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진출한 상태다. 블랙박스 판매량 제공업체인 블랙박스 클럽(www.blackboxclub.co.kr)에 따르면 내비게이션 업체로 알려진 팅크웨어는 물론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엠엔소프트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직까지 중소기업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기업들 역시 블랙박스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해상도는 물론 내구성과 채널수 파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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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박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어 이에 대한 불만도 높은 게 사실이다. 자동차 숍 관계자는 “가격이 싼 블랙박스를 달았다가 필요할 때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제대로 된 제품을 사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선택 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으로 ‘해상도’를 뽑는다. 블랙박스 이미지가 얼마나 선명한지에 따라 사고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상도는 일반적으로 VGA급, HD급 등으로 표시된다. 주변 차량의 번호판과 가해자의 얼굴 등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HD급이나 FHD급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화질만 좋다고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영상을 보여주는 초당 정지화면의 수인 프레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프레임 수가 1초당 25프레임 이상인 제품을 권장한다.

    ‘채널수’ 역시 중요하다. 채널은 블랙박스에 연결된 카메라의 개수를 뜻한다. 전방 녹화만 하는 1채널 제품이 대부분이지만 후방 카메라와 연결되는 2채널은 물론 따로 카메라를 장착하는 4채널 제품도 있다. 또 사고 위치와 속도, 경로 등을 자세히 보여주는 GPS 기능도 선택의 중요 요소다. GPS는 내장형 제품과 외장품 제품들이 있는 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구성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특히 올 여름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경우도 많고 겨울에는 한파가 오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온도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내구성이 좋은 제품들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내구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준이 없어 전문가들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리뷰에 의지할 수 밖에없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충격을 받을 경우 사고영상이 저장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AS가 보장된 제품을 선택 하는 것이 좋다.

    자동차 제조사가 만드는 순정 제품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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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블랙박스가 자동차의 필수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완성차 제조업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시장 규모가 2000억원에 달하지만 아직까지 완성차 업체들이 보증하는 순정 블랙박스는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순정 내비게이션이나 하이패스 등이 등장했을 당시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던 것과는 달리 블랙박스에 대해서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쌍용 한국GM 등 완성차 5개사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중 순정 블랙박스를 옵션으로 제공하는 차량은 전무하다. 다만 차량을 계약하면 지정업체나 판매직원이 블랙박스를 사은품으로 제공해주는 경우만 있을 뿐이다.

    완성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블랙박스의 기술력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4시간 풀가동해야 하는 블랙박스의 특성상 차량 방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블랙박스 업체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방전이 의심될 경우 블랙박스 기능이 차단되는 기능이 이미 실용화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블랙박스 주요 생산업체 중 한 곳인 팅크웨어는 이런 제품들을 판매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급발진 등이 블랙박스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완성차 5개가 내부적으로 순정 블랙박스 장착을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이 주목된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제25호(201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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