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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 상승폭 제한될 듯
입력 : 2021.03.05 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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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급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돼 간다. 정부는 2025년까지 서울에만 32만 가구 등 전국에 83만6000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공급쇼크’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며 25번째 대책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구체적인 공급 시기와 부지가 빠진 발표 탓에 불확실성은 커졌고, 공공주도 개발에 민간이 호응할지도 미지수다. 대규모 공급이 현실화될지 장담할 수 없다. 설령 계획대로 추진된다 해도 대책 발표일 이후 주택을 매입하면 우선공급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 대상이 되는 것을 두고 위헌 논란이 뜨겁다.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서울 32만3000가구, 인천·경기 29만3000가구, 5대 광역시 22만 가구 등 총 83만6000가구의 신규 주택 공급 부지를 확보하되,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만2000가구가량을 공공이 노후 도심을 직접 개발해 공공주택으로 공급한다. 나머지 물량은 비도심 신규택지 지정으로 공급하는 물량 26만3000가구와 지난해 11·19 전세대책의 연장선에서 나온 매입임대주택 등 단기공급물량 10만1000가구 등이다.
이번 도심 공급대책으로 발표된 물량 대부분은 주택시장 불안이 극심한 서울에 집중돼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발표에서 “서울 물량(32만3000만 가구)은 서울시 주택 재고의 10%에 달하는 ‘공급쇼크’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분당 신도시 3배, 강남 3구 아파트 수 34만1000가구와 비슷한 규모”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과거 10년(2010~2019년) 평균 연간 주택 입주량은 전국 45만7000가구, 서울 6만9000가구 수준이었다.
이로써 앞서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과 3기 신도시 등을 통해 추진 중인 수도권 127만 가구 공급 계획을 합하면 이번 정부에서 수도권에 공급하는 주택은 200만 가구에 육박할 전망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번 대책에 대해 “이번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핵심은 공공주도 패스트트랙 제도 마련, 추가적인 신규택지 확보를 통해 수도권과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2025년까지 총 83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공급제도를 위해 신속히 법령을 정비하고 LH·SH 등 공공 주택공급 기관을 전폭 지원해 이주까지 필요한 시간을 기존 공급방식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단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공급대책을 통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에 곧 대규모 물량 공급이 있을 것이라고 강한 신호를 주면 ‘패닉바잉(공황구매)’에 나서는 무주택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홍 부총리는 “이처럼 막대한 수준의 공급 확대로 주택시장이 확고한 안정세로 접어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공급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지를 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기존 정비구역의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다.
우선 정부의 계획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통해 19만6000가구를 공급하는 것이다. 도심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에서 공공기관이 주도해 고밀 개발하는 사업으로 현행 공공주택특별법을 개정해 3년간 한시 도입한다. 용적률을 역세권 기준 최고 700%까지 올려주는 등 각종 규제도 풀어주기로 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토지주, 민간기업, 지자체 등이 저개발된 도심 우수입지를 발굴해 주택 등을 짓자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도시주택공사(SH공사)에 제안하면, 국토부와 지자체 등의 검토를 거쳐 그 지역을 예정지구로 지정하고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정지구로 지정된 지 1년 내에 토지주 등 3분의 2가 동의하면 사업이 확정되고, 토지수용 등 공기업의 부지확보, 지자체의 신속한 인허가를 거쳐 착공하는 식이다. 공공이 직접 시행자로 나서는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은 기존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이 대상이다.
주민 동의 후 LH, SH공사 등이 재개발·재건축을 직접 시행하고 사업과 분양계획 등을 주도해 신속히 추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 물량만 13만6000가구(서울 9만3000가구)로 잡고 있다. 공공 개입이 커지는 대신 다양한 인센티브를 준다. 용적률을 법적 상한선의 1.2배까지 올려주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의무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파트 35층 층수 제한도 풀어줄 방침이다. 정부는 민간이 추진할 때보다 수익률을 10~30%포인트 높이고 인허가 절차도 간소화해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기간을 5년 이내로 단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단,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규제도 만만찮다. 투기 방지를 위해 우선공급권은 1세대 1주택을 원칙으로 하고, 대책 발표일 이후 사업구역에서 기존 부동산 매입 계약을 새로 체결한 경우에는 우선공급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한 지역에서 여러 채 주택을 보유해도 입주권은 1채만 받을 수 있고, 만약 2월 4일 이후 사업 대상지에서 주택을 취득하면 시세보다 싼 감정평가금액대로 처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소유권 이전 등기 때까지 전매가 제한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입주권을 받은 소유주는 계약일로부터 5년간 투기과열지구에서 추진되는 다른 공공개발이나 일반 정비사업의 조합원이 될 수 없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공공주도 개발 추진이 공식화되는 즉시 사업 예정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매매를 제한하는 것이다. 또 사업예정지 가운데 가격이 크게 오르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이면 지구지정을 아예 중단하기로 했다.
이 외에 청약 제도도 대대적으로 손보기로 했다. 정부는 청약 가점이 낮은 30~40대 무주택자에게도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전용면적 85㎡ 이하인 아파트 공공분양에 추첨제를 도입하고 일반공급 물량을 기존 15%에서 50%로 늘린다. 단 이 추첨제에는 3년 이상 무주택 상태인 가구주와 가구 구성원만 참여할 수 있다. 분양가가 9억원을 넘는 공공분양 주택에는 소득요건도 배제한다. 기존에는 전용 60㎡ 이하 공공분양의 일반공급 물량에 소득(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 이하)과 자산요건(부동산 2억1550만원 이하, 자동차 2764만원 이하)을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이 조건을 없애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공급이 계획대로 시행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공급하기로 한 83만 가구가 3기 신도시(교산·창릉·왕숙·대장·계양) 공급 물량(17만3000가구)을 뛰어넘는 규모라서다. 사실상 4기 신도시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공이 직접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시행하면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를 면제해주기로 한 것도 기존 규제의 틀을 과감하게 수정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실현 가능 여부다.
83만여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내용만 강조했을 뿐 정작 언제까지, 어떻게 보상해 공급하겠다는 세부 계획은 빠져 있다는 비판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기 성과보다는 시장 수요에 맞는 장기적 공급 계획을 제시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이날 발표 내용에서 공급 계획을 보다 구체화하고 보강해야 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실질적인 공급과의 시간차로 인해 단기적으론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관련해 정부는 26만3000가구를 공급하기 위한 신규 택지지구 20곳을 상반기 중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부적으로 입지 선정 작업이 끝났지만 지자체와 구역 경계 설정 등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규택지 지구 외에도 공공재개발 구역 역시 2분기 내로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공공직접 시행 정비사업의 경우 법 시행과 함께 후보지 선정이 시작될 수 있도록 후보 지역에 대해 2월부터 2~3개월간 집중적으로 사업관계자 등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정부 의도대로 공급 확대 열쇠를 쥔 민간이 얼마나 공공주도 사업에 참여할지가 관건이다. 정부가 동의 요건이나 용적률, 실거주 의무 등을 완화했고 변창흠 장관 스스로 “(조합 입장에서) 이익이 되니 사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자평했지만, 정말 시장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또한 시장에서는 공공이 개입하면 사유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공공주도 개발 가능지역의 ‘현금청산’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2월 4일 이후 공공개발 사업구역에 집을 산 사람은 입주권(우선공급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현금청산은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액을 토대로 보상액이 정해지는 만큼 시세보다 적은 값을 받고 쫓겨날 수 있다는 우려, 이런 우려 때문에 공공개발 사업구역에서 매매 거래가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자유로운 부동산 거래를 막는 것은 엄연한 국민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금청산이 ‘헌법상 정당한 보상’이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홍 부총리는 “현행 토지보상법 체계상 기존 소유자 재산에 대한 보상은 현금보상이 원칙”이라며 “감정평가 후 실시하는 보상은 헌법상 정당보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재개발 구역 빌라 소유자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분양권을 얻을 목적으로 빌라를 구입했다는 점에서 현금 청산이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공공주도 3080플러스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09%로 한 주 전(0.1%)보다 0.01%포인트 소폭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36주째 상승세를 이어 왔고, 연초부터는 상승폭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2·4 대책 발표 이후 둔화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고가 아파트 매수세가 주춤해진 가운데 중저가 외곽 단지 아파트값 상승세는 계속된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이를 두고 시장의 해석은 엇갈린다. 역대급 공급대책으로 수도권 집값이 변곡점을 맞았다는 주장과 ‘공공’ 위주의 공급대책은 오히려 인기 지역 아파트 희소성만 부각해 집값 상승세를 키울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쪽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물량 공급 신호가 장기적으로는 ‘패닉바잉(공황구매)’을 막고 집값을 안정시킬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공공이 직접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시행하면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를 면제해주기로 한 것도 공급 가뭄이 해소될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공공주도 개발 사업에 대한 정교한 실행 계획이 나온다면 3기 신도시와 더불어 무주택자 불안감을 해소하고 집값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2·4 대책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구체적인 지역이나 공급 로드맵이 없는 발표만으로는 시장 매수세를 잠재우기 어려운 만큼 당분간 집값 강보합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신규 매입 주택은 현금청산이 돼 상승세가 주춤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새 아파트 몸값이 더 높아질 여지가 있어 보합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결국 2·4 대책 효과는 구체적인 공급 계획이 나왔을 때 판단이 가능한 셈이다. 고종완 원장은 “아직은 근본적인 집값 안정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며 “일부 그린벨트 해제와 리모델링 활성화, 한시적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 등을 병행해 공급 효과를 배가시키는 방법도 고려해봄 직하다”고 덧붙였다.
“공공이 모든 것을 해결하긴 불가능하다. 2·4 대책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인데, 보다 다각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양쪽에서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은 단기적으로나마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격히 하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매매 수급 현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11.9로 1주 전(110.6)보다 1.3포인트 상승했다. 상승폭은 직전(0.3포인트)보다 컸다. 가파른 상승세에 매주 역대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매매수급지수는 수급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집을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보다 많아 ‘매도자 우위’ 시장이라는 뜻이다. 기준 이하는 반대로 ‘매수자 우위’ 시장이다. 매수세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서울 아파트값이) 둔화한 것은 2·4 대책의 효과가 아니라 최근 가파르게 올라서 숨 고르기로 보는 게 합당하다”며 “이어 중저가 매수세가 이어지며 집값이 오르고, 결국 이 상승세가 다시 고가 아파트값을 밀어 올리는 모습이 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공개발에 대한 대기 수요가 나오면서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시작될 경우 상승폭은 크게 둔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나오지만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시작되고 나면 서울 32만 가구에 대한 기대감과 맞물려 대기 수요가 발생할 수 있고 기존 집값 상승폭은 지난해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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