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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입력 : 2021.03.25 16: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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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보궐 선거 후 가장 큰 관심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다. 그의 등판 여부에 따라 판 자체가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총장을 그만둔 직후 실시된 대선 후보 여론조사서 1위를 기록한 후 여전히 그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의 40%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이 같은 여론 추이에 가장 반색하는 쪽은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 현재 진영에서 대선에 뛰어들겠다고 하는 이들 중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이런 와중에 현 정권과의 갈등으로 직을 그만둔 인사가 대권 지지율 1위에 오르자 ‘희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윤 전 총장은 정치권의 이 같은 분위기에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아직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정식으로 내비친 적이 없다. 검찰총장을 그만두기 직전 보수의 본산격인 대구를 방문한 것을 놓고 반여당 세력의 일원으로서 행보한 것이라는 분석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윤 전 총장을 둘러싼 이들만 대세론 형성을 위해 바쁜 모습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치 9단으로 평가받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전 총장에 대해 “스스로 커 나가지 못할 것”이라며 혹평을 한다.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 원로의 편협한 평가일 수 있지만 냉정한 현실일 수도 있다.
실제 과거 윤 전 총장처럼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제대로 된 도전도 못 해보고 사라진 정치인은 부지기수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있다. 2016년 대선서 도전을 공식화하기 전까지 반 전 총장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경쟁자였지만, 현실정치에 뛰어든 지 한 달도 못 돼 중도하차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치의 안과 밖은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때문에 윤 전 총장의 정치 입문이 현실화된다면 현 지지율을 유지해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고 이는 오롯이 그의 몫이라는 점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4월 보궐선거 과정에서 “보선이 끝나면 아주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 자체가 뒤흔들릴 수도 있다”며 “윤 전 총장이 어떤 정치적 역량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중심에 설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의원 하나 없는 중도 신당을 홀로 만들어 대선에서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힘 받는 마크롱식 독자 행보 만일 윤 전 총장이 정치인으로 변신을 한다면 어떻게 움직일까. 일단 윤 전 총장이 가장 고민하는 대목은 바로 ‘세(勢)’일 것이다. 일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그는 30%대를 훌쩍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원할 세력은 필수적이다. 정당 중심의 정치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같은 뜻을 가진 정치 세력들이 모여서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가 엉망일 경우 오히려 모인 사람들이 그의 지지율을 깎아먹을 가능성도 높다. 때문에 진용을 꾸리는 것은 그의 능력을 입증하는 1차적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윤 전 총장은 “범죄자만 잡던 이가 외교, 경제적 역량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무릎을 칠 전문가 집단을 주위에 포진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이미 수십 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그를 위한 팀을 꾸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은 어떻게 자신의 ‘세’를 구체화시켜야 할까.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야권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손을 잡는 것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것이 성사되면 내년 대선에서 당선 확률이 강력한 대선주자가 아니겠나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바로 결합하는 것은 ‘하수(下手)’로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국민의힘이 보수를 대표하지만 전체 국민들이 가지는 비호감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 폭등, LH 사태 등 여당의 잇단 정책 실패와 비리 의혹에도 전체 당 지지율은 상승세에 불구하고 여당을 앞지르진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올 3월 셋째 주 조사(3월 16~18일)에서 국민의힘의 지지도는 26%로 더불어민주당(35%)에 한참 뒤쳐진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정국이 여당 우위로 재편된 후 국민의힘(전신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포함) 지지도 최고치는 27%(2019년 10월, 2020년 8월)였다. 최근 여당이 온갖 악재로 힘겨워 하고 있는 와중에도 당 지지도가 26%에 그친다는 것은 현 보수 야당의 한계가 뚜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지적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붙잡았다”고 했다.
때문에 보수 야권에서는 윤 전 총장을 담을 빅텐트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제1야당과 손을 잡는다면 대선 승리에 필수적인 ‘확장성’ 면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아예 국민의힘을 허물고 야권 전체를 담을 새로운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주로 재야 보수 세력 및 시민단체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5월 창당설 등 구체화되고 있는 조짐도 파악된다.
이미 4월 보궐선거서 손을 맞잡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합당이 예정돼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이번 보궐선거는 중도와 보수가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윤 전 총장에게는 그리 편한 울타리가 아니다. 소위 빅텐트에 몸을 담게 되면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것에 분노하는 강경 우파 인사들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윤 전 총장을 자신들의 대권 주자로 인정할지도 의문이다.
이에 정치권에서 윤 전 총장이 일단은 자신만의 독자노선을 먼저 걸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명 3지대론인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도전과정을 언급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금융계 엘리트 출신인 자신을 경제산업부 장관까지 시켜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집권 사회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탈당해 의석 하나 없는 중도 신당(앙마르슈)을 만들고 바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 모델은 다른 보수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스터디가 되고 있는 대선 공략법인데, 지금까지 그들의 대선 지지율을 볼 때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상황이 좀 다르다. 홀홀단신임에도 불구하고 갈 곳 모르는 민심을 끌어 모으며 대권 주자 1위 반열에 올라 독자 정치 세력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규모를 갖춘 자발적 지지 모임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사모’로 2만 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함께 자유당’이라는 정당 이름까지 정해놓았으며, 현재 전국 조직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윤 전 총장은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승리 문법을 따르자면 윤 전 총장은 현 정당 세력에 대한 ‘대체재’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혜성처럼 나타나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 당시 프랑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극심한 상황에서 대안 세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치 상황도 기존 정당에 염증을 느끼는 비율이 계속 늘고 있는 점은 프랑스와 비슷한 점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현재 무당층 비율은 30% 선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현 여권의 경우 ‘대깨문’으로 불리는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마크롱 대통령이 출사표를 던졌던 2017년 프랑스 대선 당시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도는 4%대에 그쳤다.
또 다른 점은 마크롱 대통령이 흡수한 지지율은 여당에서 이탈한 지지층에서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상당수가 보수 성향인 것을 감안할 때, 정당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우위가 지속되는 상황은 윤 전 총장이 확보할 수 있는 지지율 파이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단 얘기다.
이는 윤 전 총장이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결국 확장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윤 전 총장이 3지대를 통해 선거에 승리한다면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자들이 보낸 화환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
실제 윤 전 총장의 등판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윤 전 총장이 보수의 대표 선수가 되는 순간 반작용으로 여당의 결집을 불러 일으켜 손쉬운 승리를 내줄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반윤 전선으로 현재 여당에서는 내심 이 같은 구도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재 윤 전 총장의 높은 지지율은 여당 내 1, 2위 대선주자인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의 지지율을 뺏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보수 지지층이 반문으로 결집한 것뿐”이라면서 “윤 전 총장의 등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거취가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면 반윤 전선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현 여권 우위의 정치 구도상 총선처럼 여유 있는 승리도 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윤 전 총장의 정치 등판설이 불거지자 대척점에 있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몸을 풀며 ‘반윤 기치’를 올리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추 전 장관이 움직이는 것은 대선주자로 직접 뛴다기보다 여권 세력 집결을 도모하는 차원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을 깎아먹는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윤 전 총장이 정치적 야망이 있다면 오히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내공을 키우는 것이 낫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이 직접 대권 주자로 나서기보다 내년 대선에서는 특정 주자를 지원해 정권을 창출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한 후 차차기 대선을 노리는 것이 더 전략적 행보라는 것이다.
윤상우 국제교류협회 이사장은 “사실 다음 대선은 윤 전 총장이 가진 30%를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는 이가 이기는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직접 선수로 뛰면서 전선을 명확히 해 여권을 결집시키는 것보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후보를 측면 지원하는 것이 더 파괴력이 있고, 더 멀리 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 이사장은 “지금 정치 상황에선 대선 주자 윤석열보다 킹메이커로서 윤석열이 더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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