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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t]나만을 위한 맞춤 옷 품격을 재단하다
입력 : 2012.09.07 17: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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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는 말없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한다. 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품격을 나타내는 한편 성품과 개성, 사고방식을 짐작하게 한다. 개성이 중시되는 요즘 슈트에 있어서도 기존 스타일을 탈피해 다양한 패션이 등장했지만 클래식 슈트가 가진 의미와 위엄은 점점 빛을 발하는 듯하다. 아가일 양말이나 행커치프 또는 보타이로 낸 포인트, 장동건의 수십만원짜리 옷핀이 내는 ‘에지(edge)’는 어디까지나 객(客)이다. 주(主)인 슈트와 전도(顚倒)될 수 없다. 볼품없는 메인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의 애피타이저나 디저트가 기억되기 힘들 듯 남성들에게 슈트는 영원한 ‘Must have’ 아이템일 수밖에 없다.
같은 것은 싫다! 나만의 것이 필요해 최근 남성 슈트 시장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된다.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기성복을 거부하고 나만의 슈트를 소유하려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 패션업계 전문가는 “자의식과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슈트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며 맞춤 정장시장이 다시 커지고 있다”며 “이들이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등장하며 맞춤정장 시장은 최근 5년 동안 적어도 10% 이상 증가해왔다”고 밝혔다. 사실 국내 맞춤정장 시장은 명동과 소공동을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질 높은 기성복이 등장하기 직전인 199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특히 소공동 거리는 ‘세 집 걸러 한 집은 테일러 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맞춤정장 사랑에는 지위고하가 없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을 비롯해 많은 정부 관료들은 취임 전 소공동 테일러 숍을 찾았다. 故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질 높은 정장을 공수하기 위해 장미라사라는 테일러 숍에서 해외출장 시마다 몇 벌씩 정장을 맞춰 떠났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이렇게 한창 잘나가던 테일러 숍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기성복에 밀려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원할 때 간편하게 사서 입을 수 있다는 점도 급한 한국사람 성미에 맞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들 역시 30~40대 주 슈트 소비층의 외면을 받았는데 이유인 즉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재단사들이었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스타일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었다.
한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남성들이 입으려는 것은 기술이나 원단이 아닌 패션이다”며 “슈트를 통해 개성을 표출하거나 브랜드를 구매하려는 남성들의 욕구를 (테일러 숍)들이 충족시키지 못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억 속으로 멀어지는 듯 했던 맞춤정장은 언젠가부터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맞춤정장 전문 브랜드 ‘앤드류 앤 레슬리’의 이동욱 대표는 “외국에 나가 다양하고 독특한 슈트를 접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남성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며 “기성복이 질적인 측면에서 발전했지만 다양한 색상이나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 기성복의 태생적인 약점이 존재해 반대급부적으로 맞춤정장을 찾는 남성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초창기 맞춤정장 시장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장미라사의 이영원 대표는 “라인이 강조되고 몸에 피트되는 스타일이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자신의 신체에 잘 맞아 떨어지는 슈트를 원하는 남성들이 맞춤정장을 선택하고 있다”며 “특히 체형상 해외브랜드에 ‘몸을 맞추기 힘든’ 이들이 몸에 옷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고 밝혔다.
※ 24호에서 계속...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4호(2012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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