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rand Story] S.T. Dupont

    입력 : 2011.04.22 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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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남성 명품 브랜드 S.T. 듀퐁(S.T. Dupont)은 1872년 설립된 이래 전 세계 소수계층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왔다. 13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성공이라는 장막 뒤에 감춰져 있던 S.T. 듀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1872년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의 탄생 S.T. 듀퐁의 역사는 1872년 시몽 티소 듀퐁(Simon Tissot Dupont) 이 25세 되던 해에 시작된다. 프랑스 사보이 지방에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모험정신과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청년이었다. 그는 재능 있는 장인들을 고용해 가죽 제품 작업장을 세웠다. 그들의 작업은 파리의 외교관, 비즈니스맨, 법률가 등을 위한 서류가방을 만들면서 시작 되었다. 고위 공직자들의 이니셜을 새긴 지갑과 당대에 한창 유명했던 마로캥(살구색 염소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데도 주력했다. 파리 상류사회에 그의 이름이 급속도로 알려졌으며 곧이어 당대 최고의 럭셔리 액세서리였던 루브르 상점의 공식 공급업자가 되면서 성공의 궤도에 올랐다.

    1920년 독자적인 스타일의 여행가방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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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 듀퐁이 번성했던 1920년대 초반, 시몽의 두 아들 앙드레 듀퐁과 루시앙 듀퐁은 혁신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아주 화려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의 여행가방을 제작했던 것이다. 파리 루 디우에 소재한 매장에서 두 형제는 자신들의 제품을 선보이며 전 세계 인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의 주요한 고객 중에는 100여 명의 총애자들에게 호화스러운 선물을 주곤 했던 인도 파티알라의 왕, 윈저 가, 켄트 가의 공작 등이 있었다. 알 카포네는 자신의 부사령관을 파견해 신중하게 제품을 주문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뉴욕의 까르띠에, 런던의 아스프레이가 단골 고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몇 년간, 번성기는 계속 되었다.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도 S.T. 듀퐁 제품은 오히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루시앙 듀퐁은 ‘더욱 아름답고 훨씬 더 호화스러운 제품을 향해 노력하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아르데코 시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947년 프랑스 대통령 뱅상 오리올은 영국의 차기 여왕이 될 엘리자베스 공주의 결혼 선물로 S.T. 듀퐁에 라벤더 블루 가죽 여행가방의 제작을 의뢰했다. 이처럼 수많은 세계적인 명사들의 러브콜을 받았던 S.T. 듀퐁의 여행가방은 그 당시 집 한 채 가격과 비슷했다.

    1935년 천연옻칠 장인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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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퐁 형제는 새로운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순금 도금기술이 있는 ‘도금 대장인’을 찾는 신문 광고를 냈다. 그런데 광고에 ‘도금 대장인(Plaqueur)’이 ‘천연옻칠 대장인(Laqueur)’으로 잘못 기재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실수가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바뀌면서 금속에 천연옻을 덧칠하는 비법을 얻게 되었다. 이는 현재까지 S.T. 듀퐁만의 전매특허 기술로 보존할 만큼 제품 제작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브랜드 최초의 천연옻칠 장인은 대서양 유람선 노르망디 호의 천연옻칠 작업을 맡았던 장 뒤낭에게 교육받은 러시아 태생의 노보실츠제프였다. 운이 좋게도 그의 후임 천연옻칠 장인들은 처음의 실천적인 방법을 개선해 정통적이면서 아주 독창적인 전문기술로 발전시켰다.

    1941년 위기를 또 다른 도약의 기회로 바꾸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재료와 소재가 턱없이 부족했으며 S.T. 듀퐁의 제품을 사려는 고객 역시 많지 않았다. 이때 앙드레 듀퐁은 인도 파티알라 왕의 여행가방에 사용되었던 라이터 기술을 다른 제품에 새롭게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가죽 제품 메이커였던 S.T. 듀퐁은 금세공 기술을 응용하여 1941년 석유를 연료로 하는 최초의 휴대용 라이터를 발명했다. 이어 1952년에 석유 라이터를 개량한 특허 제품인 가스라이터를 개발하여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라인 1모델과 2모델의 수많은 개량 제품은 현재까지도 최고 인기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1960년대 라이터는 사회적 지위와 고품격을 나타내는 제품이었다. 어스름한 불빛의 사교장에서 라이터 뚜껑을 열었을 때 ‘퐁(cling)’하고 들리는 독특하고 메탈릭한 소리는 사회 엘리트들이 서로를 인식하는 비밀 코드가 됐다. S.T. 듀퐁은 그 당시 대표 제품인 라이터로 인해 프랑스 최고급 브랜드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1973년, S.T. 듀퐁 필기구의 성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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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들어와 S.T. 듀퐁은 라이터에 적용해 성공을 거둔 완벽한 금은 세공 기술, 옻칠 기술 등을 그대로 필기구에 적용해 명품 필기구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다졌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일련의 제품을 속속 선보였다. S.T.듀퐁은 순은 소재의 매우 날렵한 디자인의 볼펜 ‘클래식’을 출시해 럭셔리 주얼리 볼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 당시 볼펜은 새로운 제품으로 대중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 1996년에는 미니에서 엑스트라 라지까지 네 가지 사이즈가 제공되는 올림피오 라인이 추가돼 필기구의 라인이 확대됐다. 그 후 시계 컬렉션, 커프 링크스, 벨트, 타이바와 같은 남성 액세서리 컬렉션을 부활시켰다. S.T. 듀퐁 필기구의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정부 납품업체로 지정되면서 ‘듀퐁펜’은 현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의 애용품이 되었다.

    2003년 전통과 혁신의 갈림길에 서다 S.T. 듀퐁의 스타일은 더욱 견고해져서 럭셔리하고 특별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를 실현하는 표어에 충실하면서도 제품의 혁신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전통기술을 활용하여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 것에 현대의 혁신적인 시도를 더해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는 명품을 창조하고자 한다.

    1930년대 만들어진 크로스 그레인 가죽에서 영감을 얻어 호화로운 가죽 제품인 콘트라스트 라인을 출시했다. 이듬해, S.T. 듀퐁은 고품격과 장인기술의 절대 상징이었던 클래식 여행가방과 DJ케이스, 차후에는 바이스 케이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952년 윈저 공작을 위해 만든 ‘윈저 라이터’는 S.T. 듀퐁이 이어온 전

    통 유산에 대한 정신과 마음가짐으로 2006년에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다. 근래에는 브랜드의 상징적인 문양인 다이아몬드 헤드를 활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새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미적인 감성과 실용성, 장인정신, 이 세가지 요소가 끊임없이 긴장하고 조화를 이루어 S.T. 듀퐁은 강한 생명력을 얻었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S.T. 듀퐁이 138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성 명품 브랜드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시대가 바뀌고 수요층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추구해온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 S.T. 듀퐁의 자존심,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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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룬 남성들에게 특히 잘 알려진 ‘듀퐁 펜’의 명성은 오랜 세월 동안 브랜드의 자부심으로 인식되어 왔다. S.T. 듀퐁의 ‘네오 클래식 프레지던트’ 펜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프랑스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 참석한 29개국의 각국 대표들에게 선물한 펜으로 유명하다. S.T. 듀퐁의 펜은 150번의 세밀한 공정과 100시간 이상의 작업시간, 200가지 공정의 꼼꼼한 품질 관리를 거쳐 완성된다. 무엇보다 타 브랜드와의 차이점은 잉크와 카트리지 겸용이라는 효율성. 금속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전통옻칠을 응용한 듀퐁의 옻칠과 세공기술은 완성도의 깊이를 더한다. [장인지 jindalring@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호(2010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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