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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이는 주얼리 시장, 보석으로 대박 노리는 재테크
입력 : 2020.11.30 15: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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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시계와 보석에 대한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지금까지 약 20% 정도 상승했는데, 예전에 비해 보석이 세팅된 시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관계자가 전한 국내 시장 상황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는지 원인을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 현실적으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하이엔드 시계나 주얼리 분야가 유동자금의 덕을 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신혼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예물에 신경 쓰는 예비부부들도 늘었어요. 금보다 다이아몬드가 환금성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경향을 고려하는 분들도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백화점의 올 워치주얼리 상품군 신장률(1~10월 기준)을 살펴보면 지난해 동기 대비 28.1%나 늘었다. 서울 종로3가의 귀금속거리에 나가보니 누구랄 것도 없이 다이아몬드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중 한 귀금속 전문점 사장이 상황을 전했다.
“환금성이 크다는 게 그 이유인데, 같은 1캐럿이라도 최하등급과 최상등급이 1000만원 이상 차이나기도 합니다. 과시보다 투자개념이라면 무엇보다 중량이 중요하죠. 지금이야 금리가 바닥이지만 은행에 예금하면 액수가 클수록 이자가 더 붙잖아요. 다이아몬드도 국내외 시세가 오를 때 캐럿의 상승폭이 더 큽니다. 국내 다이아몬드 시장에선 등급이 F컬러, SI급, 베리굿 컷 이상일 때 유통이 수월하죠.”
각 감정원이 다이아몬드를 감정할 땐 4C가 중심이 된다. 컷(Cut), 무게(Carat Weight), 컬러(Color), 투명도(Clarity)가 그것이다. 그럼 4C는 누가 어떻게 정한 기준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인 1888년에 창립된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채광 유통 가공업체 드비어스(De Beers)가 1939년 세계 최초로 4C 개념을 제안했다. ‘컷(Cut)’은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형태로 커팅한다.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페어 컷, 오벌 컷, 에메랄드 컷, 프린세스 컷, 쿠션 컷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2020년 11월에 개최된 소더비 제네바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 현장 ©Sotheby’s
다이아몬드의 ‘컬러(Color)’는 (지금은 컬러를 중시하지만) 전통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투명할수록 가치가 높다. 함유된 질소의 양에 따라 옐로, 브라운 등의 색상을 띠게 되고, D, E , F~Z 등급으로 나뉜다. 이외에 비비드한 컬러를 띠는 것은 D~Z 등급은 표시하지 않고 팬시 컬러로 분류한다. 같은 조건에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는 레드와 핑크-블루-그린-오렌지-옐로-브라운의 순으로 등급이 정해지지만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 자체가 희귀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
또한 내포물이 없을수록 ‘투명도(Clarity)’의 등급이 높아진다. FL(Flawless), IF(Internally Flawless), VVS1, VVS2, VS1, VS2, SI1, SI2, I 1, I2, I3 등 11등급으로 나뉜다.
슈퍼리치들이 주목하는 하이 주얼리의 세계 윤성원 주얼리 컨설턴트·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14.83 캐럿, 팬시 비비드 퍼플-핑크 ‘장미의 정령’ 다이아몬드 ©Sotheby’s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와중에도 초고가의 주얼리는 꾸준히 팔리고 있다. 물론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경매회사들이 돌파구를 찾느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이 주얼리는 천문학적인 가격이 붙는 만큼 철저한 프리뷰가 선행되어야 하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품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대규모 프리뷰와 현장 경매에 제동이 걸리자 각 회사들은 온라인 경매를 신속하게 활성화하며 비대면 서비스와 디지털 프리뷰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덕분에 크리스티와 소더비 양사의 ‘온라인 주얼리 경매’는 지난 6개월 사이 두 번이나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치열한 선두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11월 크리스티 제네바에서 주관한 ‘매그니피슨트 주얼스(Magnificent Jewels) 경매’의 낙찰률은 89%에 달했다. 그것이 일상생활이 제한되는 팬데믹 현실에 대한 보복 소비이든 경제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든 하이 주얼리를 차지하기 위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주얼리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오늘날 하이 주얼리는 투자처로도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보석은 소유할 수 있는 주체가 법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로 신분적 질서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돈만 있으면 가질 수 있다. 대신 그 가치와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느냐의 여부가 돈과 권력으로 차별화되지 않는 부분을 해결해준다. 초점이 부와 힘의 상징에서 안목과 취향의 과시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취향은 계급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최고의 권력은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는 힘이다. 게다가 주얼리는 단지 손에 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직접 착용할 수 있을뿐더러 특유의 내구성으로 세월이 흘러도 고유의 가치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102.39 캐럿, D컬러, Flawless, 타입2a 다이아몬드 ©Sotheby’s
주얼리에 감성적인 가치가 작용하는 것은 이상적인 꿈과 승리의 가치를 구매하려는 심리로 이해하면 된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의 주얼리를 구매하는 사람은 브랜드의 이미지와 명성, 문화적인 반향 효과 같은 사회문화적 가치와 본인이 느끼는 감성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는 가격과 등급이라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마음의 위안과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 충족의 즐거움이 우선시된다.
28.88 캐럿, 팬시 비비드 옐로 다이아몬드 ©Christie’s
하지만 21세기 하이 주얼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색’이다.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달리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와 유색보석의 평가 기준에서도 색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특히 유색석은 보석마다 선호되는 산지와 색이 따로 있고, 천연의 색인지 가공을 거쳤는지 여부가 가치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원산지와 별도의 처리 유무를 밝힌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감정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118.88 캐럿, 비가열 버마 사파이어 ©Sotheby’s
이를테면 고품질의 핑크 다이아몬드는 동급의 화이트 다이아몬드 대비 약 20~50배의 가치가 매겨진다. 블루 다이아몬드 역시 투자자들 사이에서 핑크 다이아몬드에 맞먹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상급 색인 팬시 비비드(Fancy Vivid)와 그 다음 등급인 팬시 인텐스(Fancy Intense)에 구매가 집중된다. 핑크, 블루, 그린에 비해 비교적 산출량이 풍부한 옐로 다이아몬드는 최상급의 빅 캐럿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색보석은 버마(미얀마) 루비, 카슈미르와 버마 사파이어, 콜롬비아 에메랄드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카슈미르 사파이어는 오래전에 고갈되었고, 버마 루비와 사파이어도 거의 고갈된 상태라 경매에 등장했다 하면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다. 물론 같은 산지라도 품질은 천차만별이며 열처리가 되지 않은 스톤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때문에 ‘공신력 있는’ 감정서에 ‘비가열(No-Heat)’ ‘피전 블러드(Pigeon’s Blood)’ ‘로열 블루(Royal Blue)’라는 용어가 붙어 있으면 투자자들은 열광한다. 에메랄드는 내포물이 많아서 오일 처리가 불가피한 보석이므로, 오일링(Oiling)의 정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노 오일(No-Oil)’이나 ‘인시그니피컨트(Insignificant)’ 오일링 에메랄드는 희소성이 높아 매우 고가에 거래된다.
16.38 캐럿, D, Flawless, 타입2a, 다이아몬드 반지 ©Sotheby’s
소장 기록도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로열 패밀리나 유명인이 소유했다든지 역사적인 스토리가 담긴 주얼리는 같은 종류라도 더 비싸게 거래된다. 유명인이 소장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성 가치가 더해지고 여기에 권위 있는 경매회사의 홍보가 뒷받침되면 투자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이외에도 불후의 아티스트로 추앙 받는 ‘베르두라(Verdura)’ ‘수잔 벨페롱(Suzanne Belperron)’ 같은 20세기의 주얼리 디자이너들과 ‘JAR(Joel Arthur Rosenthal)’ ‘월리스 챈(Wallace Chan)’ ‘에드먼드 친(Edmond Chin)’ ‘신디 차오(Cindy Chao)’ 등 동시대 유명 디자이너들의 유일무이한 주얼리도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쏙쏙 채우고 있다.
6.41 캐럿, 비가열 버마 ‘피전 블러드’ 루비 반지 ©Sotheby’s
국내 주얼리 시장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선호도가 유달리 높다. 주얼리 시세도 다이아몬드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신분에 따른 복식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고 사치금지령으로 장신구가 발달하지 못한 탓이 크다. 흰옷을 즐겨 입고 감정을 드러내는 화려한 색을 점잖지 못한 것으로 여기던 국민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장신구를 갖춰 화려하게 성장(盛裝)하는 파티 문화가 거의 없었던 것이 다이아몬드를 선호하게 된 배경으로 짐작된다. 다이아몬드의 색 등급을 고를 때도 해외에 비해 무색의 D컬러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최근 들어 일부 층을 중심으로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접근성이 좋은 옐로 다이아몬드에 한정되어 있다. 초고가의 핑크 다이아몬드와 블루 다이아몬드의 거래는 미미한 수준이다. 유색보석의 투자도 버마 루비와 실론 사파이어로 쏠림 현상이 강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주얼리 경매를 운영하는 케이옥션은 프리미엄 경매와 상설 판매를 통해 고가의 주얼리와 나석(세팅되지 않은 보석)을 거래하고 있다. 투자를 목적으로 찾는 층에서는 3캐럿 이상의 화이트 다이아몬드와 팬시 등급 이상의 옐로 다이아몬드, 고품질의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의 거래가 꾸준한 편이다. 최근에는 5캐럿 이상 화이트 다이아몬드, 비가열(No-Heat) 루비와 사파이어, 10캐럿 이상 팬시 컬러 사파이어를 찾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확실히 하이 주얼리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하이 주얼리 시장은 크게 보면, ‘귀보석 중심의 주얼리’와 브랜드의 창의적인 디자인과 까다로운 세공 과정을 거친 ‘하나뿐인(유일무이) 주얼리’로 양분된다. 그라프의 D컬러 플로리스(Flawless) 등급의 빅 캐럿 다이아몬드나 팬시 비비드 옐로 다이아몬드, 버마 사파이어와 콜롬비아 에메랄드 주얼리가 전자에 속한다. 한편 보석의 캐럿보다 차별화된 스토리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성공적인 실적을 거둔 브랜드도 늘었다. 작년에 불가리에서 발표한 ‘와일드 팝(Wild Pop) 컬렉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티파니에서도 투자 가치와 패션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소비자들의 영향으로 화려한 유색석이 세팅된 하이 주얼리 목걸이와 팔찌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프리미엄 경매 현장 ©케이옥션
세계 하이 주얼리 경매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2019년 ‘톱10 주얼리’는 무엇일까. 일단 슈퍼리치의 투자 세계에서는 핑크와 블루 다이아몬드의 위용이 굳건하다. 소더비에서 지난 10년간 경매를 통해 판매한 최고가 다이아몬드의 절반이 핑크 다이아몬드일 정도다. 지난 7월 홍콩과 제네바에서 개최된 크리스티의 ‘매그니피슨트 주얼스’ 경매에서도 블루 다이아몬드가 최고 낙찰가를 휩쓸었다.
화이트 다이아몬드는 5캐럿 이상에 완벽한 등급, 최근에는 ‘타입2a’가 대세이며, 유색보석은 원산지가 중요하므로 버마 루비, 카슈미르, 버마, 실론 사파이어, 콜롬비아 에메랄드 위주로 거래된다. 천연 진주도 지난 10년간 중동과 인도 컬렉터를 중심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예부터 비취를 귀하게 여긴 중화권에서는 ‘임페리얼 그린’ 색의 천연 비취가 여전히 독보적이다. 유럽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이 소장했던 ‘로열&노블 주얼리’ 시장이 안정적이며, 아르데코 시대의 주얼리는 미국, 유럽, 아시아를 막론하고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소더비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아시아 컬렉터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여성 컬렉터가 지난 10년간 20%나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낙찰자의 50%가 여성인 경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특히 40세 이하 그룹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여성 고객이 톱 품목을 낙찰 받는 비율도 높아졌다.
5.22 캐럿, 까르띠에 팬시 인텐스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 ©Sotheby’s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역사와 전통, 문화, 예술성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10대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로 꼽히는 ‘까르띠에’ ‘해리 윈스턴’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티파니’ ‘부쉐론’ ‘그라프’ ‘쇼파드’ ‘부첼라티’ ‘쇼메’ 역시 이러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브랜드가 오랜 세월 존재해왔다는 것, 특히 럭셔리 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1,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만의 생존 필살기가 반드시 있으리란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 노하우가 브랜드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고,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스토리를 품고 있다는 측면에서 브랜드의 미래 가치까지 점쳐볼 수 있다.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의 하이 주얼리는 예술 작품으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하이 주얼리는 사실상 예술가의 창작 활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노하우와 장인정신이 결합되어 응용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예술품과 마찬가지로 하이 주얼리를 고르는 안목과 취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보통 주얼리 컬렉션은 개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브랜드나 스토리, 디자인, 소재로 시작하지만, 보다 가치 있는 컬렉션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예술품 감정 못지않은 훈련된 심미안이 필요하다. 이때 주얼리의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는 힘은 디자인의 독창성, 스톤 그 자체의 가치, 제작 기법, 역사와 문화를 얼마나 통합적으로 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이 주얼리는 ‘착용 가능한 예술품’으로서 패션적 가치를 즐긴 후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장기적인 투자로 접근할 때 포트폴리오 구성도 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윤성원 주얼리 컨설턴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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