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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푸는 윤석열, 6월 중순께 등판?
입력 : 2021.05.25 16: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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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 광주민주화 운동 41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5·18에 대해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역사”라면서 “5·18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정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5·18은 어떤 형태의 독재와 전제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면서 “5·18 정신을 선택적으로 써먹고 던지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퇴임 후 잠행이 길어졌던 윤 전 총장이 5·18을 앞두고 낸 이 같은 메시지에 정치권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윤석열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언급 내용 중 일부가 현 정권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보일 만한 부분들이 있는 것도 그의 이번 목소리가 단순히 의례적인 메시지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가늠케 했다. 윤 전 총장은 5·18에 대해 “써먹고 던지면 안 된다” “진영에 따라 편할 때 쓰고 불편하면 던지는 것이 5·18 정신이냐” 등의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썼는데, 현 정권의 이중적 태도를 겨냥했다고 볼 만하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정교하게 정제된 언어로 대한민국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메시지를 낸 것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대권 후보로서 당연히 발언해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성철 소장은 “만일 윤 전 총장이 아무런 언급이나 행보 없이 지나쳤다면 대선주자로서의 자격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 측은 이번 5·18과 관련한 메시지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5·18 묘역 참배를 계획했지만, 여야 정치권이 모두 광주로 향하는 시기에 같은 행보를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메시지로 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에게 집중될 관심에 대한 부담도 일부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윤 전 총장의 당 합류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힘은 반색했다. 야권 대권주자로 각인되는 그의 공개 활동이 야권 전체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에서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전 총장의 메시지에 대해 “어설픈 흉내 내기”라면서 “직전 검찰총장으로 검찰개혁에 저항하다가 사표를 낸 사람이 5·18 정신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5·18 민주주의 정신을 제대로 아는가”라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의 공식 정치 무대 등판은 6월 중순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대선을 연기하지 않는다면 6월 21일부터 대선 예비 후보 경선이 시작되는데 그 전에 대선주자로 국민에게 정식으로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 측도 이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움직임이 곧바로 국민의힘과의 관계 설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윤 전 총장 측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출사표를 던지더라도 초기부터 굳이 국민의힘이란 바운더리에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공간을 좁히는 것이라고 본다”면서 “외연을 넓히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맞아 메시지를 낸 것도 이 같은 구상의 일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소장도 “스스로를 굳이 한계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면서 “윤 전 총장의 높은 지지율이 현 정권에 대한 높은 반감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확장성을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윤 전 총장이 6월 전당대회가 끝나는 즉시 입당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야 윤 전 총장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고,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제3지대로 성공하기에는 윤 전 총장에게는 시간과 물적 자원이 부족하다”면서 “윤 전 총장이 몸담을 플랫폼이 국민의힘 말고는 있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 유력 당권주자 중 한 사람인 주호영 의원은 “7월 대선 경선 열차 출발 전에 합류해야 한다”면서 거듭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의 관계 설정에 당장 적극적이지 않더라도 9월 초께는 방향성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뽑는 전당대회가 11월 9일 예정돼 있는데, 만일 국민의힘 경선주자들과 한배에서 경쟁을 하고자 한다면 최소 두 달 전에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야 경선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도 가질 수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지율이 계속 고공행진을 한다 해도 여당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윤 전 총장의 나 홀로 대선 승리는 쉽지 않다”면서 “결국 야권 단일화가 마지막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는 이낙연 전 당 대표다. 한때 지지율 1위를 달렸지만 윤 전 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루고 있는 양강구도에 밀려 좀체 회생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했다가 지지층의 외면을 받는 등 후유증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때 호남의 맹주였던 이 전 대표는 사면론 제기 이후 텃밭에서도 경북 안동 출신의 이 지사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이번 5·18 기념일을 반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절치부심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제안했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에 대해 “국민의 뜻과 촛불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는 5개월 만에 자신의 입장을 사실상 뒤집은 것으로, 그만큼 사면론 제안이란 실책이 뼈아팠단 얘기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는 ‘광주선언’으로 명명되는 사실상의 대선 출사표를 이번 지역 방문에서 던졌다. 그가 대선 출사표에 담은 것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제도화였다. 이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해 “이제까지 9차례의 개헌은 국민의 권리보다 권력 구조에 집중됐다”면서 “(이제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축의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불평등 완화는 승자 독식 구조를 상생과 협력의 구조로 바꿔 가는 것”이라며 “이를 위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는 광주∼대구 달빛내륙철도 건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 등 지역 개발 선물 보따리도 내놨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5월 18일 ‘5·18 민중항쟁 제41주년 서울기념식’이 끝난 뒤 참석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SNS에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던 언론, 죄 없는 국민을 가두고 살해하고 고문하는 일에 부역해온 검찰이 아직도 대한민국을 호령하고 있다”면서 “광주의 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개혁, 언론개혁은 광주 정신의 시대적 과제”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광주항쟁 41년이 지났지만 반성하지 않은 특권계급 검찰과 수구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그들만의 수구특권층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국민 기만극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현재 여권의 대권 구도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독주가 지속되고 있다. 지지율 측면에서 경쟁자가 없을 정도고, 최근에는 친문그룹의 좌장인 이해찬계의 공식 지원을 받으며 당 대선후보 굳히기에 나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정 전 총리의 발언은 다분히 친문 지지층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로 지지율 반등을 꾀한다는 것이다.
여권 대선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5·18행에 빠지지 않았다. 이 지사의 호남행에 앞서 경기도는 5·18 유공자 및 유족에게 오는 7월부터 월 10만원씩 생활지원금을 지급키로 해 이 지사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현재 광주광역시와 전남도를 제외하고 5·18민주유공자와 유족에게 생활지원금을 주는 것은 경기도가 처음이다.
이 지사는 호남에서도 평소 스타일대로 거침이 없었다. 이 지사는 5·18을 맞아 “국가 폭력범죄는 공소시효, 소멸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했고, 이 전 대표의 개헌론에 대해선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들의 구휼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갤럽이 5월 11, 12일 양일간 조사한 호남의 여권 대권주자 지지도는 이 지사가 39.1%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이낙연 전 대표(11.6%), 정세균 전 총리(6.1%)가 이었다.
야권 대권주자들도 광주행에 몸을 실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광주를 찾아 5·18 묘지를 참배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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